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페레스 지음 / 윤종록 옮김
쌤앤파커스 / 328쪽│1만6000원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 시몬 페레스는 테러범들과의 협상을 거부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에서 3000㎞나 떨어진 곳에서 구출작전을 펴기도 어려웠다. 협상론이 강하게 대두됐지만 페레스 장관만은 구출작전을 주장했다. 결국 이스라엘군은 수송기를 동원해 엔테베 공항을 접수했고 작전 개시 55분 만에 인질 4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구출했다. 공항을 지키는 60여 명의 우간다 군인을 따돌린 방법이 기발했다. 우간다 국기를 꽂은 검은색 메르세데스 자동차가 비행기에서 내리도록 해 이디 아민 대통령이 모리셔스에서 귀국하는 것처럼 속였던 것. 페레스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불가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믿었고 성공했다.
책에는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부터 주변국들의 끊임없는 위협과 전쟁, 테러 속에서 부강한 나라를 일구기 위해 분투했던 과정들이 격동의 세월을 산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과 함께 펼쳐져 있다. 책 제목처럼 페레스는 이스라엘 현대사의 굵직한 장면마다 담대하게 꿈을 꾸고 실행했다. 프랑스와 계약해 디모나 고원에 핵 시설을 건설했고, 기술도 재정도 턱없이 모자랐던 1950년대에 항공산업을 키워냈다. 이스라엘을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천국인 창업국가로 키운 것도 페레스였다.
국방부 국장 시절이던 1956년 페레스는 벤구리온 총리와 함께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계획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선 거의 만장일치로 반대했다. 돈도 없고, 기술자도 없으며, 물리학계의 지지도 받지 못했고, 야당과 군부도 반대했다. 하지만 개인 후원자를 모아 원자로 프로젝트의 비용 절반을 충당했고, 촉망받는 과학자들을 모았다.
프랑스와 극비리에 추진했던 디모나 고원의 원자력 시설 건설은 러시아 정찰기에 포착돼 국제적 이슈가 됐을 때였다. 핵무기와 관련된 이스라엘의 의도가 무엇이냐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질문에 페레스는 이렇게 답했다.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중동에서 핵무기를 처음으로 꺼내드는 쪽이 절대로 우리는 아닐 것이라는 점입니다.” 핵무기의 존재를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핵 모호성’ 전략은 이후 50년 가까이 이스라엘의 공식 입장이 됐고, 주변국의 숱한 공격과 위협 속에서 결정적인 전쟁을 막는 억지력이 됐다고 페레스는 회고했다.
이스라엘은 당초 사회주의 국가였다. 공동체적 이상으로 나라를 세웠고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며 경제를 일으켰다. 정부가 경제의 대부분을 주도했고, 자유시장 방식을 무시했다. 하지만 1984년 페레스가 국무총리에 취임했을 때 이스라엘의 연간 인플레이션은 400%에 달했다. 셰켈(이스라엘 통화)의 가치가 폭락해 사람들이 셰켈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전화토큰을 비축할 정도였다. 페레스 총리는 노동조합인 히스타두르트, 고용주 연합, 정부 경제팀으로 구성된 노사정 정기 회담을 거듭한 끝에 대대적인 구조조정 안을 수립했다. 거세게 반대하는 히스타두르트를 2주간의 협상 끝에 설득했다. 사상 최초의 노사정 합의에 따른 구조조정을 시행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인플레이션은 2.5%로 떨어졌다.
페레스의 일생은 담대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불가능할 것 같은 꿈에 도전한 이유를 페레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큰 꿈을 좇고 그 대가를 치르든가,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받지 않고 무난하게 어울리기 위해 야망을 줄이거나 포기하든가, 둘 중에 하나다.” 또한 꿈을 방해하는 냉소주의를 이렇게 경계한다. “냉소주의는 모든 사람의 염원을 짓밟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이며, 글로벌한 질병 같다. 냉소주의는 다음 세대의 지도자들이 반드시 피해야 할 단 하나의 치명적인 위협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