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생각을 바꾸고, 글은 세상을 바꿉니다.
“무언가를 이뤄냈다는 성취감보다는 새로운 챕터 앞에 서있다는 설렘이 더 크네요.”올해 삼성호암상 예술상은 소프라노 조수미(64)에게 돌아갔다. 호암재단은 지난 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으로 표현되는 예술인은 조수미가 유일하다”며 “40년간 조수미가 우리나라 문화와 예술계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서양 클래식 음악계의 제왕 고(故)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극찬한 것으로 유명하다.프랑스 문화예술훈장 최고등급 ‘코망되르’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상과 훈장을 휩쓴 조수미지만 이번 호암상은 각별하게 생각했다. 그는 “제가 존 서더랜드의 노래를 듣고 성악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처럼 한 줄의 문장, 한 번의 공연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며 “(수상을 계기로) 음악세계를 가로막는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싶다”고 말했다.“음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고민하다가 클래식과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고자 했어요. 음악으로 향하는 문을 조금 더 따뜻하게 열어주려고 무대의 크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는데, 그런 고민의 시간을 알아준 것 같아서 감사할 뿐이죠.”그의 삶도 화려한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시작되지 않았다. 1983년 3월, 갓 스무 살의 조수미는 비 내리는 이탈리아 로마에 작은 가방 두 개를 끌고 홀로 도착했다. 낯설고 쓸쓸한 방 안에서 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어떤 고난 앞에서도 울지 않을 것. 약함과 외로움을 드러내지 말 것. 언어와 음악에 삶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으로 표현되는 예술인은 조수미가 유일하다. 40년 간 조수미가 우리나라 문화와 예술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1일 열린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6 삼성호암상 시상식’. 호암재단은 예술상 수상자인 소프라노 조수미의 선정 이유를 이렇게 썼다. 서양 클래식 음악계의 제왕이던 고(故)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으로부터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극찬을 받으며 등장한 조수미(64)는 지금도 음악을 넘어 세계의 평화와 대중과의 소통에 앞장 서고 있다. 시상식을 하루 앞두고 서울에 도착한 그를 만났다. 아르떼와의 지난 인터뷰 후 약 3개월 만이었다. 그 사이 조수미는 데뷔 40주년 기념 앨범을 냈고, SM클래식과의 전속 계약을 발표한 뒤 5월에만 네 번의 리사이틀을 열었다. 7월 열릴 ‘제 2회 조수미 콩쿠르’ 준비에도 여념이 없었다. 지난해 프랑스 문화예술훈장 최고등급 ‘코망되르’까지 전 세계의 상과 훈장을 휩쓴 그이지만 이번 호암상 수상은 조금 특별하다고 했다. “음악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삶이 고단한 사람들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일까 늘 고민했습니다. 누군가는 클래식과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죠. 처음부터 모두에게 말러나 슈트라우스를 들려줄 수는 없지만, 음악으로 향하는 문을 조금 더 따뜻하게 열어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대의 크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는데, 그런 고민의 시간을 알아준 것 같아서 감사할 뿐이죠.”고독이 빚어낸 거장그의 삶은 결코 화려한 무대 위 조명으로만 채워지지 않았다. 1983년 3월, 갓 스무 살의
지난 주말 폐막한 올해 칸 영화제의 ‘빅뉴스’는 박찬욱 감독이 한국인 최초로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에 위촉된 것이었다. 영화제가 중반을 향하던 5월 17일, 카트린 페가르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박 감독에게 문화예술 공로훈장을 수여했다. 프랑스 정부가 예술가에게 주는 최고의 찬사다. 한국경제신문 아르떼가 단독 입수한 장관의 수훈 연설문엔 히치콕, 니체, 소포클레스, 보들레르, 고다르가 소환됐다. 박 감독을 세계 영화사 계보에 당당히 올린 문화적 선언과 다름없었다. 한 나라의 문화부 장관이 다른 나라 예술가를 대하는 태도와 문장이 이토록 진심 어린 때가 있었던가. 이날의 연설문을 요약해 싣는다. 오늘 아침 이 자리에서 박찬욱 감독께 훈장을 드리는 것은 커다란 영광입니다. 동시에 수많은 미지(未知)와 스치는 것 같은 묘한 현기증마저 불러일으킵니다.박찬욱 감독에게 훈장을 수여할 준비를 한다는 것은 곧 영화의 깊은 질문을 탐험할 준비를 하는 일입니다. 또한 어떤 말로도, 어떤 시도로도 완전히 정의할 수 없는 작품 세계를 너무나 부족한 언어로 요약하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정념(情念)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과 가장 낮은 모습을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주름을 경건하게 펼쳐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박찬욱 감독의 삶 자체가 하나의 미학이기 때문입니다.그 미학은 1963년 8월, 서울에서 시작됩니다. 전쟁으로 상처 입은 도시였지만,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일어서 박찬욱 감독을 맞이할 준비가 된 도시였습니다. 부친은 건축을 가르쳤고 모친은 시인이었습니다. 주변에는 형태와 선, 언어, 그리고 침묵의 미학이 있었습니다. 이미
언제부터였을까. 지친 마음을 달래려 떠난 여행길에서조차 스마트폰의 차가운 불빛과 일상의 숨 가쁜 소음을 내려놓지 못하게 된 것은. 자극과 피로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모든 주파수를 끄고 대자연 속에 온전히 나를 안기는 ‘다정한 고립’일지도 모른다. 여기, 아마존보다 훨씬 먼저인 1억3000만 년 전부터 생명의 맥박을 이어온 거대한 세계가 있다. 짙푸른 남중국해와 초록빛 원시림이 맞닿아 태고의 신비를 나지막이 속삭이는 곳. 말레이시아 보르네오가 건네는 깊고 푸른 위로다.첫 번째 여정은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서 비행기로 50분, 보르네오의 심장인 다눔 밸리로 향한다. 활엽수들이 아파트 15층 높이로 솟구친 이 수직의 정글에서는 와이파이 신호 대신 새들의 주파수에 귀를 기울이는 사치를 누릴 수 있다. 다눔 밸리에선 오랑우탄과 눈을 맞추고, 거목에 올라 정글을 내려다보는 웅장한 체험이 기다린다. 거친 탐험 뒤엔 칠흑 같은 밤 정글을 누비는 진귀한 보물찾기가 기다린다. 숲의 주인들에게 사부작 다녀가는 조용한 손님이 될 기회다.100m 높이에 육박하는 거목들이 푸른 지붕을 이룬 이곳은 세계 탐조인이 평생을 그리워하는 ‘꿈의 성지’이자 새들의 거대한 전당이기도 하다. 코뿔새의 초연한 날갯짓과 물총새의 노랫소리를 가만히 좇다 보면, 왜 이곳이 지구상 가장 경이로운 섬이라고 불리는지 비로소 온몸으로 느껴진다.또 다른 여정은 코타키나발루 해안 너머, 딥테로카프 원시림이 남중국해를 품은 가야 아일랜드로 이어진다. 도심 공항에서 단 한 시간 만에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완벽하게 통제된 원시 자연으로 순간 이동하는 셈이다. 카약을
세계를 바라보는 미술관의 시선을 서구 중심에서 글로벌로, 남성 중심에서 여성과 소수자로 완전히 뒤바꾼 혁명가. 프랜시스 모리스(67)는 1987년 영국 런던 테이트미술관에 합류한 뒤 30여 년간 미술사의 견고한 벽을 허물었다. ‘테이트 모던’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미술의 성지로 일군 주인공이다. 테이트 모던의 탄생부터 성장의 모든 궤적엔 그가 있었다. 루이스 부르주아와 쿠사마 야요이 등을 발굴해 세계적인 거장으로 우뚝 세웠고, 미술관 최초로 ‘기후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예술의 사회적 책임을 역설한 것도 그다. 모리스는 지난 11일 서울 이화여대 캠퍼스 전역에서 열리는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2026 EMAP(Ewha Media Art Platform)-<천만은죽(千萬銀竹): 기후의 시간> 개막을 기념해 서울을 찾았다. 그는 2023년부터 3년간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다. 백남준 이후 두 번째 명예 석좌교수 자리에 앉았다. 그 인연으로 올해 EMAP의 기획 자문도 맡았다. 비디오 아트가 태동한 1960년대부터 동시대까지 아우르며 17개국 40개 팀의 국내외 작가를 소개하는 전시다. 테이트 역사상 첫 여성 관장이라는 무거운 직함을 내려놓고, 테이트 모던 명예관장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선 그에게 동시대 미술이 나아가야 할 이정표를 물었다.서울에서 틔운 생태학적 사유의 씨앗▶EMAP는 백남준 석좌교수를 기념해 2001년 시작됐습니다. 한국 대학이 여는 최초이자 유일한 국제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이죠. 벌써 15회째가 됐는데요. 올해의 주제 ‘천만은죽’이 가장 눈에 띕니다.“기후변화가 대기와 땅, 인프라, 몸, 바다에 이르기까지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는데 사람들은
제주시 조천읍엔 신화와 역사가 숨 쉬는 ‘돌의 성소(聖所)’가 있다. 100만 평의 드넓은 곶자왈에 20년 전 개원한 제주돌문화공원이다. 제주 사람들의 삶 속에 투영된 돌 문화를 집대성한 곳. 이곳엔 이 섬의 창조 신화인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서사가 흐른다. 억겁의 시간을 견뎌온 귀한 돌들이 이 공원의 주인이다. 돌에 소원을 빌고, 돌을 쌓아 집을 짓던 제주 사람들의 정체성을 오롯이 드러낸다.지난달 25일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에서 개막한 김용호 작가(70)의 사진영상전 <남국재견南國再見: 제주, 다시 보다-유현>은 제주의 자연이 축적한 시간의 층위를 다시 뒤집는다. 우리가 알던 제주의 얼굴을 완전히 낯설게, 깊이 마주하는 기록들이 펼쳐진다.김용호 작가는 40여 년 전 돌문화공원의 전신인 목석원 시절부터 이 장소를 찾았다. 당시 ‘아는 사람만 안다’던 제주 속 숨은 치유의 장소를 수십 번 마주했다. 그에게 이곳은 단순히 풍경을 찍는 장소가 아니라 지질학적 기억과 신화적 상상력, 민속적 정서가 응축된 복합적인 대상으로 다가왔다고. 그리고 스스로 질문했다. “우리가 잃어버린 한국적 아름다움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 모든 감각의 끝엔 우리가 잊고 있던 우리 아름다움의 본질, ‘유현(幽玄)’의 미학이 있었다.드러내지 않는 본질적 아름다움-유현(幽玄)그윽할 유, 검을 현. 유현의 미학은 과장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으나, 분명하게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뜻한다. 선명한 형상보다는 모호한 여운으로 남는 가득하고 고요한 신비로운 감각이란 이야기다. 예컨대 추사 김정희는 기운을 드러내기보다 여백 속에 숨길 것을 강조했다. 서경덕은 비어
제주시 조천읍엔 신화와 역사가 숨 쉬는 '돌의 성소(聖所)'가 있다. 100만 평의 드넓은 곶자왈에 20년 전 개원한 제주돌문화공원이다. 제주 사람들의 삶 속에 투영된 돌 문화를 집대성한 곳. 이곳엔 이 섬의 창조 신화인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서사가 흐른다. 억겁의 시간을 견뎌온 귀한 돌들이 이 공원의 주인이다. 돌에 소원을 빌고, 돌을 쌓아 집을 짓던 제주 사람들의 정체성을 오롯이 드러낸다.지난달 25일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에서 개막한 김용호 작가(70)의 사진영상전 ‘남국재견南國再見: 제주, 다시 보다-유현’은 제주의 자연이 축적한 시간의 층위를 다시 뒤집는다. 우리가 알던 제주의 얼굴을 완전히 낯설게, 깊이 마주하는 기록들이 펼쳐진다.김용호 작가는 40여 년 전 돌문화공원의 전신인 목석원 시절부터 이 장소를 찾았다. 당시 ‘아는 사람만 안다’던 제주 속 숨은 치유의 장소를 수십 번 마주했다. 그에게 이곳은 단순히 풍경을 찍는 장소가 아니라 지질학적 기억과 신화적 상상력, 민속적 정서가 응축된 복합적인 대상으로 다가왔다고. 그리고 스스로 질문했다. “우리가 잃어버린 한국적 아름다움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 모든 감각의 끝엔 우리가 잊고 있던 우리 아름다움의 본질, ‘유현(幽玄)’의 미학이 있었다. 드러내지 않는 본질적 아름다움-유현(幽玄)그윽할 유, 검을 현. 유현의 미학은 과장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으나, 분명하게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뜻한다. 선명한 형상보다는 모호한 여운으로 남는 가득하고 고요한 신비로운 감각이란 이야기다. 예컨대 추사 김정희는 기운을 드러내기보다 여백 속에 숨길 것을 강조했다. 서경덕은
세계를 바라보는 미술관의 시선을 서구 중심에서 글로벌로, 남성 중심에서 여성과 소수자로 완전히 뒤바꾼 혁명가. 프랜시스 모리스(67)는 1987년 영국 런던 테이트미술관에 합류한 뒤 30여 년간 미술사의 견고한 벽을 허물었다. ‘테이트 모던’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미술의 성지로 일군 주인공이다. 루이스 부르주아와 쿠사마 야요이 등을 발굴해 세계적인 거장으로 우뚝 세웠고, 미술관 최초로 ‘기후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예술의 사회적 책임을 역설한 것도 그다.모리스는 지난 11일 서울 이화여대 캠퍼스 전역에서 열리는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2026 EMAP(Ewha Media Art Platform)-<천만은죽(千萬銀竹): 기후의 시간> 개막을 기념해 서울을 찾았다. 그는 2023년부터 3년간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다. 백남준 이후 두 번째 명예 석좌교수 자리에 앉았다. 그 인연으로 올해 EMAP의 기획 자문도 맡았다. 비디오 아트가 태동한 1960년대부터 동시대까지 아우르며 17개국 40개 팀의 국내외 작가를 소개하는 전시다. 테이트 역사상 첫 여성 관장이라는 무거운 직함을 내려놓고, 테이트 모던 명예관장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선 그에게 동시대 미술이 나아가야 할 이정표를 물었다.▷EMAP는 백남준 석좌교수를 기념해 2001년 시작됐습니다. 한국 대학이 여는 최초이자 유일한 국제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이죠. 올해의 주제 ‘천만은죽’이 가장 눈에 띕니다.“기후변화가 대기와 땅, 인프라, 몸, 바다에 이르기까지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는데 사람들은 그걸 잘 인지하지 못하죠. ‘천만은죽’은 장대비를 ‘은빛 대나무’에 비유한 고전문학의 표현에서 가져온 제
올해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문화예술 축제 ‘베네치아 비엔날레’(5월)와 ‘아비뇽 페스티벌’(7월)엔 공통분모가 하나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사진)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다.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원작 낭독 공연이 올여름 아비뇽 페스티벌 공식 초청 프로그램에 이름을 올렸다. 8일(현지시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조직위원회는 오는 7월 4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세계 최대 공연예술 축제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에 <작별하지 않는다> 낭독 공연 등 한국 공연예술 9개 작품을 포함했다고 발표했다. 한국 작품이 공식 초청된 것은 1998년 ‘아시아의 열망(Désir d’Asie)’ 이후 28년 만이다. 이번 페스티벌은 한국어를 ‘초청 언어’로 선정했다. 한국 공연예술의 창작 역량과 다양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작별하지 않는다> 낭독 공연에는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한국 배우 이혜영이 출연한다. 아비뇽 페스티벌과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가 공동 기획한 작품으로, 오는 10월 서울에서 열리는 SPAF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기반으로 이탈리아 연출가 다리아 데플로리안이 창작한 신작 ‘끔찍한 고통 그리고 사랑(The dolore terrible e l’amore)’도 이번 축제에서 발표된다. 최근 미국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작품이 서로 다른 형식의 공연으로 확장되며 전 세계 관람객을 만나는 것. 이 밖에 ‘연극계 노벨상’인 국제 입센상 수상에 빛나는 구자하 작가의 ‘쿠쿠’, ‘한국 연극의 역사’, ‘하리보 김치’도 아비뇽
현대차 정몽구재단이 사회적 난제를 해결할 기업가를 육성하기 위해 ‘현대차 정몽구 안트러프러너십’ 프로젝트를 가동한다고 1일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에 재단이 운영해온 다양한 창업지원 사업을 통합 개편한 것이다. 향후 5년간 250억원을 투입해 임팩트형 및 기업가형 연구자 400명을 육성하고 일자리 3400개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프로젝트는 ‘CMK 임팩트프러너’와 ‘CMK 그린 소사이어티’로 구성된다. CMK 임팩트프러너는 혁신적 비즈니스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가를 육성하는 사업이다. 법인 설립 3년 미만 초기 트랙, 7년 미만 성장 트랙까지 단계별로 맞춤 지원하는 기존 ‘H-온드림 스타트업 그라운드’에서 사업명을 바꾸고 청소년 창업캠프·대학생 대상 예비창업 트랙·중장년 시니어 트랙을 신설했다.CMK 그린 소사이어티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기업가형 연구자를 육성하는 사업이다. 연구실의 기후 테크가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5년간 120억원을 투입해 연구자 45명을 육성한다. 정무성 재단 이사장은 “조직의 외형적 성장보다 혁신을 이끄는 사람 본연의 역량 강화에 지원의 방점을 뒀다”며 “창업가들이 사회 난제를 해결하는 체인지메이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평생 펠로십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김보라 기자
3월 21일 오후 8시 서울 광화문광장. 이곳은 대한민국 역사의 현장을 넘어 지구촌 최대 ‘빛의 광장’이 된다. 방탄소년단(BTS)이 경복궁이라는 민족의 성소(聖所)를 무대 삼아 선보일 컴백 공연이자 새 앨범의 이름은 ‘아리랑(ARIRANG)’. K팝 왕좌의 귀환을 넘어 지난 13년간 그들이 걸어온 ‘정신적 순례’가 완성되는 역사적 순간이 다가온다.우리는 기억한다. 10년 전, 앨범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던 소년들을. 서구적 자아의 상징이자 깨뜨려야 할 구속과 방황의 껍데기인 ‘데미안의 알’을 깨고 나온 7명의 완전체는 온 우주에 찬란한 빛을 뿌리며 이날 다시 태어난다.BTS의 성공은 결코 매끈하게 다듬어진 ‘완성형 아이돌’의 모습에 있지 않다. 사랑과 자아, 내면의 어둠과 성공 뒤에 있는 불안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아미(ARMY)와 함께 성장해 온 ‘불완전한 청춘’의 서사가 언어와 국경을 초월했다. 3000만 명이 넘는 ‘아미’들은 BTS 멤버들과 환희와 불안, 고통의 순간까지 서로를 지키며 함께 걸었다. BTS가 곧 아미요, 아미가 곧 BTS인 전대미문의 팬덤을 만들어냈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위로가 되는지를 BTS와 아미는 스스로 증명했다.3년9개월 만에 군 복무를 모두 마치고 돌아온 BTS가 선택한 건 왜 ‘아리랑’이었을까. 이별과 그리움, 불굴의 생명력을 담은 아리랑은 월드 스타가 된 BTS가 한국, 한국인이라는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겠다는 강력한 귀환의 메시지다. 600년 넘게 이어져 온 우리 소리의 원형이자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아리랑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민족의 한과 흥
1983년 3월 28일 새벽 3시.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한 스물한 살 조수미는 차가운 공항 의자에 앉아 노트에 다섯 가지 다짐을 썼다. ‘어떤 고난도 꿋꿋이 이겨내며 약해지거나 울지 않을 것, 늘 도도하고 자신만만할 것, 어학과 노래에 온통 치중할 것, 항상 깨끗하고 자신에게 만족한 몸가짐과 환경을 지닐 것, 말과 사람을 조심하고 말과 행동을 분명히 할 것.’신이 허락한 악기, 자신의 목소리를 믿고 써내려간 이 약속은 스스로를 향한 엄숙한 기도와도 같았다. 이후 조수미는 40년간 쉼 없이 갈고닦았다. 서울대 수석 입학 후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단숨에 두각을 나타냈다. 1986년 베르디 ‘리골레토’에서 질다 역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당대 최고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으로부터 “신이 내린 목소리,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재”라는 극찬을 받으며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했다.조수미의 위대함은 자신의 목소리를 지켜낸 영리한 선택에 있다. 카라얀이 제안한 ‘노르마’와 솔티의 ‘투란도트’ 같은 중량감 있는 배역을 “목소리가 상할 수 있고, 내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중히 거절한 게 그 예다. 자신을 ‘제3의 눈’으로 냉정하게 바라보며 ‘독이 든 성배’를 마시지 않았다. 40년 넘는 긴 세월 최정상의 기량을 유지한 비결이다.세계 오페라 무대를 누비는 프리마돈나의 마음은 극장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크로스오버 앨범과 드라마 OST, 월드컵 공식 음악 등을 넘나들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국가적 행사에는 주요 공연을 연기하고 달려온 게 수차례. “나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40주년 조수미의 고백 #1] ▶▶▶ "브라질 빈민촌에서의 하룻밤, 죄책감이 나를 바꿨다"나는 영원히 빛을 내는 사람조수미는 아티스트를 “끊임없이 빛을 내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옛날에는 그 빛이 활활 타올랐다면, 지금은 은은하게 타고 있다고. 세상은 결코 혼자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걸 조수미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빛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 성냥처럼 불을 탁, 켜주는 역할도 마다 않는다. 그는 인터뷰 중 “아티스트가 완벽하려면 한없이 겸손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수많은 무대에서 불을 밝히며 깨달은 삶의 진리다.▷무대 뒤에서 힘든 순간도 많았을 테죠.아티스트에겐 먹는 것, 자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웃음) 집 떠나면 고생인데, 호텔 방을 집처럼 생각하고 살아야 하니까요. 매일이 고생이랄까요. 근데 성격 하나는 되게 잘 태어난 것 같아요. 낙천적이어서 웬만해선 포기하지 않는 스타일이고, 욕심도 많아서 어릴 때부터 지는 걸 엄청 싫어했어요. 초창기에 유럽에 공연하러 가면 조그마한 동양인 여자가 걸어 다닐 때마다 ‘웬 예쁜 강아지가 걷는 것’처럼 여기더라고요. 그런 시선 때문에 더 정신력을 완벽하게 무장하고 다녔죠. 무엇보다 나의 재능을 믿었어요. ‘난 재능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연습만 잘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두려운 것도 없었어요. 나는 너무 잘하고, 게다가 열심히 하기 때문에 ‘잘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했어요.▷성공 가도만 달린 건 아니었잖아요.대수롭지 않았어요. 만약 콩쿠르에서 2등 하면? 물론 억울하죠. 그래도 오케스트라에 가서 고맙다고 꼭 얘기했어요. 캐스팅도 그래요.
무대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작은 무대일수록 누군가에게 ‘인생 공연’이 될 확률이 높죠. 그래서 각별해요. 엄마가 항상 하시던 말이 있어요. “수경아, 큰 무대든 작은 무대든 다 똑같아. 왜냐면, 네가 거기 있으니까.”신이 허락한 악기, 조수미는 신이 준 목소리를 40년간 쉼 없이 갈고닦았다. 바람조차 숨죽이게 하는 청아한 고음으로 수많은 이를 울리던 기적의 시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노력은 재능을 이길 수 없다”는 잔인한 말이 진리로 여겨지는 성악의 영역에서, 역설적으로 그 귀한 재능을 지키기 위해 절제와 고독을 친구 삼아온 프리마돈나의 나지막한 고백을 들었다.조수미에겐 집이 없다. 아니다. 그에겐 어디든 집이다. 무대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집이 됐다. 혈혈단신 이탈리아로 떠난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원조 노마드’의 삶을 지탱하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 거기엔 노래가 있었고, 신념이 있었다. 그리고 작은 체구의 아시아 여성이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재능과 이를 낭비하지 않으려는 열정까지.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혹독한 시기에조차 그의 눈은 타인, 나아가 국가와 인류에게로 향했다.데뷔 40주년 기념 앨범 녹음을 위해 지난 1월 말 서울에 온 조수미는 바쁜 일정을 쪼개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를 찾았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곳이 나의 집”이라고 말하는 그는 요즘 포르투갈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평생 나의 집은 한국이다”라며 미소 지었다. ▷올해 데뷔 40주년입니다. 소감이 궁금합니다.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 그 속도에 깜짝 놀라곤 해요. 너무 빨라서요. 지난 10년간 얼마나 많은 것을 이
230여 년 전, 프랑스혁명의 거친 물결 속에 왕실 보석이 자취를 감췄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보석 약탈 사건으로 기록된 1792년 9월의 이 사건은 파리 콩코르드광장 옆, 지금의 오텔드라마린에서 벌어졌다. 그로부터 두 세기 넘게 흐른 지금, 왕실 보물창고이던 그 자리에 보석들이 돌아왔다.카타르 왕실의 알 타니 컬렉션과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V&A)이 공동 기획한 ‘왕가의 보석들(Dynastic Jewels): 권력, 명성 그리고 열정 (1700~1950)’ 전시 이야기다. 이번 전시는 역사적 보석들이 어떻게 권력의 상징이 됐는지, 신흥 부호들이 보석을 통해 어떤 명성을 얻고자 했는지 그리고 왕실의 사적인 사랑이 어떻게 보석에 박제됐는지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역사는 또 한번 되풀이됐다. 애초 전시의 핵심이던 외제니 황후의 진주 티아라 등 석 점은 작년 루브르박물관 도난 사건으로 인해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140여 점의 보석이 모인 이번 전시는 영국 왕실 컬렉션, 루브르, 까르띠에·쇼메·멜레리오·반클리프아펠의 헤리티지 컬렉션에서 대여한 작품으로 이뤄졌다. V&A와 알 타니 컬렉션 소장품 대부분은 파리에서 처음 선보인 것이다.인간은 왜 이토록 작고 단단한 광채에 자신의 영혼과 역사를 투영해 왔을까. ‘소장품이 된 보석’은 누군가의 권력이었고, 때론 간절한 사랑의 증표였고, 어쩌면 생존을 위한 마지막 자산이었을지도 모른다. 수백 년의 풍파 속에서 주인은 바뀌고 왕조는 몰락했을지언정, 그 찬연한 빛만은 박제된 채 살아남아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오늘날 우리가 보석을 탐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 희소성 때문이 아니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무한한 시
이 꽃과 선은 무슨 의미일까. 그림을 마주하면서 우리가 본능적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원로 화가 김홍주는 담담하고 집요하게 말한다. “거기에 철학이나 메시지는 없다”고. 의미를 강요받는 시대, 아무것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김홍주의 50년 예술 여정을 따라가봤다.◇‘꽃의 화가’ 50년 여정김홍주(83) 화백은 꽃잎을 그리는 작가다. 세필로 점과 색을 쌓아올린 그의 그림은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사뭇 다르다. 작가가 세필 노동에 들인 시간이 길어서일까. 보는 이도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꽃의 화가’, ‘세필화가’로 알려진 그이지만, 사실 그의 젊은 시절은 실험미술에 가까웠다. 서울 대치동 S2A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홍주 개인전 <김홍주: 표면에 남다>에서는 17점의 작품을 통해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림 세계가 한 눈에 펼쳐진다.김홍주 화백의 그림이 전시될 때 가장 낯선 것이 하나 있다. 프레임이 없다. 작업할 때도 캔버스를 팽팽하게 지지해주는 스트레처(나무틀)를 거부하고 바탕 처리가 되지 않은 천 위에 직접 붓을 댄다. 고정되지 않은 캔버스 위를 지나간 세필의 흔적들은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무제’라는 제목을 단 그의 작품들은 지독한 노동의 결과다. 멀리서 보면 풍경이나 꽃처럼 보이는 형상은 한 걸음 다가갈수록 무수한 선의 집합체로 해체되고 다시 만난다. 얇은 천 위에 겹겹이 쌓아 올린 수만 번의 붓질, 단순히 대상을 정교하게 만들기 위한 세필이 아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수천수만 번 반복하는 과정에서 자아는 사라지고 오직 행위만 남는다
이 꽃과 선은 무슨 의미일까. 그림을 마주하면서 우리가 본능적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원로 화가 김홍주는 담담하고 집요하게 말한다. “거기에 철학이나 메시지는 없다”고. 의미를 강요받는 시대, 아무것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김홍주의 50년 예술 여정을 따라가봤다. 김홍주(83) 화백은 꽃잎을 그리는 작가다. 세필로 점과 색을 쌓아올린 그의 그림은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사뭇 다르다. 작가가 세필 노동에 들인 시간이 길어서일까. 보는 이도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꽃의 화가’, ‘세필화가’로 알려진 그이지만, 사실 그의 젊은 시절은 실험미술에 가까웠다. 서울 대치동 S2A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홍주 개인전 <김홍주: 표면에 남다>에서는 17점의 작품을 통해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림 세계가 한 눈에 펼쳐진다. 김홍주 화백의 그림이 전시될 때 가장 낯선 것이 하나 있다. 프레임이 없다. 작업할 때도 캔버스를 팽팽하게 지지해주는 스트레처(나무틀)를 거부하고 바탕 처리가 되지 않은 천 위에 직접 붓을 댄다. 고정되지 않은 캔버스
‘당신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한국 현대미술의 중추인 서도호 작가가 30년 넘게 던져온 질문이다. 어느 시기, 누구와 함께, 어떤 시절을 통과했느냐에 따라 ‘그 집’의 의미는 달라진다. 집은 정체성의 근원이자 기억의 저장소다.지난해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장장 6개월간 이어진 대규모 개인전 ‘제네시스 익스비션-서도호: 워크 더 하우스(Walk the House)’를 마친 서 작가를 그의 집 인근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올해 8월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런던 북동부 이즐링턴의 조용한 주택가. ‘DO HO Limited’라고 쓰여 있는 문을 열자 그의 스튜디오가 나타났다. 한 방엔 사람 뒤에 또 사람, 그 사람 뒤에 또 사람이 이어지는 드로잉이 벽면 가득하다. 또 다른 방에는 색색의 실과 재봉틀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테이트모던의 서도호 개인전은 여러 기록을 남겼다. 도록은 품절 사태가 벌어져 세 차례 더 찍었고, 1만2000부 이상 판매됐다. 2025년 5월 1일 시작해 10월 19일 끝나기로 한 전시 기간도 1주일 연장됐다. 이 전시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관람자들의 태도. 체류 시간이 다른 전시에 비해 압도적으로 길었다. 40분이 넘는 영상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관람객, 한번 지나갔던 동선을 거꾸로 다시 걷거나 여러 번 다른 동선으로 이동하는 사람들까지…. 서 작가도 그런 모습에 조금 놀랐다고 했다.▷런던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마무리한 소감이 어떤가요.“미국과 아시아 곳곳에서 전시를 많이 했지만, 런던 전시는 조금 특별했습니다. 가족들이 쉽게 갈 수 있었기 때문이죠. 두 딸은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아빠가 런던의 미
1851년 영국 런던의 하이드파크에 철골과 유리로 된 거대한 크리스탈 궁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 공의 주도로 인류 최초의 박람회인 만국박람회(The Great Exhibition)가 이곳에서 열렸다. 목표는 분명했다. 박람회의 수익금으로 예술과 산업을 결합한 박물관을 세우고자 한 것. 단순히 귀족의 수집품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들과 제조업 종사자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 영국의 디자인 수준을 높이겠다”는 뜻이 확고했다. ‘모두를 위한’ 실용적이고 교육적인 목적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빅토리아앤앨버트(V&A) 뮤지엄의 개관으로 현실이 됐다. 170년 넘게 세계 최고 공예박물관으로 자리 잡게 한 위대한 유산이다. 그 유산은 ‘최초’의 역사를 여러 번 쓰게 했다. V&A는 세계 최초의 박물관 카페가 1868년 문을 열어, 누구나 편히 박물관을 찾아 쉬거나 대화할 수 있게 됐다. 세계 최초로 가스등을 박물관에 설치, 야간 개장을 시작해 낮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퇴근 후에도 박물관을 찾아올 수 있도록 개방했다. 전 세계 거대한 건축물이나 조각을 볼&n
라면 수출액이 11년 연속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고, 구글 레시피 검색에서 ‘비빔밥’이 1위에 오르는 요즘. 할리우드 셀럽인 귀네스 팰트로가 집에서 김치를 담그는 영상조차 낯설지 않다. 미국 뉴욕을 열광시킨 기사식당, 한국식 치킨 열풍, 유네스코가 인정한 ‘장 담그기 문화’까지 우리의 음식 문화가 세계에 번져가고 있다. 여기서 질문. 이런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한국의 음식이 ‘미식 문화’로서 뿌리내릴 수 있을까.일본의 스시가 1980년대 경제 전성기와 맞물려 정부 주도의 국가 전략으로 서구 엘리트층을 중심으로 번져 나갔다면 한식은 전혀 다른 방식의 길을 걷고 있다. 애초에 드라마와 영화, SNS를 타고 아래에서 위로 확산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놀이’와 ‘트렌드’로 소비되고 있는 한식을 미식의 경지로 끌어올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미식의 수도이자 파인 다이닝의 정점에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 우리의 맛을 알리고 있는 셰프들을 만났다.서울 합정동의 작은 가게에서 시작한 돼지곰탕 ‘옥동식’은 미국 뉴욕, 로스앤젤레스, 일본 도쿄에 이어 올겨울 파리 중심부에 입성했다. 맑은 국물의 돼지곰탕 한 그릇을 먹기 위해 파리지앵들이 한겨울 긴 줄을 서는 풍경이 매일 펼쳐진다. 미식의 영역을 경험 디자인으로 끌어올린 프랑스의 다이닝 ‘발보스테’는 명품 브랜드들이 줄 서는 혁신의 아이콘이 됐다. 이를 이끄는 한국인 여성준 셰프는 우리의 식재료와 한국 고전 속 이야기들을 접목하며 세상에 없던 맛을 끌어내 소개한다. 파리 한복판 5성급 호텔에선 김나래 수석파티셰가 프랑스인들의 연말연시 ‘디저트 문화’를 책임
18세기 조선의 이름 없는 도공이 빚은 ‘백자 달항아리’, 그리고 20세기 거장 김환기의 ‘푸른 점화’. 두 작품 사이엔 200년이라는 시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뿌리는 하나다. “나의 예술은 모두 우리 도자기에서 나왔다”고 말한 김환기 선생은 평생에 걸쳐 달항아리의 둥근 곡선을 점과 선으로 승화했다. 지금 그 두 점은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그것도 미국 땅에서.워싱턴DC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NMAA)에서 오는 2월 1일까지 열리는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 전시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기증품으로 구성된 국외순회전의 첫 번째 전시다. 3월에 시카고미술관으로, 9월에는 런던 대영박물관으로 여행을 떠난다. 400여 점의 국보급 작품으로 이뤄진 이번 전시는 단순한 전시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삼국시대 금동불상부터 조선의 인왕제색도, 현대의 김환기 박수근에 이르기까지 1500년 한국 미술사를 관통하는 걸작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어서다.K컬처가 전 세계에 확산한 지 수년째지만, ‘한국 문화의 원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그동안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K팝 가수들의 화려한 에너지, 영화와 드라마의 세련된 연출력이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지 못했다. 수천 년간 응축된 ‘한국의 미학적 정수’가 수세기에 걸쳐 도예로, 회화로, 조각으로 진화해 왔다는 사실을 이번 전시는 대서사로 풀어낸다. “아이돌 그룹의 군무가 K컬처의 꽃이라면, 곡선의 미학과 미니멀리즘이 살아 있는 한국의 예술 작품들은 그 뿌리에 가깝다”는 현지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문화예술이 곧 국격”이
18세기 조선의 이름 없는 도공이 빚은 ‘백자 달항아리’, 그리고 20세기 거장 김환기의 ‘푸른 점화’. 두 작품 사이엔 200년이라는 시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뿌리는 하나다. “나의 예술은 모두 우리 도자기에서 나왔다”고 말했던 김환기 선생은 평생에 걸쳐 달항아리의 둥근 곡선을 점과 선으로 승화했다. 지금 그 두 점은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그것도 미국 땅에서.미국 워싱턴 D.C.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NMAA)에서 오는 2월 1일까지 열리는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 전시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기증품으로 구성된 국외순회전의 첫 번째 전시다. 3월엔 시카고미술관으로, 9월엔 런던 대영박물관으로 여행을 떠난다. 400여 점의 국보급 작품으로 이뤄진 이번 단순한 전시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삼국시대 금동불상부터 조선의 인왕제색도, 현대의 김환기·박수근에 이르기까지 1500년 한국 미술사를 관통하는 걸작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어서다. K컬처가 전 세계에 확산한 지 수년 째이지만, ‘한국 문화의 원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그 동안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nbs
선한 눈망울과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 고(故) 안성기의 영정 사진은 1987년, 그가 서른 아홉 살이던 해 연세대 신촌 캠퍼스에서 찍은 사진이다.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 촬영장에서, 사진작가 구본창이 기록했다.구본창 작가와 안성기 배우는 1982년 처음 만났다. 역시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 촬영장에서였다. 독일 유학 중이던 구본창 작가가 잠시 한국에 들어와 친구였던 배창호 감독의 일터를 찾아간 게 인연이 됐다. 이후 구본창 작가는 안성기 배우의 모습을 여러 차례 카메라에 담았다. 어떤 배역을 맡아도 감춰지지 않던 그의 깊고도 고요했던 순수함을 구본창 작가는 흑백 사진으로 남겼다. 영정사진을 미처 마련하지 못했다는 유가족의 연락을 받고, 요며칠 구본창 작가는 과거의 사진들을 모두 꺼내보았다. 그중 고인의 부인인 오소영 씨가 가장 좋아했던 사진이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하게 되었다. "인생의 유한함을 뼈저리게 느낀다"는 구본창 작가가 40년이 넘은 고인과의 인연을 회고하며 아르떼에 공개한 그 시절의 안성기를, 지금 다시 만난다. ▶[부고] '국민배우' 안성기의 죽음, 한 세대가 썰물처럼 빠져 나가다▶[부고] '시대의 얼굴'로 살아온 69년…국민배우 안성기 별세
70년의 시간을 사이에 둔 두 예술가가 만났다. 시대를 초월한 철학으로 현대 미술사를 새로 쓴 거장 이우환(90), 그리고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가 주목하는 작곡계의 신성 이하느리(20)다. 지난해 12월 13일과 14일 부산에서 열린 부산시립미술관의 ‘이우환 공간 1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음악회 <보는 소리, 듣는 빛>에서다. 이 낯선 조합은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있는 그대로의 돌, 정지한 점과 흐르는 붓, 빈 공간에 균열을 내는 사물. 이우환의 작품은 그것이 놓이는 공간과 관계를 맺고 공명한다. 이하느리의 음악은 어떤가. 클래식 음악 악기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소리와 낯선 템포들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소리의 세계로 이끈다. 여백을 그리는 화가, 침묵을 만드는 작곡가는 이 지점에서 조우했다. 이번 기획은 10년 전 부산시립미술관에 건립된 상설전시관 ‘이우환 공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첫날은 이우환 공간 2층에서, 둘째날은 부산콘서트홀 챔버홀에서 같은 프로그램으로 연주됐다. 총 4개의 곡으로 채워진 공연의 주제는 소리와 침묵. 이하느리는 이우환의 작품과 어울리는&
‘당신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한국 현대미술의 중추인 서도호 작가가 30년 넘게 던져온 질문이다. 어느 시기, 누구와 함께, 어떤 시절을 통과했는지에 따라 ‘그 집’의 의미는 달라진다. 집은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를 정의하는 정체성의 근원이자 기억의 저장소다. 지난해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장장 6개월 간 대규모 개인전 <제네시스 익스비션-서도호: 워크 더 하우스Walk the House>를 마친 서도호 작가를 늦은 가을, 그가 살고 있는 런던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올해 8월,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서도호 작가(62)는 2010년부터 런던에 살고 있다. 서울, 뉴욕, 베를린 등 5개 도시를 거쳐 여섯 번째 거주지다. 런던 북동부 이즐링턴의 조용한 주택가에 ‘DO HO Limited’라 쓰여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의 스튜디오가 나타났다. 한 방엔 사람 뒤에 또 사람, 그 사람 뒤에 또 사람이 이어지는 드로잉이 벽면 가득하다. 또 다른 방에는 색색의 실과 재봉틀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테이트 모던에서의 서도호 개인전은 여러 기록들을 남겼다.&nbs
“인생은 말이 되지 않는다(Life doesn’t make sense).”세상에서 가장 기괴한 영화를 만들어 ‘오컬트의 제왕’으로 불린 데이비드 린치 감독(1946~2025)이 자주 하던 말이다. 그것은 예술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였다. 인생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모든 인과관계가 명확하다면 태초에 예술이라는 게 존재했을까. 린치의 ‘초현실주의’는 현실을 잊으라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일상 속에서 낯선 것과 기이한 것들을 기꺼이 낚아 올리라는 메시지였다. 글과 그림이, 영화와 연극과 문학이 왜 세월을 거슬러 영원히 살아남는지에 대한 해답이었다.올해도 수많은 예술가가 세상을 떠났다. 공백과 혼돈이 뒤엉킨 세상, 그 속에서 사유와 울림을 줬던 이들이다. 2025년의 끝자락, 우리가 떠나보낸 위대한 별들이 남긴 이야기를 다시 읽는다. 그들은 싸웠다. “문학은 영구적인 반란의 형태”라고 말한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 마리오 바르가스요사, “시시포스처럼, 평생 불가능한 문학의 꿈을 꿨다”던 소설가 서정인, 그리고 “과거를 배우되 결코 머무르지 말라”며 기존 건축계의 문법에 끊임없이 도전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이들의 영혼엔 규칙을 깨는 단단한 용기가 숨어 있었다. “다 이상한데,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개념”이라던 배우 다이앤 키튼, “(여배우는) 일류가 돼야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어진다”고 한 배우 김지미. 뉴 할리우드 시네마의 상징이자 영화계를 위해 헌신한 로버트 레드퍼드는 아예 이런 말을 남겼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 자체가 하나의 위험이다”라고.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우리가 영원히 가슴에
“인생은 말이 되지 않는다(Life doesn’t make sense).”세상에서 가장 기괴한 영화를 만들어 ‘오컬트의 제왕’으로 불린 데이비드 린치 감독(1946~2025)이 자주 하던 말이다. 그것은 예술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였다. 인생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모든 인과관계가 명확하다면 태초에 예술이라는 게 존재했을까. 린치의 ‘초현실주의’는 현실을 잊으라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일상 속에서 낯선 것과 기이한 것들을 기꺼이 낚아 올리라는 메시지였다. 글과 그림이, 영화와 연극과 문학이 왜 세월을 거슬러 영원히 살아남는지에 대한 해답이었다.올해도 수많은 예술가가 세상을 떠났다. 공백과 혼돈이 뒤엉킨 세상, 그 속에서 사유와 울림을 줬던 이들이다. 2025년의 끝자락, 우리가 떠나보낸 위대한 별들이 남긴 이야기를 다시 읽는다. 그들은 싸웠다. “문학은 영구적인 반란의 형태”라고 말한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 마리오 바르가스요사, “시시포스처럼, 평생 불가능한 문학의 꿈을 꿨다”던 소설가 서정인, 그리고 “과거를 배우되 결코 머무르지 말라”며 기존 건축계의 문법에 끊임없이 도전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이들의 영혼엔 규칙을 깨는 단단한 용기가 숨어 있었다. “다 이상한데,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개념”이라던 배우 다이앤 키튼, “(여배우는) 일류가 돼야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어진다”고 한 배우 김지미. 뉴 할리우드 시네마의 상징이자 영화계를 위해 헌신한 로버트 레드퍼드는 아예 이런 말을 남겼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 자체가 하나의 위험이다”라고.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우리가 영원히 가슴에
겨울은 세계의 유명 미술관으로 ‘그림 여행’을 떠나기 좋은 시기다. 쌀쌀하고 흐린 날씨를 피해 미술관 안에서 하루 종일 여유롭게 명작들을 감상할 수 있어서다. 미술관이 문을 닫은 시간, 우린 어디로 가야 할까. 뉴욕, 런던, 파리의 미술관을 찾은 이들에겐 몇 걸음만 옮겨보길 권한다. 오직 겨울철에만 반짝 운영하는 로맨틱한 아이스링크가 미술관 문밖에 마법처럼 펼쳐진다. 꿈의 프러포즈 공간뉴욕의 겨울은 아이스링크와 함께 찾아온다. 센트럴파크에서 브루클린 지역까지 공원 곳곳의 호수가 아이스링크로 변하기 때문이다. 1870년대 뉴욕 센트럴파크가 완공되기 전부터 연못과 호수는 스케이트장으로 인기가 많았다. 매년 호수 수위를 낮춰 얼음이 쉽게 얼도록 했고, 겨울철 공원 방문객을 늘리기 위해 뉴욕시 여러 자치구에 아이스링크가 문을 열었다.이 중 록펠러센터 아이스링크는 겨울에 뉴욕을 방문한 사람이면 꼭 가볼 만한 곳이다. MoMA에서 세 블럭만 내려가면 되는 거리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찾는다면 우연히 로맨틱 영화의 한 장면을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 ‘나 홀로 집에 2’ ‘세렌디피티’ ‘엘프’ ‘가십걸’ 등 유명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 데다 아이스링크 바로 옆 크리스마스트리도 멋진 볼거리다. 록펠러센터 크리스마스트리는 매년 미국 각지에서 후보 나무를 물색해 선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크기와 수형, 건강 상태 등을 기준으로 정원사들이 직접 탐색해 결정한다. 2025년 크리스마스트리는 뉴욕주 렌슬리어카운티 이스트그린부시에서 자란 나무로, 약 23m에 이른다. 이 나무는 수십 년간 한 가정의 사유지에 있던 것으로 전통에 따
역사와 문화가 교차하는 유럽 도시 한복판에서의 아이스 스케이팅.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 겨울마다 실제로 벌어지는 두 공간이 있다. 영국 런던의 서머싯하우스 안뜰 그리고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다.그랑팔레는 2700㎡의 면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실내 아이스링크 중 하나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졌는데, 당시 ‘프랑스 예술의 영광을 위해’ 프랑스 공화국이 헌정한 기념비적 건물이다. 당대 최신 기술인 강철 프레임과 철근 콘크리트 공법이 적용됐고, 거대한 유리 돔 지붕이 압권이다. 고전주의와 아르누보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룬다. 1, 2차 세계대전 때 군 병원과 독일 선전 전시장으로도 활용된 이곳은 2024년 파리올림픽을 계기로 대대적인 복원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1년 내내 아트페어와 패션 이벤트 등이 펼쳐진다.아이스링크로 사용되는 시기는 연중 약 3주. 올해 시즌은 2025년 12월 13일부터 2026년 1월 7일까지다. 오전, 오후, 야간으로 나눠 입장료가 다르다. 성인 기준 27~39유로, 어린이(만 3~12세)는 15~39유로다. 낮과 밤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것도 특징이다. 주간에는 자연 채광이 유리 지붕을 뚫고 들어와 아름다운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다면 저녁엔 DJ 공연과 라이트 쇼가 펼쳐져 화려한 무드가 연출된다.서머싯하우스 아이스 스케이트는 2000년 개장해 런던의 대표적인 겨울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과 12m 높이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배경으로 축제 분위기가 종일 계속된다. 최초의 서머싯하우스는 1547년 튜더왕조 시절 템스강변에 웅장한 저택을 짓기 위해 착공됐다. 이후 왕실 소유로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등의 공식 거처로 쓰였다. 18세기 후반 공
‘오직 달리기 위해서 떠난다.’러닝의 마법에 빠진 이들의 겨울은 당신의 여름보다 더 뜨겁다. 달리기(running)와 여행(trip)을 합친 ‘런트립’의 스케줄을 짜는 데 최적의 시기여서다. 런트립을 계획하는 이들의 유형은 크게 둘로 나뉜다. 뉴욕, 런던, 베를린, 시드니, 도쿄, 시카고, 보스턴 등 세계 7대 마라톤을 정복하기 위해 떠나는 도전형 여행자. 그리고 나만의 경험을 기록해 현지인의 문화 속으로 뛰어들고픈 일탈형 여행자. ‘세상은 넓고, 뛸 곳은 많다’지만 후자를 택한 러너에게 요즘 가장 주목받고 있는 도시가 있다. 지난해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 오스트리아 빈이다.빈이 도심 러닝 여행지로 뜨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나 홀로 여행자가 “왜 빈에 가야 하냐”고 묻는다면 “일단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할 수 있겠다. 러닝과 하이킹, 어떤 코스를 선택하든 트램이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으로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시작점이 있다. 코스도 다채롭다. 역사적 건축물을 끼고 달리는 도심 코스, 황실 사냥터에서 달리는 도심 속 자연 코스, 다뉴브강을 끼고 도는 강변 코스까지 선택지가 넓다. 공식 하이킹 코스도 빈 도심 외곽으로 12개가 있다.도심·자연·강변…마음대로 고르는 러닝 코스구시가지 중심을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5.3㎞의 순환도로 ‘링슈트라세’는 그 자체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가 살아 숨 쉰다. 늦가을, 빈에 머무는 5일간 매일 아침 빈 미술사 박물관을 시작으로 한 바퀴씩 달렸다. 마주치는 모든 풍경이 믿을 수 없이 웅장하다. 오페라극장과 빈 미술사 박물관, 호프부르크 왕궁,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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