독일 라이프니츠 그라시민속학박물관 소장 '곽분양행락도'(보존 처리 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독일 라이프니츠 그라시민속학박물관 소장 '곽분양행락도'(보존 처리 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8폭짜리 병풍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펼쳐져 있다. 신선처럼 보이는 노인이 집 마루에 앉아있고, 주변에 처첩과 자손들이 늘어섰다. 잔치의 흥을 돋우는 무희들 주위로 아이들이 뛰놀고 있다. 한눈에 봐도 경사스러운 날임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유행했던 '곽분양행락도'의 모습이다. 중국 당나라 때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렸던 분양왕 곽자의(697~781년)의 노년을 묘사했다. 누구나 바라지만 아무나 살 수 없던 인생을 모방하고 싶었던 걸까. 궁중과 사대부 집안에 주로 걸렸던 '곽분양행락도' 병풍 양식은 19세기 이후 민가까지 확산했다.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이 11일 오전 서울 상도동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에서 보존 처리를 마친 조선시대 병풍 '곽분양행락도'를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이 11일 오전 서울 상도동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에서 보존 처리를 마친 조선시대 병풍 '곽분양행락도'를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 소장 곽분양행락도 병풍이 우리 손에 의해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1일 서울 상도동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에서 보존 처리를 마친 그라시민족학박물관 소장 곽분양행락도를 공개했다. 지난 2022년 말 보존·복원 사업에 착수한 지 약 15개월 만의 성과다.

곽분양행락도의 주인공인 곽자의는 입신양명과 부귀영화, 무병장수를 두루 누린 '복락의 아이콘'으로 꼽힌다. 당나라 무신으로서 '안사의 난'(755~763년)에서 무공을 세웠고, 토번(티베트)을 평정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당나라 황제로부터 분양군왕으로 봉해졌다. 슬하에 16여명의 자녀를 두고 황실과 사돈을 맺을 정도로 영예를 누렸다.

유물은 전부 펼치면 가로 408.8㎝, 세로 183.2㎝ 크기다. 국내외 현전하는 40여개의 곽분양행락도의 도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3폭은 축하객이 즐비한 정원이 들어섰다. 4~6폭은 곽자의와 손자, 악대와 무희 등 연회 장면을 묘사했다. 7~8폭은 여성들의 공간으로, 부인과 젖먹이 아이, 치장하는 여성 등을 그렸다.

이번 곽분양행락도는 1902년 독일의 미술상 '쟁어'로부터 박물관이 구입해 소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쟁어는 독일 함부르크를 기반으로 활동했던 미술상 대표로 알려졌다.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실제로는 일본 측에서 유물을 수집해 쟁어한테 보냈고, 이를 박물관 측에서 소장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독일 라이프니츠 그라시민속학박물관 소장 '곽분양행락도'(보존 처리 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독일 라이프니츠 그라시민속학박물관 소장 '곽분양행락도'(보존 처리 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그라시민족학박물관 소장 곽분양행락도는 그동안 그림 부분만 잘린 채 수장고에 낱장으로 보관돼왔다. 지난 2022년 11월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에 들여올 당시에도 각각 한 장씩 나뉜 형태였다. 연구소는 X선 형광 분석기로 안료를 분석한 뒤, 전통 방식으로 병풍 틀을 새로 만들어 배접했다.

원래의 병풍 형태를 갖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유물 일부의 손상은 회복되지 못했다. 병풍의 양 가장자리인 1폭과 8폭은 칼로 오려낸 듯 다른 폭보다 크기가 작다. 각 폭 오른쪽 상단에는 과거 수집가들이 볼펜으로 써넣은 것으로 추정되는 식별번호가 남아있다. 연구소 측은 "안료와 배경 종이의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물 세척만 진행한 결과, 볼펜 등 얼룩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울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유물은 3월 말 원소장처인 그라시민족학박물관으로 보내져 독일 현지 관람객들한테 선보여질 예정이다. 김정희 이사장은 "외국에 소장된 한국 문화유산을 반드시 환수하지 않더라도 그 가치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국외 소재 문화유산의 보존 처리를 지원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