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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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검찰내 검사 수사관 등 여성공무원 가운데 58%는 동료나 선·후배의 성희롱·성범죄 피해를 목격하고도 ‘침묵’을 지켜온 것으로 집계됐다. 목격자의 5%는 피해자에게 “그냥 참거나 잊으라”고 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사실 누설이나 험담, 인사보복 등 2차피해 가해자 중 64.2%는 피해자의 상급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21일 법무부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인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 백서’에 따르면 법무부내 여성공무원 가운데 60.1%(검찰만은 64.3%)가 성희롱·성범죄 피해를 직접 목격했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사건을 계기로 조직된 위원회는 성적침해행위 실태를 파악하기위해 법무부 소속과 검찰 소속 모든 여성공무원(유효응답자 7188명)을 대상으로 작년 3~4월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백서에 나온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희롱·성범죄 피해를 목격하고도 “특별한 대응을 취하지 않았다”는 법무부 여성공무원의 응답은 57.7%(검찰은 53.8%)에 달했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했다”는 응답은 26.3%(검찰 29.7%)가 나왔다. “피해자에게 참거나 잊으라고 했다”는 응답은 5.1%(검찰 5.7%)였다. “상급자에게 보고하라고 했다”는 응답은 2.4%다. 가해자의 행위에 직접 문제를 제기한 비율은 법무부 전체 여성공무원 가운데 1.2%에 불과했고 검찰 가운데에선 0.8%에 불과했다.

“특별한 대응을 취하지 않았다”며 침묵한 이유에 대해선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라는 응답이 28.1%로 가장 많았다. “도움을 줄 방법을 몰라서”라는 응답이 17.9%,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서”가 12.6%, “인사고과 불이익이 걱정되서”가 6.3%를 차지했다.

한 여성 검사는 “검찰내에서 후배 검사들의 성희롱·성범죄피해에 대해 알고도 침묵해온 ‘선배 여성검사’들이 상대적으로 조직내에서 승승장구해왔다”며 “법무부 조직내 성범죄 피해 목격자들의 ‘무기력증’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성범죄 피해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강직한 검사가 불이익을 받는 현재 인사 시스템이 고쳐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사실을 누설하거나 안좋은 소문을 퍼뜨리고, 인사보복을 가하는 등 ‘2차 피해’를 목격했다는 비율은 35.7%를 나타냈다. 2차 피해의 가해자(복수응답)로는 피해자의 상급자가 64.2%(검찰은 65.2%), 동료가 52.2%(검찰 47.7%)를 기록했다. 성범죄 가해자가 직접 2차 피해를 가한 비율(법무부 21.3%, 검찰 19.3%)보다 2~3배 가량 높았던 것이다. 한 검사는 “법무부 검찰내 대부분의 성범죄·성희롱 피해는 상급자로부터 발생한다”며 “알려지면 ‘검찰 망신’이라는 방어본능 때문에 상급자가 직접 2차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신고율’이 높을수록 ‘피해율’이 낮아지는 성희롱·성범죄 특성상 법무부 검찰내 교육과 조직문화 개선이 급선무라는 평가다. 한 성범죄 피해 전문 변호사는 “일반 대기업도 여러 성범죄 사건을 겪은 후 사내 교육과 시스템 개선으로 대폭 개선해 성범죄 발생률이 떨어지고 있다”며 “검찰은 처벌기관이기 때문에 스스로에 더 엄격한 잣대로 이러한 문화를 바꿔야한다”고 말했다.

송기헌 의원은 "검찰의 폐쇄적, 위계적 조직문화가 내부 성범죄 문제를 키웠다"며, "검찰 내부에서 철저한 감찰을 실시하고 성평등 조직문화를 만들기위해 노력해야한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