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진주시 승산마을은 삼성그룹과 LG그룹, GS그룹, 효성그룹의 창업자들이 태어났거나 인연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허만정 GS그룹 창업회장,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 허정구 삼양통상 창업회장 등이 모두 이 지역에서 태어났거나 이 지역의 초등학교인 지수초등학교를 다녔다.
"삼성·LG, 한 마을 출신"…日에도 '대기업 출생 마을' 있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일본에도 세계적인 기업이 동시에 탄생한 '일본판 승산마을'이 있다. 시즈오카현 하마마쓰가 그 무대다.

일본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자동차 혼다 스즈키, 세계 최대 악기 제조사이면서 엔진 전문 기업인 야마하, 피아노 생산업체인 가와이악기제작소의 창업자들이 모두 이 지역에서 배출됐다.
"삼성·LG, 한 마을 출신"…日에도 '대기업 출생 마을' 있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도요타자동차그룹의 창업자 도요타 사키치는 하마마쓰시의 이웃인 고사이시 출신이다. 혼다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 스즈키 창업자 스즈키 미치오, 가와이악기의 가와이 고이치는 하마마쓰시에서 태어났다.

세계 최초로 TV를 개발한 'TV의 아버지' 다카야나기 겐지로도 하마마쓰시 출신이다. 야마하 창업자인 야마하 도라쿠스는 와카야마현 출신이지만 하마마쓰에서 처음 피아노를 생산하고 야마하를 차렸다.

자동차는 설명이 필요없는 일본의 대표 산업이다. 반면 전세계 피아노의 40%, 관악기의 30%가 하마마쓰에서 생산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마마쓰는 전자 피아노, 건반 오르간 시장 점유율도 세계 1위다.
"삼성·LG, 한 마을 출신"…日에도 '대기업 출생 마을' 있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진주시 승산마을 일대에서 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창업자들이 여럿 배출됐는지를 설명하는데는 솥바위 전설이 언급된다. 경남 의령의 솥바위 반경 20리 안에서 내로라하는 부자들이 나온다는 전설이다.

일본 대표 기업들이 유독 하마마쓰에서 많이 탄생한 데는 전설 대신 역사적·문화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도요타, 혼다, 스즈키, 야마하, 가와이 등 이 지역에 기원을 둔 기업들의 공통점은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을 발휘한 제조업이라는 점이다.
"삼성·LG, 한 마을 출신"…日에도 '대기업 출생 마을' 있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하마마쓰는 전국 시대를 통일하고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관계가 깊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유년기 17년 동안 하마마쓰에서 성장했다. 1570년 그가 이 지역에 성을 쌓고 하마마쓰란 이름을 붙이면서 도시의 역사가 시작됐다.

당시 도쿠가와의 최대 위협은 전국 시대 최강으로 평가받던 다케다 신겐이었다. 다케다 신겐의 본거지는 시즈오카의 북쪽인 야마나시였다. 하마마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케다 신겐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쌓은 성이었다.
"삼성·LG, 한 마을 출신"…日에도 '대기업 출생 마을' 있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하마마쓰를 흐르는 텐류가와는 에도시대 250년간 홍수가 250 차례 일어날 정도로 거친 강이었다. 물길을 다스리기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해안 단구를 더 높이고 그 곳에서 면화를 생산했다. 기후가 온난하고 일조시간이 긴 덕분에 면화 생산에 적합한 지역이었던 하마마쓰는 곧 에도 3대 면화 산지로 떠올랐다.
"삼성·LG, 한 마을 출신"…日에도 '대기업 출생 마을' 있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수확한 면화로 면제품을 생산하려면 방직기가 필요했다. 당시 방직기는 높은 기술이 필요한 정밀 기계였다. 자연스럽게 하마마쓰에는 일본 전역에서 장인들이 몰려들었다. 도요타와 스즈키 같은 자동차 회사들의 모태가 방직기 회사인 이유다.

방직기 제조 기술을 살린 또다른 상품이 피아노다. 페달을 밟아서 실을 잣는 방직기는 풍금(오르간)과 원리가 비슷했다. 1887년 이 지역 초등학교에 들여온 미국산 풍금이 2개월 만에 고장났다. 고장난 풍금을 고친 인물이 의료기기 수리 기술자로 하마마쓰에 머무르던 야마하 도라쿠스다.
"삼성·LG, 한 마을 출신"…日에도 '대기업 출생 마을' 있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처음 본 오르간을 수리하면서 야마하는 자신이라면 10분의 1의 비용으로 풍금을 만들 수 있겠다고 자신했다. 풍금을 국산화하면 일본의 교육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야마하는 미국산 풍금을 수리하면서 부품 하나하나마다 도면을 그려놓았고, 이를 토대로 시제품을 만들었다. 풍금을 개량한 끝에 야마하는 1900년 일본 최초의 피아노를 만들게 된다.
"삼성·LG, 한 마을 출신"…日에도 '대기업 출생 마을' 있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하마마쓰는 악기를 생산하기에 최적의 마을이기도 했다. 오늘날까지도 하마마쓰에서는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연을 선물하는 전통이 있을 정도로 바람이 많다. 피아노를 만들려면 80%가 수분인 목재의 수분 함유량을 10% 밑으로 낮춰야 한다. 연의 고장 하마마쓰에는 목재를 말릴 수 있는 건조한 바람이 연중 분다.

피아노의 음색은 어떤 목재를 어떻게 섞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하마마쓰 북쪽에는 다양한 목재의 산지인 미나미알프스산맥이 있다. 텐류가와는 북쪽에서 생산된 목재를 실어보내는 수로 역할을 했다. 도요타·혼다·야마하의 발상지 하마마쓰中으로 이어집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