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국계 병원을 유치하기 위해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에 조성한 부지 전경. 정부는 7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이 부지에 국내 종합병원 설립을 허용하기로 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정부가 외국계 병원을 유치하기 위해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에 조성한 부지 전경. 정부는 7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이 부지에 국내 종합병원 설립을 허용하기로 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송도 국제병원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추진해온 대표적인 서비스산업 육성책이다.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을 허용해 해외 자본을 유치하자는 게 취지였다. 하지만 지난 16년 동안 ‘공공의료, 의료복지’를 외치는 반대 논리에 부딪혀 한발짝도 내딛지 못했다. 급기야 정부는 국제병원 설립을 사실상 백지화하고 대신 국내 병원을 짓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다. 영리병원에 반대하는 일부 여론과 국내 병원이라도 설립해달라고 요구하는 지역 주민의 눈치를 본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제주에 들어서기로 한 또 다른 투자개방형 병원인 녹지국제병원도 정부 승인까지 떨어졌는데도 시민단체 반대에 좌초 위기에 놓여 있다. 한 전문가는 “세계 각국이 앞다퉈 의료 분야에서 투자 제한을 풀어주고 있는 가운데 한국만 ‘퇴행의 길’을 걷고 있다”며 “송도 국제병원 백지화는 시민단체와 이익집단에 휘둘리는 의료 선진화 정책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DJ정부 때부터 추진해온 '동북아 의료 허브'… 시민단체 반발에 꺾여
◆물건너 간 ‘동북아 의료허브’

송도 국제병원 설립은 2002년 12월부터 추진됐다. 당시 정부는 ‘동북아 의료허브 구상’을 내놓으며 외국 자본에 한해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인 전용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을 허용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2003년 송도가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자 부지 8만㎡를 마련해 병원 유치에 나섰다. 그러나 여야 간 이견으로 외국인 투자한도, 내국인 진료비율, 외국인 의사 비율 등에 대한 세부 법 조항 마련이 지연되면서 병원 설립에 차질을 빚었다.

2005년 참여 의사를 밝혔던 미국 뉴욕 프레스비테리안(NYP) 병원이 법령 미비로 사업계획을 세우지 못하자 손을 털고 나갔다. 이후 미국 존스홉킨스병원이 2009년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일본 다이와증권캐피털마켓, 삼성증권 등이 투자의사를 밝히면서 병원 설립이 가시화되는 듯했다. 이번에는 인천시가 돌연 설립에 반대하는 쪽으로 돌아서면서 무산됐다. ‘고급 의료인력이 빠져나가 국내 일반병원들은 황폐화할 것’이라는 시민단체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송도 국제병원 설립이 어려워지자 현지 주민과 인천시 등은 국내 종합병원 설립을 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조동암 인천시 정무경제부시장은 지난해 7월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송도 국제병원 부지에 국내 의료기관을 지을 수 있도록 개발계획 변경을 건의했다.

◆투자개방형 병원 공론화한다더니…

또 다른 국제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도 좌초 위기다. 제주도는 경제자유구역은 아니지만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법 제정으로 국제병원 설립이 허용됐다. 중국 뤼디(綠地)그룹이 100% 지분(778억원)을 투자해 녹지국제병원을 설립하기로 하고 2015년 보건복지부 승인을 받았다. 지난해 6월 준공을 하고 채용까지 끝냈다. 그런데도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 막혀 개원 허가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개원 허가권을 가진 제주도는 “녹지국제병원 허가 여부를 청와대, 복지부 등과 논의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원희룡 지사가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을 지는 결정을 꺼린다는 얘기가 나왔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이 지지부진하자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을 공론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조차도 이번 서비스 혁신방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웃 중국도 병원에 대한 외국인 투자제한을 푸는 보건의료 개혁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며 “투자 활성화를 통한 의료 선진화를 추진하지 않으면 한국 의료산업은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도원/김일규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