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라는 말엔 뭔가 긍정적인 이미지가 담겼다. 생명체가 환경에 새롭게 변신하고 적응해 더 나은 모습으로 바뀌는 현상으로 말이다.

[책마을] 진화론의 진화… 피라미드식 생태계 무너뜨리다
진화라는 말을 처음 들은 건 대부분 학창시절 과학시간일 게다. 그래서 ‘진화’라고 하면 갈라파고스제도에서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봤던 ‘핀치새’를 떠올릴 것이다. 에콰도르 해안에서 1000㎞ 떨어진 갈라파고스제도는 섬마다 식생 지대가 뚜렷하게 구별된다. 해안에는 맹그로브 숲, 해안의 건조한 지역에는 선인장과 가시덤불, 중간 지대에는 작은 나무들로 된 숲, 고온다습한 지역의 미끈거리는 진흙 지대에는 국화속과의 스칼레시아라는 풀로 가득 찬 숲, 양치류 지역에는 나무고사리가 무성하다.

1836년 비글호 항해를 마친 다윈은 갈라파고스섬에서 가져온 핀치 새의 표본을 조사하다 부리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관찰하고 여기서 ‘종은 변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다윈은 자신이 수집한 생태학적 증거들을 바탕으로 생물 종의 계통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1859년 내놓은 《종의기원》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우성인자 동물은 살아남고 열성인자 동물은 자연 도태돼 사라진다’는 그의 자연선택이론에 대해 진화론자들은 기독교의 ‘창조론’을 뒤흔드는 혁명적인 발견이라고 극찬했다. 반면 창조론자들에겐 분노를 샀다. 이유야 어찌 됐건 진화론은 16세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중심으로 한 우주론, 17세기 뉴턴의 물리학과 함께 인류 과학사의 지평을 연 이론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이들의 발견이 우리가 사는 곳에 대한 개념을 바꿔놓은 데 그쳤던 반면 다윈의 이론은 인간 자신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시각을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기생충 제국》 등 10권이 넘는 과학교양책을 쓴 과학저술가 칼 짐머가 쓴 《진화》는 다윈의 비글호 항해부터 갈라파고스 핀치 유전자(DNA) 연구에 이르기까지 진화 연구의 역사와 진화의 핵심개념, 원리, 관련 이슈, 그 속에서의 의미를 방대한 여정으로 담았다. 감기 바이러스부터 인간의 뇌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다윈의 진화라는 아이디어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했는지도 잘 묘사했다.

책에 따르면 다윈이 나타나기 전까지 많은 이들은 생명체를 ‘신의 창조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진화는 신 같은 초월적 존재의 통제 밖에서도 얼마든지 생명의 다양성과 자연의 경이로운 선택을 설명한다. 무엇보다 한 생물 집단이 진화하면 이와 관련된 생물 집단도 진화하는 현상인 ‘공진화’의 개념을 등장시켰다. 덕분에 인간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식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인간과 식물, 동물, 곰팡이, 세균 등이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관계의 그물로 생태계를 새로 그린다. 책에선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떤 동물보다 공진화에 많이 의지했고 생명의 그물에 의존했던 동물이란 점을 충실히 설명한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진화론과 대립했던 ‘창조론’과의 논쟁도 자세히 다룬다. 책을 통해 과학과 종교 간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도 제공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