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10년 만에 돌아온 워크아웃의 시간
태영건설이 지난 28일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8일 국회에서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운영 시한(일몰)이 가까스로 늦춰진 덕분이다. 제도 신청을 준비해 온 태영건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일몰 연장을 기다렸을 것이다.

워크아웃이 구조조정 방식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약 10년 만이다. 2001년 제정돼 2010년대 초까지 기업 구조조정에 자주 활용된 워크아웃은 지난 10년 동안 찾는 이가 많지 않았다. 특히 건설사 구조조정에선 사용된 적이 없다.

워크아웃 제도는 외환위기의 산물이다. 채권자들이 협의해 기업 채무조정 등으로 회사의 숨통을 터 주고 채권 회수를 원활하게 하는 것은 전 세계 자본시장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자율적인 협의체를 넘어 구체적인 방법까지 정한 근거법을 둔 나라는 한국뿐이다. 많은 기업이 이 제도를 통해 채무를 조정하고 살아났다.

특히 채권단이 배임 행위를 추궁당하거나 실무자가 징계당할 각오를 하지 않고도 부실화된 기업에 신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기능(기촉법 18조)은 굉장히 강력하다. 몇몇 채권단만으로 진행되는 유사 워크아웃인 자율협약과 신속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위한 P플랜 등이 모두 신규 자금 지원 기능을 가진 것은 그동안의 워크아웃 경험에서 그것이 꼭 필요하다고 인정받은 결과다.

[토요칼럼] 10년 만에 돌아온 워크아웃의 시간
급할 때 돈 빌릴 구멍이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는 기업의 생사를 가르는 요인이다. 외국엔 이런 제도가 없다는 비판도 적지 않지만, 달리 보면 우리가 뼈아픈 위기를 겪으며 개척해 놓은 새로운 루트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해외에선 한국 사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왜 지난 10년간 워크아웃을 신청한 기업이 별로 없었을까. 가장 큰 원인은 저금리다. 금리가 낮아지면서 이자를 내지 못해 회사가 부도 위기에 몰리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한국 자본시장이 성장하면서 기업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진 것도 한몫했다. 채권을 찍기 쉬웠고, 전환사채 등 주식연계 채권과 신종자본증권 발행도 흔해졌다. 기업공개(IPO) 문턱도 낮아졌다.

여기에 사모펀드(PE)의 약진이 가세했다. 최근 수년간 많은 중소·중견기업이 위기 상황에 몰리자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넘겼다. 알짜 자산이나 계열사를 내놓으면 사겠다는 사모펀드가 줄을 섰다.

하지만 금리 상승기가 오면서 이런 여러 선택지의 비용이 급격히 높아졌다. 저금리로 돈을 빌려 기업을 사들이던 공격적인 사모펀드들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부실기업 수는 크게 늘었다. “물(유동성)이 빠지면 누가 벌거벗고 수영했는지 알 수 있다”고 한 워런 버핏의 말 그대로다. 돌이켜보면 저금리의 경기 부양 효과가 그만큼 컸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은 달라진 시장 분위기, 달라진 선택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사실 태영건설은 과거 방식의 워크아웃에 적합하지 않다. 채권단이 보유한 채권은 적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보증분이 많다. 채권단 중심으로 진행하게 되면 2금융권 중심의 PF 대주단과 손발을 맞추느라 꽤 고생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PF 대주단도 채권단이 주도하는 워크아웃에 구속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금융당국이 10여 년 전에 마련해놨다는 점이다. 당시 풍림산업 등 중견 건설사들이 워크아웃에 들어갔다가 PF 대주단-채권단 간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줄줄이 법정관리를 택하면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만든 새 규칙이다. 태영건설은 바뀐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는 첫 번째 사례가 될 전망이다.

한편으론 씁쓸하다. 워크아웃은 강력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다 적용해줄 수 없다. 덩치가 크고 산업적으로 의미가 있는 회사만 골라 지원하는 ‘대마불사 제도’의 성격이 불가피하다. 기업 살생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관(官)의 영향력은 다시 커질 것이다. 금융당국 수장들이 나란히 서서 기자회견하는 것을 보면 시간이 거꾸로 간 느낌도 든다. 정부의 선택이 시장을 지나치게 왜곡하지 않도록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