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가구 넘게 사는 경남 거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큰불이 난 건 7년 전 이맘때다. 경차 ‘모닝’에서 시작한 불에 주변 차량 163대가 타거나 그을렸고, 지하 통신시설은 엉망이 됐다.두 달 전 인천 청라 아파트 ‘벤츠 전기차 화재’에 못지않은 피해를 준 사건이지만, 아무런 이슈가 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가솔린 차에서 난 불이어서다. 별로 새로울 게 없는 뉴스다 보니 다들 그러려니 넘겼을 터다. 그래서 ‘90% 이상 연료통을 채운 차, 지하 주차장 진입 금지’ 같은 황당한 대책은 뒤따르지 않았고, 당시 스프링클러 미작동 이유를 추궁하는 ‘정상적인’ 후속 절차가 이어졌다.지하 주차장, 큰 피해, 스프링클러 미작동 측면에서 판박이 사고였지만 벤츠 전기차 화재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누군가 전기차에 ‘달리는 시한폭탄’이란 프레임을 씌우자 서울시는 뒤도 안 돌아보고 ‘90% 이상 충전한 차, 지하 주차장 진입 금지’를 발표했다. 완성차 메이커, 배터리 기업, 관련 전문가들의 비웃음과 반발을 산 바로 그 대책이다.반발 이유는 명쾌하다. 국산 전기차에 주로 들어가는 삼원계(NCM) 배터리는 g당 최대 275㎃h 정도의 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데, 배터리 제조사는 200~210㎃h만 쓰도록 설계한다. 자동차 회사는 여기에 더해 ‘100% 충전’으로 계기판에 떠도 실제론 95% 정도만 충전되도록 안전마진을 둔다. 그럼에도 문제가 생기면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이 차단·제어한다. 3중 안전장치를 둔 만큼 충전율 규제를 추가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배터리 전문가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인데, 서울시는 왜 엉터리 대책을 내놨을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르는 첫 번째 조건은 경제력이다. 핵심 동력은 기업이다. TSMC가 대만 국부(國富)의 핵심이듯이 모든 나라에는 경제를 선도하는 대표 기업이 있고 그들이 구축한 생태계에서 일자리와 세금이 나온다. 우리도 그랬다. 삼성 현대 SK LG 등 ‘보석’ 같은 기업들 덕분에 대한민국은 60년 만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2040년 국내총생산(GDP) 더블링(2400조원→5000조원)’ 달성을 위한 키플레이어가 기업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을 둘러싼 글로벌 기업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서다. 전자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한국을 먹여 살려온 주력 산업은 하나둘 중국에 따라잡혔고, 인공지능(AI) 로봇 우주 양자 등 미래 첨단 분야에선 미국과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에게 이런 식의 위기는 처음이 아니다. 미국 일본 유럽에 비해 디지털 후진국이었지만, 우리는 1990년대 세계 최초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을 상용화하고 초고속 인터넷망도 전국에 깔면서 순식간에 정보기술(IT) 강국이 됐다. 삼성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던 일본 기업을 차례차례 무너뜨렸고, LG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목돈을 투입해 2차전지 최강 기업 중 하나가 됐다. 그렇게 별 볼 일 없던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산업 강국이 됐다. 한국 미래, 신성장 동력에 있다다시 저성장의 굴레를 벗고 고성장 궤도에 올라타려면 유망 산업부터 품어야 한다. 20여 년 전 신사업이던 휴대폰과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을 잡았던 것처럼 말이다. 미래 유망 산업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AI와 로봇, 바이오, 우주항공, 수소, 첨단 모빌리티, 차세대 원전 등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것은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1974년이지만, 사업을 본격화한 것은 1983년부터다. “가전용 반도체가 아니라 첨단 반도체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는 이병철 회장의 ‘도쿄 선언’이 그 출발점이다. 삼성은 도쿄 선언 10년 만인 1993년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점유율 10.8%)에 올랐다. 그 무렵 현대자동차는 미국 진출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1986년 ‘올리브에이스’호에 실린 엑셀 1050대로 닻을 올린 미국 수출은 약 5년 만인 1990년 누적 100만 대를 넘겼다. 포스코는 1984년 15억달러이던 수출액을 1993년 43억달러로 세 배 불렸고, 현대중공업을 필두로 한 조선사는 1993년 ‘넘사벽’ 일본을 제치고 세계 챔피언(점유율 37.8%)이 됐다.기업들이 뛸 때마다 대한민국 경제는 쑥쑥 컸다. 1984년 78조원이던 국내총생산(GDP)은 1989년 165조원으로 ‘더블링’됐고, 1998년 315조원으로 다시 두 배가 됐다. 당시 첨단산업이던 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을 ‘우리 것’으로 만든 덕분이다.지금 다시, 새로운 거대시장이 우리 앞에 열리고 있다. 인공지능(AI), 바이오테크, 우주항공, 로봇, 수소, 첨단 모빌리티, 차세대 원전 등 7대 미래산업이다. 지난해 기준 737조원짜리 세계 시장의 14%를 한국 몫으로 챙기고 있는 반도체 신화를 이들 미래산업에서 재현해야 한다. 2030년 합산 시장 규모가 약 57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7대 미래산업의 10%만 잡아도 ‘2040년 GDP 더블링’(2400조원→5000조원)과 ‘G5(주요 5개국) 진입’은 현실이 될 수 있다.기존 주력 산업은 더욱 고도화·첨단화해야 한다. 중국에 따라잡힌 범용제품은 과감히 버리고, 고부가가치 제품에
나라 걱정을 많이 하는 걸로 치면 기업인도 정치인이나 관료 못지않다. 업종 불문, 규모 불문이다. 누군가는 “규제를 내버려두면 기업들의 탈(脫)한국은 가속화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이는 “정부가 인센티브 없이 방치하면 산업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거품을 문다.여기까지는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듣던 얘기 그대로다. 요즘 만난 기업인들은 하나를 더 붙인다. 사람이다. 안 그래도 저출생 여파로 대졸자 수가 확 줄었는데, 그나마 똑똑한 인재는 죄다 의대로 가니 마음에 쏙 드는 이공계 출신을 들이는 게 너무나 힘들어졌다고 하소연한다. 공들여 키운 엔지니어마저 돈에 이끌려 해외 기업으로 옮기니,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대한민국호(號) 침몰은 피할 수 없을 거란다.얼마 전 만난 정보기술(IT) 기업 최고경영자(CEO)도 이직 얘기가 나오자 한숨부터 쉬었다. “미국 빅테크들이 연봉 3억~4억원 정도를 내밀 때만 해도 젊고 똑똑한 인공지능(AI) 엔지니어들은 ‘주판알’을 튕겼어요. 언어장벽과 고위직 승진 가능성, 높은 물가 등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한 많은 이들이 한국에 남았죠. 하지만 ‘AI 인력 쟁탈전’이 불거지면서 완전히 달라졌어요. 10억원을 준다는데, 무슨 수로 막습니까. 사실상 연공서열제에 묶인 우리는 잘해야 1억~2억원인데….”그러고 보니 삼성전자건, SK하이닉스건 특급 기술을 개발한 젊은 엔지니어에게 깜짝 놀랄 만큼의 ‘파격 보상’을 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평등’을 외치는 노조와 목소리 큰 일반 직원들의 눈치를 본 탓인지, 다들 똑같이 적용받는 임금인상률과 사업부별 실적 및 개인 고과 등을 감안
사람들은 시련을 딛고 재기한 기업 스토리에 열광한다. 다 망해가던 PC업체에서 세계 최고 정보기술(IT) 기업이 된 애플과 무너진 ‘TV 왕국’의 영광을 게임, 엔터테인먼트 등 콘텐츠로 재현한 소니에 그랬다.여기에 추가할 만한 기업이 하나 더 나왔다. 만년 2위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다. 31년 만에 연간 적자(5800만유로)를 낸 게 불과 1년6개월 전인데, 올해는 10억유로 흑자를 낼 것이라고 공언한다. 그사이 주가는 두 배로 뛰었다. 요즘 아디다스는 그만큼 ‘핫’하다.이 모든 변화는 푸마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축구선수 출신 최고경영자(CEO) 비에른 굴덴이 ‘구원투수’로 온 작년 초 시작됐다. 굴덴이 어떤 특별한 마술을 부린 걸까. 그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중요한 과제는 ‘우리는 지고 있다’는 걸 직원들에게 일깨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휴대폰 번호를 전 직원 6만 명에게 공개하고, 시도 때도 없이 소통했다. 그렇게 변화를 원하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굴덴이 찾은 위기 탈출 해법은 거창하지 않았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만 찾던 조직문화를 ‘일단 해보자’로 바꾸는 것, 그리고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백 투더 베이식)이었다. 스포츠 브랜드가 스포츠 후원을 포기하는 것은 바보짓이라며 한동안 포기했던 크리켓과 럭비 등을 다시 품었다. 항상 “현장을 챙기라”고 주문했고 “판단이 서면 우물대지 말고 바로 실행하라”고 채근했다. 할인 최소화, 재고 감축, 비용 절감 등 누구나 알지만 실제 하기는 힘든 일에 매달렸다. 한동안 놓친 ‘경영의 기본’을 다잡은 게 아디다스 재기의
모든 기업은 숙명처럼 ‘사고’를 안고 산다. 예방에 힘을 쓴다고 다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이란 말뜻 그대로, 사고는 생각지도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불쑥 터진다. 이런 ‘불청객’이 금호타이어를 찾아온 것은 2016년이었다. 미국 조지아 공장 완공을 코앞에 둔 시점에 지붕 마감 작업을 벌이던 현지 채용 근로자가 추락사한 것. 당시 미국법인에서 일한 한 임원은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근로자 안전 문제에 엄격한 미국에서 사망사고가 난 만큼 제때 공장 문을 여는 것은 물 건너갔다는 걱정에서였다.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출동한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HSA) 소속 근로감독관은 금호타이어 임직원에게 하나하나 따져 묻기 시작했다. 규정에 맞게 안전교육을 했는지, 보호장비를 제대로 착용토록 했는지…. 한참을 살펴보던 근로감독관 입에선 뜻밖의 말이 나왔다. “사고 원인은 해당 근로자가 임의로 안전로프를 매지 않은 것이다. 금호타이어는 해야 할 조치를 다 했으니, 하던 대로 시험생산을 계속해도 좋다.” 그렇게 금호타이어는 사고 당일에도 공장을 돌릴 수 있었다.똑같은 사고가 한국에서 일어났으면 어땠을까.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한국에선 사망사고가 나면 거의 100% 작업중지 명령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실제 몇 년 전 A기업에서 추락사고가 났을 때 감독관이 제일 먼저 내린 조치는 모든 고소작업(高所作業)에 대한 작업중지 명령이었다. 사고 원인이 뭔지, 추가 사고가 날 수 있는 급박한 위험 요소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그다음 일이었다.문제는 한 번 작업중지 명
“중국에 연구개발(R&D)센터를 지을까 검토 중이에요. 기술 개발 속도로 보나, 연구 환경으로 보나 한국보다 훨씬 낫거든요.”귀를 의심했다. 얼마 전까지 한국이 세계 최고라고 자랑하던 첨단업종에서, 그것도 첫손에 꼽히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입에서 “중국에 ‘두뇌’를 두겠다”는 말이 나오다니. 한국에 꼭꼭 숨겨둔 기술도 빼가는 중국인데, 본토에 R&D센터를 세우면 기술 유출 가능성이 높아질 게 뻔할 텐데 말이다.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더니 이런 설명을 들려줬다. “기술 유출 걱정, 별로 안 합니다. 중국이 더 잘하거든요. R&D센터 지으려는 것도 중국 기술을 배우려는 겁니다.”이 한마디가 한국경제신문이 지난주부터 내보내고 있는 ‘레드테크(중국의 최첨단 기술)의 역습’ 시리즈를 기획한 배경이 됐다. 중국의 첨단기술 수준을 짚어보고, 단기간에 실력을 끌어올린 비결을 찾기 위해 화웨이, 바이두, 텐센트 등 최고 테크기업을 찾았다.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정도만 빼면 중국은 한국을 라이벌로 생각조차 안 한다. 중국 기업인들 머릿속엔 온통 미국을 잡는 것만 들어 있더라.”중국의 ‘첨단기술 굴기’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올 들어서만 “2022년 기준 중국의 136개 핵심 기술 수준이 미국 대비 82.6%로 한국(80.1%)을 처음 눌렀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고, “64개 첨단기술 경쟁력에서 중국이 53개 부문 1위로 미국(11개)을 앞섰다”는 호주전략정책연구소 분석도 나왔다.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중국 제조 2025’를 발표한 2015년이었다. 정보기술(IT), 로봇, 항공우주 등 10개 첨단 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를 흔들며 “반도체 패권을 되찾겠다”고 선언한 게 3년 전 이맘때였다. 그로부터 두 달 뒤엔 가지야마 히로시 일본 경제산업상이 ‘반도체산업 기반 강화 전략’을 발표했다. “민간사업 지원의 틀을 넘어 국가사업으로 대처하겠다”면서.미국과 일본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아차’ 싶었는지, 문재인 정부도 그즈음 대책이란 걸 내놨다. 이름하여 ‘K-반도체 전략’. 거창한 제목과 달리 보조금에 대해선 일언반구 없이 시설투자비 등에 대한 세액공제를 ‘찔끔’(대기업 기준 3%→6%, 이후 15%로 상향) 올려주는 정도였다.대책 중에는 SK하이닉스가 120조원을 들여 짓는 용인 클러스터 가동에 필요한 전력 인프라 구축비의 25%를 국비로 지원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전기료를 깎아준다는 것도 아니고, 마땅히 나라가 깔아줘야 할 전력망 구축비를 일부 대준다는 게 그렇게 생색낼 일인가 싶었지만, 그나마도 없던 걸 해준다니 SK로선 황송할 따름이었겠다.한·미·일 세 나라의 ‘반도체 굴기’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이듬해 드러났다. 미국은 자국에 반도체 시설을 짓는 기업에 527억달러(약 70조원) 규모의 보조금 등을 주는 ‘반도체 지원법’을 내놓으며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을 빨아들였다. 얼마 전 나온 ‘인텔 200억달러, 삼성 60억달러, TSMC 50억달러 보조금 지급’ 기사의 근거가 된 바로 그 법이다.같은 해 일본은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대만 TSMC에 건설비의 40%에 해당하는 4760억엔(약 4조3000억원)을 건넸다. 일본 정부의 총력 지원은 덤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24시간 공사&
콘스탄티노플(튀르키예 이스탄불)은 5세기부터 15세기까지 1000년 동안 ‘난공불락의 도시’였다. 422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가 지은 ‘테오도시우스의 성벽’ 덕분이었다. 5세기 중반 훈족은 이 성벽에 막혀 말머리를 돌렸고, 사라센은 무려 5년(674~678년) 동안 이 성을 포위했지만 끝내 뚫지 못했다. 이후에 침공한 러시아도, 아랍도 빈손으로 돌아가기는 마찬가지였다.테오도시우스의 성벽의 힘은 두 군데서 나왔다. 하나는 3개의 성벽을 차례차례 쌓아놓은 3중 구조란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넓고(18m), 깊은(6m) ‘해자’(垓子: 성벽 바깥을 빙 둘러싼 물웅덩이)였다. “돌격 앞으로”를 외치던 침략군들은 눈앞에 맞닥뜨린 거대한 물웅덩이에 진격을 멈췄다.그 옛날 서양 전쟁사를 꺼낸 건 얼마 전 만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A씨가 꺼낸 ‘해자’란 단어가 귀에 맴돌아서다. 최근 CEO로 선임된 그는 임원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회사의 해자는 무엇이냐”, “경쟁 업체는 어떤 해자를 갖췄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남들이 파놓은 물웅덩이를 깨부수고, 남들이 못 건너올 물웅덩이를 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A씨는 “똑 부러진 답도 못 들었고, 나도 못 찾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자 가장 절박한 숙제가 바로 우리만의 해자를 갖는 것”이라고 했다.우리만의 해자를 찾는 것, 그리고 남들이 파놓은 해자를 뚫는 것은 비단 이 회사만의 일은 아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놓인 상황이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어서다.국가대표 산업으로 꼽히는 반도체부터 그렇다. 지금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주인공
좋은 소식이 있을 때마다 전화를 주던 기업인 이름이 휴대폰 창에 떴다. 반가운 마음에 받았더니, 웬걸. 걱정만 한가득이다. 그것도 ‘세상 쓸데없다’는 나라 걱정으로만.A씨는 지난주에 나온 두 건의 한국경제신문 기사 때문에 전화기를 들었다고 했다. 18일 게재한 ‘미래 핵심기술 1위, 중국 53 vs 한국 0’과 하루 뒤 보도한 ‘與, 아빠도 한 달 출산휴가…野, 셋째 낳으면 1억 지급’.전자는 인공지능(AI), 배터리 등 64개 첨단기술 분야에서 한국이 그동안 ‘한 수 아래’로 본 중국과 인도에 크게 밀린 것으로 나타났다는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의 분석 보고서다. 후자는 여야가 동시에 내놓은 저출생 대책 총선 공약을 비교 분석한 기사였고.두 기사가 A씨의 머릿속에 하나로 얽히면서 화를 돋운 모양이다. 한국 기업 경쟁력은 추락하고 있는데, 정치권은 그저 표에 도움이 될 만한 공약만 내놓고 있으니.“저출생 대책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당장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발표하려면 사전에 기업과 협의부터 하는 게 순서 아닌가요?”기사를 찬찬히 읽어 보니, A씨가 폭발할 만한 대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기업 인력 운용에 부담이 될 수 있는 국민의힘의 ‘유급 아빠 휴가’ 확대(10일→1개월)와 ‘유급 자녀돌봄 휴가’(연 5일) 신설이 그랬다. 아이를 낳으면 현금을 퍼준다는 더불어민주당 공약도 기업인 입장에선 찜찜할 만한 부분이다. A씨는 “매년 28조원이 든다는데, 어디서 나오겠느냐”며 “결국엔 법인세, 소득세 올려서 대기업과 고소득자에게 물릴 게 뻔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민주당이
“그 숫자, 진짜 맞나요?”몇 번이나 되물었다. 머릿속으로 짐작했던 수치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설마 그 정도일까’란 의심은 스마트폰으로 관련 자료를 확인한 뒤에야 거둘 수 있었다.7만5324개. 작년 기준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출판사 수다. 2012년 4만2157개에서 매년 3000~4000개씩 더해졌으니, 지금 세어 보면 8만 개에 육박할 수도 있겠다.많아도 너무 많다. 5조~6조원 시장에 이렇게 많은 ‘선수’가 뛰는 산업이 대한민국에 또 있을까. 이 중 상당수가 1인 출판사라고 해도 말이다. 출판시장이 쪼그라드는 걸 감안하면 이 숫자를 이해할 길은 더 멀어진다. 지난해 상위 77개 출판사 매출은 5조1081억원으로, 10년 전(2012년 5조6576억원)보다 10% 줄었다. 7만 개가 넘는 한국 출판사국내 1위 단행본 출판사(참고서 제외)인 김영사의 2012년과 2022년 성적표에 이 모든 상황이 담겨 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출(약 350억원)은 똑같은데, 영업수지는 19억원 흑자에서 5억원 적자가 됐다. ‘업계 1등도 적자’란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출판 분야 ‘챔피언’의 덩치가 우리 산업 전체로 보면 ‘플라이급’밖에 안 된다는 점이다.인공지능(AI)이다 빅데이터다 세상은 팽팽 돌아가는데, ‘피터팬’처럼 작은 몸집으로 미래 투자를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 앞선다. 덩치도 키우고 수익성도 끌어올려야 할 텐데, 의미 있는 인수합병(M&A)이나 그럴듯한 신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출판사는 들어보지 못했다. 굳이 리스크를 안고 도전했다가 큰 낭패를 보느니 빡빡하지만 지금 살림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건지….누군가 “다양성을 추
"그 숫자, 진짜 맞나요?"몇번이나 되물었다. 머릿속으로 짐작했던 수치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설마 그 정도일까'란 의심은 스마트폰으로 관련 자료를 확인한 뒤에야 거둘 수 있었다. 7만5324개. 작년 기준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출판사 수다. 2012년 4만2157개에서 매년 3000~4000개씩 더해졌으니, 지금 세어보면 8만개에 육박할 수도 있겠다. 많아도 너무 많다. 5조~6조원 시장에 이렇게 많은 '선수'가 뛰는 산업이 대한민국에 또 있을까. 이중 상당수가 1년에 책 한권 내지 않은 1인 출판사라 해도 말이다. 출판시장이 쪼그라드는 걸 감안하면, 이 숫자를 이해할 길은 더 멀어진다. 지난해 상위 77개 출판사 매출은 5조1081억원으로, 10년전(2012년 5조6576억원)보다 10% 줄었다. 5조 시장에 7만 곳 격돌국내 1위 단행본 출판사(참고서 제외)인 김영사의 2012년과 2022년 성적표에 이 모든 상황이 담겨 있다.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매출(약 350억원)은 똑같은데, 영업수지는 19억원 흑자에서 5억원 적자가 됐다. '업계 1등도 적자'란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출판분야 '챔피언'의 덩치가 우리 산업 전체로 보면 '플라이급' 밖에 안된다는 점이다. 인공지능(AI)이다 빅데이터다 세상은 팽팽 돌아가는데, 저 정도 기업규모로 미래를 잘 준비할 수 있을까. 덩치를 키우고 수익성을 끌어올려야 할텐데, 과문한 탓인지 의미 있는 인수합병(M&A)을 했거나 이렇다 할 신사업에 뛰어든 출판사는 들어보지 못했다. 굳이 리스크를 안고 도전했다가 큰 낭패를 보느니, 지금 살림이라도 유지하는게 낫다고 보는건 아닌지…. 누군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출판업계의 문법은 생산성을 중시하는 일반 기업과 다르다"는 말로
루브르박물관 15유로, 루이비통미술관 14유로, 피노컬렉션 14유로, 오랑주리미술관 11유로…. 지난주 유럽 최대 아트페어 ‘아트바젤 파리’를 다녀온 이선아 기자의 출장 명세서에 붙은 영수증 뭉치의 태반은 미술관 입장료였다. 다 더하니 제법 뭉칫돈이 됐다. 궁금했다. 한국도 국립박물관·미술관 무료 관람제(상설 전시 기준)를 하는데, 자칭 ‘문화강국’이라고 뻐기는 프랑스가 왜 안 하는지. 문화체육관광부에 물었더니 이런 답변을 들려줬다. “2008년 무료 관람을 시범 실시했는데 효과가 없어서 그만뒀다더라. 공짜든 아니든, 미술관 안 가는 사람은 어차피 안 가니까. 괜히 입장료 수입만 줄어들어 세금 축내지 말자는 거지. 그래서 영국 빼곤 웬만한 선진국들 다 돈 받아.”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저 높은 ‘예술 문턱’을 조금이나마 낮추려면 입장료라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외국인 입장료를 우리가 내준다?국립중앙박물관 자료를 찾아봤다. 프랑스와 비슷했다. 무료 관람제를 시행한 2008년부터 첫 3년 동안만 관람객이 늘었고, 이후엔 정체였다. 확실한 건 국공립미술·박물관에 투입되는 세금과 ‘공짜 관람’한 외국인이 늘었다는 것. 국립중앙박물관과 산하기관이 쓴 돈은 2021년 1855억원에서 지난해 2017억원으로 8.7% 증가했고, 같은 기간 외국인 방문자는 1만4000명에서 7만명으로 다섯 배 늘었다. 올 들어선 6개월 만에 7만 명을 넘어섰다. 알다시피 무료 관람은 공짜가 아니다. 박물관 운영에 드는 경비를 누군가는 내야 하니까. 우리는 이걸 세금으로 메우니 결국 우리 국민이 외국인 입장료를 내준 셈이다. 무료 관람의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덕수궁과 경복
루브르박물관 15유로, 루이비통미술관 14유로, 피노컬렉션 14유로, 오랑주리미술관 11유로…. 지난주 유럽 최대 아트페어중 하나인 '아트바젤 파리'를 다녀온 이선아 기자의 출장 명세서에 붙은 영수증 뭉치의 태반은 미술관 입장료였다. 하나하나 더하니 제법 뭉칫돈이 됐다. 궁금했다. 우리나라도 국립박물관·미술관 무료 관람제(상설 전시 기준)를 하는데, 자칭 '문화강국'이라고 뻐기는 프랑스가 왜 안하는 지. 문화체육관광부에 물었더니, 이런 답변을 들려줬다. "2008년에 무료관람을 시범실시했는데, 효과가 없어서 그만뒀다더라. 공짜든 아니든, 미술관 안가는 사람은 어차피 안가니까. 괜히 입장료 수입만 줄어들어 세금 축내지 말자는거지. 그래서 영국 빼곤 웬만한 선진국들 다 돈 받아." 한방 맞은 느낌이었다. 저 높은 '예술 문턱'을 조금이나마 낮추려면 입장료라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니. ○외국인 입장료를 우리가 내준다?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 자료를 찾아봤다. 프랑스와 비슷했다. 무료관람제를 시행한 2008년부터 첫 3년 동안만 관람객이 늘었고, 이후엔 정체였다. 확실한 건 국공립 미술·박물관에 투입되는 세금과 '공짜 관람'한 외국인이 늘었다는 것 뿐. 국립중앙박물관과 산하기관들이 쓴 돈은 2021년 1855억원에서 지난해 2017억원으로 8.7% 확대됐고, 같은 기간 외국인 방문자는 1만4000명에서 7만명으로 5배 커졌다. 올 들어선 6개월만에 7만명을 넘어섰다. 알다시피, 무료 관람은 공짜가 아니다. 박물관 운영에 드는 경비는 누군가 내야하니까. 우리는 이걸 세금으로 메우니, 결국 우리 국민이 외국인 입장료를 내준 셈이다. 무료 관람의 부작용은 이뿐이 아니다. (
“극장 편성 담당자들은 가을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연초부터 미뤄놨던 ‘숙제’를 본격적으로 풀어야 할 때거든요.”얼마 전 만난 극장체인 관계자 A씨는 생각지도 못한 스크린쿼터 얘기부터 꺼냈다. 스크린쿼터 때문에 4분기 편성이 엉망이 된다는 하소연이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절 스크린쿼터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사실에. K콘텐츠를 전 세계에 팔아치우는 대한민국이 정작 다른 나라 콘텐츠는 막고 있다는 아이러니에.이게 다가 아니었다.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영화관이 아닌 각각의 스크린마다 걸어놓은 탓에 그 귀한 아이맥스(IMAX)관도 1년의 5분의 1(73일)은 무조건 한국 영화를 걸고 있다”는 대목에선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10여년 전 노부부의 사랑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아이맥스관에 걸렸던 비밀이 그제야 풀렸기 때문이다. 매년 73일은 한국 영화 걸어야영화팬들에게 아이맥스는 ‘힙 플레이스’다. 일반 스크린보다 몇 배 클 뿐만 아니라 숨은 영상도 볼 수 있어서다. 그중 으뜸은 ‘용아맥’(CGV 용산 아이맥스)이다. ‘미션임파서블7’ 같은 블록버스터가 나오면 좌석은 순식간에 동나고 ‘당근’에선 2~3배 웃돈이 붙는다. 티켓값이 두 배 가까이 비싼데도 그렇다.지금 용아맥엔 아이유 콘서트가 걸려 있다. 콘서트 실황을, 그것도 1년 전에 찍은 걸 1주일째 틀고 있는데도, 용아맥은 올해 숙제를 33일치밖에 못 했다. 연말까지 남은 100여 일 중 40일을 한국 영화로 채워야 한다. 용아맥의 맞수인 ‘코돌비’(메가박스 코엑스 돌비시네마관)와 ‘월수플’(롯데월드타워 수퍼플렉스관
"극장 편성 담당자들은 가을을 별로 안좋아합니다. 연초부터 미뤄놨던 '숙제'를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풀어야 하거든요." 얼마전 만난 극장체인 관계자 A씨는 생각지도 못한 스크린쿼터 얘기를 꺼냈다. 스크린쿼터 때문에 4분기 편성이 엉망이 된다는 하소연이었다. 그 말에 머릿속은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찼다. '아니, 그 옛날 스크린쿼터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K콘텐츠를 전세계에 팔아치우는 대한민국이 정작 남의 나라 콘텐츠는 막는다고?' 매년 73일은 한국영화 걸어야 이게 다가 아니었다.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영화관이 아닌 각각의 스크린마다 걸어놓은 탓에 그 귀한 아이맥스(IMAX)관도 1년의 5분의1(73일)은 무조건 한국영화를 걸고 있다"는 대목에선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10여년 전 노부부의 사랑을 잔잔하게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아이맥스관에 걸렸던 비밀이 그제야 풀렸기 때문이다. 영화팬들에게 아이맥스는 '힙 플레이스'다. 일반 스크린보다 몇 배 클 뿐 아니라 '숨어있는 영상'도 볼 수 있어서다. 그중 으뜸은 '용아맥'(CGV 용산 아이맥스)이다. '미션임파서블7' 같은 블록버스터가 나오면 좌석은 순식간에 동나고 '당근'에선 2~3배 웃돈이 붙는다. 티켓값이 두배 가까이 비싼데도 그렇다. 용아맥에 지금 걸린 '영화'는 아이유 콘서트다. 1년전에 찍은 콘서트 영상을 일주일째 틀고 있는데도, 용아맥은 올해 숙제를 33일치 밖에 못했다. 연말까지 남은 100여일중 40일을 한국영화로 채워야 한다. 용아맥의 맞수인 '코돌비'(메가박스 코엑스 돌비시네마관)와 '월수플'(롯데월드타워 수퍼플렉스관)도 똑같은 처지다. 이러니 편성 담당자들의 머리가 복잡할 수 밖에. 자칫 스
얍 판 츠베덴이란 이름 들어보셨는지. ‘세계 3대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로열콘세르트헤바우(RCO)에서 17년간 악장으로 일한 특급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미국 최고 오케스트라인 뉴욕 필하모닉을 5년간 이끈 실력파 지휘자다. 평범했던 홍콩 필하모닉을 ‘올해의 오케스트라’(2019년 그라모폰 어워드)로 올려놓은 주인공이기도 하다.이런 사람이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 온다니,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이 붕 뜨지 않을 수 없었다. 보름 전 열린 공식 ‘한국 데뷔전’은 그의 진가를 보여주는 무대였다. “정명훈 이후 주춤했던 서울시향이 다시 날아오를 채비를 갖췄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서울시향 바꾼 츠베덴의 마법대체 츠베덴은 서울시향에 어떤 마술을 부린 걸까. 홍보실에 물었더니 “올 1월 기자간담회 기사를 읽어보라”고 했다. 이런 글이었다. “무대 위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철저한 준비는 필수다. 무대에서 90%의 실력을 발휘하려면 110%의 훈련이 필요하다.” 뻔하지만, 비밀은 강도 높은 연습이었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츠베덴의 별명은 ‘오케스트라 조련사’다.임헌정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칠순의 노(老)지휘자는 지난 5월 한경아르떼필하모닉과의 연주회 직전 이렇게 말했다. “영혼을 살찌운다는 점에서 예술도 음식이다. 먹는 거로 장난하면 안된다. 나는 ‘완벽한 연주를 갈망하지 않는 사람은 음악가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최선의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건 절대 봐줄 수 없다.”임헌정은 그렇게 한경아르떼필과 열두 차례 연습했다. 통상적인 연습량의 세 배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ld
얍 판 츠베덴이란 이름 들어보셨는지. 연주도 잘하고, 지휘도 잘하는, 이 바닥에서 손꼽히는 음악가다. '세계 3대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로열콘세르트헤바우(RCO)에서 17년 동안 악장으로 일한 특급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미국 최고 오케스트라인 뉴욕필 하모닉을 5년간 이끈 실력파 지휘자여서다. 평범했던 홍콩필하모닉을 '올해의 오케스트라'(2019년 그라모폰 어워드)로 올려놓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이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 온다니,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이 붕 뜨지 않을 수 없었다. 보름전 열린 츠베덴의 공식 '한국 데뷔전'은 그의 진가를 보여주는 무대였다. 스위치를 번갈아 누르듯 소리의 강약과 표현의 완급을 순식간에 바꾸는 츠베덴의 지휘에 청중들은 마음을 내줬다. "정명훈 이후 주춤했던 서울시향이 다시 날아오를 채비를 갖췄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서울시향 바꾼 츠베덴의 마법 대체 츠베덴은 서울시향에 어떤 마술을 부렸던걸까. 홍보실에 물었더니, "올 1월 기자간담회 기사를 읽어보라"는 답을 들려줬다. 이런 글이었다. “무대 위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철저한 준비는 필수다. 무대에서 90%의 실력을 발휘하려면 110%의 훈련이 필요하다.” 강도 높은 연습이 서울시향을 바꿔놨다는 얘기다. 그러고보니 그의 별명은 '오케스트라 조련사'다. 임헌정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칠순의 노(老) 지휘자는 지난 5월 한경아르떼필하모닉과의 연주회 직전 이렇게 말했다. "영혼을 살찌운다는 점에서 예술도 음식이다. 먹는걸로 장난하면 안된다. 나는 ‘완벽한 연주를 갈망하지 않는 사람은 음악가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최선의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건 절
나이 들어 재즈에 푹 빠진 친구 손에 이끌려 얼마 전 서울 한남동에 있는 재즈클럽을 찾았다. 평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술잔 기울이는 걸 좋아하는 터라 “시끄러운 라이브 음악은 싫다”고 버텼지만, 친구는 막무가내였다. 한번 경험해보면 다시는 싫다는 소리 하지 않을 거라면서.재즈클럽은 생각했던 것보다 아담했다. 연주자들의 표정 하나, 손놀림 하나 놓치지 않고 눈에 담을 수 있는 거리에 무대가 있었다. 입 다물고 연주만 들어야 하는 클래식 공연장과 달리 술과 밥을 놓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첫 만남에 이런 화음이…밴드는 5인조였다. ‘스캣’(목소리로 연주하듯 소리 내는 창법)이 일품인 여성 보컬과 웬만한 색소폰보다 풍성한 소리를 내는 하모니카가 앞에 섰고, 이 바닥 ‘고수’인 게 틀림없어 보이는 피아노와 드럼, 베이스가 둘을 에워쌌다.한 시간가량 이어진 연주 내내 다섯 사람은 한 몸처럼 움직였다. ‘얼마나 오랫동안 같이 연습해야 화음이 저렇게 착착 들어맞을까’란 생각이 안 들면 이상할 정도였다.이윽고 시작된 ‘솔로 타임’. 스포트라이트가 하모니카를 비추자 다른 악기는 뒤로 빠졌다. 주연이 빛나도록 리듬과 템포만 받쳐주는 조연이 된 것이다. 이렇게 드럼, 베이스, 피아노가 만들어준 여백 위에 하모니카는 멋진 그림을 그렸다. 피아노가 바통을 이어받자 하모니카는 뒤로 물러났다. 다섯 사람은 이런 식으로 한 시간 내내 합쳤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그 자연스러운 하모니에 몸을 맡기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곡이다.관객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던 보컬은 다른 연주자들을 소개하면서 “오늘
나이 들어 재즈에 푹 빠진 친구 손에 이끌려 얼마전 서울 한남동에 있는 재즈클럽에 찾았다. 평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술잔 기울이는 걸 좋아하는 터라 "시끄러운 라이브 음악은 싫다"고 버텼지만, 친구는 막무가내였다. 한번 경험해보면 다시는 싫다는 소리 안할거라면서. 재즈클럽은 생각했던 것보다 아담했다. 연주자들의 표정 하나, 손놀림 하나 놓치지 않고 눈에 담을 수 있는 거리에 무대가 있었다. 입 다물고 연주만 들어야 하는 클래식 공연장과 달리 술과 밥을 놓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첫 만남에 이런 화음이…밴드는 5인조였다. '스캣'(목소리로 연주하듯 소리내는 창법)이 일품인 여성 보컬과 웬만한 색소폰보다 풍성한 소리를 내는 하모니카가 앞에 섰고, 이 바닥 '고수'인 게 틀림없어 보이는 피아노와 드럼, 베이스가 둘을 에워쌌다. 한시간 가량 이어진 연주내내 다섯 사람은 한몸처럼 움직였다. '얼마나 오랫동안 같이 연습해야 화음이 저렇게 착착 들어맞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시작된 '솔로타임'. 스포트라이트가 하모니카를 비추자 다른 악기들은 뒤로 빠졌다. 주연이 빛나도록 리듬과 템포만 받쳐주는 조연이 된 것이다. 이렇게 드럼, 베이스, 피아노가 만들어준 여백 위에 하모니카는 멋진 그림을 그렸다. 피아노가 바통을 이어받자 하모니카는 뒤로 물러났다. 다섯 사람은 이런 식으로 한시간 내내 합쳤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그 자연스러운 하모니에 몸을 맡기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곡이다. 관객들에게 감사인사를 건네던 보컬은 다른 연주자들을 소개하면서 "오늘 처음 합을 맞춘 사이"라고 했다. 깜짝 놀랐다. 합주라는 게 아무런 연습도 없
신문 만드는 게 직업인지라 책상에 놓인 따끈따끈한 조간신문을 훑어보는 것으로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 차곡차곡 놓인 ‘두툼’한 신문들 사이로 ‘얇은’ 주황색 신문이 하나 끼어 있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함께 세계 최고 경제지로 꼽히는 신문이다. FT를 구독한 건 1년여 전 문화부를 맡은 직후부터다. “경제신문 문화면을 만들 때 참고할 만하다”는 조언에 정작 경제 관련 부서에서 일할 때는 곁눈질로만 봤던 FT를 문화부에 와서야 읽게 됐다. 문화면에 힘주는 FT가장 인상적인 건 ‘선택과 집중’이다. FT(아시아판 기준)는 18~20면밖에 안 된다. 한국 주요 신문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나마 전면 광고와 시장 지표 등이 담긴 ‘마켓 데이터’를 뺀 뉴스 페이지는 14~15면뿐이다. 이 작은 지면에 영국을 넘어 전 세계 정치·경제·산업 뉴스를 실어야 하니 선택과 집중 외엔 답이 없다.그래서 의외인 게 문화면의 ‘존재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때도, 그 나라 왕(엘리자베스 2세)이 서거했을 때도 문화면은 언제나 ‘선택’됐다. FT는 1주일에 두 개 정도 발행하는 섹션 중 하나를 문화예술에 내줄 정도로 문화 뉴스에 ‘집중’한다. FT 독자에게 문화 뉴스가 경제 뉴스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큰 사건이 터지면 문화면을 쪼그라뜨리는 한국 언론과는 영 다른 모습이다.쓰는 대상도, 쓰는 방식도 한국과는 딴판이다. 일단 클래식 미술 책 등 순수문화 위주다. 대중문화는 잘 다루지 않는다. 기사 형식은 대부분 리뷰다. ‘이런저런 공연이 열린다’는 예고 기사나 &lsq
손에 쥔 권한을 내려놓는다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기업을 쩔쩔매게 하는 규제 권한을 가진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권한이 해당 조직의 ‘존재의 이유’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이런 ‘보기 드문’ 일이 최근 있었다. 주인공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하나하나 살펴본 뒤 ‘청소년 관람불가’ 등의 판정을 내리는 조직이다. “영등위 결정에 따라 관객 몇백만 명이 들고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곳이다.이런 영등위가 얼마 전 “OTT 콘텐츠를 사전 심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OTT업체가 스스로 등급을 매기고, 영등위는 사후 심사·제재하는 법을 제정해 다음달부터 시행하기로 한 것. ‘두 팔’(영화와 OTT) 중 하나를 자른다는 얘기였다. OTT 심의권 내려놓은 영등위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2016년 넷플릭스를 시작으로 디즈니플러스 티빙 웨이브 등이 뛰어들면서 관련 콘텐츠가 홍수처럼 쏟아졌기 때문이다. 2015년 4339건이었던 등급 분류 건수는 2021년 1만6167건으로 6년 만에 3.7배 불었다. 2주 안에 끝나던 심의가 1개월까지 늘어나니, 곳곳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심의할 건덕지도 없는 BTS 콘서트 영상을 공연 다음 날 영등위에 제출해도 ‘트래픽 잼’ 탓에 몇 날 며칠을 기다려야 하니, 목놓아 기다리던 팬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속이 타들어가긴 OTT업체도 마찬가지였다. 사전심의 때문에 방영 타이밍을 놓치는 콘텐츠가 속출해서다. 영국 왕실의 비밀을 폭로한 해리 왕자 부부의 인터뷰가 담긴 다큐멘터리 ‘해리와 메건’이 그랬다. 작년 12월 8일 넷
얼마 전 만난 윤호진 에이콤 예술감독의 얼굴에는 걱정이 한가득했다. 100만 관객을 끌어모은 ‘명성황후’와 ‘영웅’을 만든 ‘한국 뮤지컬의 대부’, 그 사람 맞다.무슨 고민이 그리 많은지 물었다. 명성과 위상에 걸맞게 ‘한국 뮤지컬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 같은 거대 담론을 쏟아낼 줄 알았다. 하지만 윤 감독의 입에서 나온 건 뮤지컬업계가 매일 맞닥뜨리는 ‘현실’이었다. “배우들이 하루아침에 춤과 노래를 익힐 수 없잖아요. 최소 두 달은 연습해야 하는데 장소가 없어요. 오죽하면 대학입시용 체육관을 빌리겠습니까.”이게 무슨 소리인가. 한국에서 첫째가는 기획사가 체육관에서 연습한다니. 윤 감독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동안 다들 서울시 산하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남산창작센터를 빌려 썼습니다. 넓고 깨끗한데 임차료도 싸니 선물 같은 공간이었죠. 코로나19 이전 얘기지만요.” 연습장 찾아 삼만리코로나19는 관객도, 연습장도 앗아갔다. 그러자 서울시는 2020년 12월 남산센터 문을 닫고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공사가 끝나면 이 공간은 영상 전용 스튜디오로 용도가 변경된다.윤 감독의 ‘연습장 찾아 삼만리’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작년 말 ‘영웅’을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에 올리기 전에 연습하던 장소가 경기 하남에 있는 체육관이었다. 음향도 별로고, 접근성도 떨어지고, 임차료도 남산센터보다 몇 배 비싸지만 윤 감독은 안도했단다. ‘이런 체육관이라도 없었다면 큰 소리로 노래해야 하는 뮤지컬 특성상 산에 들어가야 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서다.윤 감독은 “연말에 새 작품을 올리는데, 그때
월드컵 개막식을 시청한 건 2002년 한·일 월드컵 후 처음이었다. 월드컵 공식 음악을 BTS 멤버 정국이 부른다는 소식에 TV 앞에 앉았다.그 나라 예술 실력을 전 세계에 뽐낼 절호의 기회를 왜 한국 가수에게 넘겼는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궁금증은 곧 풀렸다. 조용했던 스타디움은 정국의 등장과 함께 환호로 뒤덮였다. 세계인의 눈과 귀를 카타르로 돌려세우는 데(그것도 호의적으로), 이만한 카드가 없다는 걸 카타르는 꿰뚫어 본 것 같다. 대중문화는 '글로벌 톱' 됐지만…뿌듯했다. K팝의 위상이야 알고 있었지만, 남의 나라 월드컵을 접수할 정도인지는 몰랐다. 카타르 현지를 취재한 기자는 “BTS와 오징어게임 덕분에 어디를 가든 대접받았다”고 했다. 그렇다. 대한민국을 ‘매력 국가’로 일으켜 세운 일등 공신은 단연 대중문화다. 멋들어진 춤과 노래에 재미있는 스토리가 더해진 K콘텐츠에 세계는 흠뻑 빠져들었다.이 정도면 대한민국 앞에 ‘문화강국’이란 수식어를 써도 되지 않을까. 요 며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물었다. 의외였다. 다들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는데, 가로젓는 사람이 더 많았다. 순수예술이 약하다는 게 이유였다. 클래식 음악, 미술, 문학 등 ‘뿌리’(순수예술)가 약해 ‘열매’(대중문화)는 언제든 시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IT(정보기술)·반도체 강국’이지만 기초과학이 약한 탓에 ‘과학 강국’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똑같다는 얘기였다. 듣고 보니 그랬다. 대중문화에서 거둔 성과와 비교할 때 순수예술 성적표는 초라하다. 뛰어난 예술인이 더러 나왔지만, 오랜 세월 검증받은 &ls
20년도 더 된 얘기다. ‘숨은 신의 직장’으로 꼽히는 공기업에 들어간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다가 이런 얘기를 들었다. “고민이야. 여기선 다들 하루에 끝낼 수 있는 일을 이틀에 나눠 처리하거든. 편하긴 한데, 경쟁력이 떨어질까봐 걱정이지 뭐. 더 늦기 전에 ‘빡센’ 민간 기업으로 옮겨야 하는 건지….”친구는 회사에 남는 걸 선택했다. 이 결정으로 그의 경쟁력이 얼마나 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시간 부자’ 칭호는 지킬 수 있었다. 그런 그를 만날 때마다 ‘저렇게 널널한 공기업을 정부는 왜 내버려두나’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피 말리는 실적 압박과 성과에 따른 보상 시스템이 없는 공공기관에서 방만경영과 복지부동은 태생적 한계니까. '가동률 96%' 마포아트홀그렇게 오랫동안 굳어진 공공기관에 대한 선입견을 최근 바꿀 일이 있었다. 서울 마포구 산하 마포문화재단의 올해 공연 리스트를 둘러보고서다. 살림살이도 넉넉하지 않은 ‘동네 재단’이 주민이 좋아할 만한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이렇게 애쓰리라곤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먼저 양(量). 이 재단이 다음달까지 여는 ‘M클래식 축제’에는 클래식 재즈 가요 등 27개 공연이 오른다. 한국 대표 음악 축제인 평창대관령음악축제(22회)보다도 많다. 질(質)도 높다.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와 지난해 세계적 권위의 부조니 콩쿠르를 제패한 피아니스트 박재홍, 그래미상을 받은 ‘클래식 기타의 거장’ 데이비드 러셀 등을 모셨다.출연자 명단을 앞으로 돌려 보니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김선욱(5월)과 선우예권(7월)
“손 좀 볼 수 있을까요?”한 달여 전 ‘국내 최강 여자골퍼’ 박민지 선수를 취재차 만났을 때 불현듯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의 발 사진이 떠올랐다. 그가 ‘발레의 전설’이 된 이유를 설명해주는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발’ 사진 말이다. 작년(6승)에 이어 올해(3승)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최다승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세’ 골퍼의 손도 강 단장의 발과 비슷하지 않을까란 궁금증에 실례일 수 있는 요청을 던졌다.잠깐 머뭇거리던 박 선수가 왼손을 내밀었다.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굳은살은 손가락 마디마디는 물론 손바닥에도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하얬다. 장갑을 왼손에만 끼기 때문이다. 햇빛에 까맣게 그을린 오른손은 남의 손인 듯했다. 굳은살 가득한 박민지의 손그 왼손엔 박 선수의 지난 10여 년이 담겨 있었다. 그는 골프채를 처음 잡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밥 먹는 시간 빼곤 연습만 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한국체대 축구 전공 대학생들과 똑같이 매일 10㎞ 넘게 뛰었고, 중학교 1학년 때는 9홀짜리 파3 골프장을 하루 일곱 번씩 돌았단다. 한 언론 인터뷰에선 “‘연습-밥-연습’으로 이어지는 단조로운 일상을 365일 반복하다보니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중학교 때 기억 나는 사건이 한 개도 없더라”고 했다.지독했던 훈련은 박 선수에게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스윙’과 한여름 땡볕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을 선사했다. 이 덕분에 그는 고등학생 때 국가대표가 됐고, 프로로 전향한 뒤엔 KLPGA를 평정했다. 그러자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다시 업계의
33년 전 이맘때로 기억한다. 짝사랑했던 미국 여가수 티파니가 한국에 온다는데, 안 갈 수가 없었다. 시험 기간이란 점도, 공연장이 저 멀리 안양공설운동장이란 점도, 티켓을 사려면 몇 달 치 용돈을 털어야 한다는 점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티파니를 ‘직관(직접 관람)’할 수 있다면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돌이켜보면 당시 고등학교에 다녔던 기자가 속한 무리에서 한국 음악을 듣는 친구들은 ‘촌놈’ 취급을 당했다. 그래서 더 팝송을 찾았던 것 같다.영화는 할리우드 아니면 홍콩이었다. ‘영웅본색’ ‘천장지구’ 등 홍콩 영화의 인기는 ‘탑건’이나 ‘터미네이터2’에 못지않았다. 장국영이나 주윤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친구들과의 대화에 낄 수 없었다. ‘드래곤볼’ ‘북두신권’ 등 일본 만화도 마찬가지였다. K콘텐츠의 숨은 주역은 기업그 당시 한국 대중문화의 주인공은 한국이 아니었다. 우리에겐 홍콩처럼 스토리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솜씨도 없었고, 미국처럼 리드미컬한 멜로디를 만들어낼 실력도 없었다. 조용필 임권택 허영만 등 실력자는 그때도 있었지만, 이런 ‘구슬’들을 꿰어 ‘보배’로 만들어줄 곳이 없었다.그런데 30년 만에 세상이 바뀌었다. 그 많던 홍콩 영화는 다 사라졌고, 빈자리는 한국 영화가 채웠다. 전 세계가 방탄소년단(BTS)과 소통하기 위해 한국말을 배우고, 네이버웹툰은 ‘만화왕국’ 일본을 폭격하고 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천재 아티스트’들이 지난 30년 동안 집중적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정부가 만사 다 제치고 문화산업만 육성한 것도 아닌데…. 힌
“하드웨어만 놓고 보면 오히려 한국 명문 골프장이 한 수 위인 것 같던데요.” 한 달 전 세계 최대 골프 축제인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현장 취재한 조희찬 기자에게 “오거스타내셔널GC는 대체 얼마나 좋으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뜻밖이었다. ‘프로 골퍼들이 가장 우승하고 싶어 하는 대회’의 무대이자 전 세계 아마추어들의 버킷리스트에 있는 ‘꿈의 구장’이 한국 골프장만도 못하다니…. 이어지는 조 기자의 설명. “미국 기자들도 그러더군요. 오거스타GC보다 좋은 골프장은 수두룩하다고. 화면이 아니라 두 눈으로 오거스타GC의 민낯을 보니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알겠더라고요.” 분뇨 냄새나는 오거스타조 기자는 이런 근거를 댔다. 방송 카메라가 없는 홀과 홀 사이는 진흙으로 질척였고, 일부 홀에선 분뇨 냄새가 진동했단다. TV 화면을 초록색으로 채우려고 주변 자갈까지 도색하는가 하면, ‘숲속의 승부’를 연출하기 위해 미리 녹음한 새 소리를 방송에 튼다고 했다. 클럽하우스는 소박하다 못해 옹색했다고. ‘유리판 그린’을 빼면 감탄사가 나올 만한 대목이 많지 않았다고 했다.그래서 든 의문. “그럼 대체 어떤 소프트웨어를 썼길래 이 정도 하드웨어를 갖춘 골프장이 세계 최고가 됐을까.” 골프업계 관계자들이 내놓은 답변은 대체로 비슷했다. 타이거 우즈, 잭 니클라우스 등 역대 최고 골퍼들의 숨결이 깃든 골프장이란 ‘스토리’와 당장의 돈벌이를 위해 골프 팬을 팔지 않는다는 ‘신뢰’가 오거스타GC를 명품 브랜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이런 얘기다. 1934년 제1회 마스터스 대회를 열 때
신라젠, 경남제약, 디엑스앤브이에스(옛 캔서롭), 오스템임플란트, 큐리언트…. 이들 회사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체란 점, 주식거래가 정지됐다는 점, 상장폐지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이다. 신라젠과 경남제약, 디엑스앤브이에스는 최근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회로부터 6개월과 1년의 개선기간을 부여받았고, 오스템임플란트와 큐리언트는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를 받을 예정이다.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 조달은 바이오기업의 숙명과도 같다. 신약 개발 등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을 IPO 없이 자체적으로 확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바이오 기업이 상장에 공을 들인다. 하지만 증시에 이름을 올렸다고 모든 바이오 기업이 순항할 수는 없을 터. 일부는 누적된 적자로, 다른 일부는 횡령이나 감사의견 거절 등으로 상장사 타이틀을 강제로 떼어내게 된다. 바이오 업종은 기술성장기업 특례로 상장한 회사가 많은데다 다른 업종에 비해 실적 변동성도 큰 만큼 재무 담당자라면 미리 상장폐지 요건을 숙지해놓는 게 좋다. 장기 영업손실, 매출액 30억 미만도 상장폐지 사유올 들어 2월 20일까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내부결산시점 관리종목 지정 또는 상장폐지 사유 발생’이란 제목으로 공시를 낸 코스닥 상장사는 모두 19개였다. 장기간 영업손실, 사업 연도말 또는 반기말 자본잠식률 50%, 최근 3년간 2회 이상 자기자본 50% 초과 세전손실, 매출액 30억 미만 등 재무요건으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회사들이다.이런 회사들은 외부감사 결과 다른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상장폐지가 확정된다. 코스닥시장 상장폐지 요건의
국내 프로바이오틱스 업체 가운데 자체 생산시설을 둔 곳은 많지 않다. 콜마BNH, 코스맥스바이오 등 제조 전문업체에 맡기면 원하는 제품을 곧바로 받아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수요가 줄어들면 ‘목돈’을 들인 생산시설을 놀릴 수 있는 만큼 외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다.하지만 종근당건강은 정반대 길을 택했다. 프로바이오틱스 시장이 제대로 열리지도 않았던 2013년부터 자체 생산시설을 갖춘 데 이어 2020년에는 새 공장을 짓기 위해 130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첫 삽을 뜬 지 1년10개월 만인 23일 신(新)공장 준공식을 열었다.충남 당진시 합덕읍에 들어선 신공장은 연면적 4만1119㎡(약 1만2500평)로 국내 건강기능식품 공장 중 가장 크다. 신공장이 가동되면 그동안 콜마BNH에 일부 맡겼던 ‘락토핏’ 생산물량도 갖고 올 계획이다.종근당건강은 2016년 락토핏을 선보일 때부터 자체 생산을 했지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자 어쩔 수 없이 2019년부터 상당수 물량을 콜마BNH로 돌렸다. 출시 첫해 180억원 정도였던 락토핏 매출은 지난해 3000억원에 육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업계에선 락토핏이 ‘100% 자체 생산’으로 전환되면 시장점유율이 한층 더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생산비 절감으로 추가 인하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종근당건강은 ‘규모의 경제’를 감안해 현재 락토핏 가격을 경쟁 브랜드보다 20%가량 낮게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종근당건강은 당진 신공장에 국내 최대 유산균 전용 생산라인뿐 아니라 최첨단 연질캡슐 제조라인과 홍삼 등 액상제품 자동화 생산라인도 들였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생산예측 시스템과 자동창고 시스템도 갖췄다. 종근당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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