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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라
    김보라 문화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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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은 생각을 바꾸고, 글은 세상을 바꿉니다.

  • 정몽구재단, 기업가 육성 프로젝트 출범

    현대차 정몽구재단이 사회적 난제를 해결할 기업가를 육성하기 위해 ‘현대차 정몽구 안트러프러너십’ 프로젝트를 가동한다고 1일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에 재단이 운영해온 다양한 창업지원 사업을 통합 개편한 것이다. 향후 5년간 250억원을 투입해 임팩트형 및 기업가형 연구자 400명을 육성하고 일자리 3400개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프로젝트는 ‘CMK 임팩트프러너’와 ‘CMK 그린 소사이어티’로 구성된다. CMK 임팩트프러너는 혁신적 비즈니스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가를 육성하는 사업이다. 법인 설립 3년 미만 초기 트랙, 7년 미만 성장 트랙까지 단계별로 맞춤 지원하는 기존 ‘H-온드림 스타트업 그라운드’에서 사업명을 바꾸고 청소년 창업캠프·대학생 대상 예비창업 트랙·중장년 시니어 트랙을 신설했다.CMK 그린 소사이어티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기업가형 연구자를 육성하는 사업이다. 연구실의 기후 테크가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5년간 120억원을 투입해 연구자 45명을 육성한다. 정무성 재단 이사장은 “조직의 외형적 성장보다 혁신을 이끄는 사람 본연의 역량 강화에 지원의 방점을 뒀다”며 “창업가들이 사회 난제를 해결하는 체인지메이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평생 펠로십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김보라 기자

    2026.04.01 17:24
  • BTS, 왕의 귀환

    3월 21일 오후 8시 서울 광화문광장. 이곳은 대한민국 역사의 현장을 넘어 지구촌 최대 ‘빛의 광장’이 된다. 방탄소년단(BTS)이 경복궁이라는 민족의 성소(聖所)를 무대 삼아 선보일 컴백 공연이자 새 앨범의 이름은 ‘아리랑(ARIRANG)’. K팝 왕좌의 귀환을 넘어 지난 13년간 그들이 걸어온 ‘정신적 순례’가 완성되는 역사적 순간이 다가온다.우리는 기억한다. 10년 전, 앨범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던 소년들을. 서구적 자아의 상징이자 깨뜨려야 할 구속과 방황의 껍데기인 ‘데미안의 알’을 깨고 나온 7명의 완전체는 온 우주에 찬란한 빛을 뿌리며 이날 다시 태어난다.BTS의 성공은 결코 매끈하게 다듬어진 ‘완성형 아이돌’의 모습에 있지 않다. 사랑과 자아, 내면의 어둠과 성공 뒤에 있는 불안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아미(ARMY)와 함께 성장해 온 ‘불완전한 청춘’의 서사가 언어와 국경을 초월했다. 3000만 명이 넘는 ‘아미’들은 BTS 멤버들과 환희와 불안, 고통의 순간까지 서로를 지키며 함께 걸었다. BTS가 곧 아미요, 아미가 곧 BTS인 전대미문의 팬덤을 만들어냈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위로가 되는지를 BTS와 아미는 스스로 증명했다.3년9개월 만에 군 복무를 모두 마치고 돌아온 BTS가 선택한 건 왜 ‘아리랑’이었을까. 이별과 그리움, 불굴의 생명력을 담은 아리랑은 월드 스타가 된 BTS가 한국, 한국인이라는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겠다는 강력한 귀환의 메시지다. 600년 넘게 이어져 온 우리 소리의 원형이자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아리랑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민족의 한과 흥

    2026.03.19 17:59
  • 수미찬가…40년간의 앙코르

    1983년 3월 28일 새벽 3시.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한 스물한 살 조수미는 차가운 공항 의자에 앉아 노트에 다섯 가지 다짐을 썼다. ‘어떤 고난도 꿋꿋이 이겨내며 약해지거나 울지 않을 것, 늘 도도하고 자신만만할 것, 어학과 노래에 온통 치중할 것, 항상 깨끗하고 자신에게 만족한 몸가짐과 환경을 지닐 것, 말과 사람을 조심하고 말과 행동을 분명히 할 것.’신이 허락한 악기, 자신의 목소리를 믿고 써내려간 이 약속은 스스로를 향한 엄숙한 기도와도 같았다. 이후 조수미는 40년간 쉼 없이 갈고닦았다. 서울대 수석 입학 후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단숨에 두각을 나타냈다. 1986년 베르디 ‘리골레토’에서 질다 역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당대 최고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으로부터 “신이 내린 목소리,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재”라는 극찬을 받으며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했다.조수미의 위대함은 자신의 목소리를 지켜낸 영리한 선택에 있다. 카라얀이 제안한 ‘노르마’와 솔티의 ‘투란도트’ 같은 중량감 있는 배역을 “목소리가 상할 수 있고, 내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중히 거절한 게 그 예다. 자신을 ‘제3의 눈’으로 냉정하게 바라보며 ‘독이 든 성배’를 마시지 않았다. 40년 넘는 긴 세월 최정상의 기량을 유지한 비결이다.세계 오페라 무대를 누비는 프리마돈나의 마음은 극장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크로스오버 앨범과 드라마 OST, 월드컵 공식 음악 등을 넘나들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국가적 행사에는 주요 공연을 연기하고 달려온 게 수차례. “나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2026.03.05 17:26
  • "무대체질? 드레스 안에 구부러진 못이 잔뜩인걸요" [40주년 조수미의 고백]#2

    [40주년 조수미의 고백 #1] ▶▶▶ "브라질 빈민촌에서의 하룻밤, 죄책감이 나를 바꿨다"나는 영원히 빛을 내는 사람조수미는 아티스트를 “끊임없이 빛을 내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옛날에는 그 빛이 활활 타올랐다면, 지금은 은은하게 타고 있다고. 세상은 결코 혼자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걸 조수미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빛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 성냥처럼 불을 탁, 켜주는 역할도 마다 않는다. 그는 인터뷰 중 “아티스트가 완벽하려면 한없이 겸손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수많은 무대에서 불을 밝히며 깨달은 삶의 진리다.▷무대 뒤에서 힘든 순간도 많았을 테죠.아티스트에겐 먹는 것, 자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웃음) 집 떠나면 고생인데, 호텔 방을 집처럼 생각하고 살아야 하니까요. 매일이 고생이랄까요. 근데 성격 하나는 되게 잘 태어난 것 같아요. 낙천적이어서 웬만해선 포기하지 않는 스타일이고, 욕심도 많아서 어릴 때부터 지는 걸 엄청 싫어했어요. 초창기에 유럽에 공연하러 가면 조그마한 동양인 여자가 걸어 다닐 때마다 ‘웬 예쁜 강아지가 걷는 것’처럼 여기더라고요. 그런 시선 때문에 더 정신력을 완벽하게 무장하고 다녔죠. 무엇보다 나의 재능을 믿었어요. ‘난 재능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연습만 잘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두려운 것도 없었어요. 나는 너무 잘하고, 게다가 열심히 하기 때문에 ‘잘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했어요.▷성공 가도만 달린 건 아니었잖아요.대수롭지 않았어요. 만약 콩쿠르에서 2등 하면? 물론 억울하죠. 그래도 오케스트라에 가서 고맙다고 꼭 얘기했어요. 캐스팅도 그래요.

    2026.03.04 14:57
  • "브라질 빈민촌에서의 하룻밤, 죄책감이 나를 바꿨다" [40주년 조수미의 고백 #1]

    무대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작은 무대일수록 누군가에게 ‘인생 공연’이 될 확률이 높죠. 그래서 각별해요. 엄마가 항상 하시던 말이 있어요. “수경아, 큰 무대든 작은 무대든 다 똑같아. 왜냐면, 네가 거기 있으니까.”신이 허락한 악기, 조수미는 신이 준 목소리를 40년간 쉼 없이 갈고닦았다. 바람조차 숨죽이게 하는 청아한 고음으로 수많은 이를 울리던 기적의 시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노력은 재능을 이길 수 없다”는 잔인한 말이 진리로 여겨지는 성악의 영역에서, 역설적으로 그 귀한 재능을 지키기 위해 절제와 고독을 친구 삼아온 프리마돈나의 나지막한 고백을 들었다.조수미에겐 집이 없다. 아니다. 그에겐 어디든 집이다. 무대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집이 됐다. 혈혈단신 이탈리아로 떠난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원조 노마드’의 삶을 지탱하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 거기엔 노래가 있었고, 신념이 있었다. 그리고 작은 체구의 아시아 여성이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재능과 이를 낭비하지 않으려는 열정까지.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혹독한 시기에조차 그의 눈은 타인, 나아가 국가와 인류에게로 향했다.데뷔 40주년 기념 앨범 녹음을 위해 지난 1월 말 서울에 온 조수미는 바쁜 일정을 쪼개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를 찾았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곳이 나의 집”이라고 말하는 그는 요즘 포르투갈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평생 나의 집은 한국이다”라며 미소 지었다. ▷올해 데뷔 40주년입니다. 소감이 궁금합니다.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 그 속도에 깜짝 놀라곤 해요. 너무 빨라서요. 지난 10년간 얼마나 많은 것을 이

    2026.03.04 14:56
  • 230년전 왕실의 보석…찬란한 빛에 매혹되다

    230여 년 전, 프랑스혁명의 거친 물결 속에 왕실 보석이 자취를 감췄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보석 약탈 사건으로 기록된 1792년 9월의 이 사건은 파리 콩코르드광장 옆, 지금의 오텔드라마린에서 벌어졌다. 그로부터 두 세기 넘게 흐른 지금, 왕실 보물창고이던 그 자리에 보석들이 돌아왔다.카타르 왕실의 알 타니 컬렉션과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V&A)이 공동 기획한 ‘왕가의 보석들(Dynastic Jewels): 권력, 명성 그리고 열정 (1700~1950)’ 전시 이야기다. 이번 전시는 역사적 보석들이 어떻게 권력의 상징이 됐는지, 신흥 부호들이 보석을 통해 어떤 명성을 얻고자 했는지 그리고 왕실의 사적인 사랑이 어떻게 보석에 박제됐는지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역사는 또 한번 되풀이됐다. 애초 전시의 핵심이던 외제니 황후의 진주 티아라 등 석 점은 작년 루브르박물관 도난 사건으로 인해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140여 점의 보석이 모인 이번 전시는 영국 왕실 컬렉션, 루브르, 까르띠에·쇼메·멜레리오·반클리프아펠의 헤리티지 컬렉션에서 대여한 작품으로 이뤄졌다. V&A와 알 타니 컬렉션 소장품 대부분은 파리에서 처음 선보인 것이다.인간은 왜 이토록 작고 단단한 광채에 자신의 영혼과 역사를 투영해 왔을까. ‘소장품이 된 보석’은 누군가의 권력이었고, 때론 간절한 사랑의 증표였고, 어쩌면 생존을 위한 마지막 자산이었을지도 모른다. 수백 년의 풍파 속에서 주인은 바뀌고 왕조는 몰락했을지언정, 그 찬연한 빛만은 박제된 채 살아남아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오늘날 우리가 보석을 탐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 희소성 때문이 아니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무한한 시

    2026.02.26 17:01
  • 수만 번 붓질, 행위만 남다…김홍주의 '무제'

    이 꽃과 선은 무슨 의미일까. 그림을 마주하면서 우리가 본능적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원로 화가 김홍주는 담담하고 집요하게 말한다. “거기에 철학이나 메시지는 없다”고. 의미를 강요받는 시대, 아무것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김홍주의 50년 예술 여정을 따라가봤다.◇‘꽃의 화가’ 50년 여정김홍주(83) 화백은 꽃잎을 그리는 작가다. 세필로 점과 색을 쌓아올린 그의 그림은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사뭇 다르다. 작가가 세필 노동에 들인 시간이 길어서일까. 보는 이도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꽃의 화가’, ‘세필화가’로 알려진 그이지만, 사실 그의 젊은 시절은 실험미술에 가까웠다. 서울 대치동 S2A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홍주 개인전 <김홍주: 표면에 남다>에서는 17점의 작품을 통해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림 세계가 한 눈에 펼쳐진다.김홍주 화백의 그림이 전시될 때 가장 낯선 것이 하나 있다. 프레임이 없다. 작업할 때도 캔버스를 팽팽하게 지지해주는 스트레처(나무틀)를 거부하고 바탕 처리가 되지 않은 천 위에 직접 붓을 댄다. 고정되지 않은 캔버스 위를 지나간 세필의 흔적들은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무제’라는 제목을 단 그의 작품들은 지독한 노동의 결과다. 멀리서 보면 풍경이나 꽃처럼 보이는 형상은 한 걸음 다가갈수록 무수한 선의 집합체로 해체되고 다시 만난다. 얇은 천 위에 겹겹이 쌓아 올린 수만 번의 붓질, 단순히 대상을 정교하게 만들기 위한 세필이 아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수천수만 번 반복하는 과정에서 자아는 사라지고 오직 행위만 남는다

    2026.02.24 17:59
  • 얇디 얇은 붓끝으로…캔버스라는 대지에 김홍주가 남긴 것들

    이 꽃과 선은 무슨 의미일까. 그림을 마주하면서 우리가 본능적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원로 화가 김홍주는 담담하고 집요하게 말한다. “거기에 철학이나 메시지는 없다”고. 의미를 강요받는 시대, 아무것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김홍주의 50년 예술 여정을 따라가봤다. 김홍주(83) 화백은 꽃잎을 그리는 작가다. 세필로 점과 색을 쌓아올린 그의 그림은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사뭇 다르다. 작가가 세필 노동에 들인 시간이 길어서일까. 보는 이도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꽃의 화가’, ‘세필화가’로 알려진 그이지만, 사실 그의 젊은 시절은 실험미술에 가까웠다. 서울 대치동 S2A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홍주 개인전 <김홍주: 표면에 남다>에서는 17점의 작품을 통해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림 세계가 한 눈에 펼쳐진다. 김홍주 화백의 그림이 전시될 때 가장 낯선 것이 하나 있다. 프레임이 없다. 작업할 때도 캔버스를 팽팽하게 지지해주는 스트레처(나무틀)를 거부하고 바탕 처리가 되지 않은 천 위에 직접 붓을 댄다. 고정되지 않은 캔버스 

    2026.02.19 15:39
  • 물질과 에너지의 디테일…양자역학에 빠진 서도호

    ‘당신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한국 현대미술의 중추인 서도호 작가가 30년 넘게 던져온 질문이다. 어느 시기, 누구와 함께, 어떤 시절을 통과했느냐에 따라 ‘그 집’의 의미는 달라진다. 집은 정체성의 근원이자 기억의 저장소다.지난해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장장 6개월간 이어진 대규모 개인전 ‘제네시스 익스비션-서도호: 워크 더 하우스(Walk the House)’를 마친 서 작가를 그의 집 인근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올해 8월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런던 북동부 이즐링턴의 조용한 주택가. ‘DO HO Limited’라고 쓰여 있는 문을 열자 그의 스튜디오가 나타났다. 한 방엔 사람 뒤에 또 사람, 그 사람 뒤에 또 사람이 이어지는 드로잉이 벽면 가득하다. 또 다른 방에는 색색의 실과 재봉틀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테이트모던의 서도호 개인전은 여러 기록을 남겼다. 도록은 품절 사태가 벌어져 세 차례 더 찍었고, 1만2000부 이상 판매됐다. 2025년 5월 1일 시작해 10월 19일 끝나기로 한 전시 기간도 1주일 연장됐다. 이 전시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관람자들의 태도. 체류 시간이 다른 전시에 비해 압도적으로 길었다. 40분이 넘는 영상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관람객, 한번 지나갔던 동선을 거꾸로 다시 걷거나 여러 번 다른 동선으로 이동하는 사람들까지…. 서 작가도 그런 모습에 조금 놀랐다고 했다.▷런던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마무리한 소감이 어떤가요.“미국과 아시아 곳곳에서 전시를 많이 했지만, 런던 전시는 조금 특별했습니다. 가족들이 쉽게 갈 수 있었기 때문이죠. 두 딸은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아빠가 런던의 미

    2026.01.22 17:25
  • '전설의 기록광' 데이비드 보위의 9만 점, 왜 V&A 수장고로 향했나

    1851년 영국 런던의 하이드파크에 철골과 유리로 된 거대한 크리스탈 궁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 공의 주도로 인류 최초의 박람회인 만국박람회(The Great Exhibition)가 이곳에서 열렸다. 목표는 분명했다. 박람회의 수익금으로 예술과 산업을 결합한 박물관을 세우고자 한 것. 단순히 귀족의 수집품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들과 제조업 종사자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 영국의 디자인 수준을 높이겠다”는 뜻이 확고했다. ‘모두를 위한’ 실용적이고 교육적인 목적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빅토리아앤앨버트(V&A) 뮤지엄의 개관으로 현실이 됐다. 170년 넘게 세계 최고 공예박물관으로 자리 잡게 한 위대한 유산이다.  그 유산은 ‘최초’의 역사를 여러 번 쓰게 했다. V&A는 세계 최초의 박물관 카페가 1868년 문을 열어, 누구나 편히 박물관을 찾아 쉬거나 대화할 수 있게 됐다. 세계 최초로 가스등을 박물관에 설치, 야간 개장을 시작해 낮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퇴근 후에도 박물관을 찾아올 수 있도록 개방했다. 전 세계 거대한 건축물이나 조각을 볼&n

    2026.01.21 14:12
  • 미식 외교관 떴다…한식에 꽃힌 파리

    라면 수출액이 11년 연속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고, 구글 레시피 검색에서 ‘비빔밥’이 1위에 오르는 요즘. 할리우드 셀럽인 귀네스 팰트로가 집에서 김치를 담그는 영상조차 낯설지 않다. 미국 뉴욕을 열광시킨 기사식당, 한국식 치킨 열풍, 유네스코가 인정한 ‘장 담그기 문화’까지 우리의 음식 문화가 세계에 번져가고 있다. 여기서 질문. 이런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한국의 음식이 ‘미식 문화’로서 뿌리내릴 수 있을까.일본의 스시가 1980년대 경제 전성기와 맞물려 정부 주도의 국가 전략으로 서구 엘리트층을 중심으로 번져 나갔다면 한식은 전혀 다른 방식의 길을 걷고 있다. 애초에 드라마와 영화, SNS를 타고 아래에서 위로 확산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놀이’와 ‘트렌드’로 소비되고 있는 한식을 미식의 경지로 끌어올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미식의 수도이자 파인 다이닝의 정점에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 우리의 맛을 알리고 있는 셰프들을 만났다.서울 합정동의 작은 가게에서 시작한 돼지곰탕 ‘옥동식’은 미국 뉴욕, 로스앤젤레스, 일본 도쿄에 이어 올겨울 파리 중심부에 입성했다. 맑은 국물의 돼지곰탕 한 그릇을 먹기 위해 파리지앵들이 한겨울 긴 줄을 서는 풍경이 매일 펼쳐진다. 미식의 영역을 경험 디자인으로 끌어올린 프랑스의 다이닝 ‘발보스테’는 명품 브랜드들이 줄 서는 혁신의 아이콘이 됐다. 이를 이끄는 한국인 여성준 셰프는 우리의 식재료와 한국 고전 속 이야기들을 접목하며 세상에 없던 맛을 끌어내 소개한다. 파리 한복판 5성급 호텔에선 김나래 수석파티셰가 프랑스인들의 연말연시 ‘디저트 문화’를 책임

    2026.01.15 18:31
  • 1500년 관통한 이건희 컬렉션…K컬처의 뿌리, 워싱턴 홀리다

    18세기 조선의 이름 없는 도공이 빚은 ‘백자 달항아리’, 그리고 20세기 거장 김환기의 ‘푸른 점화’. 두 작품 사이엔 200년이라는 시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뿌리는 하나다. “나의 예술은 모두 우리 도자기에서 나왔다”고 말한 김환기 선생은 평생에 걸쳐 달항아리의 둥근 곡선을 점과 선으로 승화했다. 지금 그 두 점은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그것도 미국 땅에서.워싱턴DC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NMAA)에서 오는 2월 1일까지 열리는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 전시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기증품으로 구성된 국외순회전의 첫 번째 전시다. 3월에 시카고미술관으로, 9월에는 런던 대영박물관으로 여행을 떠난다. 400여 점의 국보급 작품으로 이뤄진 이번 전시는 단순한 전시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삼국시대 금동불상부터 조선의 인왕제색도, 현대의 김환기 박수근에 이르기까지 1500년 한국 미술사를 관통하는 걸작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어서다.K컬처가 전 세계에 확산한 지 수년째지만, ‘한국 문화의 원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그동안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K팝 가수들의 화려한 에너지, 영화와 드라마의 세련된 연출력이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지 못했다. 수천 년간 응축된 ‘한국의 미학적 정수’가 수세기에 걸쳐 도예로, 회화로, 조각으로 진화해 왔다는 사실을 이번 전시는 대서사로 풀어낸다. “아이돌 그룹의 군무가 K컬처의 꽃이라면, 곡선의 미학과 미니멀리즘이 살아 있는 한국의 예술 작품들은 그 뿌리에 가깝다”는 현지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문화예술이 곧 국격”이

    2026.01.08 17:30
  • '이건희 컬렉션' 막전막후…JFK공항 큐레이터의 밤샘 작전

    18세기 조선의 이름 없는 도공이 빚은 ‘백자 달항아리’, 그리고 20세기 거장 김환기의 ‘푸른 점화’. 두 작품 사이엔 200년이라는 시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뿌리는 하나다. “나의 예술은 모두 우리 도자기에서 나왔다”고 말했던 김환기 선생은 평생에 걸쳐 달항아리의 둥근 곡선을 점과 선으로 승화했다. 지금 그 두 점은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그것도 미국 땅에서.미국 워싱턴 D.C.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NMAA)에서 오는 2월 1일까지 열리는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 전시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기증품으로 구성된 국외순회전의 첫 번째 전시다. 3월엔 시카고미술관으로, 9월엔 런던 대영박물관으로 여행을 떠난다. 400여 점의 국보급 작품으로 이뤄진 이번 단순한 전시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삼국시대 금동불상부터 조선의 인왕제색도, 현대의 김환기·박수근에 이르기까지 1500년 한국 미술사를 관통하는 걸작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어서다. K컬처가 전 세계에 확산한 지 수년 째이지만, ‘한국 문화의 원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그 동안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nbs

    2026.01.08 15:10
  • 구본창이 기록한 안성기의 그때 그 시절…여섯 장의 흑백사진

    선한 눈망울과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 고(故) 안성기의 영정 사진은 1987년, 그가 서른 아홉 살이던 해 연세대 신촌 캠퍼스에서 찍은 사진이다.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 촬영장에서, 사진작가 구본창이 기록했다.구본창 작가와 안성기 배우는 1982년 처음 만났다. 역시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 촬영장에서였다. 독일 유학 중이던 구본창 작가가 잠시 한국에 들어와 친구였던 배창호 감독의 일터를 찾아간 게 인연이 됐다. 이후 구본창 작가는 안성기 배우의 모습을 여러 차례 카메라에 담았다. 어떤 배역을 맡아도 감춰지지 않던 그의 깊고도 고요했던 순수함을 구본창 작가는 흑백 사진으로 남겼다. 영정사진을 미처 마련하지 못했다는 유가족의 연락을 받고, 요며칠 구본창 작가는 과거의 사진들을 모두 꺼내보았다. 그중 고인의 부인인 오소영 씨가 가장 좋아했던 사진이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하게 되었다.   "인생의 유한함을 뼈저리게 느낀다"는 구본창 작가가 40년이 넘은 고인과의 인연을 회고하며 아르떼에 공개한 그 시절의 안성기를, 지금 다시 만난다. ▶[부고] '국민배우' 안성기의 죽음, 한 세대가 썰물처럼 빠져 나가다▶[부고] '시대의 얼굴'로 살아온 69년…국민배우 안성기 별세 

    2026.01.06 01:26
  • 거장 이우환의 여백 앞에…천재 이하느리, 침묵의 예술로 답하다

    70년의 시간을 사이에 둔 두 예술가가 만났다. 시대를 초월한 철학으로 현대 미술사를 새로 쓴 거장 이우환(90), 그리고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가 주목하는 작곡계의 신성 이하느리(20)다. 지난해 12월 13일과 14일 부산에서 열린 부산시립미술관의 ‘이우환 공간 1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음악회 <보는 소리, 듣는 빛>에서다. 이 낯선 조합은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있는 그대로의 돌, 정지한 점과 흐르는 붓, 빈 공간에 균열을 내는 사물. 이우환의 작품은 그것이 놓이는 공간과 관계를 맺고 공명한다. 이하느리의 음악은 어떤가. 클래식 음악 악기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소리와 낯선 템포들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소리의 세계로 이끈다. 여백을 그리는 화가, 침묵을 만드는 작곡가는 이 지점에서 조우했다. 이번 기획은 10년 전 부산시립미술관에 건립된 상설전시관 ‘이우환 공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첫날은 이우환 공간 2층에서, 둘째날은 부산콘서트홀 챔버홀에서 같은 프로그램으로 연주됐다. 총 4개의 곡으로 채워진 공연의 주제는 소리와 침묵. 이하느리는 이우환의 작품과 어울리는&

    2025.12.31 09:00
  • 서도호의 런던 스튜디오를 가다…양자역학에 관한 긴 대화

    ‘당신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한국 현대미술의 중추인 서도호 작가가 30년 넘게 던져온 질문이다. 어느 시기, 누구와 함께, 어떤 시절을 통과했는지에 따라 ‘그 집’의 의미는 달라진다. 집은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를 정의하는 정체성의 근원이자 기억의 저장소다. 지난해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장장 6개월 간 대규모 개인전 <제네시스 익스비션-서도호: 워크 더 하우스Walk the House>를 마친 서도호 작가를 늦은 가을, 그가 살고 있는 런던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올해 8월,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서도호 작가(62)는 2010년부터 런던에 살고 있다. 서울, 뉴욕, 베를린 등 5개 도시를 거쳐 여섯 번째 거주지다. 런던 북동부 이즐링턴의 조용한 주택가에 ‘DO HO Limited’라 쓰여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의 스튜디오가 나타났다. 한 방엔 사람 뒤에 또 사람, 그 사람 뒤에 또 사람이 이어지는 드로잉이 벽면 가득하다. 또 다른 방에는 색색의 실과 재봉틀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테이트 모던에서의 서도호 개인전은 여러 기록들을 남겼다.&nbs

    2025.12.31 09:00
  • [2025 R.I.P]"스타 아닌 장르로 남겠다"...불멸의 전설 된 예술가들

    “인생은 말이 되지 않는다(Life doesn’t make sense).”세상에서 가장 기괴한 영화를 만들어 ‘오컬트의 제왕’으로 불린 데이비드 린치 감독(1946~2025)이 자주 하던 말이다. 그것은 예술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였다. 인생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모든 인과관계가 명확하다면 태초에 예술이라는 게 존재했을까. 린치의 ‘초현실주의’는 현실을 잊으라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일상 속에서 낯선 것과 기이한 것들을 기꺼이 낚아 올리라는 메시지였다. 글과 그림이, 영화와 연극과 문학이 왜 세월을 거슬러 영원히 살아남는지에 대한 해답이었다.올해도 수많은 예술가가 세상을 떠났다. 공백과 혼돈이 뒤엉킨 세상, 그 속에서 사유와 울림을 줬던 이들이다. 2025년의 끝자락, 우리가 떠나보낸 위대한 별들이 남긴 이야기를 다시 읽는다. 그들은 싸웠다. “문학은 영구적인 반란의 형태”라고 말한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 마리오 바르가스요사, “시시포스처럼, 평생 불가능한 문학의 꿈을 꿨다”던 소설가 서정인, 그리고 “과거를 배우되 결코 머무르지 말라”며 기존 건축계의 문법에 끊임없이 도전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이들의 영혼엔 규칙을 깨는 단단한 용기가 숨어 있었다. “다 이상한데,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개념”이라던 배우 다이앤 키튼, “(여배우는) 일류가 돼야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어진다”고 한 배우 김지미. 뉴 할리우드 시네마의 상징이자 영화계를 위해 헌신한 로버트 레드퍼드는 아예 이런 말을 남겼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 자체가 하나의 위험이다”라고.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우리가 영원히 가슴에

    2025.12.26 16:36
  • "스타 아닌 장르로 남겠다"…불멸의 전설 된 예술가들

    “인생은 말이 되지 않는다(Life doesn’t make sense).”세상에서 가장 기괴한 영화를 만들어 ‘오컬트의 제왕’으로 불린 데이비드 린치 감독(1946~2025)이 자주 하던 말이다. 그것은 예술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였다. 인생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모든 인과관계가 명확하다면 태초에 예술이라는 게 존재했을까. 린치의 ‘초현실주의’는 현실을 잊으라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일상 속에서 낯선 것과 기이한 것들을 기꺼이 낚아 올리라는 메시지였다. 글과 그림이, 영화와 연극과 문학이 왜 세월을 거슬러 영원히 살아남는지에 대한 해답이었다.올해도 수많은 예술가가 세상을 떠났다. 공백과 혼돈이 뒤엉킨 세상, 그 속에서 사유와 울림을 줬던 이들이다. 2025년의 끝자락, 우리가 떠나보낸 위대한 별들이 남긴 이야기를 다시 읽는다. 그들은 싸웠다. “문학은 영구적인 반란의 형태”라고 말한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 마리오 바르가스요사, “시시포스처럼, 평생 불가능한 문학의 꿈을 꿨다”던 소설가 서정인, 그리고 “과거를 배우되 결코 머무르지 말라”며 기존 건축계의 문법에 끊임없이 도전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이들의 영혼엔 규칙을 깨는 단단한 용기가 숨어 있었다. “다 이상한데,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개념”이라던 배우 다이앤 키튼, “(여배우는) 일류가 돼야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어진다”고 한 배우 김지미. 뉴 할리우드 시네마의 상징이자 영화계를 위해 헌신한 로버트 레드퍼드는 아예 이런 말을 남겼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 자체가 하나의 위험이다”라고.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우리가 영원히 가슴에

    2025.12.25 17:58
  • 파리 그랑팔레·런던 서머셋…'겨울 한정판' 미술관 옆 아이스링크

    겨울은 세계의 유명 미술관으로 ‘그림 여행’을 떠나기 좋은 시기다. 쌀쌀하고 흐린 날씨를 피해 미술관 안에서 하루 종일 여유롭게 명작들을 감상할 수 있어서다. 미술관이 문을 닫은 시간, 우린 어디로 가야 할까. 뉴욕, 런던, 파리의 미술관을 찾은 이들에겐 몇 걸음만 옮겨보길 권한다. 오직 겨울철에만 반짝 운영하는 로맨틱한 아이스링크가 미술관 문밖에 마법처럼 펼쳐진다. 꿈의 프러포즈 공간뉴욕의 겨울은 아이스링크와 함께 찾아온다. 센트럴파크에서 브루클린 지역까지 공원 곳곳의 호수가 아이스링크로 변하기 때문이다. 1870년대 뉴욕 센트럴파크가 완공되기 전부터 연못과 호수는 스케이트장으로 인기가 많았다. 매년 호수 수위를 낮춰 얼음이 쉽게 얼도록 했고, 겨울철 공원 방문객을 늘리기 위해 뉴욕시 여러 자치구에 아이스링크가 문을 열었다.이 중 록펠러센터 아이스링크는 겨울에 뉴욕을 방문한 사람이면 꼭 가볼 만한 곳이다. MoMA에서 세 블럭만 내려가면 되는 거리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찾는다면 우연히 로맨틱 영화의 한 장면을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 ‘나 홀로 집에 2’ ‘세렌디피티’ ‘엘프’ ‘가십걸’ 등 유명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 데다 아이스링크 바로 옆 크리스마스트리도 멋진 볼거리다. 록펠러센터 크리스마스트리는 매년 미국 각지에서 후보 나무를 물색해 선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크기와 수형, 건강 상태 등을 기준으로 정원사들이 직접 탐색해 결정한다. 2025년 크리스마스트리는 뉴욕주 렌슬리어카운티 이스트그린부시에서 자란 나무로, 약 23m에 이른다. 이 나무는 수십 년간 한 가정의 사유지에 있던 것으로 전통에 따

    2025.12.24 11:21
  • 120년 전 만국박람회 건물, 여왕 보금자리…스페셜한 유럽의 윈터 페스티벌

    역사와 문화가 교차하는 유럽 도시 한복판에서의 아이스 스케이팅.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 겨울마다 실제로 벌어지는 두 공간이 있다. 영국 런던의 서머싯하우스 안뜰 그리고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다.그랑팔레는 2700㎡의 면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실내 아이스링크 중 하나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졌는데, 당시 ‘프랑스 예술의 영광을 위해’ 프랑스 공화국이 헌정한 기념비적 건물이다. 당대 최신 기술인 강철 프레임과 철근 콘크리트 공법이 적용됐고, 거대한 유리 돔 지붕이 압권이다. 고전주의와 아르누보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룬다. 1, 2차 세계대전 때 군 병원과 독일 선전 전시장으로도 활용된 이곳은 2024년 파리올림픽을 계기로 대대적인 복원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1년 내내 아트페어와 패션 이벤트 등이 펼쳐진다.아이스링크로 사용되는 시기는 연중 약 3주. 올해 시즌은 2025년 12월 13일부터 2026년 1월 7일까지다. 오전, 오후, 야간으로 나눠 입장료가 다르다. 성인 기준 27~39유로, 어린이(만 3~12세)는 15~39유로다. 낮과 밤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것도 특징이다. 주간에는 자연 채광이 유리 지붕을 뚫고 들어와 아름다운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다면 저녁엔 DJ 공연과 라이트 쇼가 펼쳐져 화려한 무드가 연출된다.서머싯하우스 아이스 스케이트는 2000년 개장해 런던의 대표적인 겨울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과 12m 높이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배경으로 축제 분위기가 종일 계속된다. 최초의 서머싯하우스는 1547년 튜더왕조 시절 템스강변에 웅장한 저택을 짓기 위해 착공됐다. 이후 왕실 소유로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등의 공식 거처로 쓰였다. 18세기 후반 공

    2025.12.18 17:39
  • 빈 도나우강 따라 달린다…러너들 꿈의 도시

    ‘오직 달리기 위해서 떠난다.’러닝의 마법에 빠진 이들의 겨울은 당신의 여름보다 더 뜨겁다. 달리기(running)와 여행(trip)을 합친 ‘런트립’의 스케줄을 짜는 데 최적의 시기여서다. 런트립을 계획하는 이들의 유형은 크게 둘로 나뉜다. 뉴욕, 런던, 베를린, 시드니, 도쿄, 시카고, 보스턴 등 세계 7대 마라톤을 정복하기 위해 떠나는 도전형 여행자. 그리고 나만의 경험을 기록해 현지인의 문화 속으로 뛰어들고픈 일탈형 여행자. ‘세상은 넓고, 뛸 곳은 많다’지만 후자를 택한 러너에게 요즘 가장 주목받고 있는 도시가 있다. 지난해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 오스트리아 빈이다.빈이 도심 러닝 여행지로 뜨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나 홀로 여행자가 “왜 빈에 가야 하냐”고 묻는다면 “일단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할 수 있겠다. 러닝과 하이킹, 어떤 코스를 선택하든 트램이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으로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시작점이 있다. 코스도 다채롭다. 역사적 건축물을 끼고 달리는 도심 코스, 황실 사냥터에서 달리는 도심 속 자연 코스, 다뉴브강을 끼고 도는 강변 코스까지 선택지가 넓다. 공식 하이킹 코스도 빈 도심 외곽으로 12개가 있다.도심·자연·강변…마음대로 고르는 러닝 코스구시가지 중심을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5.3㎞의 순환도로 ‘링슈트라세’는 그 자체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가 살아 숨 쉰다. 늦가을, 빈에 머무는 5일간 매일 아침 빈 미술사 박물관을 시작으로 한 바퀴씩 달렸다. 마주치는 모든 풍경이 믿을 수 없이 웅장하다. 오페라극장과 빈 미술사 박물관, 호프부르크 왕궁, 자

    2025.12.18 17:23
  •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뉴욕 클래식 음악계의 비밀…'17년 버틴 자'에게 듣는다

    [아르떼 살롱: 김동민 음악감독 '뉴욕에서 음악가로 살아남기' 신청 링크]뉴욕은 예술가들이 한 번쯤 꼭 살아보고 싶은 도시 중 하나다. 음악과 미술, 무용과 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1년 내내 예술적 영감이 넘쳐흐르는 곳. '꿈의 도시'인 이곳은 때론 절망의 도시가 되기도 한다. 전 세계 아티스트들이 살아남기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치열한 도전을 하고 있어서다.17년째 민간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며 뉴욕 전 지역에서 시민들에게 공연을 펼치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New York Classical Players·NYCP) 김동민 음악감독(53)이다. 그동안 250여 회의 연주회를 열었다. 그것도 무료로.김 감독은 연세대 음대를 졸업하고 인디애나대에서 비올라와 지휘를 전공했다. 음대 시절 워싱턴DC 내셔널심포니오케스트라의 초청으로 객원 지휘를 맡았던 실력파 지휘자. 현악기 장인 김현주 씨의 아들이자 바이올린 마이스트(독일 정부가 최고 기능인에게 주는 자격증) 김동인 씨의 동생이다.세계 최고 지휘자의 꿈을 꾸던 그가 2009년, 어느 날 갑자기 인디애나에서 뉴욕으로 떠났을 때 사람들은 미쳤다고 말했다. 뉴욕은 살아본 적도, 기댈 사람도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뉴욕에서 탐험을 하다 무료 공연을 하는 음악 단체를 만들게 된 계기는 공공도서관에서였다. 노숙인 행색의 한 아프리카계 남성이 CD를 잔뜩 빌려 자리를 잡고, 두 시간 넘게 음악에 심취하는 광경을 본 것이었다. 며칠간 그의 음악 감상은 똑같이 이어졌다."그 노숙인 할아버지와는 아무 말도 안했지만, 잊을 수가 없었어요. 부자부터 노숙자까지 누구나 최고 수준의 음악을 감상할 권리가 있다고

    2025.12.18 09:24
  • 더부스, 한국 맥주 최초로 미국 '홀푸드' 입점

    수제 맥주 브랜드 더부스는 14일 한국 맥주 브랜드 최초로 미국 슈퍼마켓 체인 ‘홀푸드’에 입점했다고 발표했다.미국 프리미엄 슈퍼마켓 체인인 홀푸드는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에 약 500개 슈퍼마켓을 운영 중이다. 자사 품질 기준을 충족하는 상품만을 까다롭게 골라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번에 입점한 더부스 제품은 ‘국민 IPA’와 ‘재미주의자’ 등 2종이다. 지난 9월 미국 캘리포니아 페탈루마에서 열린 ‘비어서커스’ 행사를 계기로 홀푸드가 제안해 입점이 성사됐다.이번 입점은 지난해 더부스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브루어리 시설 인수와 함께 시작한 미국 진출 후 1년 만의 성과다. 이영원 더부스US 총괄은 “홀푸드 입점은 미국 시장에서의 더부스 판매망을 한 단계 확대하는 신호탄”이라며 “내년 목표는 전 세계 수제 맥주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브루어리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말했다.미국은 크래프트 맥주의 성지로 불린다. 수제맥주 소비가 세계에서 가장 활발히 일어나는 곳으로 수제맥주 제조에 필요한 홉, 보리, 효모 등을 가장 좋은 품질로 공수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더부스US’ 브루어리가 있는 캘리포니아 지역은 3000개 이상의 브루어리가 있어 미국 내 수제맥주 산업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더부스US’팀은 올해 캔 제품을 처음 출시한 이후, 3월 캘리포니아 험볼트 지역에서 도매 계약을 시작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지에 100곳 이상의 신규 업장을 유치했다.홀푸드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주류 대형마트 프랜차이즈 베브모와 프리미

    2025.12.15 19:37
  • 난 재미주의자, 한의사 가운도 벗었다…수제 맥주 +α 위해

    월급쟁이 한의사로 1년을 보냈다. 수입은 안정적이었고 남들은 부러워했다. 흰 가운을 입고 환자를 맞이하는 일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이 뛰진 않았다. ‘맛있는 맥주를 더 재밌게 마실 수 없을까.’ 우연히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나누던 얘기는 3개월 뒤 창업으로 이어졌다. 세 명이 3000만~4000만원씩을 모아 1억2000만원으로 이태원 경리단길에 작은 펍을 열었다. 사장 셋, 직원 둘이었다.이 회사는 창업 5년 만인 지난해 매출 126억원, 직원 100여 명, 직영 매장 7곳을 거느린 수제 맥주 대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됐다. 100억여원의 투자를 받아 미국 캘리포니아의 양조장을 인수했다. ‘더 부스 브루잉컴퍼니’의 김희윤 대표(31·사진) 얘기다. 김 대표는 “단지 술을 파는 게 아니라 ‘수제 맥주+α’라는 문화를 형성하고 싶었다”고 했다.더 부스의 구성원 100여 명은 모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맥주 생산, 유통, 판매, 점포 운영까지 직접 꾸려나간다. 이들의 공통점은 ‘맥주가 좋아서 모였다’는 것. ‘맥주와 관련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닮은 구석이다. 대기업과 공기업 직원, 컨설턴트, 마케팅 전문가 등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만난 덕에 독창적인 컬래버레이션이 많다. 그동안 방송사 tvN, 출판사 민음사, 요가복 브랜드 룰루레몬 등과 각종 문화 이벤트를 열었다.모든 제품엔 스토리를 담았다. 대동강 맥주보다 맛있게 만들었다는 뜻의 간판 제품인 ‘대강 페일에일’, 인디음악가 장기하의 노래에서 착안한 ‘ㅋ IPA’, 배달의민족 치킨 소믈리에와 개발한 ‘치믈리에일’, 방송인 노홍철과 협

    2025.12.15 19:34
  • 미술계 '수집의 룰'을 깬 남자…무소유의 컬렉터를 아시나요

    미술계의 ‘큰손 컬렉터’를 머릿속에 한번 떠올려보자. 일상의 공간은 그림과 조각 등으로 채워지고, 어쩌면 수장고에도 그림이 잔뜩 쌓여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자신이 선호하는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하는 ‘커미션’ 형태로 수집하기도 한다. 소장 작품이 점점 더 늘어나면 미술관을 짓거나 명성 높은 미술관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기증한다. 물론 자손 등 가족에게 상속하는 일도 포함한다. 여기까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집가의 모습이다.만약 전 세계 미술관들이 다 아는 소문난 수집가인데 작품을 소유하지 않는다면? 매년 수억원을 들여 작품을 의뢰한 뒤 그 과정을 함께한 미술관과 작가에게 작품의 소유권을 모두 넘긴다면? ‘수집의 룰’을 깨는 이런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후원의 새 역사를 쓰는 사람이 있다. 전 세계 60여 개 미술관과 대화하는 수집가, 네덜란드 로테르담 출신 한 네프켄스(71)의 이야기다. 생사의 고비 넘고…기자에서 수집가로지난 10일 대만 신베이시 미술관(NTCAM)에서 만난 네프켄스는 “예술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고 대화하는 게 삶의 가장 큰 기쁨”이라며 “30대 초반 죽음이 눈앞까지 다가왔을 때 타인과 무언가를 나누는 것 이상의 행복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현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는 그는 이날 벨기에 앤트워프 현대미술관(M HKA), 핀란드 헬싱키 현대미술관(KIASMA), 대만 신베이시 미술관, 한국 아트선재센터(ASJC) 등 미술관 4곳과 함께 ‘유라시아 영상 커미션’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12만달러의 후원금을 비디오 아티스트에게 지원해 4개국 미술관에서 전시할 예정이다.네프켄스는 기자였고,

    2025.12.11 16:48
  • '무소유'의 수집가..전 세계 비디오 아티스트 25년 후원한 한 네프켄스

    미술계의 ‘큰손 컬렉터’를 머릿속에 한번 떠올려보자. 일상의 공간은 그림과 조각 등으로 채워지고, 어쩌면 수장고에도 그림이 잔뜩 쌓여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자신이 선호하는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하는 '커미션' 형태로 수집도 한다. 소장 작품이 점점 더 늘어나면 미술관을 짓거나, 명성 높은 미술관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기증한다. 물론 자손 등 가족들에게 상속하는 일도 포함한다. 여기까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집가의 모습이다. 만약 전 세계 미술관들이 다 아는 소문난 수집가인데 작품을 소유하지 않는다면?  매년 수 억원을 들여 작품을 의뢰한 뒤, 그 과정을 함께한 미술관과 작가에게 작품의 소유권을 모두 넘긴다면? '수집의 룰'을 깨는 이런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후원의 새 역사를 쓰는 사람이 있다. 전 세계 60여 개 미술관과 대화하는 수집가, 네덜란드 로테르담 출신의 한 네프켄스(Han Nefkens·71)의 이야기다.지난 10일 대만 신베이시 미술관(NTCAM)에서 만난 네프켄스는 "예술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고, 대화하는 게 삶의 가장 큰 기쁨"이라며 "30대 초반 죽음이 눈앞까지 다가왔을 때 타인과 무언가를 나누는 것 이상의 행복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현재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는 그는 이날 벨기에 앤트워프 현대미술관(M HKA),  핀란드 헬싱키 현대미술관(KIASMA), 대만 신베이시 미술관, 한국 아트선재센터(ASJC) 등 4개 미술관과 함께 '유라시아 영상 커미션'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12만달러의 후원금을 비디오 아티스트에게 지원해 4개국 미술관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네프켄스는 기자였고, 자전적 소설과 에세이 등

    2025.12.11 10:34
  • 사라짐으로 기억된다…힐튼서울의 마지막 회고록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폴란드의 한 시인이 쓴 구절이 떠올랐다. 서울 남산 자락 피크닉에서 열리고 있는 ‘힐튼서울 자서전’ 전시를 보면서다.한 건축물의 40여 년 세월을 돌아본 이 전시엔 한국 현대건축의 역사와 개인의 기억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다.건축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그것은 누가, 어떻게 정할까. 40여 년간 서울의 대표 모더니즘 건축물로 인정받은 힐튼서울은 1983년 태어났다. 남산과 서울역을 잇는 양동지구 중심에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 1세대 건축가 김종성의 설계에 대우그룹과 힐튼인터내셔널의 협력이 더해진 프로젝트였다.그땐 ‘SEOUL’이라는 도시가 세계에 막 알려질 채비를 할 때였고, 힐튼서울은 역사적 순간을 살아냈다. 1985년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차총회,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등의 주요 회의와 연회를 도맡았다. 남산을 감싸 안는 외관, 18m 높이의 중앙 아트리움은 물론 일폰테, 오랑제리, 시즌즈 등 레스토랑은 새로운 소비문화를 이끌었다. 힐튼서울의 마지막 영업일은 2022년 12월 31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영업 부진이 이유였다. 2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25년 5월부터 기나긴 철거 작업에 들어갔다. 소멸하는 순간을 붙잡다‘힐튼서울 자서전’은 이 소멸의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한다. 단순히 공간을 이식하거나 건축의 과거 기록을 아카이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영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분야 작가가 힐튼서울의 해체 과정에서 나온 자재와 장면들을 재구성했다.건물이 사라지는 과정에 천착한 작업은 정지현, 서지우, 테크캡슐의 작업이다. 정지현은 건물의 입면이 붕괴되는 과정

    2025.12.04 16:49
  • "풍요로운 삶 갈망하던…동시대인의 꿈의 공간"

    힐튼서울의 건축가 김종성(사진)은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1954년 서울대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재학 중 미국 유학을 결심해 2년 뒤 미국 일리노이공대(IIT)에 들어가 석사까지 마쳤다. 미스반데어로에 사무실에 입사해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1966년 IIT 건축대 교수로 임용돼 부학장과 학장 서리를 지낸 인물. 1978년 힐튼서울 설계를 계기로 귀국해 서울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를 이끌며 서울올림픽 역도경기장, 아트선재센터, 서울역사박물관, SK서린빌딩 등을 남겼다. 수많은 랜드마크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힐튼서울 자서전’과 관련해 미국 뉴욕에서 잠시 귀국한 그를 피크닉에서 만났다.“힐튼서울은 풍요로운 삶을 갈망하던 동시대인의 꿈의 공간이었고, 그래서 흔한 호텔이 아니었어요. 40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사실이 아쉬웠죠. 수많은 논의를 거친 덕에 이제 한국의 건축 유산이 자본주의 순환 경제에 부합하면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더 깊이 다룰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한국 건축사에 길이 남을 건축물을 세운다는 건 혁신이자 도전이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로 인해 1978년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왔습니다. 김우중 사장(당시 호칭)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능력 있는 건축가를 영입하라’며 1973년 시카고 출장길에 직접 찾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힐튼서울 자리가 예쁜 땅은 아니었어요. 객실 620개를 갖춘 호텔을 남산에 지으려고 보니 고도 제한 때문에 옆으로 길게 늘일 수밖에 없었죠. 한 일(ㅡ) 자로 하려니 심심해서 남산과 대화하는 모양을 만들었어요.”그는 미스반데어로에 사무실에서 12년간 쌓은 네트워크를 총동원했다. 당대 최

    2025.12.04 16:46
  • '사라지므로, 기억된다' 아마도 끝나지 않을 힐튼서울 자서전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폴란드의 한 시인이 쓴 구절이 떠올랐다. 서울 남산 자락 피크닉에서 열리고 있는 <힐튼서울 자서전> 전시를 보면서다. 한 건축물의 40여 년 세월을 돌아본 이 전시엔 한국 현대건축의 역사와 개인의 기억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다. 건축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그것은 누가, 어떻게 정할까. 40여 년간 서울의 대표 모더니즘 건축물 ‘힐튼서울’은 1983년 태어났다. 남산과 서울역을 잇는 양동지구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 1세대 건축가 김종성의 설계에 대우그룹과 힐튼인터내셔널의 협력이 더해진 프로젝트였다.그땐 ‘SEOUL’이라는 도시가 세계에 막 알려질 채비를 할 때였고, 힐튼서울은 역사적 순간을 살아냈다. 1985년 IMF·세계은행 연차총회,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등의 주요 회의와 연회를 도맡았다. 남산을 감싸안는 외관, 18m 높이의 중앙 아트리움Atrium은 물론 일폰테, 오랑제리, 시즌즈 등 레스토랑은 새로운 소비문화를 이끌었다. 힐튼서울의 마지막 영업일은 2022년 12월 31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영업 부진이 이유였다. 2년의 준비 기간을&nb

    2025.11.28 17:26
  • [책마을] 호크니의 나무가 보라색인 이유

    잠에서 깨어난 시간부터 지금까지, 두 눈으로 무엇을 보았는지 한번 떠올려보자. 흩날리는 낙엽, 깜빡이는 신호등,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 편의점과 카페의 간판들…. 우리가 스치듯 매일 ‘본 것’들은 좀처럼 의식에 기록되지 않는다. 주의를 끌지도 않는다.여러 번 본 것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무언가를 배웠으되, 동시에 배우지 않는 법을 배워 ‘순진한 눈’을 가진 자들. 그래서 세상을 남과 다른 눈으로 치열하게 바라보는 일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 우리는 이런 이들을 예술가라고 부른다.<미술관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은 예술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31가지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 영국 테이트갤러리 관장이자 BBC 예술 담당 기자로 활약했던 미술평론가 윌 곰퍼츠가 썼다. 10년 전 출간한 <발칙한 현대미술사>와 <발칙한 예술가들>에 이은 세 번째 책이다.데이비드 호크니의 ‘봄의 도래, 이스트 요크셔 월드게이트’(2011)에서 책은 시작한다. 보라색, 붉은색 몸통을 가진 나무와 어느 하나 같지 않은 초록과 노랑의 나뭇잎이 펼쳐진 무지갯빛 숲 그림이다. 이 지역에서 북해의 칼바람을 마주해본 사람이라면, 놀랄 일이다. 그럴 때 호크니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제대로 보지 않았습니다. 대충 볼 뿐입니다. 무언가를 더 오래 살펴보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될 겁니다.”호크니와의 대화를 나눈 뒤 저자는 집 근처 숲에서 환각적 색채들을 발견한다. 마치 호크니의 그림에 정신을 빼앗긴 것처럼. ‘풍경화가 더 이상 새롭지 않다는 생각은, 풍경이 따분한 것이 아니라 풍경을 묘사하는 방식이 지루해져서다’라고

    2025.11.2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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