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는 예비 범법자"…직장내 왕따·단순 실수도 형사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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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되는 순간 '2205개 형사처벌' 대상에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지난해 11월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카카오가 계열사 5곳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워낙 작은 계열사다 보니 실무진이 실수로 누락했다는 해명도, 회사가 누락 사실을 자진신고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경징계(경고조치)했다는 항변도 소용없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8부는 지난달 8일 “김 의장이 고의로 누락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김 의장 재판 때문에 카카오의 사업 일정은 반년 넘게 지연됐다. 카카오가 카카오뱅크의 대주주로 올라서려 했지만 금융위원회가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미뤘기 때문이다.
교도소 담장 위 걷는 기업인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285개 경제 관련 법령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경제 관련 형사처벌 항목은 2657개로 20년 전인 1999년(1868개)보다 42.2% 늘었다. 이 가운데 83%인 2205개 항목은 범죄를 저지른 직원뿐만 아니라 법인과 대표이사를 함께 처벌하도록 했다. 유정주 한경연 기업혁신팀장은 “기업 대표가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파악하고 통제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대표이사를 처벌하도록 한 건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대표적 과잉처벌법으로 꼽는다.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준 회사의 사업주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도록 했지만, 정작 가해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직원 중 누군가가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하면 이 직원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인사발령을 내기도 쉽지 않다.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미국 LA 사무소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는데 뉴욕 본사의 최고경영자(CEO)가 처벌받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지키지 않으면 CEO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사내 협력업체 직원이 작업 중 사망하면 원청업체 대표가 최대 7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부 기업인은 “잘렸다는 통보보다 대표이사로 내정됐다는 통보가 더 겁난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다. 최근 20대 그룹의 한 계열사 차기 대표이사로 내정된 A씨는 “현 대표이사가 인수인계하면서 ‘다행히 감옥에 안 가고 임기를 마쳤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며 “대표이사로 내정되면서 ‘예비 범법자’가 된 기분”이라고 씁쓸해했다.
갈수록 늘어나는 규제 법안
기업의 경영활동을 제약하는 규제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20대 국회 들어 하루에 3개꼴로 규제 법안이 발의됐다. 황당한 법안도 적지 않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기업 임원의 임금을 최저임금의 30배 이내로 제한하는 ‘최고임금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유능한 인재 영입을 막아버리는 법안이라는 게 경제계의 지적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높은 연봉을 받는 기업인에 대한 반감이 느껴진다”고 허탈해했다.
경제활성화 법안은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여야 이견이 없는 데이터3법마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다. 경제단체 부회장들이 지난달 한데 모여 경제활성화 법안을 처리해달라고 호소했지만 바뀐 건 없다.
정부는 한술 더 떠 법령이 아닌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바꿔 기업 활동을 옥죄려 하고 있다. 야당이 규제 관련법을 반대하자 아예 국회를 건너뛰겠다는 의도다. 국민연금을 통해서는 기업 경영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경제계는 “국민연금이 이사 선임과 해임권을 갖게되면, 정부가 기업을 길들이는 수단으로 악용될 게 뻔하다”고 우려했다.
정부의 친노조 정책도 계속되고 있다. 최저임금은 지난 2년간 29.1% 올랐다. 지난해 7월부터는 주당 최대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300인 이상 사업장 기준)으로 줄었다. 정부는 경제계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실업자·해고자의 노조활동 허용,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 삭제 등을 담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추진하고 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교도소 담장 위 걷는 기업인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285개 경제 관련 법령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경제 관련 형사처벌 항목은 2657개로 20년 전인 1999년(1868개)보다 42.2% 늘었다. 이 가운데 83%인 2205개 항목은 범죄를 저지른 직원뿐만 아니라 법인과 대표이사를 함께 처벌하도록 했다. 유정주 한경연 기업혁신팀장은 “기업 대표가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파악하고 통제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대표이사를 처벌하도록 한 건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대표적 과잉처벌법으로 꼽는다.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준 회사의 사업주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도록 했지만, 정작 가해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직원 중 누군가가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하면 이 직원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인사발령을 내기도 쉽지 않다.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미국 LA 사무소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는데 뉴욕 본사의 최고경영자(CEO)가 처벌받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지키지 않으면 CEO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사내 협력업체 직원이 작업 중 사망하면 원청업체 대표가 최대 7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부 기업인은 “잘렸다는 통보보다 대표이사로 내정됐다는 통보가 더 겁난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다. 최근 20대 그룹의 한 계열사 차기 대표이사로 내정된 A씨는 “현 대표이사가 인수인계하면서 ‘다행히 감옥에 안 가고 임기를 마쳤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며 “대표이사로 내정되면서 ‘예비 범법자’가 된 기분”이라고 씁쓸해했다.
갈수록 늘어나는 규제 법안
기업의 경영활동을 제약하는 규제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20대 국회 들어 하루에 3개꼴로 규제 법안이 발의됐다. 황당한 법안도 적지 않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기업 임원의 임금을 최저임금의 30배 이내로 제한하는 ‘최고임금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유능한 인재 영입을 막아버리는 법안이라는 게 경제계의 지적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높은 연봉을 받는 기업인에 대한 반감이 느껴진다”고 허탈해했다.
경제활성화 법안은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여야 이견이 없는 데이터3법마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다. 경제단체 부회장들이 지난달 한데 모여 경제활성화 법안을 처리해달라고 호소했지만 바뀐 건 없다.
정부는 한술 더 떠 법령이 아닌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바꿔 기업 활동을 옥죄려 하고 있다. 야당이 규제 관련법을 반대하자 아예 국회를 건너뛰겠다는 의도다. 국민연금을 통해서는 기업 경영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경제계는 “국민연금이 이사 선임과 해임권을 갖게되면, 정부가 기업을 길들이는 수단으로 악용될 게 뻔하다”고 우려했다.
정부의 친노조 정책도 계속되고 있다. 최저임금은 지난 2년간 29.1% 올랐다. 지난해 7월부터는 주당 최대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300인 이상 사업장 기준)으로 줄었다. 정부는 경제계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실업자·해고자의 노조활동 허용,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 삭제 등을 담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추진하고 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