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는 17일 불법 등기이사 재직 논란을 빚은 진에어에 대한 면허취소 여부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취소 처분을 내리지 않기로 최종 결론 내렸다고 발표했다. 이날 오전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에서 진에어 이용객들이 탑승 수속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토교통부는 17일 불법 등기이사 재직 논란을 빚은 진에어에 대한 면허취소 여부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취소 처분을 내리지 않기로 최종 결론 내렸다고 발표했다. 이날 오전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에서 진에어 이용객들이 탑승 수속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토교통부가 17일 진에어의 운송사업 면허를 취소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공적 이익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이 훨씬 클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항공사 청산을 의미하는 면허취소 처분을 내리면 진에어 임직원 1900여 명은 물론 협력업체 직원 1만여 명까지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 예약을 통해 진에어 항공기 표를 산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고, 소액주주들도 주가 급락으로 막대한 손실을 볼 것이라는 우려를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고용불안 등 후폭풍 감안

지난 16일 열린 ‘진에어 면허취소 검토 자문회의’에 참석한 12명의 민관 전문가는 국내 항공사에 외국인 등기임원이 있으면 면허를 취소하도록 한 조항이 2008~2012년에는 정부가 임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돼 있었지만 2012년부터 강제 조항으로 바뀐 점에 주목했다. 미국 국적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미국 하와이 출생)가 진에어의 등기임원이었던 2010~2016년은 해당 조항이 바뀌는 기간이어서 면허취소 여부를 판단할 때 공적인 이익과 부정적인 영향을 비교해 결정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비슷한 사례의 의료법 관련 판례를 참고했다.

자문회의는 조 전 전무가 등기임원으로 일하면서 항공주권 침탈과 같은 문제가 일어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조 전 전무가 2016년 3월 퇴임해 면허 결격사유가 해소돼 소급적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했다.
'퇴출' 벼랑 끝 몰렸던 진에어, '일자리' 덕분에 살았다
다만 국토부는 ‘갑질’ 논란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서는 제재가 필요하다고 봤다. 신규 노선 허가와 신규 항공기 등록, 부정기편 운항허가를 제한하기로 한 이유다. 항공사업법 시행규칙 8조의 ‘신규 정기편이나 부정기편 운항을 허가할 때 안전과 이용자 편의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 허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들었다. 진현환 국토부 항공정책관은 “대한항공 총수 일가가 ‘갑질 경영’ 행태를 바꾸지 않으면 제재가 풀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진에어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만큼 면허가 취소돼 주가가 급락하면 주주들이 소송을 걸고 지분 11.23%를 보유한 외국인투자자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면허 유지를 결정한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면허취소 여부를 발표하기 하루 전날인 지난 16일 진에어 주가는 2만1700원에 마감했다. 지난해 12월 상장 때 공모가는 3만1800원이었고, 지난 4월10일엔 3만3800원까지 올랐다. 면허 취소 가능성이 제기된 6월 초부터 주가가 하락해 고점 대비 30% 이상 급락했다.

한숨 돌렸지만… 손발 묶인 진에어

진에어는 이날 입장자료를 통해 “국토부의 면허 유지 결정 취지를 존중한다”며 “조속히 경영을 정상화하고 고객 가치와 안전을 최고로 여기는 항공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규 노선 허가와 신규 항공기 등록 제한 등의 제재를 받게 되는 만큼 경영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쟁적으로 항공기를 늘리고 있는 다른 저비용항공사(LCC)와 달리 진에어는 제재가 풀릴 때까지 새 비행기를 들여올 수 없다. 진에어는 지난달 청주발 국제선 노선에 투입할 항공기(B737-800) 두 대를 도입하기 위해 리스(임차) 계약을 하고, 그 중 한 대는 좌석 개조까지 마쳤지만 ‘갑질 논란’ 탓에 취항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최대 성수기인 휴가철 부정기편 취항도 전면 중단됐다. 새 항공기 도입에 맞춰 연말까지 신규 인력 500명을 채용하려던 계획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상충하는 법 조항… 글로벌 추세에 역행

진에어를 면허취소 위기로 몰고 간 관련 항공법 조항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토부가 진에어의 면허취소가 가능하다고 본 근거는 ‘항공사업법 제9조’에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외국인은 국내 항공사 임원으로 재직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기면 항공사업 면허를 취소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항공안전법 제10조’는 외국인이 법인등기부상 대표자이거나 등기임원의 2분의 1 이상인 법인이 소유하거나 임차한 항공기는 등록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외국인 임원을 한 명도 허용하지 않는 법과 등기임원의 2분의 1까지는 허용하는 법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애초 항공사업법에 외국인 임원을 허용하지 않는 조항이 들어간 경위도 논란거리다. 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1991년 항공법(항공사업법의 모체) 개정안을 입법예고할 때는 외국인 임원을 금지하는 조항이 없었지만 법제처의 문구 수정 과정에서 외국인 임원을 둘 수 없도록 법안이 수정됐다. 방정현 법무법인 정앤파트너스 변호사는 “법제처 심사 과정에서 추가된 중대한 규제에 대해 재입법예고를 하지 않고 나중에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일본 등에도 비슷한 규정은 있지만 외국인 임원을 단 한 명도 두지 못하도록 한 곳은 한국뿐이다. 논란이 커지자 국토부는 항공법 개정 방안을 마련해 다음달 발표하기로 했다.

김보형/서기열/박상용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