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남자의 위기
얼마 전 40대 남성 취업자 수가 20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는 통계청 발표가 있었다. 불과 두 달 전 나온 통계청 자료를 보면 생애 노동 소득이 가장 많은 나이는 43세였다. 40대 남성 내 경제적 양극화가 상당할 것이라고 짐작한 이유다.

과거부터 인구 사회학적 담론에서 남성은 주요 대상이 아니었다. 더구나 40대 남성을 떠올렸을 때 여전히 사회의 주류, 경제의 허리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노동 숙련도와 축적된 경험, 사회적 지위와 자산 측면에서 그렇다. 한국 사회가 ‘80년생 김정훈 씨’보다 ‘82년생 김지영 씨’에게 더 연민을 느낀 건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세상의 부조리를 가부장제나 남녀 갈등의 결과로만 따지는 시각을 잠시 접어두면 문제는 다각도로 펼쳐진다. 지난해 40대 남성 취업자는 전년 대비 6만7000명 줄었다. 같은 기간 40대 여성 취업자가 1만3000명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40대 남성 취업자 수는 모든 성별과 연령대를 통틀어 감소 폭이 가장 컸다. 40대에서 여성보다 남성 취업자가 월등히 많지만, 감소 추세는 두드러진다. 정부는 제조업·건설업 부진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40대 남성 고용률이 이미 높은 수준이라거나 인구 구조 변화를 이유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속 시원한 분석은 아니다.
[토요칼럼] 남자의 위기
단지 40대에만 그치지 않는다. 생애 주기 전체를 봐도 남성의 위기가 감지된다. 지난해 전체 남성 고용률은 71.3%로 전년 대비 0.2%포인트 줄었다. 같은 기간 여성 고용률은 1.2%포인트 오른 54.1%였다. 전체 가구주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65.9%인 걸 고려하면 하락한 남성 고용률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청년 고용률은 이미 여성이 남성을 크게 앞서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전체 청년 고용률은 전년 동기 대비 0.2%포인트 오른 46.3%를 기록했다. 이 기간 청년 여성 고용률은 0.5%포인트 상승한 48.9%였다. 청년 남성 고용률은 0.2%포인트 하락한 43.7%로 나타났다. 남녀 청년의 고용률 차이만 5.2%포인트다. 물론 군대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남성의 자살률은 오랜 시간 여성을 압도했지만, 주요 사회 문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 인구를 나타내는 자살률은 남성의 경우 지난해 35.3명을 기록했다. 여성은 절반 수준인 15.1명이다. 첫 통계가 나온 1983년부터 지난 40년간 같은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정신장애 평생 유병률 역시 남성(32.7%)이 여성(22.9%)보다 높다.

기초학력 미달 비율도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더 높게 나타난다. 2021년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 결과, 중학교 3학년에서 국어·수학·영어 모두 기초학력을 충족하지 못한 남학생 비중이 더 컸다. 국어는 기초학력에 미달한 남학생(9.3%)이 여학생(2.6%)의 3.5배나 됐다.

10대 이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환자는 남자아이가 여자아이 대비 4배 많다. 심지어 입양에서조차 남아 기피 현상이 나타난다. 국내 입양아의 65.5%는 여자아이다. 이렇다 보니 해외 입양으로 보내지는 대다수가 남자아이(70.4%)다.

미국에서는 이미 한때 여성 노동 인구가 남성 노동 인구를 추월하기도 했다. 2019년 12월 미국의 농업·자영업 제외 부문 노동 인구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10만9000명 더 많았다. 전체 50.04%를 차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컸던 2009~2010년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당시 ‘남성의 종말(The End of Men)’이란 말이 회자할 정도였다.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당선된 것도 그동안 미국 사회의 주류로 여겨졌지만 소외돼 온 백인 남성 노동자의 분노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남성의 위기를 강조한다고 해서 남녀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과거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남성 우위 문화가 남아 있는 조직에서 개별 여성이 느끼는 소외와 차별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남녀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은 지금, 이제는 남성의 위기도 사려 깊게 들여다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여성의 위기가 남성의 위기이듯 남성의 위기가 곧 여성의 위기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한국의 영속성을 결정할 혼인율과 출산율 회복도 결국에는 남성과 여성 간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