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오른쪽)와 조양호 한진그룹 2대 회장. 대한항공 제공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오른쪽)와 조양호 한진그룹 2대 회장. 대한항공 제공
고(故) 조중훈 회장이 창업한 한진(韓進)그룹은 ‘한민족(韓民族)의 전진(前進)’이란 말의 앞뒤 글자를 딴 것이다. 우리 민족을 잘살게 하겠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조 창업주가 많은 업종 중에서 운수업을 택한 것도 회사 이름과 맥을 같이한다. ‘교통과 수송은 혈관처럼 정치·경제·문화·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기간산업’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국가의 산업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수송보국(輸送報國)’의 철학이다.

조 창업주의 이런 철학은 사업 이외 다양한 분야에서도 수차례 드러났다. 외국과 교류가 많은 항공업 특성상 이를 통해 얻은 국제적인 인맥을 활용해 민간 외교관 역할을 자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이 첫 올림픽 개최권을 따낸 1981년. 조 창업주는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 총회가 열리는 독일 바덴바덴으로 날아갔다. 프랑스를 비롯해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의 국가들은 서울이 아니라 경쟁 후보지인 일본 나고야를 밀고 있었다. 조 창업주는 나고야를 지지하는 국가 소속 IOC 위원들을 집중적으로 만나 설득에 나섰고, 이들이 돌아서면서 서울이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조 창업주는 프랑스와 외교 관계 개선이라는 국익을 위해 당시 막 개발된 에어버스 항공기를 6대 구입하는 결단을 내렸다. 프랑스 정부는 한·프랑스 양국 간 우호 협력에 기여한 공로로 조 창업주에게 모두 네 차례에 걸쳐 훈장을 수여했다. 1990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외국 국가원수들에게 최고 예우로 수여하는 훈장 ‘레종도뇌르 그랑 오피시에’를 받았다.

조 창업주는 20여 년간 프랑스 외에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몽골 정부로부터 9개의 훈장을 받았다. 특히 몽골엔 1992년 아무 조건 없이 B727 항공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 공로로 조 창업주는 몽골 정부로부터 최고 등급인 북극성 훈장을 받았다.

황창학 전 (주)한진 부회장은 “조 창업주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곤 했다”고 회고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