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료부족으로 길거리 서있는 자동차들 >  쿠바의 운전자들이 지난 2일 수도 아바나에서 주유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쿠바는 극심한 식량난과 함께 에너지 대란을 겪고 있다. /AP연합뉴스
< 연료부족으로 길거리 서있는 자동차들 > 쿠바의 운전자들이 지난 2일 수도 아바나에서 주유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쿠바는 극심한 식량난과 함께 에너지 대란을 겪고 있다. /AP연합뉴스
교류 단절 65년 만에 지난 14일 전격 성사된 한국과 쿠바의 수교는 쿠바가 최근 겪고 있는 극심한 경제난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회주의 국가 쿠바는 경제난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을 하고 북한과의 특수 관계를 저버리면서까지 한국과의 수교를 결단했다는 분석이다.

15일 KOTRA와 외신 등에 따르면 쿠바는 물가 폭등, 식량난, 에너지 부족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미국의 경제 제재를 거치면서 경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어서다. 2021년 152%로 치솟은 물가상승률은 2022년과 지난해에도 76.1%, 62.3%를 기록하는 등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쿠바 정부는 지난해 인플레이션과 암시장에서의 환율 급등 등을 막기 위해 기업 간 현금 거래를 5000페소로 제한하는 등 현금 사용 제한 조치까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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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난 역시 심각하다. 피크 사용량 대비 전력이 25~35% 부족해 수도 아바나를 포함, 전국에서 전력 배급제를 시행할 정도다. 이달에는 야구 축구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 경기를 중단하기도 했다. 쿠바의 주된 외화 수입원이던 관광산업도 코로나19 이후 큰 타격을 받았다. 식량난도 심각해 최근 주민들이 공공 식품 창고에서 닭고기를 절도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당초 한국과의 수교에 부정적이던 쿠바의 태도가 지난해부터 급격히 바뀐 건 이 같은 경제난을 해소하는 데 한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으로 풀이된다. 쿠바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로 단기간에 양국 간 경제 협력이 활성화되긴 어렵지만, 정식 수교를 맺은 만큼 투자와 교역량이 점진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과 쿠바의 교역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와 쿠바 간 관계 개선 직후인 2017년 7000만달러를 기록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후 감소세다. 2022년 기준 1381만달러까지 줄었다. 과거 한국의 대쿠바 주력 수출 품목이던 디젤 발전기 등도 2018년부터 수출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성준 KOTRA 아바나 무역관장은 “이번 수교를 계기로 한국 기업들이 디젤 발전기, 발전 설비 기자재·부품 등의 수출을 재개해 쿠바의 전력난 해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발전 플랜트의 성능 개선 프로젝트 등 새로운 사업 기회도 발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국제사회의 쿠바 제재 상황을 보면서 당국이 작년부터 추진한 무역 투자 원활화 협정을 검토해볼 수 있다”며 “쿠바가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위치를 확보했을 때 경제 관계를 더 확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지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쿠바 내에 법인이나 지사를 둔 한국 기업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계 관계자는 “쿠바는 수입 대금 지급이 민간 자금이 아니라 정부 예산으로 집행돼 외환 수급 상황이 악화하거나 절차상 문제가 있을 때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 기업의 진출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는 이번 쿠바와의 수교에 대해 “대(對)사회주의권 외교의 완결판”이라고 평가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쿠바는 북한과 아주 오랫동안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우방국”이라며 “그동안 수교 문제에 대해 쿠바가 한국에 긍정적인 호감을 갖고 있었음에도 선뜻 응하지 못했던 것은 북한과의 관계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역사의 흐름 속에서 대세가 어떤 것인지, 또 그 대세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 것”이라며 “북한으로서는 상당한 정치적, 심리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동현/김세민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