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기업 10곳 중 9곳이 직원들의 임금을 올릴 계획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극심한 구인난 탓에 일손 부족을 해소하려면 돈을 더 줘야 한다고 판단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데다 임금 인플레이션까지 더해지면서 기업들의 경영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평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급여분석기업 페이스케일 데이터를 인용해 올해 미국 기업 92%가 임금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 85%보다 늘어난 것이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7.9% 올라 1982년 이후 가장 가파른 물가 상승률을 보고했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예상보다 물가가 급격히 오르는 원인 중 하나로 인건비 상승을 꼽았다. 임금 부담이 커진 기업들이 이를 소비자에게 전가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채용사이트 글래스도어의 다니엘 자오 선임이코노미스트는 "현 고용 상태를 유지하는 게 어렵다고 판단한 고용주들이 인력난을 피하기 위해 임금 인상에 나서고 있다"며 "인플레이션 탓에 노동자들의 급여 인상 요구가 큰 데다 구인난까지 심해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높아졌다"고 했다.

임금 인상 움직임은 산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오미크론이 번지며 극심한 구인난으로 항공편까지 취소해야 했던 항공사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델타항공은 5월부터 7만5000여명인 직원들의 기본급을 4% 올리기로 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도 이달부터 직원들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18달러로 조정했다. 지난해 6월 조정한 이 회사 직원들의 시간당 최저 임금은 15달러였다.

소매업체들도 임금인상에 나섰다. 미 유통업체인 타깃은 지난달 매장과 창고 등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최저 시급을 15달러에서 24달러로 조정했다. 직원들의 근무시간도 주 30시간에서 25시간으로 줄였다. 미 북부의 리조트업체 베일리조트는 직원들의 최저 시급을 20달러로 평균 30% 인상했다. 미 보험사 네이션와이드도 다음달부터 직원들의 최저 시급을 18달러에서 21달러로 올릴 계획이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멕시코음식점 치폴레그릴 등은 임금 인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제품 가격을 올렸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은 임금 부담이 늘면서 수익률이 떨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기업들의 임금 인상분이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월급보다 장바구니 물가가 가파르게 올라 소비자 구매력이 떨어질 것이란 뜻이다. 올해 직원 임금을 4% 넘게 올리겠다고 답한 기업은 44%였다. 나머지 기업의 임금 상승률은 미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7.9%)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