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고용부의 묘한 중대재해 통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1월 27일)된 지 40일이 지났다. 한국경제신문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사망사고 속보를 분석해 법 시행일부터 지난달 23일까지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 건수와 사망자 수를 집계한 결과 24건·29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18건·18명보다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 2월 26일자 A4면 참조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점은 기업인과 관련 전문가들이 입이 닳도록 지적한 내용이다. 정부가 귀담아듣지 않았을 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한 기업들의 스트레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고가 나면 경찰, 검찰, 고용노동부는 물론 소방청 환경부 지방자치단체까지 달려들어 정상 업무는 꿈도 못 꾼다.

공사 중단은 기본이고 경찰 조사에 압수수색도 당연한 수순이다. 주가 하락과 신인도 추락 등 피해는 일파만파로 불어난다. “법 시행 후 달라진 건 처벌 대상만 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기업들은 하소연한다.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고용부는 최근 산하기관인 산업안전보건공단 집계와는 다른 통계를 내놓고 중대재해처벌법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자평했다. 고용부는 법 시행일부터 지난달 26일까지 한 달간 산업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가 35건, 사망자는 42명으로 작년 동기(52건·52명)보다 17건·10명 줄었다고 발표했다. 안경덕 고용부 장관은 “사망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산업안전보건공단 통계와 차이가 나는 점에 대해 공단의 집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공단의 집계가 부정확했다면 고용부가 산하기관 관리를 제대로 못 한 것이다. 앞서 고용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이자 의원(국민의힘)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15일까지 산재 사망사고 건수(64건)는 전년 동기보다 6건 줄었지만, 사망자는 75명으로 3명 많은 것으로 돼 있다.

고용부의 산재 사망사고 통계가 정확하다고 해도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 법 시행 초기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한 상당수 기업이 ‘1호 처벌 대상이 되지 말자’며 공사를 일시적으로 멈췄기 때문이다. 고용부 통계를 봐도 건설업종 사망자는 19명에서 9명으로 줄었지만, 제조업 사망자는 13명에서 18명으로 5명 늘어났다. “중대재해가 완전히 사라지게 하려면 국내 모든 생산공장과 건설 현장을 중단시키면 된다”(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들의 간곡한 호소에는 귀를 막고 노동계 등 한쪽의 말만 듣고 만든 과잉 규제의 부작용과 후유증은 두고두고 기업들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았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다 같이 냈다.

많은 기업인이 정부에 갖는 가장 큰 불만으로 ‘불통’을 꼽는다. 소상공인의 허리를 휘게 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기업 경영활동에 족쇄를 채운 상법 개정(감사위원 분리 선출,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로제 강행, 일방적인 노동관계법 개정, 전·월세 난민을 양산한 불도저식 부동산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민감한 경제 현안에 대해 현장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다 보니 현실과 괴리된 정책이 난무했고 곳곳에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산업 현장의 목소리보다는 이념적·정치적 관점으로 접근한 탈(脫)원전 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야 유력 대선 후보들이 내건 공약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노동이사제 정착 등 반(反)기업·포퓰리즘적 내용이 적지 않다. 이대로라면 누가 되든 기업들이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차기 대통령은 기업인과 산업계에 귀를 활짝 여는 ‘소통령(疏通領)’이 돼야 한다. 모든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현장을 모르는 참모와 관료에 둘러싸여 있으면 제대로 된 진단도 처방도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