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입법 및 규제 기능이 대폭 강화되면서 대관 업무 서비스 시장도 국회가 있는 서울 여의도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사진은 국회 업무보고를 앞둔 정부 부처 공무원들이 국회 본관 상임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대기하는 모습.  /한경DB
국회의 입법 및 규제 기능이 대폭 강화되면서 대관 업무 서비스 시장도 국회가 있는 서울 여의도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사진은 국회 업무보고를 앞둔 정부 부처 공무원들이 국회 본관 상임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대기하는 모습. /한경DB
지난 1월 다국적기업 GR그룹이 한국에 지사를 열었다. GR그룹은 대정부 관계(GR·government relation)의 약자를 딴 이름 그대로 대관(對官)업무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회사다. 야코브 에드베리 GR그룹 회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의 GR 시장이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며 “각종 정부 규제와 관련한 사안을 한발 앞서 전망하고 대비책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대관업무 서비스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기업 활동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노동, 환경 등 각종 규제가 늘면서 이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려는 기업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만능' 정부·국회…대관시장 커졌다
5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사업 인허가와 각종 규제 관련 대관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행정사무소는 지난해 말 기준 8214곳으로 2년 만에 600곳가량 늘었다. 행정사 자격증 취득자는 35만3725명에 달한다. 2012년 9319명에서 7년 만에 38배 폭증했다. 이들은 정부 부처, 국회와 접촉해 규제 완화와 부당한 행정의 철회를 설득하는 업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대형 로펌들은 정책컨설팅팀 입법지원팀 등의 이름으로 운영하던 기존 대관업무 조직을 확대·개편하고 있고, 중소형 로펌도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2002년 홍보대행사에서 국내 1위 대관업무 서비스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한 마콜컨설팅그룹의 이보형 대표는 “다른 대행사들도 전직 고위 관료 등을 영입해 대관업무에 나서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 규제가 늘면서 대관업무 서비스 시장은 더 확대될 전망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최근 대폭 강화된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 등이 발의되는 등 경영 활동에 정책 리스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대기업들이 대관 조직을 없애고,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대관업무에 제약을 받는 것도 대관업무 서비스 수요가 늘고 있는 한 요인이다.

송웅순 세종 변호사는 “최근에는 국회를 상대로 한 대관업무 서비스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며 “의원입법은 규제 영향 분석을 하지 않아 사회적 효용을 해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규제만능' 정부·국회…대관시장 커졌다
로펌, 對官 전담팀에 장·차관 영입…고위직 모인 행정사무소도 '호황'

법무법인 태평양은 2016년 증권회사를 대리해 장내 파생상품에 그동안 부과하지 않았던 예금보험료를 부과하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에 대응했다. 증권업계에 연간 200억원 규모의 보험료 부담이 새로 생기는 사안이었다. 태평양은 국회의원과 전문위원들을 상대로 개정안의 타깃이 주로 외국계 회사인 점을 들어 “외국 자본 유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커지는 ‘규제 시장’…로펌은 전담팀 운영

대관 업무 서비스 시장이 급팽창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정부 규제에 있다. 각종 인허가에 들이는 시간을 줄이고, 규제 완화와 부당한 행정의 철회를 설득해 기업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각 서비스 기관은 전문성과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업과 정부, 국회, 지방자치단체를 전방위로 접촉하고 있다. 기업에 부담을 가중시키는 법규와 규제에 대응해 정부 부처 등에 기업 의견을 대신 전달하고, 의견 전달 과정을 컨설팅한다. 대인 설득뿐만 아니라 유권해석 요청, 국민권익위원회·감사원 민원, 입법 청원 등 입법·사법·행정의 모든 절차를 이용한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대관 업무 서비스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은 대형 로펌이다. 변호사법상 허가받은 법률 사무를 명목으로 정부 부처 공무원과 국회의원, 보좌관 등을 만나 규제 문제에 관한 기업 민원을 전달하기도 한다. 태평양 광장 율촌 세종 등 주요 로펌이 20~40명 규모로 전담팀을 꾸려 운영하고 있고, 김앤장은 별도 팀은 없지만 분야별로 60여 명이 분산돼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은 기존 입법자문팀을 이달 입법규제감사팀으로, 광장도 2017년 기존 법제컨설팅팀을 RGA(규제 및 정부대응) 솔루션그룹으로 확대 개편했다.

중소기업·공기업까지 ‘고객’

최근에는 행정사무소들이 대관 업무 서비스 시장을 놓고 로펌과 경쟁하고 있다. 이선용 전 청와대 환경비서관과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등이 2016년 함께 차린 ALPS행정사무소 등 전직 고위관료 출신으로 구성된 행정사무소들이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일반 기업도 변호사, 행정사나 전직 관료, 국회 보좌관 등을 영입해 대관 업무 서비스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홍보대행사로 시작해 2002년부터 대관 업무를 해온 마콜컨설팅그룹이 단적인 예다. 다국적 기업으로는 GR그룹이 지난 1월 한국에 처음 상륙하면서 국내 기업, 로펌 등과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대관 업무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은 주로 대기업이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각종 비리연루 의혹에 시달리면서 자체 대관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외주화’에 나선 결과다. 최근에는 중견·중소기업과 시민단체도 대관 업무 서비스를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종석 광장 변호사는 “규제 문제에 둔감하던 중견·중소기업이 점차 규제가 많아지자 대관 업무를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광장에는 올초 한 중소 화약 수입업체가 다음달 시행되는 ‘해수욕장 불꽃놀이 심야시간대 금지’와 관련해 규제 적용 예외 문제를 의뢰하기도 했다.

정보통신·헬스케어로 영역 확대

대관 업무 서비스는 영역도 확대되는 추세다. 유욱 태평양 변호사는 “과거에는 금융, 조세, 공정거래 분야 업무가 많았는데 점차 정보통신, 식품, 헬스케어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대 정부가 아니라 정부 정책과 연관된 기업 대 기업의 사안에도 대관 업무 서비스가 활용되는 추세다. SK텔레콤이 CJ헬로를 인수하려고 시도했던 2016년 ALPS행정사무소는 SK텔레콤의 인수를 막으려는 경쟁사 LG유플러스에 대정부 대응 방안을 컨설팅했다. SK텔레콤이 유료방송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얻게 돼 국민에게 요금 인상 등의 피해로 돌아올 것이라는 점을 소관 정부 부처에 강조할 것을 조언했다. 이후 SK텔레콤의 인수는 성사되지 않았다.

다국적 행정컨설팅 기업인 GR그룹 관계자는 “한국에서 환경 규제를 더욱 까다롭게 하도록 정부를 설득해달라는 해외 NGO(비정부기구)의 의뢰도 많다”고 전했다.

임도원/고은이/이인혁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