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군량미 풀어라"… 2000년 전 실행된 양적완화
기원전 221년, 진시황은 사상 최초로 중국의 중원을 통일했다. 그는 전국시대 6국의 화폐를 모두 폐지하고 구리로 만든 진나라 반량전만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구리 부족으로 반량전의 공급과 유통량이 줄면서 화폐가치가 지나치게 상승했다. 또 경제 수준과 화폐 가치가 달랐던 6국의 통화를 통일하자 그동안 없었던 거품경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큰 업적을 세우는 걸 좋아한 진시황 때문에 진나라에서는 정벌과 노역 동원이 끊이지 않았다. 궁을 짓고 만리장성을 쌓고 군사를 모으는 일에 대규모 재정이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자산이 대량으로 소모됐고 경제는 대공황 상황과도 같았다. 결국 재정과 통화정책 실패로 인해 대규모 봉기가 일어나면서 통일왕국 진나라는 15년 만에 무너졌다.

진시황의 화폐 통합은 오늘날 유럽연합(EU)이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유럽을 하나의 통화권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과 비슷한 양상을 보여줬다. 영국 에든버러대 경영대학원의 왕링옌 연구원과 왕퉁 경제학 교수는 《역사 속 경제 이야기》에서 혼돈의 전국시대부터 수나라 때까지 중국 고대사를 경제학적 관점으로 재구성하고 현대 사건과 비교한다. 전국시대 조나라 촉나라 진나라 사이에 벌어졌던 치열한 환율 전쟁은 오늘날과 똑같은 모습이다. 동탁이 초래했던 한나라의 악성 인플레이션, 통화정책 실패로 진시황이 만들어낸 디플레이션 등 역사 속 경제 이야기를 풀어낸다.

진나라에 이어 통일왕국을 이어간 한나라는 진나라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고 혁신적인 통화정책을 펼쳤다. 조폐권을 민간에 개방해 통화량을 대폭 늘린 것이다. 누구나 화폐를 만들 수 있게 되자 처음에는 많은 백성이 화폐 주조에 매달렸다. 그러나 화폐가 충분히 주조되고 곡물가격이 치솟자 일부 사람은 화폐 주조를 그만두고 다시 농업에 종사했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더 이상 부족하지 않고 화폐를 주조하는 사람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을 때 안정적인 균형을 이루고 모두 자신의 업종을 유지했다. 한나라의 조폐권 개방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주장했던 기업화폐 발행보다 2000년이나 앞서 실행됐다.

한나라 멸망 후 삼국시대 촉나라의 제갈량은 텅 빈 국고를 채울 방법을 고심하던 유비에게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놓을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유비에게 창고 안에 있는 군량미를 풀어 민간의 금은보화를 사라고 조언했다. 그다음 100전에 해당하는 대전을 주조하게 한 뒤 다시 곡식을 사들였다. 이를 통해 유비는 정치적으로 부하들의 신임을 얻고 재정문제도 해결했다.

양적완화 정책은 무분별하게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은행이 유동성이 큰 자산(현금, 국채, 단기채권)을 이용해 유동성이 작은 자산(장기채권, 고정자산)을 구매하는 것이다. 촉나라 정부는 유동성이 큰 곡식을 활용해 유동성이 작은 금은보화를 챙겼다. 시장에 곡식이 많아지자 곡식의 가치가 하락하고 화폐 가치는 상승했다. 이때 대전 발행은 유동성이 큰 자산인 국채를 내놓는 것과 같다. 결국 많은 사람이 곡식을 팔아 가치가 높아진 대전을 구매해 일부 곡식은 다시 유비에게 돌아오게 된 것이다.

저자들은 이 밖에도 게임 이론을 적용해 보는 적벽대전, 비교우위 이론을 활용해 경제외교를 펼친 제갈량 이야기 등 현대 경영학 이론을 고대 역사적 사건에 접목했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