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기부양책 규모는 시장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3일(현지시간) 미 대선 개표가 본격 시작되기 전만 해도 월스트리트에선 민주당이 백악관과 상·하원을 싹쓸이하는 ‘블루웨이브’가 일어나고 초대형 경기부양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다. 경기부양책 규모는 대선 전 민주당의 제안을 훌쩍 웃도는 3조달러(약 3410조원) 이상도 가능할 것이란 전망까지 등장했다.

2조달러 안팎 경기부양책 '오리무중'…연내 타결 사실상 힘들 듯
하지만 4일 오전 6시(한국시간 4일 오후 8시) 기준으로 블루웨이브가 이뤄질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하고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할지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이 시간 기준 상원 100석 중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각 47석을 차지할 것이 유력시된다고 보도했다. 나머지 6석의 향방에 따라 상원의 다수당이 결정될 전망이다. 지금은 공화당이 상원 53석을 차지하고 있다. 하원 다수당은 현재처럼 민주당이 유력하다.

월가에서는 초대형 경기부양책이 나오기 위한 최상의 시나리오로 블루웨이브를 꼽고 있다. 민주당이 5차 경기부양책 규모로 대선 전 2조2000억달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도 백악관, 공화당과 타협하기 위해 낮춘 액수다. 원래 민주당은 3조5000억달러 규모를 목표로 했다. 블루웨이브를 전제로 스위스 은행 롬바르드오디어는 경기부양책 규모를 3조달러 이상, 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조5000억달러 이상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한다면 경기부양책 규모는 블루웨이브에 비해 쪼그라들 전망이다. 공화당은 대규모 재정적자 우려를 들며 5차 경기부양책이 5000억달러 규모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1억9000만달러까지 제시하며 공화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후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이를 트럼프 대통령의 진심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과의 합의를 염두에 두고 백악관이 액수를 올린 것으로, 공화당의 동의는 결국 얻지 못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에 대통령 권한인 행정명령을 통해 추가 실업수당 지급 등 일부 경기부양책을 발동했던 점을 감안할 때 재선되면 비슷한 조치를 내릴 가능성도 있다.

시장에서는 경기부양책 규모만큼이나 시기도 중요하다는 분위기다. 미 언론들은 경기부양책이 없는 ‘혹독한 겨울’을 우려하고 있다. 대선 후부터 내년 초 새로운 의회 개원까지 레임덕 상태가 되는 현 의회에서 경기부양책이 처리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에서다. 대선 결과가 명확해질 때까지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치 상태를 이어갈 가능성도 높다.

그동안 미 정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위기를 맞은 개인과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해온 부양책들이 이미 종료됐거나 종료를 앞두고 있다.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한 여행·항공·외식업체들이 정부로부터 추가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연이어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4분기 들어 모기지(주택담보대출)가 있는 가구 중 7%, 학자금 대출이 남은 가구 중 41%가 제때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정도로 가계의 자금줄이 말라붙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