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활성화 법안 조속 처리를” > 경제단체 부회장들이 지난달 6일 경제활성화 법안을 빨리 처리해달라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승원 중소기업중앙회, 김준동 대한상공회의소,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한진현 한국무역협회, 반원익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경총 제공
< “경제활성화 법안 조속 처리를” > 경제단체 부회장들이 지난달 6일 경제활성화 법안을 빨리 처리해달라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승원 중소기업중앙회, 김준동 대한상공회의소,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한진현 한국무역협회, 반원익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경총 제공
“기업들이 감내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허용도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과도한 환경규제 탓에 죄다 범법자가 될 판이다.”(이강신 인천상의 회장)

기업인들의 눈빛은 위태로워 보였다. 말은 거칠었다. 호소라기보다 절규에 가까웠다.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는 한숨과 탄식이 끊이지 않았다. 국내 상공인을 대표하는 지방상의 회장 15명이 지난 10월부터 석 달간 한국경제신문과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쏟아낸 토로다.
"앞날이 안보인다"…기업인 의욕상실이 가장 무서운 위기
위태로운 기업, 기업인

기업인들은 오랜 경기침체 탓에 상당수 기업이 고사(枯死) 직전이라고 털어놨다. 경기 악화와 자금난 등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 및 준비 안 된 주 52시간 근로제 강행 등 친노동정책이 이어지면서 인건비를 감당하기 힘든 지경이 됐다는 호소도 잇따랐다. “금융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공장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한다”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지방상의 회장들은 지역 경기가 ‘사상 최악’이라고 진단했다. 이재하 대구상의 회장(삼보모터스그룹 회장)은 “대구성서산업단지는 가동률이 올 상반기 70% 아래로 떨어졌다”며 “2009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매출 감소와 불어난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공장 문을 닫고 해외로 나간 기업인이 적지 않다”고 답답해했다. 허용도 회장(태웅 회장)은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은 업황이 나빠진 자동차 및 조선업 관련 부품 업체가 모여 있어 다른 곳보다 훨씬 어렵다”며 “죽겠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참담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기업인들은 정부의 반기업 정책이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을 사지(死地)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탈원전 등 ‘일방통행’ 정책과 툭하면 공장을 멈추게 하는 산업안전법,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 등 ‘규제 쓰나미’가 산업 현장을 뒤흔들고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한철수 창원상의 회장(고려철강 회장)은 “창원에 원전 제작 업체인 두산중공업 본사와 280여 개 협력 업체가 밀집해 있는데, 내년부터 ‘수주절벽’에 직면할 판”이라며 “세계 최초로 3세대 원전을 성공적으로 건설하고 운영 중인 나라에서 관련 산업과 기업들이 생사의 기로에 선 아이러니컬한 현실을 맞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강신 회장(영진공사 회장)은 “기업인들이 강화된 환경규제 법안을 지키지 못해 범법자로 낙인찍힐 판”이라며 “정부의 화학물질 취급 강화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인천화학안전대표자협의회까지 출범시켜 대응에 나섰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고 개탄했다.

“기업 기 살릴 대책 절실”

노동계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컸다. 정창선 광주상의 회장(중흥건설 회장)은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위한 합작법인이 설립됐는데, 시민단체 및 노동계가 협약에도 없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며 “기업보다 노조가 먼저인 세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노조가 들어선 업체가 우후죽순 늘면서 공장마다 분규로 몸살을 앓고 있다”며 “웬만한 생산현장은 다 정치판이 됐다”고 씁쓸해했다.

‘4류 정치’ 때문에 못 살겠다는 불만도 이어졌다. ‘조국 사태’와 한·일 경제 전쟁 등을 거치며 ‘정치’만 남고 ‘경제’는 실종됐다는 하소연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주요 경제 법안이 줄줄이 정쟁에 묻힐 게 뻔하다는 걱정도 나온다. 이강신 회장은 “그냥 (경제를) 내버려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고 쓴소리를 했다.

땅에 떨어진 기업인의 사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기업은 해외에서 경쟁사를 상대로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데, 정작 나라 안에서는 맨날 손가락질 받는 처지를 개탄했다. “힘들게 기업 해봐야 무슨 소용이냐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한철수 회장)는 말이 터져나오는 이유다.

기업인들은 경제정책의 대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허용도 회장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기업과 기업인의 기를 살리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기업인은 “적어도 기업인들이 자식한테 회사를 물려주지 않고, 공장 문을 닫을까 고민하지는 않도록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