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삼성은 TSMC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대만 TSMC가 미국, 일본 등지에도 생산라인을 갖춰 ‘파운드리 초격차’를 굳힐 기세다. 추격자인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공정 수율(양품 비율) 저하로 일감을 빼앗긴 데다 총수 부재에 따른 경영 공백으로 대규모 투자 결정 등 사업 계획을 수립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국가 간 명운을 건 반도체 패권 경쟁 와중에 TSMC의 공격 행보와 삼성전자의 위기가 심상치 않다.

TSMC는 미국, 일본과 반도체 동맹을 맺어 경제·안보를 보장받는 동시에 삼성전자 견제에도 나섰다. TSMC는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호응해 애리조나주 피닉스 등지에 3년간 1000억달러를 투자해 6개 공장을 짓기로 했다.

소니와 덴소(도요타 계열사)를 2, 3대주주로 끌어들여 일본 구마모토현에도 공장을 신설한다. 10조원가량이 들어가는 이 공장엔 반도체산업 부흥을 노리는 일본 정부가 약 4조원을 지원한다. 미세공정이 기술적 한계에 봉착한 가운데 TSMC가 후공정이 강한 일본 기업과 협력해 차세대 패키징 기술을 확보하면 파운드리 지배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위기론에 휩싸인 삼성전자는 갈 길이 멀다. TSMC로 이탈하고 있는 퀄컴 엔비디아 등 대형 고객사를 붙들려면 품질 불신부터 해소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올해 초 최첨단 4㎚(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을 적용해 내놓은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 2200’은 수율 문제로 유럽 모델에만 탑재됐다.

퀄컴이 당초 삼성전자에 맡기려 한 3㎚ 공정의 차세대 AP는 물론 글로벌 그래픽처리장치(GPU)업체 엔비디아의 핵심 제품 생산도 TSMC가 연달아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리더십 부재로 미뤄진 대규모 투자 계획 수립과 인수합병(M&A), 조직 쇄신에도 나서야 한다. TSMC는 올해 최대 440억달러(약 55조원)를 설비투자에 쏟아부을 계획이다.

반도체산업 투자에는 용지 확보, 인프라 조성, 인력 육성 등을 위한 국회와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도 필수적이다. 송전선로 건설을 둘러싼 지역 갈등에 5년을 허송세월한 삼성전자 평택 공장이나 계획 발표 후 3년이 지나도록 첫삽을 못 뜬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국회와 정부가 외치는 반도체 육성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많다.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은 수도권 대학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확대와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제 탄력 적용, 시설투자 세금 감면(최대 50%) 등 업계의 핵심 요구사항은 빠지거나 축소돼 반쪽짜리 법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5월 평택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보고’ 행사에 참석해 “반도체산업은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간 경쟁의 시대로 옮겨갔다”며 “기업의 노력을 확실하게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정부가 밝힌 반도체산업 투자액은 9년간 1조2800억원(2021~2029년)에 불과하다. 미국 57조원(2021년부터 8년간), 중국 180조원(2015~2025년), 유럽연합(EU) 172조원(2030년까지)은 물론 일본의 6조원(2021~2022년)에도 못 미친다.

코로나 사태로 작년 11월 뒤늦게 열린 모리스 창 TSMC 창업주 겸 회장의 90세 생일 축하연(실제 생일은 7월)에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직접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차이 총통은 지난해 12월엔 “각 대학이 반도체 전공 신입생을 6개월에 한 번씩 뽑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반도체 인력 육성을 늘려야 한다는 업계 요청을 받아들여 1년에 두 번 학생을 뽑는 파격적인 조치를 지시한 것이다. 기업을 대하는 자세가 이렇게 다른데 삼성전자가 TSMC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윤석열 정부가 대학원 신설과 각종 인허가 중앙정부 이관, 세제 지원 확대 등을 통해 반도체산업 육성에 나선다고 하니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