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이틀 앞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상당수 건설사가 이날부터 공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중대재해법 1호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다. 26일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건축 현장에서 한 근로자가 공사용품을 옮기고 있다. /김범준 기자
설 연휴를 이틀 앞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상당수 건설사가 이날부터 공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중대재해법 1호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다. 26일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건축 현장에서 한 근로자가 공사용품을 옮기고 있다. /김범준 기자
“최저임금,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처럼 선의를 앞세우다가 부작용만 양산하는 ‘헛발 정책’이 될 것 같네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하루 앞둔 26일 한 대기업 인사·노무담당 임원(CHO)이 한 말이다. 중대재해법 시행이 연간 800명이 넘는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줄이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기업들의 경영 리스크를 키울 것이라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모호한 처벌 규정 탓에 검찰 기소가 크게 늘면서 기업과 근로자 간, 정부와 기업 간 법적 분쟁만 급증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정치권·노동계가 탄생시킨 중대재해법

예방보다 처벌 집중…'1호 될까' 떨고 있는 기업
중대재해법은 근로자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과 관련해 기업의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등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중대재해법 제정의 씨앗은 2017년 심어졌다. 2017년 4월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2014년 세월호 참사, 2016년 구의역 사망사고 등을 문제 삼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여야 간 논의는 중대재해법 제정이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강화, 개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러던 중 산안법 개정이 급물살을 타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2018년 12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가 홀로 근무하다 목숨을 잃은 이른바 ‘김용균 씨 사건’이다. 이 사고를 계기로 산업안전에 대한 여론은 비등해졌고, 국회는 사건 17일 만에 산안법 전면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8년 만에 전면 개정한 것으로 안전 조치를 하지 않아 사망사고를 낸 사업주에 대해 최대 7년까지 징역형이 가능하도록 했다.

산안법 전면 개정 이후 다소 수그러들었던 산업안전 이슈는 2020년 4월 경기 이천 물류창고에서 38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화재사고로 다시 급부상했다. 이를 계기로 노동계에선 산안법 개정에 더해 중대재해법 제정 요구가 쏟아졌다. 같은 해 6월 21대 국회 제1호 법안으로 발의됐고, 약 6개월 뒤인 지난해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중대재해 관련 기소 크게 늘어날 것”

법안 발의부터 제정까지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법 시행 이후 당국의 수사와 처벌은 강도 높게 진행될 전망이다. 최근 광주 화정 HDC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 붕괴사고로 안전에 관한 경각심이 높아진 가운데 정부는 연일 엄정 수사 방침을 밝히고 있다. 기업들은 법 시행 초기 시범 사례가 될 수 있는 1호 처벌 대상에 걸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부는 중대재해 사건 수사에 대비해 시스템을 정비하고 조직과 기능을 확대하고 있다. 대검찰청은 이날 ‘중대재해 수사지원추진단’에 일선 전문검사 등을 충원하는 등 규모를 기존 6명에서 15명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전국 7개 노동청에 디지털포렌식 인력을 1명씩 추가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산재 수사를 맡은 고용부의 수사·기소는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고용부는 산재사망 사건의 경우 평균 95% 이상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보내고 있다. 2017~2019년 산재 사망사건 송치율은 평균 95% 이상이었다.

만약 지난해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811개 사업장에 중대재해법을 적용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는 곳은 190곳에 달한다. 정부가 산재에 대해 처벌 수위가 높은 중대재해법 적용을 적극 검토한다면 사망사고뿐만 아니라 부상, 직업성 질병 등도 처벌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법령이 미비한 탓에 소송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더라도 처벌 수위는 낮아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중대재해법이 워낙 모호한 만큼 법원도 중대재해법을 가급적 넓게 적용하는 대신 형량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이 경우 유죄 선고 건수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백승현/곽용희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