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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 김보라 기자
    김보라 기자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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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은 생각을 바꾸고, 글은 세상을 바꿉니다.

  • 사진 배운 적 없는 90년생 사진가…루이비통과 '몽환적 서울' 담아내

    사진은 순간의 기록이다. 멈추지 않는 시간의 한 단면을 움켜잡아 사각 프레임 안에 박제한다. 모두가 카메라를 손에 넣고 다니는 시대. 이 기록의 행위가 예술이 되는 조건이 있다. 시각적으로 파격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하거나 익숙하던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이 조건들을 온전히 충족시켜 패션계를 놀라게 한 1990년생 사진작가가 있다. 네덜란드 출신 사라 반 라이다.반 라이는 사진을 배운 적도, 예술을 전공한 적도 없다. 어릴 때부터 텀블러와 플리커 등의 이미지 플랫폼에서 사진을 수집하고 큐레이션한 게 전부다. 처음 카메라를 산 건 스물두 살 때. 그 뒤로 그는 세상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피사체를 좇아 수많은 도시를 걸었다. 몽환적이고 감각적인 그의 사진엔 평범한 사람이나 사물도 유독 비밀스럽고 신비롭게 담긴다. 지난 10년간 반 라이는 세계적인 미디어, 럭셔리 브랜드가 찾는 사진작가가 됐다. 도시, 정물, 꽃, 자화상 등 개인 작업 시리즈들을 본 뒤 협업 제안이 끊이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보그, 샤넬, 에르메스, 디올, 자크뮈스 등이 그랬다.1년 전 루이비통은 그에게 여행 사진 시리즈 ‘패션 아이’ 컬렉션을 제안했다. 패션 아이는 1845년 창립 이후 ‘여행의 예술(Art of travel)’을 브랜드 철학으로 삼아온 루이비통이 8년째 선보이는 여행사진집. 올해 출간하는 서울편을 패션 사진작가 특유의 시선으로 담아 보자는 얘기였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 와본 적 없던 반 라이는 그렇게 작년 초여름 15일간 서울에 머물렀다. 북촌의 작은 한옥에서 지내며 서울 구석구석의 이야기를 들었고, 수백 장의 사진을 남겼다. 그의 사진들은 2일부터 한 달간 서울 회현동 피크닉 별

    2023.06.01 18:08
  • 텀블러로 놀던 90년생 사진작가, 루이 비통과 담아낸 '서울'

    사진은 순간의 기록이다. 멈추지 않는 시간의 한 단면을 움켜 잡아 사각 프레임 안에 박제한다. 모두가 카메라를 손에 넣고 다니는 시대. 이 기록의 행위가 예술이 되는 조건이 있다. 시각적으로 파격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하거나, 익숙했던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이 조건들을 온전히 충족시켜 패션계를 놀라게 한 90년생 사진 작가가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사라 반 라이(Sarah Van Rij)다. 반 라이는 사진을 배운 적도, 예술을 전공한 적도 없다. 어릴 때부터 텀블러와 플리커 등의 이미지 플랫폼에서 사진을 수집하고 큐레이션한 게 전부다. 처음 카메라를 산 건 스물 두 살 때. 그 뒤로 그는 세상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피사체를 쫓아 수 많은 도시를 걸었다. 몽환적이고 감각적인 그의 사진엔 평범한 사람이나 사물도 유독 비밀스럽고 신비롭게 담긴다. 지난 10년간 반 라이는 세계적인 미디어, 럭셔리 브랜드가 찾는 사진가가 됐다. 도시, 정물, 꽃, 자화상 등 개인 작업 시리즈들을 본 뒤 협업 제안이 끊이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보그, 샤넬, 에르메스, 디올, 자크뮈스 등이 그랬다. 1년 전 루이 비통은 그에게 여행 사진 시리즈 ‘패션 아이’ 컬렉션을 제안했다. 패션 아이는 1845년 창립 이래 '여행의 예술(Art of travel)'을 브랜드 철학으로 삼아온 루이 비통이 8년째 선보이는 여행 사진집. 올해 출간하는 서울편을 패션 사진작가 특유의 시선으로 담아 보자는 얘기였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를 와본 적 없던 반 라이는 그렇게 작년 초여름 15일 간 서울에 머물렀다. 북촌의 작은 한옥에 머물며 서울 구석구석의 이야기를 들었고, 수백 장의 사진을 남겼다. 그의 사진들은 6월 2

    2023.06.01 14:48
  • 76번의 '칸니발'…모두가 사랑한 칸 영화제

    봄의 끝자락에 열리는 프랑스 칸영화제는 ‘영화제의 영화제’다. 세계 수많은 영화제 중 그 권위를 넘볼 축제는 아직 없다. 어쩌면 더 오래도록 없을지 모르겠다.그런 영화제가 열리는 칸이라는 도시는 영화와 닮았다. 세상의 모든 파랑을 풀어놓은 듯한 지중해, 그 위에 자신이 가진 모든 종류의 빛을 흩뿌리는 강렬한 태양. 눈길 닿는 곳마다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사소한 것들마저 특별하게 만든다. 영화가 우리 삶의 번역본이라면 칸은 그것을 품는 거대한 집이다.128년 영화사에서 칸영화제는 어떻게 세계 영화인의 사랑을 받게 됐을까. 올해 76번째 축제를 맞이한 칸영화제의 역사 속엔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려는 태도, 시대를 담고자 하는 노력이 담겨 있다. 1960년대 후반 혁명의 시기엔 수많은 독립영화를, 1980년대와 1990년대엔 아시아와 중남미 감독들을, 최근에는 20대 청년들의 영화를 지지했다. 잊혀진 옛날 감독과 배우들도 기꺼이 소환했다. 남프랑스의 초호화 휴양도시는 그렇게 진보적인 생각을 나누는 장소가 됐다.칸영화제가 없었다면 우리의 세계는 지금보다 좁아졌을지 모른다. 왕자웨이도, 허우샤오셴도, 구로사와 아키라도, 박찬욱과 봉준호도 칸영화제에서 이름이 불리고 난 뒤에야 세계적 거장이 됐다.김보라 기자

    2023.05.25 18:37
  • 70시간의 기다림 장인 6명의 손길…'칸 트로피의 조건'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palm d’or·사진)’은 모든 영화감독의 꿈이다.이름이 좀 낯설지만 황금종려상의 이름과 로고는 남프랑스에 널려 있는 ‘종려나무’에서 따왔다. 대추야자나무로도 불리는 종려나무는 승리와 환희를 상징한다. 영화제의 상징인 19개 잎이 달린 황금가지는 프랑스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장 콕토가 처음 디자인했다. 칸을 사랑해 ‘칸(Cannes)’이라는 제목의 연작 시 다섯 편을 짓기도 한 콕토는 어린 시절 겨울마다 가족과 함께 칸을 찾아 이곳을 ‘제2의 고향’이라고도 했다.투명 크리스털 위에 황금의 나뭇가지가 올라간 트로피는 누가 만들까. 모든 영화상 중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불리는 이 상의 제작 권한은 주얼리 브랜드 쇼파드가 갖고 있다. 1997년 쇼파드의 공동 회장이자 예술 감독인 캐롤라인 슈펠레가 칸 국제영화제 회장이던 피에르 비오를 만나 파트너가 되기로 약속했다. 황금종려상을 좀 더 현대적인 모습으로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제네바의 장인 6~7명이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118g의 금을 녹인 다음 야자나무 가지를 밀랍으로 본뜬 틀에 붓고, 여러 차례에 걸쳐 세척과 광택을 낸다. 이를 크리스털 쿠션에 고정하며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70시간.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몇 가지 스페셜 에디션을 제외하면 황금종려상은 1998년 이후 디자인이 그대로 유지됐다. 2014년부턴 윤리적으로 채굴된 귀금속만 사용해 제작한다는 철학도 내세우고 있다.쇼파드가 세계적인 영화인에게 쇼파드를 수여하면서 더 각광받는 브랜드가 됐다. 2001년부터 칸 영화제 기간 당대 최고의 배우가 떠오르는 배우에게 수

    2023.05.25 18:24
  • [이 아침의 사진가] '그림 같은' 한 컷으로 인간의 단상을 담다

    ‘현존하는 최고 사진 작가 중 한 명.’네덜란드의 예술가 어윈 올라프(64·사진)를 일컫는 수식어 중 하나다. 사진인지 회화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하게 연출한 인물 초상과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흑백의 풍경 사진으로 유명하다. 네덜란드 힐베르쉼에서 태어나 위트레흐트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그는 1988년 청년 유러피언 사진작가 대회에서 1등을 거머쥐며 데뷔했다.올라프의 시선은 전 세계 낮은 곳과 높은 곳을 모두 향한다. 1980년대 암스테르담의 유흥 문화 속에서 에이즈 이전의 게이 해방을 기록하기 시작한 뒤 40년 동안 평등에 대한 메시지를 전해왔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들을 찾아간 ‘숲속에서’ 시리즈로도 유명하다. 대자연 앞에 오만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들로 경종을 울린다. 그는 극사실주의 회화와 같은 연출과 색감으로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허문다.사진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격리와 단절이 계속되는 시간을 묘사한 ‘만우절(April fool)’ 연작 중 하나다. “모든 일이 만우절 거짓말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다”는 그는 자화상이 담긴 사진 작품을 통해 세계인이 고통받았던 시간을 강렬하게 담아냈다.김보라 기자

    2023.05.11 18:35
  • 퇴근길 예술 한잔…아르떼 회원에 '밤의 미술관' 여는 리움

    리움미술관은 2004년 개관 후 ‘문턱 높은 미술관’으로 통했다. 유료 회원에게 주어지는 혜택들이 많아 쉽게 드나들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한번 모두에게 공개하는 전시를 내놓으면 “이럴 때 리움 구경해 보자”는 수요가 몰려 몸살을 앓았다.이랬던 리움미술관이 변신하고 있다. 최근 들어 비회원에게도 문을 활짝 열고 있다. ‘특정인의 예술’을 ‘모두의 예술’로, ‘대충 보는 미술’이 아니라 ‘생각하며 보는 미술’을 표방하며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arte.co.kr)와 함께 만든 ‘밤의 미술관’이 대표적이다. 미술관 문을 닫은 오후 6시에 아르떼 회원과 멤버십 회원을  위해 다시 문을 열어주는 프로그램이다. 리움에서 열리고 있는 두 개의 전시(‘마우리치오 카텔란 WE’와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에 대한 기대평과 관람평을 남긴 아르떼 회원 중 추첨을 통해 선발된 사람들에게 전시 해설과 자유 관람 시간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줄 서서 봐야 하는 전시를 30명 정도만 모여 아늑하게 관람할 수 있는 데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의 상세한 설명을 함께할 수 있어 일찌감치 참가 신청이 폭주했다. ‘아르떼 밤의 미술관’ 첫 프로그램은 10일 저녁 리움에서 열린다.리움미술관은 청소년과 대학생을 위한 워크숍 시리즈도 이어가고 있다. 평일 오전 10~11시 카텔란전 전시장에선 ‘질문에서 질문으로’, ‘질문하는 보기’와 단체 교육 프로그램이 열린다. 한 작품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단어와 문장으로 작품을 설명해 보거나 서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자신만의 해석

    2023.05.08 18:42
  • 울지 않는 심청, 토끼 잊은 별주부…과거 끊고 미래로 간 '절창'

    눈 먼 아비의 눈을 뜨게 하려고 바닷물에 몸을 던지는 심청, 토끼가 어떻게 생긴 줄도 모르지만 용왕을  위해 토끼 간을 구하겠다고 뭍으로 나가는 별주부. 누구나 다 아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 바다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 그리고 ‘남을 위해 기꺼이 나를 희생하는 캐릭터’라는 점이다.  국립창극단이 3년 간 이어온 '절창 시리즈'의 마지막회인 '절창 Ⅲ'이 지난 6일과 7일 양일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올랐다. 심청가와 수궁가 대목들을 씨줄과 날줄처럼 90분간 엮어낸 이 작품은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로부터 양일간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범 내려온다'로 유명한 이날치의 보컬 안이호(44)와 국립창극단의 중견배우 이광복(40)이 쏟아낸 소리들은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재치 넘치는 입담이 곳곳에 더해져 객석은 내내 울고 웃었다. 무엇보다 돋보인 건 연출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각색. '충'의 상징 별주부와 '효'의 상징 심청이 맹목적인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노래했다는 점에서 큰 공감과 갈채를 받았다.  바다에서 만난 심청과 별주부에 무슨 일이  극은 사나운 바람이 부는 바닷가의 어두컴컴한 밤, '심청 물 빠지는 대목'에서 시작한다.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애처로운 심청의 노래, 뱃사람들의 가락은 이광복의 섬세하고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 전해졌다. 이어 안이호가 등장하며 극장은 깊은 바다 수궁으로 자리를 옮긴다. 안이호는 몹쓸 병에 걸린 용왕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어려운 한의학 정보를 나열하며 진맥하는 도사의 역할을 능청

    2023.05.07 21:37
  • [리뷰] 국립창극단 '절창 Ⅲ'…울지 않는 심청, 토끼 간을 버린 별주부

    아비 눈을 뜨게 하려고 바다에 몸을 던지는 심청, 그리고 용왕을 위해 어떻게 생긴 줄도 모르는 토끼의 간을 구하겠다고 뭍으로 나선 별주부.누구나 아는 이들 이야기의 주인공에겐 공통점이 있다. 무대가 바다란 점, 그리고 ‘남을 위해 기꺼이 나를 희생하는 캐릭터’란 점이다. 국립창극단이 3년간 이어온 ‘절창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절창 Ⅲ’를 지난 6~7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올렸다. 심청가와 수궁가를 씨줄과 날줄처럼 솜씨 있게 엮어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90분 내내 웃기고 또 울렸다. 바다에서 만난 심청과 별주부극은 사나운 바람이 부는 바닷가의 어두컴컴한 밤, 심청이 물에 빠지는 대목에서 시작한다. 심청의 애처로운 노래는 국립창극단의 중견배우 이광복(40·사진 오른쪽)이 섬세한 목소리로 전했다.이어 등장한 안이호(44). ‘범 내려온다’로 유명한 이날치의 보컬, 그사람이다. 안이호의 등장과 함께 무대는 깊은 바다 수궁으로 변신한다. 안이호는 몹쓸 병에 걸린 용왕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어려운 한의학 정보를 나열하며 진맥하는 도사의 역할을 능청스러운 독창으로 매끄럽게 끌고 나갔다.하이라이트는 3막이었다. ‘별주부의 집-심청의 꿈’ 장면에서 만난 별주부와 심청은 서로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다. 그러더니 돌연 심청이 별주부에게 ‘세기의 딜’을 청한다.“나도 이제 내 인생 한번 살아볼랍니다. 나를 뱃사람들한테 데려가 주면 내가 시장 가서 토끼 간 구해다 줄 테니, 같이 갑시다.”별주부는 답한다. “콜!”심청을 등에 업고 뭍으로 헤엄쳐 나가던 별주부는 그제야 주변을 샅샅이 둘러보며

    2023.05.07 17:52
  • 글로 만나는 예술적 하루, 아르떼

    “요즘 어떤 음악을 듣고 있으신지요. 마음속에 항상 걸려 있는 그림엔 무엇이 그려져 있나요. 가끔 떠오르는 ‘인생의 책’이 궁금합니다. 가장 최근에 본 연극은 재미있었습니까.”이런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어떤 사람은 너무 많아서 머뭇거리겠지만 어떤 사람은 너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죠. 너무 없어서 그렇다면 조금은 서글퍼질 수도 있겠습니다. 자신에게 그럴듯한 취향 하나 선물하지 못했으니까요.예술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닐까요. 거창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나만의 취향, 나만의 비밀, 나만의 사치 뭐 이런 것 말입니다. 멋진 옷이나 화려한 보석처럼 남을 의식하는 ‘피곤한 사치’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행복한 사치’ 말입니다. 예술적 취향이 있다는 것은 곧 나의 존재를 규정하는 일입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건 멋진 일이고요.예술의 세계에 다가가는 일은 사실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예술의 세계는 무척 너그럽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에게나 허락된 곳이자, 아무리 많이 써도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니까요. 예술가들은 또 어떤가요. 도저히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어서, 가슴 속에 피어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다른 형태로 빚어낸 사람들이지요. 그들의 언어는 음악이 되고, 그림이 되고, 시가 됩니다. 때론 몸짓이 되고, 극이 됩니다. 수천 년을 이어온 이들의 언어를 조금씩 배워가는 우리도 어쩌면 모두 예술가일지 모르겠습니다.아르떼는 ‘어떤 예술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머뭇거리던 모든 이를 위한 공간입니다. 나의 예술적 취향을 새롭게 발견할 수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예술을 더 깊

    2023.05.03 18:22
  • 묵묵히 예술을 지킨 '100인의 아르떼 칼럼니스트'가 씁니다

    아르떼에는 문화예술 분야 100명의 이야기꾼이 함께합니다. <클래식 고수들의 음악 이야기>에는 평론가는 물론 세계적으로 활약하는 음악가와 연주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임선혜, 이성주, 임지영, 조수미, 조진주, 조재혁, 윤한결, 조재혁, 지중배 등이 연주자로서의 삶과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의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아, 클래식 음악계엔 솔리스트만 있는 게 아니죠. 천상의 화음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의 삶도 궁금하지 않나요? 원주시립교향악단에서 수석바이올리니스트로 긴 시간 활약해온 이문영 수석은 ‘아무튼 바이올린’이라는 코너로 찾아옵니다. 20년 넘게 내로라하는 클래식 음악가의 리허설 장면과 연주 장면을 사진에 담아온 구본숙 작가는 자신의 사진들을 에세이와 함께 공개합니다. 사진 한 장 뒤에 숨겨진 클래식 연주자들과의 밀도 높은 대화와 그 오랜 인연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예술의전당에서 20년간 무대감독을 맡아온 이동조 감독은 강렬한 잔상이 남아 있는 무대들을 회상합니다.자칭 ‘클래식 환자’라고 부르며 블로그와 개인 SNS에서만 조용히 활동한 음악 덕후와 고수들도 글을 씁니다. 어릴 때 우연히 접한 클래식 음악에 빠져 평생 애호가로 살아온 이현식, 아이돌 팬클럽처럼 클래식 무대를 쫓아다녀온 30대 직장인 유나리, 오디오 평론가이자 전문가로 재야의 고수들에게 인정받는 코난, BTS부터 서울시향까지 음향을 맡아온 오디오가이 최정훈, 국내 클래식 음악계의 뿌리를 다져온 혁신의 아이콘 ‘하우스콘서트’ 기획자 강선애 등이 그렇습니다. 재즈평론가 남무성은 삶에서 재즈 음악이 떠오르는 순간들을 글로 풀어내고, 재즈 작곡가이자

    2023.05.03 17:44
  • 허영과 허영이 만나 만든 한 끼 …그 섬뜩한 판타지 '더 메뉴'

    누구나 판타지는 있다.  빈틈없이 잘 짜인 고급스러운 가구와 조명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마치 왕이나 귀족이 된 것 같은 극진한 서비스를 받으며 이전에 결코 맛보지 못했던 환희와 즐거움으로 가득한 음식을 음미해 보는 것.  파인 다이닝이란 서비스를 찾는 이들이 원하는 판타지다. 요리사에게도 판타지가 있다. 번쩍거리는 고급 주방 기물과 최신식 요리 장비들로 둘러싸인 주방에서 말 한 마디면 목숨도 내어 줄 듯 헌신적인 스태프들과 구하기 힘든 진귀한 식재료로 예술작품 같은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  한 점 집어 먹을 때마다 연신 탄성을 지르며 셰프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내는 손님들을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짜릿한 일인지. 파인 다이닝 신(scene)은 최상의 서비스를 받기 원하는 이들과 최상의 서비스를 만들어내길 원하는 이들의 판타지가 서로 만나 만드는 세계다.  차별화된 서비스와 맛을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고객. 열정과 창의성을 무한 발산하는 셰프들은 마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후원자와 예술가의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황홀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셰프들은 마치 록스타와 같은 

    2023.04.29 22:21
  • '시네마 천국', 이만큼 향수를 돋우는 영화는 없다

    그런 영화들이 있다.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는 그저 여러 명작들 중 하나였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유사한 주제의 영화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작품이 되어 두고두고 회자되는 영화. 동시대 감독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중요한 레퍼런스로 은근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영화. 명저들의 문구처럼 문화콘텐츠에 끊임없이 인용됨으로써 영화를 제대로 본 적 없는 사람들도 다 아는 것처럼 친숙해지는 영화. ‘시네마 천국’(쥬세페 토르나토레, 1988)이 바로 그런 영화다.그간 많은 감독들이 자신을 영화에 입문하게 했던 추억의 영화와 자신의 유년시절 향수를 엮은 영화들을 만들어 왔다. 영화사의 어느 중요한 시점을 고찰하거나 영화라는 매체 자체의 위대함에 찬사를 보낸 감독들까지 더하면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 명단에는 장 뤽 고다르(영화의 역사), 마틴 스콜세지(휴고), 장이머우(원세컨드)와 같은 거장들도 포함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라라랜드’(2016)의 데이미언 셔젤도 ‘바빌론’(2022)으로 그 대열에 합류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또한 자전적 이야기이자 영화에 대한 헌사라 할 수 있는 ‘파벨만스’(2022)로&nbs

    2023.04.29 22:14
  • 자살은 끝이 아니라, '인생 리셋'이라고? 뮤지컬 <실비아, 살다>

    이제 겨우 서른 살/그리고 고양이처럼 아홉 번 죽지요/이번이 세 번째/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십년마다 없애야 하나/그것이 처음 일어났을 때 나는 열 살이었죠/그것은 사고였어요/두 번째에/나는 완전히 끝내고/다시는 살아나지 않으려 했죠/조개껍데기처럼(실비아 플라스 ‘나자로 부인' 중에서) 강렬한 시를 썼고 지독한 우등생이었으며 재능과 의욕이 넘쳐났던 소녀. 영국의 계관시인이 된 테드 휴즈(Ted Hughes, 1930~1998)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해 아이 둘을 낳은 아내이자 엄마. 세기의 문인 커플이 되었지만 1963년 서른 한 살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여류시인. 아버지와 남편이라는 가부장적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순종적인 딸, 정숙한 아내라는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하면서도 시인으로서 창작을 향한 고뇌와 싸워야 했던 실비아의 자기 고백적 시들은 그녀 사후 큰 평가를 받는다.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은 작가 사후에 출간된 책으로는 처음 퓰리처상을 받았다. 하지만 실비아의 시보다 사람들이 더 주목하는 것은 그녀의 죽음이다. 그녀의 별명은 자살 학교. 두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고 세 번째에는&n

    2023.04.29 12:55
  • 세상엔 좋은 연주가 너무나 많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고 말하면 대개는 어떤 곡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 이 때 어디까지 답해야 할지가 항상 고민이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혹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같이 직관적으로 아름다운 곡들은 당연히 너무 좋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은 2번보다는 3번을 더 선호한다.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가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 무대는 오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곡이 가진 서늘한 광기, 다닐의 변화무쌍한 템포와 볼륨, 극적인 곡 해석이 혼연일체돼 흡사 무대 위에 두 오케스트라가 있는 것 같았던 특별한 경험을 했다. 이후 관심이 생겨 다닐 트리포노프의 ‘데스티네이션 라흐마니노프’ 앨범을 찾아 들었는데, 무심결에 틀어놓았다가  포효하는듯한 피아노 협주곡 4번 1악장에 너무 놀라 누웠던 몸을 벌떡 일으켰던 적도 있었다.질문자가 최근에 영화 ‘헤어질 결심’을 봤다면 배경음악으로 등장한 아다지에토, 말러 5번을 좋아한다고 답해도 괜찮을 것이다. 서울시향의 2014년 실황 연주를 녹음한 버전이 영화에 실렸다.&

    2023.04.29 12:23
  • 날을 채우는 습관…나를 깨우는 시간

    반복은 지루한 일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어도 단순히 무언가를 계속하다 보면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어떤 결심들은 며칠도 못 가 무너지기 일쑤다. 실제 인간의 사소한 결심이 성공할 확률은 8%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들의 25%는 1주일 안에 포기하고, 30일이 지나면 절반이 포기한다.‘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라고 아주 잠시 스스로를 위로해도 좋다.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는 안다. 이름난 자들은 모두 자기만의 어떤 루틴이 존재했다는 것을. 아침마다 코카콜라를 마시고(워런 버핏), 오전 6시에 눈을 떠 검은 터틀넥과 청바지를 고민 없이 챙겨 입고(스티브 잡스), 매일 같은 시간 달리기를 한다거나(무라카미 하루키), 오후 1시에 출근해 하루 9시간씩 서서 일한 사람(코코 샤넬)….성공한 사람들의 루틴을 따라 하자는 말은 아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누구나 루틴이 필요한 시대다. 우린 24시간 초연결 시대에 산다. 셀 수 없이 많은 메시지에 파묻히고,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이메일과 팝업 알림 속에 하루를 보낸다.그러니까, 이 시끄러운 세상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루틴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루틴을 만드는 일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까. 사실 ‘하찮은 것’에 답이 있다. 너무 쉬워서 목표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근거도 있다. 우리 뇌는 변화를 극도로 싫어하는데, 갑자기 뭔가 큰 결심을 하고 반복하는 것 자체를 ‘이상한 일’이라고 여긴단다. 그러면서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방어기제가 튀어나오지 않게 하려면, 뇌가 ‘큰 변화’라고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아주 사소한 행동을 반

    2023.04.27 18:23
  • 조금 느려도 괜찮아, 지구만 안 아프다면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가는 지금, 모두가 ‘여행’을 이야기한다. 초저가 항공권과 여행상품이 시끄럽게 쏟아지고, SNS엔 여행 인증샷과 후기로 가득하다. 나도 그랬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여행 전날 트렁크의 문을 가만히 닫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우리, 이렇게 계속 여행해도 괜찮을까?’세계인이 여행을 다니면서 지구 곳곳은 빠르게 파괴됐다. 세계 탄소배출량의 8~12%가 관광산업에서 나온다는 통계도 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여행을 멈추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런 급진적인 말들은 그저 위선이거나 쓸데없는 강요에 불과할 수도 있으니…. 이럴 때 우리 스스로 해야 할 말은 따로 있다.“그래, 지구를 지키는 여행을 하자.”지속 가능한 여행은 ‘플라스틱을 줄이자’거나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한다’는 류의 강압적인 기준이 아니다. 어디로 갈지, 어디에 소비할지, 언제 떠날지, 어떻게 다닐지 등 여행의 모든 과정을 고민하는 하나의 사고방식이자 태도다. 이미 전 세계엔 이런 여행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여행사나 도시, 기업이 많다. 이런 여행을 기획하는 여행사 400여 개와 여행자를 연결하는 회사(리스펀서블트래블)가 있고, 지역 공동체가 문화유산을 경제적 자산으로 인식하도록 돕는 곳(글로벌헤리티지펀드)도 있다.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떠나는 여행은 지금까지의 여행과 다르다. 사람이 많이 몰려드는 지역과 시기를 피하고, 자동차와 비행기 대신 기차와 자전거를 타고, 더 길고 여유롭게 일정을 잡는 것. 조금 수고스럽지만 더 적극적인 여행도 있다. 북디퍼런트, 키와노, 그린펄, 에코비엔비 같은 친환경 호텔

    2023.04.20 18:03
  • 퇴사준비생의 아이디어 천국 TOKYO

    도쿄는 ‘서울의 미래’로 불린다. 적어도 비즈니스에선 그렇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수많은 사람이 도쿄를 수시로 드나든다. 그들에게 도쿄는 ‘지붕 없는 뮤지엄’이자 ‘담장 없는 캠퍼스’다. 아주 작은 변화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고, 정성 어린 디테일과 감각적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가장 가까운 섬나라. 그뿐만이 아니다. 도쿄에는 업의 본질에 대한 고민과 비즈니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눈길 닿는 곳마다 녹아 있다. 뿌리 깊은 장인정신도 숨어 있다. 그래서 섣불리 흉내 낼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도쿄의 문이 닫힌 지 3년. 도쿄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국경이 봉쇄된 기간에 이 도시는 어떻게 변했을까. 고상하기만 하던 편집숍들은 더 친절한 눈높이 큐레이션으로, 1인 가구를 위한 소량 제품은 더 많은 맥락을 품은 세밀한 구성으로, 낡고 오래된 장소들은 100년 뒤를 내다보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것들은 도쿄에 ‘조용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이번주 웨이브는 퇴사준비생의 마음으로 도시를 탐험해온 이동진 트래블코드 대표와 시티호퍼스팀의 시각으로 들여다본 도쿄다. 이들은 일본의 문이 열리자마자 도쿄로 달려가 그 변화의 지점들을 관찰했다. <퇴사준비생의 도쿄>로 서점가를 뒤흔든 지 6년 만에 후속작 <퇴사준비생의 도쿄2>를 펴내며 더 예민한 눈으로 달라진 인사이트를 잡아냈다. 세계 주요 도시에서 찾은 영감은 시티호퍼스 뉴스레터로 매주 배달된다. 직업적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바치는 위로이자 응원이다.‘퇴사준비생’이라는 이 도발적 단어는 여행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 퇴사를 결심한 사

    2023.03.23 17:50
  • 기억의 영혼…Perfume

    어느 겨울. 홍차에 마들렌을 적셔 한입 베어 문 순간,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버터향 머금은 마들렌 향은 까맣게 잊혀진 일들을 모조리 불러냈다. 숙모가 내주던 마들렌, 잊고 있던 그 무렵 기억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자전적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바로 그 향에서 시작됐다. 어떤 향기가 기억을 이끌어 낼 때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부르는 이유다.후각은 강력하다. 우리의 코는 1만 개 정도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다. 모든 감각 가운데 가장 오래, 가장 깊이 뇌 속에 저장된다. 그래서 오래도록 기억되는 냄새가 많다. 어릴 적 시골 할머니 집에서 덮던 담요 냄새, 타들어가는 장작에서 스며나오던 나무 냄새, 하얀 파도가 부서지던 한여름 해변의 모래 냄새…. 수십 년이 흘러서도 이런 냄새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이유다.냄새는 인간을 구분 짓는다. 몸에서 나는 냄새가 저마다 다르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향기가 저마다 달라서다. 향수 대중화를 이끈 ‘샤넬 넘버5’는 마릴린 먼로의 상징이기도 했다. 잘 때 뭘 입고 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샤넬 넘버5 두 방울”이라고 답하면서다. 요즘 사람들이 ‘니치(niche) 향수’에 관심을 두는 배경도 여기 있다. 나만의 정체성, 나만의 가치를 알리는 희귀한 향을 찾아 나선 것이다. 여러 향을 겹쳐 그날의 패션과 날씨에 어울리게 조합하고, 그날의 기분을 표현하기도 한다.향수 문화가 가장 발달한 프랑스에는 일종의 ‘향 보관소’도 있다. 베르사유에 있는 오스모테크는 마치 종자보관소처럼 수천 종의 향을 보존한다. 한때 유행하다가 단종된 향수, 더 이상 맡을

    2023.03.16 18:10
  • 사진같이 생생한 숲과 상상 속의 숲

    ‘숲길을 걷다 멈춘 자리의 기록.’화가 노경희(41)는 자신의 그림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는 사계절 쉬지 않고 산에 오른다. 울창한 숲과 앙상한 가지, 흐르는 물과 반짝이는 생명을 눈에 담는다. 초록 이파리를 적시는 눈부신 햇살과 꽁꽁 언 겨울의 앙상한 풍경도 눈으로 찍는다. 단순하고 조용한 삶을 꿈꾸는 그에게 산은 때가 오면 피었다가 때가 되면 지는, 생성과 소멸의 장소다.서울 인사동 갤러리밈 M큐브에서 전시 중인 ‘숲의 기록’은 그의 눈에 담긴 초록의 장면들로 가득하다. 12점 모두 사진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세밀하다. 미세한 빛과 나뭇가지의 모양, 잎사귀의 그림자, 흙과 돌의 이끼까지 눈앞에 그대로 재현한다. 유화로 그린 작품들이 생생한 빛을 뿜어낸다면, 파스텔로 그린 작품에선 따뜻한 질감이 묻어난다. 눈부시게 맑은 날과 안개 낀 새벽, 한겨울의 추위까지 그림 속엔 작가가 산에 올랐던 그 시간의 기록이 그대로 담겼다.서울대 서양화과를 나와 영국 슬레이드대에서 석사를 마친 뒤 수년째 숲을 탐구해온 노 작가는 최근 시선을 하늘로 넓혔다. 이번 전시에선 두 점의 하늘 시리즈도 만날 수 있다. 흘러가는 구름의 순간을 포착해 ‘단 한 번도 같지 않았을’ 구름의 모양을 담아냈다. 전시는 오는 15일까지.숲을 그리는 또 다른 작가, 김건일(50)은 서울 청담동 라루나갤러리에서 ‘퍼펙트 그린’이란 주제로 관람객을 만난다. 그의 작품 속 풍경은 실제 마주한 것이 아니라 기억과 상상 속의 숲이다. 작가는 “그리는 대상보다 그 대상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숲속을 들어가며 숲 밖에서 생각지 못한 것들을

    2023.03.05 18:15
  • 악당을 잊지마라…난, 빌런을 그리는 빌런

    악당을 뜻하는 단어 ‘빌런(villain)’. 영웅 서사가 담긴 영화나 만화 속에서 어김없이 주연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들이다. 빌런 없이는 히어로도 없고, 극의 긴장감도 없다. 놀랍게도 이 단어는 ‘농부’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고대 로마의 농장에서 일하던 일꾼들을 부르던 말이었다. 어쩌면 가장 평범한 이들이 모두 빌런일 수 있다고, 이 평범한 이들 없이는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역설하려던 것일까.영화 속의 빌런들은 꽤 오랫동안 슬픈 존재였다. 뜨거운 에너지로 작품의 온도를 끓어오르게 하지만, 늘 영웅(또는 선한 자)에게 밀리거나 잊혀지는 존재. 빌런의 내면을 다층적으로 다룬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 ‘조커’(2019), ‘크루엘라’(2021)와 같은 영화가 등장한 건 불과 몇 년 사이 벌어진 일이다.48명. 세기의 영화와 드라마 속 빌런의 표정을 포착해 흑백의 강렬한 인물화로 그려낸 이가 있다. 그림을 그리는 배우이자 연기하는 화가 박기웅(38)이다. 올해로 20년차인 그는 최고의 악역 전문 배우다. 드라마 ‘추노’, 영화 ‘최종병기 활’과 ‘각시탈’ 등 여러 작품에서 악역을 도맡아 매번 화제작으로 만든 주인공이다. 그런 그가 그린 악당의 얼굴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 빼곡히 걸려 있다.연예인이 미술계에 뛰어들어 ‘아트테이너’가 되는 사례는 요즘 흔해졌지만 박기웅은 좀 다르다. 여섯 살 무렵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미대(시각디자인과)를 나온 전공자. 영화판에선 ‘미대 나온 변종’으로, 미술판에선 ‘배우인데 그림에 빠진 변종’으로 경계인의 삶을 살고

    2023.02.23 17:20
  • [토요칼럼] 챗GPT와 언론의 동행

    1990년의 일이다. 검붉은 화염에 휩싸인 도시, 쏟아지는 포탄 소리를 배경 삼아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서 있는 이들을 봤다. 걸프전에 목숨을 걸고 달려간 종군기자들이었다. TV 뉴스를 밤새 마주하며 심장이 뛰고 눈물이 날 것 같은 그 장면들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후 봤던 그 어떤 영상도 그때만큼의 긴장감과 몰입감을 준 적은 없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기자가 되기로.기자가 된 10여 년간 그런 드라마틱한 사건은 다행히(?) 나에게 벌어지지 않았다. 유년기의 사명감은 날로 줄었다. 대신 언론인이 아니었다면 평생 신경 쓸 일도 없었을 세상사에 호기심을 가져야 했고, 인터뷰라도 하나 잡히면 그 사람의 과거 발자취와 최근 일거수일투족까지 깨알같이 알아야 했다. 하나의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도 나는 과연 이 직업을 택했을까. 여러 번 회의도 들었다. 하지만 동시간, 동시대의 어떤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과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사소한 즐거움은 변함이 없었다.좋은 기자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누구보다 ‘먼저 알리는’ 일이라고 배웠으니까. 멋진 질문이 때로는 세상을 바꾸는 답을 내놓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업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지만 언론만큼 큰 변화를 겪은 곳도 없다.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원하는 뉴스를 검색할 수 있게 됐고, 스마트폰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뉴스를 쏟아낸다. 기자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주는 특종의 유효기간은 허무할 정도로 짧아졌다. 예쁘게 포장된 뉴미디어가 주목받자 아침마다 배달되던 신문은 구석기의 무엇처럼 여겨지게 됐다. 속보

    2023.02.17 17:31
  • 감성은 그대로, 감동은 두 배로…두근두근 설렘덩크

    300만 명.완결 26년 만에 극장판 만화로 부활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 44일 만에 세운 기록이다. 슬램덩크는 16일 올해 개봉한 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300만 명 돌파 기록을 썼다. 10대 때 본 추억의 만화책을 애니메이션 영화로 즐기겠다는 3040세대가 극장으로 몰려가고,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함께 열광한 덕이다. 5년 전 개정판으로 나온 슬램덩크 만화책은 두 달 새 100만 부 넘게 팔렸다. 지금 책을 주문해도 다음달에 받는다. 만화책 속 농구부 선수들이 신었던 신발들도 다시 인기다. 슬램덩크 굿즈를 파는 팝업스토어는 연일 긴 줄을 서야 겨우 들어간다. 하루 매출이 1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소장하고 있던 낡은 슬램덩크 책 세트를 자랑하듯 소셜미디어에 올리는가 하면, 고이 간직하고 있던 농구화는 중고 시장에서 몇 배의 가격에 되팔린다.이쯤 되면 슬램덩크는 만화 그 이상이다. 많은 사람에게 ‘인생의 책’으로 남아 지칠 때 힘이 되고, 어두운 시간을 밝혔다. ‘인생을 바꾼 단 한 권의 책’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셀 수 없다. “거기엔 하기 싫어 죽겠는데 억지로 시늉만 내고 있는 자 따위는 없었다. 나는 묘한 슬픔 속에서 그걸 읽었다”(판사 출신 드라마 작가 문유석)는 이가 있고, “내가 만약 슬램덩크를 읽지 않았다면 어딘가 쫓기는 듯 결핍된 채 지내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는 이도 있다.슬램덩크는 여전히 누군가의 ‘터닝 포인트’다. 10~20대 남성의 전유물, 동호인들을 위한 길거리 스포츠로 여겨졌던 농구는 이제 잊을 때가 됐다. 실내 농구 클래스엔 현란한 개인기를 차근차근 익혀가는 여성들이 줄을 잇고, 농구

    2023.02.16 18:01
  • 나는, 예술한다…'나의 문제'를 타인에게 던져주기 위해

    썩어가는 바나나 한 개를 테이프로 벽에 붙여놓고 1억5000만원에 팔아치운 작가. 전시를 기획한 갤러리스트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3시간을 묶어놓은 악동. 전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며 옆에 있는 갤러리를 부수고 들어가 그곳의 작품과 가구들을 훔쳐와서 전시한 도둑. 세계 미술계의 ‘문제적 인물’로 불리는 마우리치오 카텔란(63)이다.지난 30년간 충격적 사건들을 쉴 새 없이 만들어낸 카텔란이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국내 첫 개인전 ‘WE’를 열었다. 대규모 회고전 형식으로 총 38점이 전시됐는데,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인기다. 카텔란의 작품은 유쾌하면서도 냉소적인, 개념미술의 정점이다. 일상에서 많이 보고 사용하는 익숙한 것들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여 뒤집고 비튼다. 소외된 것들(비둘기, 노숙인)을 다시 보고, 잊혀질 만한 일들(9·11 테러, 히틀러의 세계대전)을 되새기며, 정치적인 이슈(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운석에 깔린 교황)를 과감하게 지적하며 관람객들의 주의를 환기한다.지난달 30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까칠한 작품세계와 달리 편안한 옷차림에 재기발랄한 표정으로 관람객들과 서슴없이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눴다. 공식 인터뷰를 요청하자, “모든 인터뷰는 서면으로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 글로 대화를 나눴다.▷리움미술관 입구와 로비에 설치한 노숙인 작품 ‘동훈과 준호’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나.“‘동훈과 준호’는 1996년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그 작품은 한 번 박물관 관리 직원에 의해 폐기된 적이 있고, 내가 이탈리아 토리노의 거

    2023.02.09 16:56
  • 이글루 캠핑·원시림 트래킹…겨울 울릉도는 '힐링 천국'

    울릉도행 크루즈선에는 700여 명이 함께 탔다. 포항 영일만신항에서 매일 밤 12시께 출발하는 이 배를 타면 두 번 놀란다. 겨울 울릉도에 가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몰려온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그리고 여행자들의 모습에. 캐리어에 가벼운 옷차림을 한 사람들 틈으로 거대한 배낭에 삽과 손전등, 텐트 등을 쌓아올린 진정한 백패커들이 많다. 마치 야생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하듯 무장한 이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눈 속의 하룻밤 ‘이글루 캠핑’9000여 명이 거주하는 울릉도에는 지난해에만 약 5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대형 크루즈선의 출항으로 멀미 걱정이 줄어든 이유도 있지만 ‘야생과 미지의 섬’을 탐험하려는 2030들이 사계절 내내 찾았다. 여름엔 수상 스포츠의 성지로, 겨울엔 백패커들의 안식처가 됐다.울릉도 겨울 여행의 백미는 나리분지다. 높게 솟은 산봉우리들 사이 움푹 파묻힌 이곳. 해발 500m의 나리 분지는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다. 울릉도 사람들이 모여 살며 농사도 짓고, 바람과 파도도 피했다.눈이 50㎝ 이상 쌓인 고요 속의 나리분지엔 오후부터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삽을 든 사람들이 ‘나만의 이글루’를 짓기 시작했다. 텐트와 담요를 덧대 바람을 막고 직접 지은 동굴 속에서 보내는 하룻밤. 별이 보이기 시작하자 마을의 집집마다 장작 태우는 냄새가 뒤섞였다. 나리분지를 찾는 캠핑족이 늘면서 울릉크루즈와 코오롱그룹은 2월 말까지 ‘울릉나리분지 눈꽃축제’와 ‘울라윈터피크닉’을 함께 기획했다. 돔 쉼터가 조성돼 이글루를 직접 짓지 않고도 안에 머물 수 있는 데다 밤이면 은은한 조명이 들어

    2023.02.02 17:32
  • "삐걱대는 문틈에서 흘러나오던 음악과 커피향…꽤나 근사한 곳이었지"

    매끄러운 스마트폰 위에 엄지손가락을 올려 빠르게 휘젓는다. 누구도 강요하거나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눈과 귀를 사로잡는 짧은 영상을 넘기는 일에 모두가 익숙해졌다. 지하철을 한가득 채운 사람들은 나만을 위해 선택한 음악으로 귀를 막고 고개를 숙인 채 목적지로 향한다. 기술의 발달은 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어디에서나 우리는 자신만의 공간에 빠져 시간을 보낸다.어떤 공간마다 사람이 가득한 시절이 있었다. 이화여대 앞, 지금은 사라진 그린하우스를 지나 골목에 들어서면 제니스 조플린의 곡 이름에서 따온 ‘볼 앤 체인’이라는 상호를 가진 음악 카페가 있었다. 음악감상실 ‘올리브’의 뒤를 이어 문을 연 이곳에는 이화여대생을 비롯해 젊은 대학생, 교양인을 자처하는 중년의 남성들이 주로 찾아와 커피와 술을 마셨다. 목재로 마감한 인테리어는 애초에 음악을 듣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됐다. 턴테이블에서 나오는 음악은 과하게 울리지 않고 술과 커피를 마시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채웠다. 이런 장소가 성행하던 그 당시 홍익대와 신촌, 이화여대 앞의 분위기를 기억하며 미술평론가 황인은 “화양연화 같았다”고 했다.화양연화의 시대가 어렴풋이 저물어갈 2000년대 중반 대학생활을 시작한 나는 줄곧 꿈꿔온 대학가의 풍경이 기대와 사뭇 달라 실망했었다. 다른 목적 없이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존재했던 그 공간들은 스마트폰 같은 개인 음향 기기의 탄생으로 존재의 이유를 잃어가고 있었다. 수십 년 단골을 자청하며 그 공간을 찾던 몇 사람도 그렇다. 영광의 박수보다는 비난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쓸쓸히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공론장의 역할이

    2023.02.02 16:40
  • 1억원짜리 바나나, 문 앞 웅크린 노숙인…리움에 '악동'이 떴다

    30일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입구. 낡은 목장갑을 끼고 구겨진 외투를 입은 채 모자를 푹 눌러쓴 한 남자가 양팔로 몸을 감싸고 비스듬히 누워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노숙인이 웅크린 채 앉아 있다. 이들의 이름은 동훈과 준호다. 현대미술계의 가장 ‘문제적인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마우리치오 카텔란(63)의 올해 신작이자, 리움미술관이 올해 개관전으로 여는 전시 ‘WE’의 오프닝이다.카텔란은 2004년 개관 이후 다소 폐쇄적이던 리움미술관을 ‘열린 공간’으로 뒤바꿨다. 미술관 로비는 기차역 대합실처럼 꾸며졌고, 도시의 불청객 취급을 받았던 비둘기들(유령, 2021)은 미술관 곳곳에서 관람객들을 쳐다본다. 세발자전거를 탄 어린아이(찰리, 2003)가 미술관 곳곳을 종횡무진 달리고, 소설 <양철북>의 오스카를 연상케 하는 소년(무제, 2003)이 전시장의 가장 높은 곳에서 드럼을 쳐댄다. 미술계를 꼬집고 비트는 악동이탈리아 태생인 카텔란은 자신을 ‘미술계의 침입자’로 규정한다. 1990년대 현대미술계에 혜성처럼 떠오른 그를 한마디로 정의하긴 힘들다. 설치와 조각, 회화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기존의 제도와 고정관념, 미술시장 시스템, 정치적 이슈 등을 자유자재로 비튼다. 웃음이 터질 듯 유쾌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사회의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품도 많다. 199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젊은 작가로 선정돼 배당받은 공간을 광고판으로 내놓고 한 향수회사가 사용하게 하는가 하면, 1999년 밀라노에서 열린 전시 첫날엔 그의 작품 거래를 담당하는 갤러리스트 마시모 드 카를로를 전시장 벽에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인 뒤 3시간가량 그대로 걸

    2023.01.30 18:10
  • 30년 토박이도 몰랐다…내 고향 숨은 멋과 맛

    여행의 즐거움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온전히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거나, 원래 알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거나. 나흘간의 설 연휴는 그중에서도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익숙한 곳으로 떠나는 이들도 미처 몰랐던 ‘인스타그램 명소’가 있다. 강원 원주 판대리에 2년 전 ‘스톤 크릭’이라는 빙벽 카페가 문을 열었다. 웅장한 봉우리를 타고 내려온 물이 꽝꽝 얼어붙어 신비한 설경을 만들어내는 곳. 국도를 따라 달리던 차들이 하나둘 멈춰서면서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이 늘었다.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지만 빙벽의 기이한 광경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잔은 서울의 멋진 카페들이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멋을 만들어낸다. 충남 공주 반포면의 송곡소류지는 벚꽃 명소로 유명한데 겨울에는 호수 주변으로 하얀 설경이 피어난다. 운이 좋으면 벚꽃 대신 눈꽃을 바라보며 걷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인기 드라마 속 촬영지인 목포, 지난해 별세한 방송인 송해 선생의 이름을 딴 대구 달성군의 ‘송해공원’, 울산의 새 랜드마크가 된 호텔도 있다.시골의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복합문화공간도 많다. 충북 진천에 스마트팜 농업회사가 만든 복합문화공간 ‘뤁스퀘어’가, 전북 군산에는 갤러리와 함께 카페를 운영하는 ‘선유공감’이, 영광 백수해안도로에는 보리밭과 바다의 풍경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보리카페’ 등이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도시의 카페 문화가 합쳐져 도시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공간들이다.1년에 단 두 번. 명절 연휴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진짜 얼굴이 드러나는 때이기도 하다. 고

    2023.01.19 18:09
  • [토요칼럼] 너와 나의 슬램덩크

    아파트 높이가 지금의 절반도 안 됐던 1990년대 초. 해질녘이면 동네 공터 여기저기서 어김없이 요란한 소리가 났다. ‘탕, 탕, 탕, 타다닥, 쿵.’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면 어김없이 우리는 농구공을 들고 문밖으로 나왔다. 누구도 감히 덩크슛을 시도해볼 키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뛰고 또 뛰었다. 덩크슛의 느낌이 대체 어떤 건지 궁금해 의자나 친구의 몸을 발판 삼아 가까스로 점프를 하고 골대를 움켜잡은 채 한참을 매달려 있었다. 아스팔트 위 검은 그림자 중 누군가는 강백호가 됐고, 누군가는 채치수가 됐다. 아파트 외벽에 가상의 골대를 그려넣고 지칠 때까지 슛을 하는 날도 많았다. 그렇다. 나도 슬램덩크 세대다.만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26년 만에 극장판으로 부활했다. 10대 때 공 좀 튕겼던, 이제는 중년의 터널에 진입한 3040들이 극장으로 몰려갔다. 1주일 만에 55만 명이 봤단다. 나도 그랬다. 영화 오프닝과 함께 캐릭터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아…’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땐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한 채 한참을 앉아 있었다. 오랜만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이름 모를 누군가와 같은 시절을 떠올리고 있는 ‘집단 감동’의 순간이.소셜미디어엔 고이 간직하고 있던 오리지널 만화책 31권의 사진이 간증하듯 올라온다. 수십 번째 완독했다는 이들, 만화 속 캐릭터를 섬세하게 재해석하는 이들, 원작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이들로 넘쳐난다. ‘그깟 만화 보느라 허송세월한다’는 핀잔과 잔소리를 이겨냈던 우리는 세상 어딘가에서 각자 성실하게 드리블을 하다 결국 극장에서 만났다. 코트 위

    2023.01.13 18:01
  • '다비드 자맹 展' 돌풍…예매 시작하자마자 1위

    프랑스 화가 다비드 자맹(사진)의 국내 두 번째 개인전 ‘다비드 자맹: 프랑스에서 온 댄디보이’ 얼리버드 입장권이 11일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인터파크 전시부문 예매 순위 1위를 차지했다. 다음달 4일 여의도 더현대 서울 ALT.1(알트원)에서 개막하는 이번 전시는 개막 전날인 3일까지 입장권을 최대 44% 할인해 판매 중이다. 얼리버드 입장권이 하루 만에 예매 순위 1위에 오른 건 이례적이다.인터파크 예매 순위에서 6주 연속 1위를 달렸던 ‘합스부르크 600년-매혹의 걸작들’은 자맹의 선전으로 2위로 밀려났다. 합스부르크 600년전과 자맹전은 모두 한국경제신문사가 주최하는 전시다.남프랑스에서 작업하는 자맹은 ‘행복을 그리는 화가’다. 자맹은 이번 전시에서 신작 100점을 포함해 그림 150여 점을 공개한다. 한국 전시를 기념해 그린 한국의 스타 5인을 그린 연작엔 벌써부터 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손흥민 김연아 김연경 박찬욱 윤여정 등이 포함돼 ‘화가가 해석한 한국 스타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기대가 많다.자맹의 이번 개인전은 ‘재관람 열풍’이 거세다. 2년 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내면 세계로의 여행’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자맹은 관람객들로부터 “마음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그림이다” “그림 속 주인공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치유가 됐다”는 등의 호평을 받았다.이번 전시는 작품 수가 이전 전시(52점)에 비해 세 배로 늘었다. 전시 장소 역시 개관 이후 지난 2년간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50만 명이 넘게 찾은 여의도 더현대 서울 4층 전시장으로 확장했다.한국경제신문과 비아캔버스가 주최하는

    2023.01.11 18:21
  • 새해 첫 미술경매…천경자·최욱경 등 여성 거장 총출동

    케이옥션이 1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사에서 올해 첫 경매를 진행한다. 이번 경매에는 이우환과 정창섭 천경자 최욱경 노은님 이숙자 등 한국 화단의 대표 화가 작품을 포함한 총 84점, 약 80억원 상당의 작품이 출품된다.이번 경매에는 한국 미술의 거장 이우환의 시기별 작품이 두루 나온다.  한국 추상미술의 효시인 김환기와 유영국, 박서보, 하종현, 김구림, 이건용, 이배, 전광영 등 한국 추상 화단의 주요 작가들의 작품이 경매에 오른다. 정창섭의 회화 정신이 본격적으로 표출되던 1970년대 작품 '원'과 '귀 78-W'도 출품된다. 이우환의 1977년작 '선으로부터 No.77072'는 추정가 7억∼10억원에 나온다. 지난해 11월 경매에 나왔다가 출품 취소된 김환기의 뉴욕시대 그림인 '북서풍 30-VIII-65'은 추정가 15억∼40억원에 새 주인을 찾는다. 유영국의 1987년작 'Work'는 삼각형으로 된 세 개의 봉우리, 능선의 곡선, 원근의 면, 그리고 다채로운 색 등 '산을 사랑한 화가' 유영국의 수작이다. 추정가는 3억원에서 5억원이다.  새해 첫 경매에 케이옥션은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여성작가 천경자, 최욱경, 노은님, 이숙자의 작품을 대거 내놓는다. 전통적인 한국화를 벗어나 환상적이고 몽환적 작품으로 미술계뿐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얻었던 천경자,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여성작가 최욱경, ‘생명의 화가’로 불리며 평생 물고기와 새, 꽃 등을 주제로 작업한 노은님, ‘보리밭 화가'로도 알려진 이숙자의 작품이 경매에 오른다.  최욱경의 작품 에서는 우리의 산과 바다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다양한 색채와 선으로 표

    2023.01.06 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