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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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글로벌 컨설팅기업인 머서의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인사체계 대수술에 나섰다. 한은이 조직문화 대개편에 나선 것은 관련 컨설팅을 받은 1999년 후 처음이다. 컨설팅 내용에는 직원별로 평가상여금 차등폭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동시에 성과·평가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호봉제를 사실상 폐기하는 수순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20일 입수한 머서의 한은 경영인사 혁신 컨설팅보고서의 골자는 평가상여금제도를 개편하는 내용이다. 한은은 그동안 기본 봉급 외에도 업무실적이 우수하면 성과상여금을 지급했다. 1년 동안 업무 성과를 바탕으로 매겨진 S·A·B·C 4개 등급에 따라 금액이 차이가 난다. 기본급의 0~25% 수준 만큼의 평가상여금을 차등적으로 지급했다. 기존에는 상당수 직원이 B를 받는 만큼 평가상여금 차등폭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머서는 평가상여금의 등급별 차등폭을 키우는 내용을 권고했다. 앞으로 점진적으로 차등폭을 확대하는 방안도 권고했다. 평가상여금 차등폭이 커지는 만큼 평가에 따라 직원들의 연봉차가 커질 전망이다. 한은이 이같은 권고 수용 여부에 따라 연공서열을 중심으로 하는 호봉제를 운용하는 한은이 직무급제에 준하는 임금체계 도입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머서는 상여금 차등지급 근거 도입을 위해 인사평가제도 개편도 권고했다. 수시평가 및 다면평가 체계가 대표적이다. 직원들이 수시로 수행 업무를 인사시스템에 등록하면 팀장급 등이 수시로 평가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조사국 직원이 조사통계월보 보고서 작성 등 수행하는 업무를 시스템에 등록하면 팀장급 이상이 관련해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머서는 또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직원들을 상호평가하는 시스템도 도입하라고 권고했다.

머서는 큰 틀에서 현 조직 체계를 유지하는 대신에 지금보다 낮은 연차의 팀장을 선발할 수 있는 체계를 정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어 경제연구, 실물조사, 금융시장, 금융안정, 통화신용정책, 디지털화폐 등 10개의 수석자리를 신설하는 내용도 컨설팅 보고서에 담겼다. 이들에게 외부교류를 전담하고 주요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역할을 부여한다고도 강조했다.

한은은 이 같은 컨설팅에 따른 인사체계 개편의 시작점으로 재택근무 세부운영기준을 마련했다. 재택근무자 평가를 강화하기 위해 업무내용과 성과를 수시로 엑셀로 작성해 관리자에게 보고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제도(재택근무 업무기록표 4판)다. 평가자인 팀장과 반장은 이렇게 받은 업무기록표를 바탕으로 점수나 고과를 매긴다. 업무기록표 제출 및 평가 주기는 팀장 등이 결정한다. 팀장 결정에 따라 직원들은 많으면 매일 업무기록표를 작성·제출하고 평가받게 된다.

한은 직원들은 업무기록표를 작성하면서 행정 업무가 늘어난 데다 회사의 감시, 통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한 직원은 한은 인트라넷 익명게시판을 통해 "업무기록표 등 세부 운영기준 적용을 재고해달라"며 "직원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이 녹아 있는 구시대적 업무기록표 등을 전직원에게 강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직혁신의 흐름을 상당히 저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