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문재인 대통령의 8·15축사에 바란다
자유와 인권을 토대로 세워진 나라지만 미국도 암흑기를 겪었다. 대표적인 게 매카시즘이 몰아치던 1940년대 후반~1950년대다. 조지프 매카시 연방상원의원(공화당)이 ‘공산주의자 명단’이 있다고 밝힌 1950년 전후 ‘빨갱이 색출’ 광풍이 불었다. 정치·경제계뿐 아니라 할리우드까지 몰아닥친 광풍에 공산주의자로 몰린 수백 명이 투옥되고 1만 명 이상이 직장에서 쫓겨났다.

매카시즘 확산은 소련과의 경쟁이 배경이었지만, 그 이면엔 공화당의 정치 공작이 있었다. 1933년 퇴임한 허버트 후버 대통령 이후 10여 년간 집권하지 못한 공화당은 매카시즘을 통해 정치 이슈를 선점하고 민주당을 공격했다. 결국 1953년 20년 만에 공화당 출신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대권을 잡았다.

매카시즘으로 미국도 피해

매카시즘으로 이익을 본 곳은 또 있다. 소련이다. 1957년 10월 세계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 발사는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과학기술에서 뒤처지고 있음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미사일을 미국으로 날릴 수 있다는 위협까지 줬다.

2차 대전 이후 세계를 주도한 미국이 우주 개발에서 뒤진 이유 중 하나가 매카시즘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2차 대전 전후 망명한 유럽계 과학자들로 인해 미국은 급속한 발전을 이뤘지만, 아인슈타인도 매카시즘의 광풍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 유럽 과학자들은 미국 이민·망명을 거부당하거나 스스로 포기했다. 과학사학자인 로런스 바다시는 ‘사이언스 앤드 매카시즘’에서 “매카시즘은 과학계에도 폭압적 시대를 열었다. 비자·여권 발급 거부와 충성맹세, 국가안보라는 미명하에 행해진 수사는 과학자들의 길을 막았다. 매카시즘이 과학 발전을 방해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평가했다.

중국도 1960~1970년대 문화대혁명(문혁)을 겪었다. 자본주의에 물든 자들을 쫓아내자는 정치운동이었다. 수많은 지식인이 피해를 입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부친인 시중쉰 당시 국무원 부총리도 산시성으로 하방(下放: 지식인 등이 사상개조를 위해 농촌으로 내려가는 것)했고, 시 주석도 그곳에서 어렵게 자랐다.

친일 프레임 경계해야

문혁의 이면에도 정치공작이 있었다. 대약진운동에 실패한 마오쩌둥은 1962년 실권했다. 하지만 문혁 당시 홍위병을 앞세워 1966년 덩샤오핑을 숙청하고 다시 권력을 잡았다. 문혁은 1978년까지 지속돼 중국을 수십 년 후퇴시켰다. 이에 수혜를 본 곳이 한국이다. 만약 마오쩌둥이 1962년부터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었다면 같은 시기 산업화에 나섰던 한국이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렇게 발전한 한국엔 지금 반일운동이 거세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된 조국 전 민정수석은 페이스북에 “정부와 다른 주장을 하는 이는 친일파”라며 극단주의를 부추긴다. 지지자들은 수많은 댓글로 이를 응원한다. 이 와중에 집권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한·일 갈등이 총선에 호재’란 분석을 내놨다.

정부가 추진하는 일본산 소재 등의 국산화엔 이견이 없다. 국내 기업이 뛰어난 제품을 생산한다면 한국 경제에 당연히 좋다. 하지만 급하게 국산화가 가능할지, 또 그렇게 국산화한 소재와 원료로 비용·품질에서 경쟁력을 갖춘 최종 제품을 완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한·일 갈등으로 중국이 어부지리를 얻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8·15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명한 화두를 제시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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