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하청노조 떼법 부른 중노위 '편파 판정'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는 작년 6월 2일 산업계를 발칵 뒤집어놓는 판정을 내렸다. CJ대한통운이 대리점 택배기사 노동조합과 교섭하라는 내용이었다. 하도급(하청)업체 노조에 대한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한 첫 사례였다. “CJ대한통운은 노조법상 택배노조의 사용자가 아니다”라는 서울지방노동위의 판정을 뒤집었다. 중노위는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 업무에 지배력이나 영향력을 갖고 있다”며 민주노총 택배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했다. 이후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 본사를 불법 점거하는 등 60여일간 파업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지난 6월 2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가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원청인 대우조선이 교섭에 나설 것을 요구하며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 1도크(선박건조장)를 점거했다. 51일 만에 파업은 끝났지만, 민변과 금속노조 등은 중노위의 CJ대한통운 판정 사례를 들며 대우조선이 하청노조와 직접 교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노위 판정 이후 하청 근로자들의 원청에 대한 교섭 요구가 확산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기아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한국GM 등이 몸살을 앓는 중이다. 문재인 정부의 중노위가 기존 판례를 무시하고 사용자의 범위를 무리하게 확대한 후유증이다. 중노위는 지난 3월에도 현대제철 당진공장 하청노조가 낸 신청에서 “원청(현대제철)이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교섭 대상을 산업안전 분야로 한정했지만, 하청노조가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길을 또 한 번 터줬다. 이번에도 “현대제철은 하청노조의 사용자가 아니다”라는 충남지노위 결론을 무시했다. 중노위는 원청기업과 하청노조를 ‘실질적 지배’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엮어 “단체교섭을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제3자에게로 확장할 수 없다”고 한 대법원 판례를 부정하고 있다.

중노위 판정으로 원청기업들은 교섭에 응하든 안 하든 처벌받을 위험에 빠졌다. 아무런 계약 관계가 없는 제3자인 하청노조와 근로조건 등을 교섭하면 불법파견이 돼 직고용 의무가 생긴다. 그렇다고 준사법기관인 중노위 판정을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로 제소당할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기업들은 결국 행정소송을 통해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일 수밖에 없다.

세계 어느 나라도 하청노조의 교섭권을 이렇게 폭넓게 인정하는 곳은 없다. 단체교섭 사용자를 근로계약 관계가 아니라 ‘지배력 또는 영향력’으로 판단하면 사용자의 범위가 과도하게 넓어진다. 누군지도 모르는 협력사 근로자의 사용자가 되는 리스크를 기업에 떠안기는 꼴이다. 협력 업체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이다. 원청과 하청노조 간 교섭 창구 단일화 법규가 미비해 교섭 혼란 및 노노 갈등도 피할 수 없다.

중노위의 노조 편향적 판정은 법원에서 잇따라 번복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 운전기사를 근로자로 판단해 쏘카에 부당 해고 판정을 내린 중노위 결정을 취소했다. 6월엔 대법원이 넥스틸의 2015년 정리해고를 부당 해고로 본 중노위 판정을 뒤집고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중노위 편파 판정 논란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중노위를 이끄는 박수근 위원장은 민변 출신으로 지난 19대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 후보 캠프에 참여했다. 현대제철 판정 때는 평소 원청을 상대로 한 단체교섭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공익위원이 참여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노동계 편향적인 교수들이 중노위 공익위원을 맡아 매우 편파적인 결정을 했다”고 지적한 배경이다. 노사 문제를 법원에 가기 전에 신속하게 해결해주는 게 중노위 설립 취지인데, 판례에 반하는 편파적 결정을 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중노위의 ‘기울어진’ 판정을 바로잡지 않으면 제2, 제3의 대우조선 사태를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