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HMM 매각 결국 무산…산은·하림, 협상 결렬
HMM 매각이 최종 불발됐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하림그룹-JKL파트너스 컨소시엄과 정부 측이 6일까지 한 주주 간 계약 협상이 결렬되면서다. HMM은 당분간 산업은행 등 채권단 관리 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이날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산은, 한국해양진흥공사 등과 하림이 HMM 매각을 위해 진행해온 주주 간 계약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 양측은 이날 밤 12시까지 협상을 이어갔지만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이에 따라 매각 작업은 백지화됐다. 하림 컨소시엄은 지난해 12월 진행된 HMM 지분 57.9% 인수전에 6조4000억원을 써내 동원그룹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가 됐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양측은 HMM 매각 이후 경영 주도권을 누가 쥘지를 놓고 치열하게 대립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림은 산은과 해진공이 이번에 보유 지분을 매각하고 나면 영구채만 보유한 최대 채권자이므로 과도한 경영 개입을 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 매각 측은 HMM이 국가 해운산업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큰 만큼 매각 이후에도 일정 부분 경영을 감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맞서왔다. 특히 해진공과 해양수산부가 하림 측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을 강하게 편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작업이 무산되면서 산은과 해진공은 HMM 지분 57.9%를 그대로 보유한 대주주로 남게 된다. 산은과 해진공은 1조6800억원 규모의 영구채도 보유하고 있다. 이 영구채는 올해와 내년에 차례로 콜옵션(조기상환청구권) 행사 시점이 도래한다. 산은과 해진공은 배임 우려를 의식해 영구채를 모두 주식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산은과 해진공은 추후 HMM 재매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운업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쳤다는 비판도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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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컨테이너선사인 HMM이 산업은행 등 채권단 관리 체제로 전환된 건 2016년이다. 당시 해운업 침체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한진해운이 파산했으며, HMM은 국내 유일 대형 선사로 남았다.

[단독] HMM 매각 결국 무산…산은·하림, 협상 결렬
이후 HMM은 코로나19 시기 물류 대란을 겪으며 초호황기를 맞았다.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채권단 관리 체제로 전환된 지 7년 만에 매각 작업에 나선 배경이다. 하지만 하림과의 협상이 난항을 겪은 끝에 최종 무산됐고, 공교롭게 해운업황은 다시 침체기로 전환됐다. 산은과 해진공이 HMM 재매각에 시동을 거는 데 시간이 한참 더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6일 매각 협상이 무산된 것은 하림 측이 이날 밤 12시까지 매각 측이 요구한 주주 간 계약에 답변을 내놓지 않으면서다. 사실상 인수를 포기한 것이다. 하림과 정부 측은 주주 간 계약 협상 과정에서 매각 이후 HMM의 경영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지를 놓고 마지막까지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하림은 협상 막바지에 이르러선 기존에 요구한 주주 간 계약 내용 중 대부분을 포기했다. 입찰 단계에서 논란이 된 ‘1조6800억원 규모의 잔여 영구채 주식 전환 3년간 유예’ 요구는 일찌감치 접었다. ‘주주 간 계약의 유효 기간을 5년으로 제한해 달라’는 요구도 막바지에 철회했다.

하림 측의 양보에도 협상은 진전되지 않았다. JKL파트너스의 지분 매각 제한이 걸림돌이었다. 하림 측은 투자금 회수가 필수적인 사모펀드(PEF) 운용사 JKL의 특성을 고려해 5년간 지분 매각 제한에서 JKL을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 해진공이 이를 반대하자 하림 측은 JKL의 지분 매각 제한 기간을 3년으로 줄여달라는 마지막 제안을 건넸다. 해진공은 이 역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전하며 JKL을 컨소시엄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역제안했다. 하림 측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며 협상은 최종 결렬됐다.

산은과 해진공 측은 아직 HMM의 재매각 시점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선 단기간 재매각에 나서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매각 작업이 이뤄지는 동안 HMM을 둘러싼 영업 환경이 급변했다. 세계 2위 선사인 머스크(덴마크)와 5위 하파그로이드(독일)는 내년 2월부터 ‘제미니협력’이라는 새로운 해운 동맹을 창설하기로 했다. HMM이 소속된 해운 동맹 ‘디얼라이언스’에서 하파그로이드가 제외되며 아시아권 선사만 남았다. 동맹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운임이 조정되면서 과거 출혈 경쟁 시대로 회귀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차준호/박종관/허세민/하지은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