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수비크 조선소 전경
필리핀 수비크 조선소 전경
경영 정상화를 추진해온 한진중공업이 암초를 만났다. 해외 현지법인인 필리핀 수비크조선소가 수주 부진에 따른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수비크조선소에 기자재를 납품해온 부산·경남 지역 경제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진중공업은 8일 자회사인 수비크조선소가 필리핀 올롱가포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2006년부터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110㎞ 떨어진 수비크만에 세계 최대 도크 시설을 갖춘 조선소를 짓기 시작했다. 부산 영도조선소가 좁아 선박 대형화 경쟁에서 밀리며 내린 결정이었다. 영도조선소의 아홉 배에 달하는 300만㎡ 면적의 수비크조선소에서는 초대형유조선(VLCC)과 컨테이너선 등을 건조하고, 군함 등 특수선만 영도조선소에서 짓기로 했다.

수비크조선소는 2008년 첫 선박을 인도한 이후 100여 척의 선박을 건조하는 등 순조로운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2016년(-1820억원)과 2017년(-2340억원) 연이어 대규모 영업적자를 냈다. 수비크조선소가 주로 짓던 VLCC와 컨테이너선의 가격과 기술 경쟁력이 중국 조선소들에 뒤처지면서 수주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일감이 줄면서 작년 3분기(7~9월) 조선소 가동률은 27.9%까지 추락했다. 수비크조선소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빅3’가 주로 짓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종 건조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

수비크조선소를 짓는 과정에서 한진중공업 재무구조는 급속도로 악화됐다. 조선소 건설비용으로 6400억원을 투자했고, 이후 운영비용 등으로 4700억원을 출자하는 등 2조원 이상을 수비크조선소에 투입했다. ‘수주 절벽’까지 닥치면서 비용 부담은 더 커졌고, 한진중공업은 2016년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고 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을 진행해왔다. 작년 초부터 외부 투자자 유치를 포함해 경영권 매각도 시도했지만 매수자를 찾는 데 실패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해운시장이 LNG선 위주로 재편되면서 컨테이너선 등 범용 선박 중심인 수비크조선소가 살아남기 쉽지 않은 여건”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법원은 앞으로 실사를 통해 수비크조선소의 회생 가능성을 따진 뒤 법정관리에 들어갈지, 청산 절차를 밟을지 결정한다. 한진중공업은 영도조선소 중심의 ‘클린 컴퍼니’를 만들어 경영 정상화를 추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3만여 명에 달했던 수비크조선소 근로자를 3000여 명까지 줄여 현지 정부와의 마찰 가능성도 낮췄다.

하지만 수비크조선소에 기자재를 공급해온 부산·경남 지역 조선 기자재업체들은 법정관리 여파로 수백억원대 납품대금을 못 받을까 우려하고 있다. 경영난 탓에 수비크조선소 현금이 이미 바닥난 데다 법정관리 과정에서 받아야 할 돈(매출채권)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보형/박상용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