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지난해 말부터 판매를 시작한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 팰리세이드는 기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말부터 판매를 시작한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 팰리세이드는 기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세계 자동차 제조사들이 위기에 빠졌다. 미·중 무역분쟁 여파로 글로벌 경기가 둔화하면서 자동차 수요가 꽁꽁 얼어붙고 있어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세계 7대 자동차 시장(미국, 유럽연합, 중국, 인도, 멕시코, 브라질, 러시아)의 상반기 승용차 판매량은 3117만 대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5.6% 줄었다. 브라질을 제외한 모든 시장에서 판매량이 감소했다. 올 하반기와 내년에도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승승장구하던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상반기 처참한 경영실적을 낸 것도 이 때문이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위기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몸집을 줄이는 대신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신차 공세 나선 현대·기아차

현대·기아자동차는 지난해부터 경영상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 시장에서는 차량 라인업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없어 부진했다. 중국에서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이후 판매량이 급감했다. 고질적인 고임금·저효율 구조와 강성노조의 습관성 파업 등도 현대·기아차 발목을 잡았다. 현대차는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76.0% 줄어드는 ‘실적 쇼크’를 겪기도 했다.

이후 현대·기아차는 대대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우선 신차 라인업을 강화했다. 새로 나오는 차에 신기술을 대대적으로 탑재하거나 과감한 디자인을 채택했다. 파격적으로 가격을 매기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대형 SUV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새 대형 SUV 팰리세이드, 텔루라이드를 내놓았다. 팰리세이드는 한국과 미국 양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없어서 못 파는 차’가 됐다. 판매량이 당초 예상을 크게 웃돌아 차를 구매하려면 1년가량 기다려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 조지아공장에서 만들어 미국에서만 팔고 있는 텔루라이드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현대차 중형세단 쏘나타와 기아차 준대형세단 K7도 가세했다. 두 모델은 번갈아가며 내수시장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과감한 디자인을 채택하고 다양한 기능을 탑재한 결과로 해석된다. 쏘나타 완전변경(풀체인지) 모델은 기존 모델 대비 전고(차체 높이)가 30㎜ 낮아졌고, 전장(차체 길이)은 45㎜ 늘었다. 스포츠카처럼 낮고 긴 형태로 바뀌었다.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으로 차 문을 여닫고 시동을 걸 수 있는 스마트키 같은 신기술도 대거 적용됐다.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된 K7은 완전변경 수준으로 디자인이 바뀌었다. 전장도 이전 모델 대비 25㎜ 길어졌다.

과감한 R&D 투자…현대차가 달라졌다

현대차는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 계획도 세웠다. 현대차는 지난 2월 앞으로 5년간 R&D와 미래 기술 확보 등에 45조3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부터 2023년까지 R&D와 경상투자 등에 30조600억원을, 미래 모빌리티(이동 수단)와 자율주행 등 미래 차 기술에 14조7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연평균 투자액은 9조600억원이다. 지난 5년간 평균 투자액(약 5조7000억원)보다 58.9% 늘어난 규모다. 설비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제품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미래 차 시장의 주도권을 확실히 가져오겠다는 게 현대차 구상이다.

외부 인재 영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정보기술(IT) 인재 등을 외부에서 수혈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지난 6월 SK그룹에서 일했던 설원희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객원교수를 미래혁신기술센터장(부사장)에 배치했다. 그 결과 현대차 미래 전략을 총괄하는 전략기술본부 내 고위직 3인방은 모두 외부 인사로 채워졌다. 본부장인 지영조 사장은 삼성전자 출신이다. 오픈이노베이션전략사업부장을 맡은 윤경림 부사장은 KT에서 일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는 지난해부터 정기 공개채용을 없앴고, 직급 단순화 작업을 하는 등 다양한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며 “기존의 틀에 갇혀서는 미래형 인재를 뽑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과감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