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현실의 김과장 이대리들도 고참이 됐다. 이제는 대리, 과장 대신 차장이나 부장이란 직급이 더 익숙하다. 본인과 동료들에게 “살아남느라 수고 많았다”는 위로를 건네고 “앞으로 10년 더 고생해보자”고 다짐하는 이들의 지난 10년을 되돌아봤다.
그래픽=이정희 기자 ljh997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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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에 양폭’은 이제 전설로

김부장, 이차장들에게 지난 10년간 직장 문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물어봤다. 본지가 10년차 이상 직장인 11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7.0%가 ‘회식 강제 참여나 과음 회식이 눈에 띄게 줄거나 없어졌다’고 답했다.

“회식 한번 하면 3차는 기본이었는데 이제는 10시를 넘기는 일이 거의 없어요. 회식 횟수도 분기에 한두 번 수준으로 줄어들었고요.” 건설회사에 다니는 김 차장(40)이 ‘지난 10년간 가장 많이 바뀐 직장 문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내놓은 답이다. 당시만 해도 ‘양폭’(양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소폭’(소주+맥주) 이상은 마실 일이 별로 없다고 했다. 김 차장은 “금융위기 이후 건설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흥청망청 마시는 일이 없어졌다”며 “요새 신입사원 대다수는 양폭 얘기만 들었지 마셔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설문조사 답변 중에는 “저녁 회식보다 점심 회식이 많아졌다” “당일 결정되는 회식이 없어졌다” “개인 사정에 따라 중간에 귀가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졌다”는 의견이 많았다.

두 번째로 많았던 답변은 ‘야근이 줄고 퇴근 시간이 빨라졌다’(29.4%)였다. 특히 지난 7월 도입된 주 52시간 근로제가 영향을 미쳤다. 제조업체 소속 나 매니저(38)는 “예전에는 일이 없어도 1시간은 예의상 연장근무를 했는데 지금은 오후 6시면 PC가 꺼진다”고 말했다.

“임원 말 한마디에 업무 방향 오락가락 여전”

10년이 지났지만 바뀌지 않은 것도 있다. 일하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답변이 많았다. 응답자의 32.8%가 ‘불합리하고 강압적인 업무지시가 여전하다’는 보기를 골랐다.

항공업계에서 일하는 곽 차장은 “아직도 임원의 말 한마디에 업무 방향이 수시로 바뀌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토로했다.

‘연차휴가 사용 시 여전히 눈치를 봐야 한다’는 답변도 31.9%로 적지 않게 나왔다. 다만 10년간 바뀐 문화를 묻는 항목에선 23.5%가 ‘연차휴가 사용이 자유로워졌다’고 답해 회사별, 직군별로 상황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답변자의 상당수가 부장, 차장 등 중간 관리자라는 점도 연차를 내기 힘든 이유로 추정된다. 인천의 한 중견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김 부장(42)은 “사원, 대리는 비교적 자유롭게 연차를 쓰지만 부장 이상 관리자급은 연차 사용이 자유롭지 못하다”며 “연차 소진 때문에 휴가를 내고 출근하는 사례까지 있다”고 말했다.

80.7% “후배 행동 이해하기 힘들 때 있다”

10년이 넘는 직장생활은 신세대가 기성세대로 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응답자 가운데 80.7%가 ‘후배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답했다.

서울의 한 콘텐츠회사에서 일하는 박 차장(39)은 최근 후배와 외근을 나갔다가 겪은 일화를 들려줬다. 오전 11시께 밖에서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 이른 점심을 먹고 낮 12시 넘어 회사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후배는 “점심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들어가겠다”며 사무실로 들어가길 거부했다. 박 차장은 “점심시간에 뭘 하든 자기 마음이지만 당시에는 당돌한 말이라고 생각해 화를 내며 사무실로 끌고 들어왔다”고 털어놨다.

답변 대부분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사이 어디쯤 걸쳐 있는 후배들의 태도를 지적한 것이었다. “동료나 선후배에 대한 배려 없이 본인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 “팀워크보다 개인을 우선시할 때” “팀 스케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때”와 같은 불만이 쏟아졌다.

그래서일까. ‘상사의 입장이 되니 나도 꼰대 같은 행동을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10명 중 7명(73.1%)이 “있다”는 답을 골랐다. 시중은행에서 15년째 일하는 최 차장(43)은 후배의 의견을 무시하는 자신을 보고 스스로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는 “연차가 낮을 때는 선배들이 옛날얘기 하는 걸 싫어했는데 어느새 내가 후배들에게 ‘내가 입행했을 때는 말이야’라고 하고 있더라”며 “후배 의견이 맞을 수도 있는데 ‘네가 뭘 안다고’라고 생각했다가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상당수 응답자가 최 차장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옛날에는’ ‘내가 너만 할 때는’ 같은 말을 쓰는 자신을 보면서 ‘꼰대’가 된 것을 느낀다고 했다.

이승우/양병훈/하헌형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