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율이 100%에 이르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경기 북부 일대를 휩쓸면서 살처분 대상 돼지가 5만 마리를 넘어섰다. 전체 사육 돼지(1131만 마리·통계청 6월 기준)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규모지만 ASF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자칫 ‘돼지고기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불안이 커지면서 돼지고기 도매가격은 3일째 뛰었다.

발생 1주일 만에 5만 마리 살처분

돼지열병, 경기북부 초토화…5만마리 살처분
2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24일 오후 11시 현재 살처분 대상 돼지는 5만여 마리로 집계됐다. 농식품부는 ASF 확진 판정을 받은 6개 농가에서 기르는 돼지는 물론 주변 3㎞ 안에 있는 농장 돼지도 예방적 차원에서 살처분하고 있다. 이날 인천 강화군 불은면 농장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양도면 농장과 경기 연천군 미사면에서도 의심 신고가 들어왔으나 음성으로 나타났다. ASF 확산 속도를 감안할 때 살처분 규모는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양돈업계는 정부가 ‘1차 저지선’으로 삼은 북한 접경 6개 시·군(파주 연천 포천 동두천 김포 철원)이 뚫린 만큼 24일 설정한 ‘2차 저지선’(경기 및 강원 전체)도 조만간 ASF 영향권에 들어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정확한 감염 경로를 모르는 만큼 ASF 확산을 막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기와 강원지역에서 기르는 돼지는 각각 196만 마리와 50만 마리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사육두수가 평년에 비해 13%가량 많지만 ASF가 확산돼 살처분 대상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면 이내 공급 부족으로 돌아설 수 있다”고 말했다.

꿈틀거리는 돼지 가격

돼지열병, 경기북부 초토화…5만마리 살처분
돼지고기 가격은 다시 출렁이고 있다. 수요가 많은 수도권 경매 가격은 ASF 발생(17일) 이후 처음으로 ㎏당 6000원을 넘어섰다. 발병 전날(16일)과 비교하면 46% 상승한 것이다. 이날 전국 평균 도매가격은 전일보다 0.7% 올랐다.

소매가격도 소폭 상승세다. 국내산 냉장 삼겹살과 목살 가격은 전날보다 1% 안팎 뛰었다. 도매가격 상승세 대비 소매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는 것은 일시적인 소비 부진 때문이다. ASF에 걸린 돼지고기를 먹어도 괜찮지만 심리적으로 꺼리는 소비자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다.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돼지고기 가격은 오르는데 사람들은 발길을 끊고 있어서다. 서울 중구에 있는 C중식당은 “ASF와 무관한 청정 지역 돼지고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안내문을 이번주부터 내걸었다.

장기적으로 돼지고기 가격 상승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많다. 세계 최대 돼지고기 생산·소비국인 중국이 육류 수입을 대폭 늘리면서 세계적으로 연쇄반응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육류가격지수는 지난달 179.76으로, 2015년 1월 사상 최고치(183.5)에 육박했다. 국내 돼지고기 자급률이 70%에 못 미치는 만큼 국제 시세가 오르면 수입 돼지고기와 대체육인 닭고기 소고기 양고기 등의 가격도 뛸 수밖에 없다.

오상헌/김보라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