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생각을 바꾸고, 글은 세상을 바꿉니다.
도쿄는 ‘서울의 미래’로 불린다. 적어도 비즈니스에선 그렇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수많은 사람이 도쿄를 수시로 드나든다. 그들에게 도쿄는 ‘지붕 없는 뮤지엄’이자 ‘담장 없는 캠퍼스’다. 아주 작은 변화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고, 정성 어린 디테일과 감각적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가장 가까운 섬나라. 그뿐만이 아니다. 도쿄에는 업의 본질에 대한 고민과 비즈니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눈길 닿는 곳마다 녹아 있다. 뿌리 깊은 장인정신도 숨어 있다. 그래서 섣불리 흉내 낼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도쿄의 문이 닫힌 지 3년. 도쿄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국경이 봉쇄된 기간에 이 도시는 어떻게 변했을까. 고상하기만 하던 편집숍들은 더 친절한 눈높이 큐레이션으로, 1인 가구를 위한 소량 제품은 더 많은 맥락을 품은 세밀한 구성으로, 낡고 오래된 장소들은 100년 뒤를 내다보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것들은 도쿄에 ‘조용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이번주 웨이브는 퇴사준비생의 마음으로 도시를 탐험해온 이동진 트래블코드 대표와 시티호퍼스팀의 시각으로 들여다본 도쿄다. 이들은 일본의 문이 열리자마자 도쿄로 달려가 그 변화의 지점들을 관찰했다. <퇴사준비생의 도쿄>로 서점가를 뒤흔든 지 6년 만에 후속작 <퇴사준비생의 도쿄2>를 펴내며 더 예민한 눈으로 달라진 인사이트를 잡아냈다. 세계 주요 도시에서 찾은 영감은 시티호퍼스 뉴스레터로 매주 배달된다. 직업적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바치는 위로이자 응원이다.‘퇴사준비생’이라는 이 도발적 단어는 여행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 퇴사를 결심한 사
어느 겨울. 홍차에 마들렌을 적셔 한입 베어 문 순간,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버터향 머금은 마들렌 향은 까맣게 잊혀진 일들을 모조리 불러냈다. 숙모가 내주던 마들렌, 잊고 있던 그 무렵 기억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자전적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바로 그 향에서 시작됐다. 어떤 향기가 기억을 이끌어 낼 때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부르는 이유다.후각은 강력하다. 우리의 코는 1만 개 정도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다. 모든 감각 가운데 가장 오래, 가장 깊이 뇌 속에 저장된다. 그래서 오래도록 기억되는 냄새가 많다. 어릴 적 시골 할머니 집에서 덮던 담요 냄새, 타들어가는 장작에서 스며나오던 나무 냄새, 하얀 파도가 부서지던 한여름 해변의 모래 냄새…. 수십 년이 흘러서도 이런 냄새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이유다.냄새는 인간을 구분 짓는다. 몸에서 나는 냄새가 저마다 다르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향기가 저마다 달라서다. 향수 대중화를 이끈 ‘샤넬 넘버5’는 마릴린 먼로의 상징이기도 했다. 잘 때 뭘 입고 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샤넬 넘버5 두 방울”이라고 답하면서다. 요즘 사람들이 ‘니치(niche) 향수’에 관심을 두는 배경도 여기 있다. 나만의 정체성, 나만의 가치를 알리는 희귀한 향을 찾아 나선 것이다. 여러 향을 겹쳐 그날의 패션과 날씨에 어울리게 조합하고, 그날의 기분을 표현하기도 한다.향수 문화가 가장 발달한 프랑스에는 일종의 ‘향 보관소’도 있다. 베르사유에 있는 오스모테크는 마치 종자보관소처럼 수천 종의 향을 보존한다. 한때 유행하다가 단종된 향수, 더 이상 맡을
‘숲길을 걷다 멈춘 자리의 기록.’화가 노경희(41)는 자신의 그림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는 사계절 쉬지 않고 산에 오른다. 울창한 숲과 앙상한 가지, 흐르는 물과 반짝이는 생명을 눈에 담는다. 초록 이파리를 적시는 눈부신 햇살과 꽁꽁 언 겨울의 앙상한 풍경도 눈으로 찍는다. 단순하고 조용한 삶을 꿈꾸는 그에게 산은 때가 오면 피었다가 때가 되면 지는, 생성과 소멸의 장소다.서울 인사동 갤러리밈 M큐브에서 전시 중인 ‘숲의 기록’은 그의 눈에 담긴 초록의 장면들로 가득하다. 12점 모두 사진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세밀하다. 미세한 빛과 나뭇가지의 모양, 잎사귀의 그림자, 흙과 돌의 이끼까지 눈앞에 그대로 재현한다. 유화로 그린 작품들이 생생한 빛을 뿜어낸다면, 파스텔로 그린 작품에선 따뜻한 질감이 묻어난다. 눈부시게 맑은 날과 안개 낀 새벽, 한겨울의 추위까지 그림 속엔 작가가 산에 올랐던 그 시간의 기록이 그대로 담겼다.서울대 서양화과를 나와 영국 슬레이드대에서 석사를 마친 뒤 수년째 숲을 탐구해온 노 작가는 최근 시선을 하늘로 넓혔다. 이번 전시에선 두 점의 하늘 시리즈도 만날 수 있다. 흘러가는 구름의 순간을 포착해 ‘단 한 번도 같지 않았을’ 구름의 모양을 담아냈다. 전시는 오는 15일까지.숲을 그리는 또 다른 작가, 김건일(50)은 서울 청담동 라루나갤러리에서 ‘퍼펙트 그린’이란 주제로 관람객을 만난다. 그의 작품 속 풍경은 실제 마주한 것이 아니라 기억과 상상 속의 숲이다. 작가는 “그리는 대상보다 그 대상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숲속을 들어가며 숲 밖에서 생각지 못한 것들을
악당을 뜻하는 단어 ‘빌런(villain)’. 영웅 서사가 담긴 영화나 만화 속에서 어김없이 주연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들이다. 빌런 없이는 히어로도 없고, 극의 긴장감도 없다. 놀랍게도 이 단어는 ‘농부’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고대 로마의 농장에서 일하던 일꾼들을 부르던 말이었다. 어쩌면 가장 평범한 이들이 모두 빌런일 수 있다고, 이 평범한 이들 없이는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역설하려던 것일까.영화 속의 빌런들은 꽤 오랫동안 슬픈 존재였다. 뜨거운 에너지로 작품의 온도를 끓어오르게 하지만, 늘 영웅(또는 선한 자)에게 밀리거나 잊혀지는 존재. 빌런의 내면을 다층적으로 다룬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 ‘조커’(2019), ‘크루엘라’(2021)와 같은 영화가 등장한 건 불과 몇 년 사이 벌어진 일이다.48명. 세기의 영화와 드라마 속 빌런의 표정을 포착해 흑백의 강렬한 인물화로 그려낸 이가 있다. 그림을 그리는 배우이자 연기하는 화가 박기웅(38)이다. 올해로 20년차인 그는 최고의 악역 전문 배우다. 드라마 ‘추노’, 영화 ‘최종병기 활’과 ‘각시탈’ 등 여러 작품에서 악역을 도맡아 매번 화제작으로 만든 주인공이다. 그런 그가 그린 악당의 얼굴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 빼곡히 걸려 있다.연예인이 미술계에 뛰어들어 ‘아트테이너’가 되는 사례는 요즘 흔해졌지만 박기웅은 좀 다르다. 여섯 살 무렵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미대(시각디자인과)를 나온 전공자. 영화판에선 ‘미대 나온 변종’으로, 미술판에선 ‘배우인데 그림에 빠진 변종’으로 경계인의 삶을 살고
1990년의 일이다. 검붉은 화염에 휩싸인 도시, 쏟아지는 포탄 소리를 배경 삼아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서 있는 이들을 봤다. 걸프전에 목숨을 걸고 달려간 종군기자들이었다. TV 뉴스를 밤새 마주하며 심장이 뛰고 눈물이 날 것 같은 그 장면들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후 봤던 그 어떤 영상도 그때만큼의 긴장감과 몰입감을 준 적은 없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기자가 되기로.기자가 된 10여 년간 그런 드라마틱한 사건은 다행히(?) 나에게 벌어지지 않았다. 유년기의 사명감은 날로 줄었다. 대신 언론인이 아니었다면 평생 신경 쓸 일도 없었을 세상사에 호기심을 가져야 했고, 인터뷰라도 하나 잡히면 그 사람의 과거 발자취와 최근 일거수일투족까지 깨알같이 알아야 했다. 하나의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도 나는 과연 이 직업을 택했을까. 여러 번 회의도 들었다. 하지만 동시간, 동시대의 어떤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과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사소한 즐거움은 변함이 없었다.좋은 기자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누구보다 ‘먼저 알리는’ 일이라고 배웠으니까. 멋진 질문이 때로는 세상을 바꾸는 답을 내놓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업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지만 언론만큼 큰 변화를 겪은 곳도 없다.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원하는 뉴스를 검색할 수 있게 됐고, 스마트폰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뉴스를 쏟아낸다. 기자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주는 특종의 유효기간은 허무할 정도로 짧아졌다. 예쁘게 포장된 뉴미디어가 주목받자 아침마다 배달되던 신문은 구석기의 무엇처럼 여겨지게 됐다. 속보
300만 명.완결 26년 만에 극장판 만화로 부활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 44일 만에 세운 기록이다. 슬램덩크는 16일 올해 개봉한 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300만 명 돌파 기록을 썼다. 10대 때 본 추억의 만화책을 애니메이션 영화로 즐기겠다는 3040세대가 극장으로 몰려가고,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함께 열광한 덕이다. 5년 전 개정판으로 나온 슬램덩크 만화책은 두 달 새 100만 부 넘게 팔렸다. 지금 책을 주문해도 다음달에 받는다. 만화책 속 농구부 선수들이 신었던 신발들도 다시 인기다. 슬램덩크 굿즈를 파는 팝업스토어는 연일 긴 줄을 서야 겨우 들어간다. 하루 매출이 1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소장하고 있던 낡은 슬램덩크 책 세트를 자랑하듯 소셜미디어에 올리는가 하면, 고이 간직하고 있던 농구화는 중고 시장에서 몇 배의 가격에 되팔린다.이쯤 되면 슬램덩크는 만화 그 이상이다. 많은 사람에게 ‘인생의 책’으로 남아 지칠 때 힘이 되고, 어두운 시간을 밝혔다. ‘인생을 바꾼 단 한 권의 책’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셀 수 없다. “거기엔 하기 싫어 죽겠는데 억지로 시늉만 내고 있는 자 따위는 없었다. 나는 묘한 슬픔 속에서 그걸 읽었다”(판사 출신 드라마 작가 문유석)는 이가 있고, “내가 만약 슬램덩크를 읽지 않았다면 어딘가 쫓기는 듯 결핍된 채 지내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는 이도 있다.슬램덩크는 여전히 누군가의 ‘터닝 포인트’다. 10~20대 남성의 전유물, 동호인들을 위한 길거리 스포츠로 여겨졌던 농구는 이제 잊을 때가 됐다. 실내 농구 클래스엔 현란한 개인기를 차근차근 익혀가는 여성들이 줄을 잇고, 농구
썩어가는 바나나 한 개를 테이프로 벽에 붙여놓고 1억5000만원에 팔아치운 작가. 전시를 기획한 갤러리스트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3시간을 묶어놓은 악동. 전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며 옆에 있는 갤러리를 부수고 들어가 그곳의 작품과 가구들을 훔쳐와서 전시한 도둑. 세계 미술계의 ‘문제적 인물’로 불리는 마우리치오 카텔란(63)이다.지난 30년간 충격적 사건들을 쉴 새 없이 만들어낸 카텔란이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국내 첫 개인전 ‘WE’를 열었다. 대규모 회고전 형식으로 총 38점이 전시됐는데,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인기다. 카텔란의 작품은 유쾌하면서도 냉소적인, 개념미술의 정점이다. 일상에서 많이 보고 사용하는 익숙한 것들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여 뒤집고 비튼다. 소외된 것들(비둘기, 노숙인)을 다시 보고, 잊혀질 만한 일들(9·11 테러, 히틀러의 세계대전)을 되새기며, 정치적인 이슈(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운석에 깔린 교황)를 과감하게 지적하며 관람객들의 주의를 환기한다.지난달 30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까칠한 작품세계와 달리 편안한 옷차림에 재기발랄한 표정으로 관람객들과 서슴없이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눴다. 공식 인터뷰를 요청하자, “모든 인터뷰는 서면으로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 글로 대화를 나눴다.▷리움미술관 입구와 로비에 설치한 노숙인 작품 ‘동훈과 준호’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나.“‘동훈과 준호’는 1996년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그 작품은 한 번 박물관 관리 직원에 의해 폐기된 적이 있고, 내가 이탈리아 토리노의 거
울릉도행 크루즈선에는 700여 명이 함께 탔다. 포항 영일만신항에서 매일 밤 12시께 출발하는 이 배를 타면 두 번 놀란다. 겨울 울릉도에 가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몰려온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그리고 여행자들의 모습에. 캐리어에 가벼운 옷차림을 한 사람들 틈으로 거대한 배낭에 삽과 손전등, 텐트 등을 쌓아올린 진정한 백패커들이 많다. 마치 야생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하듯 무장한 이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눈 속의 하룻밤 ‘이글루 캠핑’9000여 명이 거주하는 울릉도에는 지난해에만 약 5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대형 크루즈선의 출항으로 멀미 걱정이 줄어든 이유도 있지만 ‘야생과 미지의 섬’을 탐험하려는 2030들이 사계절 내내 찾았다. 여름엔 수상 스포츠의 성지로, 겨울엔 백패커들의 안식처가 됐다.울릉도 겨울 여행의 백미는 나리분지다. 높게 솟은 산봉우리들 사이 움푹 파묻힌 이곳. 해발 500m의 나리 분지는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다. 울릉도 사람들이 모여 살며 농사도 짓고, 바람과 파도도 피했다.눈이 50㎝ 이상 쌓인 고요 속의 나리분지엔 오후부터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삽을 든 사람들이 ‘나만의 이글루’를 짓기 시작했다. 텐트와 담요를 덧대 바람을 막고 직접 지은 동굴 속에서 보내는 하룻밤. 별이 보이기 시작하자 마을의 집집마다 장작 태우는 냄새가 뒤섞였다. 나리분지를 찾는 캠핑족이 늘면서 울릉크루즈와 코오롱그룹은 2월 말까지 ‘울릉나리분지 눈꽃축제’와 ‘울라윈터피크닉’을 함께 기획했다. 돔 쉼터가 조성돼 이글루를 직접 짓지 않고도 안에 머물 수 있는 데다 밤이면 은은한 조명이 들어
매끄러운 스마트폰 위에 엄지손가락을 올려 빠르게 휘젓는다. 누구도 강요하거나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눈과 귀를 사로잡는 짧은 영상을 넘기는 일에 모두가 익숙해졌다. 지하철을 한가득 채운 사람들은 나만을 위해 선택한 음악으로 귀를 막고 고개를 숙인 채 목적지로 향한다. 기술의 발달은 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어디에서나 우리는 자신만의 공간에 빠져 시간을 보낸다.어떤 공간마다 사람이 가득한 시절이 있었다. 이화여대 앞, 지금은 사라진 그린하우스를 지나 골목에 들어서면 제니스 조플린의 곡 이름에서 따온 ‘볼 앤 체인’이라는 상호를 가진 음악 카페가 있었다. 음악감상실 ‘올리브’의 뒤를 이어 문을 연 이곳에는 이화여대생을 비롯해 젊은 대학생, 교양인을 자처하는 중년의 남성들이 주로 찾아와 커피와 술을 마셨다. 목재로 마감한 인테리어는 애초에 음악을 듣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됐다. 턴테이블에서 나오는 음악은 과하게 울리지 않고 술과 커피를 마시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채웠다. 이런 장소가 성행하던 그 당시 홍익대와 신촌, 이화여대 앞의 분위기를 기억하며 미술평론가 황인은 “화양연화 같았다”고 했다.화양연화의 시대가 어렴풋이 저물어갈 2000년대 중반 대학생활을 시작한 나는 줄곧 꿈꿔온 대학가의 풍경이 기대와 사뭇 달라 실망했었다. 다른 목적 없이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존재했던 그 공간들은 스마트폰 같은 개인 음향 기기의 탄생으로 존재의 이유를 잃어가고 있었다. 수십 년 단골을 자청하며 그 공간을 찾던 몇 사람도 그렇다. 영광의 박수보다는 비난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쓸쓸히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공론장의 역할이
30일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입구. 낡은 목장갑을 끼고 구겨진 외투를 입은 채 모자를 푹 눌러쓴 한 남자가 양팔로 몸을 감싸고 비스듬히 누워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노숙인이 웅크린 채 앉아 있다. 이들의 이름은 동훈과 준호다. 현대미술계의 가장 ‘문제적인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마우리치오 카텔란(63)의 올해 신작이자, 리움미술관이 올해 개관전으로 여는 전시 ‘WE’의 오프닝이다.카텔란은 2004년 개관 이후 다소 폐쇄적이던 리움미술관을 ‘열린 공간’으로 뒤바꿨다. 미술관 로비는 기차역 대합실처럼 꾸며졌고, 도시의 불청객 취급을 받았던 비둘기들(유령, 2021)은 미술관 곳곳에서 관람객들을 쳐다본다. 세발자전거를 탄 어린아이(찰리, 2003)가 미술관 곳곳을 종횡무진 달리고, 소설 <양철북>의 오스카를 연상케 하는 소년(무제, 2003)이 전시장의 가장 높은 곳에서 드럼을 쳐댄다. 미술계를 꼬집고 비트는 악동이탈리아 태생인 카텔란은 자신을 ‘미술계의 침입자’로 규정한다. 1990년대 현대미술계에 혜성처럼 떠오른 그를 한마디로 정의하긴 힘들다. 설치와 조각, 회화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기존의 제도와 고정관념, 미술시장 시스템, 정치적 이슈 등을 자유자재로 비튼다. 웃음이 터질 듯 유쾌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사회의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품도 많다. 199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젊은 작가로 선정돼 배당받은 공간을 광고판으로 내놓고 한 향수회사가 사용하게 하는가 하면, 1999년 밀라노에서 열린 전시 첫날엔 그의 작품 거래를 담당하는 갤러리스트 마시모 드 카를로를 전시장 벽에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인 뒤 3시간가량 그대로 걸
여행의 즐거움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온전히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거나, 원래 알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거나. 나흘간의 설 연휴는 그중에서도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익숙한 곳으로 떠나는 이들도 미처 몰랐던 ‘인스타그램 명소’가 있다. 강원 원주 판대리에 2년 전 ‘스톤 크릭’이라는 빙벽 카페가 문을 열었다. 웅장한 봉우리를 타고 내려온 물이 꽝꽝 얼어붙어 신비한 설경을 만들어내는 곳. 국도를 따라 달리던 차들이 하나둘 멈춰서면서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이 늘었다.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지만 빙벽의 기이한 광경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잔은 서울의 멋진 카페들이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멋을 만들어낸다. 충남 공주 반포면의 송곡소류지는 벚꽃 명소로 유명한데 겨울에는 호수 주변으로 하얀 설경이 피어난다. 운이 좋으면 벚꽃 대신 눈꽃을 바라보며 걷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인기 드라마 속 촬영지인 목포, 지난해 별세한 방송인 송해 선생의 이름을 딴 대구 달성군의 ‘송해공원’, 울산의 새 랜드마크가 된 호텔도 있다.시골의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복합문화공간도 많다. 충북 진천에 스마트팜 농업회사가 만든 복합문화공간 ‘뤁스퀘어’가, 전북 군산에는 갤러리와 함께 카페를 운영하는 ‘선유공감’이, 영광 백수해안도로에는 보리밭과 바다의 풍경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보리카페’ 등이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도시의 카페 문화가 합쳐져 도시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공간들이다.1년에 단 두 번. 명절 연휴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진짜 얼굴이 드러나는 때이기도 하다. 고
아파트 높이가 지금의 절반도 안 됐던 1990년대 초. 해질녘이면 동네 공터 여기저기서 어김없이 요란한 소리가 났다. ‘탕, 탕, 탕, 타다닥, 쿵.’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면 어김없이 우리는 농구공을 들고 문밖으로 나왔다. 누구도 감히 덩크슛을 시도해볼 키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뛰고 또 뛰었다. 덩크슛의 느낌이 대체 어떤 건지 궁금해 의자나 친구의 몸을 발판 삼아 가까스로 점프를 하고 골대를 움켜잡은 채 한참을 매달려 있었다. 아스팔트 위 검은 그림자 중 누군가는 강백호가 됐고, 누군가는 채치수가 됐다. 아파트 외벽에 가상의 골대를 그려넣고 지칠 때까지 슛을 하는 날도 많았다. 그렇다. 나도 슬램덩크 세대다.만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26년 만에 극장판으로 부활했다. 10대 때 공 좀 튕겼던, 이제는 중년의 터널에 진입한 3040들이 극장으로 몰려갔다. 1주일 만에 55만 명이 봤단다. 나도 그랬다. 영화 오프닝과 함께 캐릭터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아…’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땐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한 채 한참을 앉아 있었다. 오랜만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이름 모를 누군가와 같은 시절을 떠올리고 있는 ‘집단 감동’의 순간이.소셜미디어엔 고이 간직하고 있던 오리지널 만화책 31권의 사진이 간증하듯 올라온다. 수십 번째 완독했다는 이들, 만화 속 캐릭터를 섬세하게 재해석하는 이들, 원작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이들로 넘쳐난다. ‘그깟 만화 보느라 허송세월한다’는 핀잔과 잔소리를 이겨냈던 우리는 세상 어딘가에서 각자 성실하게 드리블을 하다 결국 극장에서 만났다. 코트 위
프랑스 화가 다비드 자맹(사진)의 국내 두 번째 개인전 ‘다비드 자맹: 프랑스에서 온 댄디보이’ 얼리버드 입장권이 11일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인터파크 전시부문 예매 순위 1위를 차지했다. 다음달 4일 여의도 더현대 서울 ALT.1(알트원)에서 개막하는 이번 전시는 개막 전날인 3일까지 입장권을 최대 44% 할인해 판매 중이다. 얼리버드 입장권이 하루 만에 예매 순위 1위에 오른 건 이례적이다.인터파크 예매 순위에서 6주 연속 1위를 달렸던 ‘합스부르크 600년-매혹의 걸작들’은 자맹의 선전으로 2위로 밀려났다. 합스부르크 600년전과 자맹전은 모두 한국경제신문사가 주최하는 전시다.남프랑스에서 작업하는 자맹은 ‘행복을 그리는 화가’다. 자맹은 이번 전시에서 신작 100점을 포함해 그림 150여 점을 공개한다. 한국 전시를 기념해 그린 한국의 스타 5인을 그린 연작엔 벌써부터 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손흥민 김연아 김연경 박찬욱 윤여정 등이 포함돼 ‘화가가 해석한 한국 스타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기대가 많다.자맹의 이번 개인전은 ‘재관람 열풍’이 거세다. 2년 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내면 세계로의 여행’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자맹은 관람객들로부터 “마음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그림이다” “그림 속 주인공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치유가 됐다”는 등의 호평을 받았다.이번 전시는 작품 수가 이전 전시(52점)에 비해 세 배로 늘었다. 전시 장소 역시 개관 이후 지난 2년간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50만 명이 넘게 찾은 여의도 더현대 서울 4층 전시장으로 확장했다.한국경제신문과 비아캔버스가 주최하는
케이옥션이 1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사에서 올해 첫 경매를 진행한다. 이번 경매에는 이우환과 정창섭 천경자 최욱경 노은님 이숙자 등 한국 화단의 대표 화가 작품을 포함한 총 84점, 약 80억원 상당의 작품이 출품된다.이번 경매에는 한국 미술의 거장 이우환의 시기별 작품이 두루 나온다. 한국 추상미술의 효시인 김환기와 유영국, 박서보, 하종현, 김구림, 이건용, 이배, 전광영 등 한국 추상 화단의 주요 작가들의 작품이 경매에 오른다. 정창섭의 회화 정신이 본격적으로 표출되던 1970년대 작품 '원'과 '귀 78-W'도 출품된다. 이우환의 1977년작 '선으로부터 No.77072'는 추정가 7억∼10억원에 나온다. 지난해 11월 경매에 나왔다가 출품 취소된 김환기의 뉴욕시대 그림인 '북서풍 30-VIII-65'은 추정가 15억∼40억원에 새 주인을 찾는다. 유영국의 1987년작 'Work'는 삼각형으로 된 세 개의 봉우리, 능선의 곡선, 원근의 면, 그리고 다채로운 색 등 '산을 사랑한 화가' 유영국의 수작이다. 추정가는 3억원에서 5억원이다. 새해 첫 경매에 케이옥션은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여성작가 천경자, 최욱경, 노은님, 이숙자의 작품을 대거 내놓는다. 전통적인 한국화를 벗어나 환상적이고 몽환적 작품으로 미술계뿐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얻었던 천경자,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여성작가 최욱경, ‘생명의 화가’로 불리며 평생 물고기와 새, 꽃 등을 주제로 작업한 노은님, ‘보리밭 화가'로도 알려진 이숙자의 작품이 경매에 오른다. 최욱경의 작품 에서는 우리의 산과 바다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다양한 색채와 선으로 표
파블로 피카소의 딸 마야 루이즈-피카소가 지난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폐 질환으로 별세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6일 보도했다. 향년 87세.루이즈-피카소는 피카소의 공식적인 첫째 딸이다. 피카소가 첫 부인 올가 호흘로바와 결혼한 지 10년이 된 46세 때 만나 8년간 혼외 동거를 한 마리-테레스 발테르가 어머니다. 마야가 태어났을 당시 피카소는 큐비즘과 초현실주의에서 성과를 냈다. 마야는 그의 어머니와 함께 중년의 피카소에게 큰 영감과 기쁨을 준 존재였다. 피카소는 세 살이 된 마야를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렸다. ‘인형을 든 마야’와 ‘세일러복을 입은 마야’가 그런 그림이다. 피카소는 1953년 마야가 18번째 생일을 맞을 때까지 그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 후 새로운 연인을 만나 마야와 발테르를 떠났다. 부녀 사이는 그렇게 멀어졌다.하지만 마야는 피카소를 가장 잘 아는 가족으로 꼽힌다. 고인은 아버지의 작품에 관한 연구와 노력을 인정받아 프랑스에서 2007년 레지옹 도뇌르 기사 작위를 받았다. 상속받은 그림과 아버지의 유산 등은 미술사학자로 일하는 딸 비드마이어 루이즈-피카소가 관리하고 있다.피카소와 16년간 함께한 뒤 홀로 남겨진 마야의 어머니 발테르는 1977년 피카소가 죽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마야와 그의 가족들은 힘든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김보라 기자
파블로 피카소의 딸 마야 루이즈-피카소(사진)가 지난 20일 (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폐 질환으로 별세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6일 보도했다. 향년 87세. 루이즈-피카소는 피카소의 공식적인 첫째 딸이다. 피카소가 첫 부인 올가 코클로바와 결혼 10년째를 맞이하던 46세때 만나 8년 간 혼외 동거를 했던 마리-테레스 발테르가 어머니다. 마야가 태어났을 당시 피카소는 큐비즘과 초현실주의에서 획기적인 작업을 하던 때였다. 마야는 그의 어머니와 함께 중년의 피카소에게 큰 영감과 기쁨을 준 존재였다. 피카소의 자녀들 중 가장 자주 묘사됐다. 스페인 도시의 폭격에서 영감을 받은 걸작 ‘게르니카’(1937)를 그릴 때와 같은 시기에 피카소는 세 살이 된 마야를 그림의 모델로 삼았다. ‘인형을 든 마야’와 ‘세일러복을 입은 마야’ 등 딸의 초상화를 다수 그렸다. 피카소가 새로운 연인을 만나 마야와 발테르를 떠나면서 부녀 사이도 멀어졌다. 1953년 마야의 18번째 생일 전날 그린 마지막 초상화를 끝으로 마야는 아버지와 거리를 뒀다. 하지만 피카소가 죽은 이후 마야는 상속인으로 지정됐다. 피카소가 가장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던 때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만큼 피카소에 대한 사실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이 가장 많았던 여인이다. 피카소는 생전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다. 마야는 다른 자녀들과 상속에 관한 복잡한 협상 과정을 거쳐 상속인으로 결국 인정 받았다. 고인은 아버지의 유산에 관한 연구와 노력을 법정에서 증명해 프랑스에서 2007년 레지옹 도뇌르 기사 작위, 2016년 예술문학 훈장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상속 받은 그림과 아버지의 유산 등
올해 한국 미술시장의 키워드는 두 개였다. ‘이건희 컬렉션’과 ‘프리즈서울’.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기증작은 1년 내내 사람들을 미술관으로 불러들였다. 시장은 뜨거웠다. 지난 9월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 상륙한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는 서울의 ‘아시아 아트 허브’ 경쟁력을 시험하는 무대였다. 2020년 3849억원 규모이던 국내 미술시장은 지난해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내년에도 올해 같은 미술 호황이 지속될까. 대다수 전문가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경기침체 여파로 ‘돈줄’이 말라붙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잠시 내리막길을 탈 수는 있지만, ‘한국 미술시장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큰 물줄기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내년에도 ‘블록버스터’ 전시들이 한국에서 잇따라 열리는 이유다. ◆카텔란의 블랙코미디, 호퍼의 고독2023년을 여는 첫 블록버스터는 리움미술관 몫이다.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가이자 ‘악동’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출신 마우리치오 카텔란(62)의 개인전이다. 카텔란은 정치 종교 역사 문화 등 사회 전반의 부조리를 냉소와 해학, 풍자로 풀어내는 작가다. 황금으로 변기를 만든 뒤 ‘아메리카’란 제목을 달아 ‘아메리칸 드림’을 비틀고, 바나나를 전시장 벽에 붙여놓고선 ‘코미디언’이란 이름을 붙인다. 이 작가는 작품 가격이 치솟던 2011년 돌연 은퇴했다. 이번 전시는 카텔란의 국내 첫 개인전이자 2011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연 회고전 ‘ALL’ 이후 최대 규모다. 1990년대부터 최근에 만든 조각, 설치, 벽화 작품 등을 망라한다.봄이
서울 광화문 신문로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펼친 어머니 품과 같은 건축물이 있다. 한국 개신교 최초로 1887년 지어진 교회, 새문안교회다. 이 건물은 2019년 새롭게 태어났다. 기존 종교 건축이 높은 첨탑, 거대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목적으로 지어졌다면 이 건축물은 세상의 모두를 품는다는 의미를 담아 곡선을 살렸다. 아치형 게이트가 중앙에 마당을 만들어 시민 누구나 쉬어갈 수 있고, 작은 예배실 역시 개방된 문화공간으로 쓰인다. 정면에서 보면 가운데가 안쪽으로 움푹 들어가 있고, 이 여백을 좌우의 덩어리가 감싸 안는 형태다.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을 만큼 포근한 공간을 마주한다.국내 교회 건축의 권위자인 최동규 서인건축 대표와 이은석 한양대 교수가 준공하는 데까지 바친 시간만 9년 2개월. ‘어머니 교회’라 불리던 이 건물 설계는 역사적 의미를 살리고 이웃 사랑이라는 주제를 명확히 했다. 새문안교회가 가장 빛나는 시간은 밤이다. 외벽 곡면에 39개 창문이 마치 별빛을 흩뿌려 놓은 듯 빛난다. 39개 창문은 39장으로 구성된 구약성서를 뜻한다. 정면 곡면부 아래엔 27개의 유리창이 있는데 이는 신약을 의미한다고.김보라 기자
일본 전통예술 기법 중에 ‘긴쓰기(金ぎ)’라는 게 있다. ‘금으로 수리한다’는 뜻이다. 긴쓰기는 깨진 상태의 도자기를 송진이나 금으로 보수해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하는 방식이다. 깨지고 상처받은 흔적을 메움으로써 불완전한 삶의 빈자리를 채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긴쓰기를 뛰어넘어 깨진 도자기를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세계에서 주목받는 한국 작가가 있다. 2001년부터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로 세계적인 미술관과 비엔날레에서 ‘러브콜’을 받아온 이수경 작가(59)다.그는 도공의 가마에서 주워온 도자기 파편을 에폭시로 채우고 금박으로 덮어 조각으로 만든다. 고려 불상에 사용하는 금박이다. ‘번역된 도자기’란 이름은 이 작가가 오래전 이탈리아 도공들에게 백자에 관한 한국 시를 번역해 들려준 뒤 조선백자를 재현해달라고 요청한 데서 시작됐다.이 작가가 2017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내놓아 화제가 됐던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이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지난 15일 서울 성수동 더페이지갤러리에서 개막한 개인전에서다. 전시명이기도 한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은 높이가 5m에 달한다. 비엔날레 이후 작가가 개인 소장하다가 내년 미국의 한 미술관으로 옮겨지기 전 국내 미술 애호가들에게 선보인 것. 한국 땅에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다.이 작가는 “긴쓰기는 도자기를 단순히 수리하고 고치는 방식인 반면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는 각각의 문화와 역사가 깃든 도자기 조각들을 퍼즐 붙이듯 재창조하는 것”이라며 “깨진 걸 이어 붙이는 것은 서로 다른 것들을 충돌시킴으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정수리 근처 머리카락을 들춰보며 삐죽 솟은 새치를 찾게 될 줄 몰랐고, 오후가 되면 반쯤 감은 눈으로 모니터의 글자 크기를 최대로 키워야 겨우 뭔가 볼 수 있게 될지 몰랐다. 밥 먹을 때마다 립스틱과 함께 치실을 꼭 갖고 다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며, 자주 보는 사람들에게 실컷 소리 높여 재밌는 얘기라고 떠들다 어느 순간 ‘아, 이 얘기 전에 했었지’ 깨닫고 부랴부랴 화제를 돌리게 될 줄은, 나는 정말 몰랐다. 평생 관심도 없던 피부과 시술이나 영양제를 검색하게 된 것도 포함해서….누가 나이를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는가.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일은 생각보다 가혹하다.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결코 아니다. 일단 몸이 바뀌고, 체력이 달린다. 존재조차 잊고 있던 몸의 어떤 부분이 갑자기 아프기도 하고, 거뜬하게 했던 어떤 운동은 갑자기 공포의 대상이 된다. 그러면서 생활 반경이 바뀌고, 덩달아 생각의 종류와 범위도 달라진다.더 젊게 살아야겠다고 ‘억지로’ 하는 일은 더 비참한 결과를 낳는다. 요즘 애들 가는 곳에 가면 내내 불편하고, 요즘 애들 입는 옷을 입으면 우스꽝스러운 모습만 남는다. 요즘 애들의 말투는 매번 그 뜻을 생각하며 말하다 어색하고 바보스러운 발음만 생긴다. 이 ‘불편한 흉내 내기’ 때문에 더 빨리 늙을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그래서 결심했다. 기왕 먹을 나이, 제대로 먹어보자고. 이번 연말은 사람들을 만나 떠들썩한 시간을 보내는 대신 스스로의 감정을 좀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나이 먹는 것의 온갖 부정적인 것들 대신 좋은 점은 없을까, 몸의 변화 말고 보이지 않는 긍
목포는 최초의 자발적 근대항이다. 1897년 고종이 열었다. 부산항 인천항 원산항 등이 먼저 개항했지만 이들 항구는 모두 강화도 조약에 의해 강제로 열렸고, 목포항만 유일하게 고종의 칙령으로 개항했다. 당시 목포에 일본 영사관이 있었고,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도 있었다. 목포와 신의주를 연결하는 국도 1호선과 부산으로 가는 2호선도 이곳이 기점이었다. 일본인들은 여기서 ‘1흑(黑)3백(白)’을 자국으로 실어 날랐다. 1흑은 김, 3백은 쌀 소금 목화다.목포 구석구석엔 그런 역사가 흐른다. 새롭게 탄생한 재생공간이 아니더라도 시간의 궤적을 살피며 여행하기 좋은 도시다. 유달산 밑 볕이 잘 들고 멀리 바다가 보이는 평지에는 일본인 구역이 있었다. 조선인 구역은 산언덕 뒤편과 바다 앞 등으로 밀려났다. 목포역에서 10분 거리인 목포오거리가 여행의 시작점이다. 만호동, 유달동 일대 남촌은 적산가옥과 일본풍 건축물이 밀집해 있다. 지금도 잘 정돈된 일본식 정원과 가옥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최초의 근대식 건물인 옛 일본 영사관은 유달산이 주변을 감싸고 있고, 아래로는 일본인 주거지와 항구가 한눈에 보인다. 건물 뒤편엔 82m 길이의 방공호도 그대로 남아 있다.목포 어촌의 상징인 온금동, 서산동은 당시 삶과 애환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서산동 시화골목은 목포 어촌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곳이다. 시인과 화가, 주민들이 뜻을 모아 2015년부터 3년간 조성했다. 영화 속에도 나왔던 ‘연희네 슈퍼’를 시작으로 세 갈래 길이 나오는데 어느 골목으로 올라가도 ‘보리마당’과 만난다. 이 길에는 동네 할머니들이 직접 쓰고 그린 시와 그림이 붙어 있
필리핀 바다에는 ‘카피즈’라는 이름의 조개가 산다. 지구 유일의 투명 연체동물이다. 크고 납작하며 현지에선 ‘램피롱(LAMPIRONG)’이라고 불린다. 카피즈 조개는 자연이 빚어낸 유려한 색채와 얇은 두께 때문에 오랜 시간 조명 장식과 보석 재료, 벽지와 가구 등에서 많이 쓰였다. 19세기 스페인 점령 기간엔 카피즈 조개가 미닫이 창문에 유리 대용으로 사용되기까지 했다.카피즈 조개는 미적 가치 외에 바다 환경에도 크게 기여한다. 플랑크톤과 유기 폐기물을 잡아먹어 1시간에 최대 40L의 물을 정화한다. 그런 카피즈 조개의 개체수가 최근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자연적인 감소는 물론 어업기술 발달로 무분별하게 어획되고 있어서다. 필리핀에선 연간 수백t의 카피즈 조개가 잡혀 쓸 만한 껍데기는 비싸게 팔리고 나머지는 그대로 버려지고 있다.벨기에의 사회적기업가 셉 베르붐(32)은 사연 많은 카피즈 조개로 안경을 만든 디자이너다. 그는 ‘라이버블(Livable)’이라는 비영리단체를 세워 페루, 인도네시아 등 환경 이슈가 있는 지역에 찾아가 대표 토산품과 생물을 활용해 예술작품을 만든다. 정부 부처, 기업과 손잡고 지속가능한 상품을 제작하고 환경 문제와 관련한 이슈를 던진다.베르붐은 2020년 바다 생태계를 지키고 카피즈 조개를 보호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안경을 만들기로 했다. 원래 카피즈 조개가 안경 렌즈로 쓰였던 역사에 착안한 것. 베르붐은 세계 유명 안경 제작사에 협업 제의를 했지만 이를 유일하게 수락한 건 국내 안경 제작 스타트업 브리즘이었다.브리즘은 빅데이터와 3차원(3D) 스캐닝 기술로 개인 맞춤형 안경을 제작하는 회사로,
벨기에 출신인 1990년생 디자이너 셉 베르붐(사진)은 사회적 기업가다. 그는 환경 문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관계자를 만나고, 재료를 연구한다. 지역 예술가들과도 협업한다.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삼각주 중 하나인 브라질의 델타 두 파르나이바에서 3주 이상 머물며 ‘카르나우바 야자나무’를 연구했다. 극심한 가뭄에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이 나무는 주변의 흙을 촉촉하게 유지하고 온도를 유지하는 동시에 큰 비가 내릴 때 다른 식물을 보호하기도 한다. 베르붐은 이 나무의 잎을 햇볕에 말려 바구니, 테이블 장식품, 가방 등을 지역주민과 함께 만들었다.필리핀의 가난한 항구도시 라푸라푸에선 오래된 재활용 기업가와 손잡고 선박 밧줄을 재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낡은 밧줄을 그냥 버리는 게 아니라 지역의 직물 제조 커뮤니티에 제공해 새로운 수익원을 마련해주는 일을 한 것.페루 아마존의 고립 지역 우카얄리에선 이 지역 목재로 조각 작품을 만들고, 출판물을 제작해 세상에 알렸다. 벨기에에서 버려지는 갈대와 나무껍질 등을 활용해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커뮤니티 활동도 주도했다.베르붐은 “역사를 지닌 오래된 재료는 때로 혁신적인 디자인과 아이디어를 만났을 때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거나 그 본연의 가치를 다시 알릴 수 있게 된다”며 “전통적인 기술과 현대적 접근 방식 사이에서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인간과 환경에 더 나은 것을 창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김보라 기자
하늘 높이 뾰족하게 솟은 워싱턴 기념탑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의 상징이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리기 위해 1885년 지어졌다. 100년 넘게 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한 기념탑 옆엔 몇 년 전 청동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육중한 건물이 하나 들어섰다. 스미스소니언박물관 단지의 19번째 전시관인 ‘흑인역사박물관’이다.거꾸로 된 사다리꼴 덩어리를 층층이 쌓아올린 듯한 이 건축물은 자세히 보면 섬세한 문양들이 정교하게 빛을 반사한다. 한 판의 무게가 60㎏을 넘는 1200개의 화려한 주조 알루미늄 패널로 지어졌다. 전체적 형태는 나이지리아의 예술가 이세의 올로웨가 제작한 아프리카 요루바족 여인의 왕관 조각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건축가 데이비드 아디아예는 미국 흑인 노예 역사의 상징물을 찾기 위해 미국 남부 건축의 장식용 철 제품들을 연구해 건축에 접목했다. 건물 안에는 빛과 그림자의 유희가 다채롭다. 기둥도 없이 서로 연결된 채 자연광을 한껏 끌어당기는 이 건물은 노예해방과 인종차별 금지를 150년 넘게 외쳐온 미국 흑인사회의 내면과 닮아 있다.김보라 기자
40억 년 전쯤, 지구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물은 바위를 두드리며 산을 깎아 내렸고, 그 잔해를 아래로 아래로 밀어냈다. 수백만 개의 빗방울이 모여 강을 이뤘고, 물의 힘은 강해졌다. 강의 임무는 단 하나. 모든 것을 아래로 내려보내는 것이었다. 호수와 바다에 도달한 강물은 땅에서 쓸어온 것들을 쏟아내고 소멸했다.인간은 강을 따라 대륙을 탐험했다. 몸을 씻고, 목을 축였다. 강가의 비옥한 땅에 정착해 문명을 세우고 에너지와 식량을 생산했다. 강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지구는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리버>는 미국 브라운대 지구·환경 및 행성과학학부 교수이자 지리학자인 로런스 C. 스미스가 쓴 강에 대한 대서사다. ‘지리학자의 시선으로 보는 강의 두 얼굴’이라는 부제처럼 최초의 강이 형성된 시기부터 인류의 문명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강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두루 파고든다. 늘 그곳에 있기 때문에 현대인들이 과소평가하고 있는 강의 힘에 대해서도 역설한다.저자는 강이 인류를 있게 한 ‘자연 자본’인 동시에 ‘파괴와 점령의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역사적 전환점의 중심엔 늘 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도가 없던 시절, 정복자들은 강을 기준으로 땅을 갈랐다. 권력 과시 수단으로 강을 이용했다. 루비콘강을 건넌 카이사르, 델라웨어강을 건넌 조지 워싱턴, 뫼즈강을 건넌 히틀러가 그랬다.메콩강 삼각주에선 4년에 걸친 게릴라전이 이어졌고, 한 세기에 걸쳐 외국 해군은 양쯔강을 순찰하며 반란을 진압한 뒤 중국 내륙까지 힘을 과시했다. 이슬람국가(IS)는 유프라테스강을 중심으로 성장했고, 이들이 마지막까지 지킨 요새도 유프라테스강 유
국제갤러리가 첫 해외 지사를 프랑스 파리에 연다고 1일 밝혔다. 1982년 서울 인사동에 갤러리를 개관한 지 40년 만이다. 그동안 일부 갤러리가 미국 뉴욕, 중국 베이징 등에 지사를 낸 적은 있었지만 주요 갤러리가 파리에 지사를 세운 건 이례적이다.국제갤러리는 파리 방돔 광장에 파리 지사를 세우고 소속 작가와 프로그램을 현지 컬렉터와 미술관계자, 미술관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소개한다는 계획이다. 첫 작품으로 이우환, 하종현, 권영우, 김용익, 구본창, 로버트 메이플소프, 장미셸 오토니엘, 수퍼플렉스 등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내걸었다. 첫 둥지를 튼 방돔 광장은 파리 중심부의 명소로 인근에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센터 등 세계적 미술관이 즐비하다.송보영 국제갤러리 부사장은 “파리의 독보적인 예술 정체성과 유럽 시장으로의 확대 가능성 등을 눈여겨봐왔다”며 “이번 확장이 한국 미술의 가치를 유럽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김보라 기자
국제갤러리가 첫 해외 지사를 프랑스 파리에 연다고 1일 밝혔다. 1982년 서울 인사동에 갤러리를 개관한 지 40년 만이다. 그 동안 일부 갤러리가 뉴욕, 베이징 등에 지사를 낸 적은 있었지만 프랑스 파리에 지사를 세운 건 이례적이다. 국제갤러리는 파리 방돔 광장에 파리 지사를 세우고 소속 작가와 프로그램을 현지 컬렉터와 미술관계자, 미술관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소개한다는 계획이다. 유럽 기반의 작가들과도 긴밀히 협업해 국내 작가를 유럽 무대에 알리는 데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제갤러리 파리 지사는 최근 이우환, 하종현, 권영우, 김용익, 구본창, 로버트 메이플소프, 장-미셸 오토니엘, 수퍼플렉스 등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내걸었다.첫 둥지를 튼 방돔 광장은 파리 중심부의 명소로 인근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 센터, 오랑주리 미술관, 프티팔레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술관들이 즐비하다. 또 명품 브랜드들의 매장이 몰려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파리를 첫 해외 지사로 선정한 이유는 그 동안 국제갤러리가 프랑스 파리와 여러 인연을 맺어온 데다 최근 유럽에서 한국 미술과 작가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국제갤러리 측은 "권영우, 박서보, 하종현 등 단색화 작업에 대해 학문적, 미술사적 논의가 프랑스에서 활발한 데다 여러 아트페어에서 컬렉터들의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리가 세계 미술계에서 몇년 새로운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는 것도 한몫 했
루브르와 오르세, 오랑주리와 퐁피두센터. 프랑스 파리에는 전 세계 문화예술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미술관이 여럿이다.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이 이곳 미술관을 찾으며 글로벌 예술 도시 파리를 느끼고 즐긴다.‘월드 클래스 미술관’을 지천에 두고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프랑스 현지인과 파리지앵들은 사정이 달랐는데 지난해 5월부터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미술관이 등장하면서다. 세계적 명품 그룹 케링의 창업주이자 아트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가 만든 현대미술관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다. 1만여 점이 넘는 프랑수아 피노의 방대한 컬렉션을 볼 수 있는 공간이자 파리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핫 플레이스’다. 이곳은 코로나 이후 파리를 찾는 관광객의 ‘0순위 방문지’가 됐다. 프랑스 전역에서 찾아온 사람과 파리 시민들은 매일 건물 앞에 긴 줄을 서고 있다. 곡물저장소가 미술관으로부르스 드 코메르스는 원래 1763년 곡물저장소로 지은 건물이다. 네오 클래식 양식과 중앙의 넓은 원형의 평면, 화려한 돔이 특징이다. 1889년 상품거래소로 탈바꿈했고, 미술관 직전까지 상공회의소와 역사로 쓰였다. 겉모습은 이전과 같지만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쏟아지는 햇살과 압도적인 높이의 노출 콘크리트 벽면, 천장의 화려한 그림에 압도당한다. 두 세기에 걸친 건물의 역사를 담아 미술관으로 바꿔놓은 건 일본이 낳은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안도는 시적인 건축 스타일을 이 건물 안에 구현했다. 로마 판테온에서 영감을 얻어 높이 9m, 지름 30m의 실린더형 콘크리트벽을 내부에 세웠다. 외관의 옛 모습과 내부 난간, 기둥 등을 그대로 살리
영하 10도를 밑도는 11월의 미국 중부를 여행 중이다. 뉴욕의 야경, 캘리포니아의 햇살, 실리콘밸리의 혁신 기업들…. 내가 알던 미국과는 사뭇 다르다. 이곳엔 사람보다 소와 돼지가 더 많이 살고, 드넓은 땅은 오로지 곡물을 잘 키우기 위해 존재한다. 수확기가 막 지나 한겨울에 접어든 미국 중부는 파란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눈 덮인 땅 외엔 눈을 둘 곳조차 찾기 어렵다. 이런 곳에 살 수 있을까. 과연 누가 살기나 할까.네브래스카주와 아이오와주 등에서 농부들을 만나면 이런 생각은 완전히 사라진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4명 중 1명은 농민이다. 풀타임으로 일하는 ‘진짜 농부’ 대부분은 5~6대째 이어 농부의 길을 택한 사람들. 이들은 하나같이 ‘농업이 미국을 만들었고, 지금도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지키는 중심에 농업이 있으며, 앞으로도 농업이 미국의 핵심 산업이 될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을 갖고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많은 청년이 미국의 농촌에서 미래를 찾고 있다.미국의 역사가 그랬다. 미국의 산업은 19세기 말부터 수직 성장했고, 그 과정에 농업이 있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을 끝내고 노예를 해방한 인물로도 유명하지만, 위대한 업적 중 하나엔 ‘모릴법’이 있다. 1862년 링컨이 승인한 모릴법의 원래 명칭은 ‘모릴 토지 단과대학 법안’. 미국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제도이자 지금의 미국 대학 시스템을 만든 법이기도 하다. 링컨이 이끄는 연방정부는 국가 소유의 땅 3만에이커(약 1억2000만㎡)씩을 각 주에 기부하고, 땅을 기부받은 주는 토지를 팔아 대학을 짓도록 했다. 아이오와, 캔자스, 미시간, 미네소타, 미주리, 뉴저지, 펜실베이
빌럼 더코닝은 잭슨 폴록과 함께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거장이다. 1920년대부터 강렬한 추상화로 세계 미술계를 휩쓸었다. 그런 그에게 1953년 무명의 20대 화가가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재미있는 미술 프로젝트가 있으니 그림 한 점 기증해주세요.”더코닝은 젊은 예술가에게 작품 하나를 내줬다. 크레용과 유성연필, 잉크, 흑연으로 그린 것이었다. 몇 주 뒤, 이 젊은이는 ‘지워진 더코닝(Erased De Kooning)’이란 발칙한 제목을 단 텅 빈 그림을 금박 액자에 끼워 세상에 내놨다. 그리고 그 액자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로버트 라우션버그.’라우션버그(1925~2008·사진)는 이처럼 거장의 작품을 지움으로써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현대 미술사의 명장면을 새겨넣었다. 이후에도 그는 일상의 모든 재료를 작품에 넣었다. 그 덕분에 팝아트 등 현대미술의 기틀을 닦은 주역이자 미국의 첫 ‘미술올림픽’(베네치아비엔날레) 금메달(황금사자상·1964년) 수상자란 타이틀을 갖게 됐다.‘예술가이자 모험가’로 불리는 라우션버그의 1980년대 대표 작품 ‘코퍼헤드’ 연작 12점이 서울 용산 타데우스로팍갤러리에 걸렸다. 중년의 라우션버그가 칠레를 여행하다 구리 광산에서 전수한 기법으로 시도한 작품들이다. 60년간 멈추지 않은 예술혼라우션버그는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작가다. 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시대에 따라 방식은 변했지만 철학은 하나였다. ‘사회와 예술, 세계와 문화, 현실과 대중을 연결한다’는 것. 그는 “예술과 삶은 연결돼 있다”고 자주 말했다.라우션버그의 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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