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소희 /사진=뉴스1
배우 한소희 /사진=뉴스1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등장하는 수많은 에피소드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페데리고의 매’(Federigo's Falcon)를 꼽을 수 있다.

<데카메론> ‘다섯째 날 아홉 번째’ 이야기인 이 에피소드는 ‘기사도적 사랑’을 그린 중세적 가치를 다루고 있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엇을, 얼마만큼 희생할 수 있나’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현대 문학 작품이 떠오를 정도로 반전의 매력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한 귀족 부인을 사모해 “가산을 탕진한”한 ‘지고지순한’(?) 사나이의 러브스토리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이탈리아 피렌체에 페데리고라는 청년이 살았다.

그는 피렌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인 조반나(모나 조바나)를 짝사랑했다. 조반나 부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는 창 시합과 무술대회를 자주 개최했다. 걸핏하면 성대한 무도회를 열어 그녀에게 마음을 전했다. 돈을 아끼지 않고 온갖 아름다운 보석과 선물을 마련해 그녀에게 보냈다.

그러나 아름다운 미모만큼 절개가 굳은 조반나 부인은 지나친 친절을 베푸는 그 남자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계속된 선물과 잔치로 재산을 탕진한 페데리고는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단인 작은 농장과 진기한 매 한 마리만 수중에 남게 됐다.

그는 시골로 내려가 매 사냥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조반나 부인은 남편을 잃었다. 그리고는 우연히 페데리고가 사는 곳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됐다.

조반나 부인의 어린 아들은 시골에서 여기저기 뛰어놀다가 페데리고가 진기한 매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아들은 매를 갖고 싶어 했다. 그러던 중 아이는 중병에 걸렸고, 소원으로 “페데리고의 매를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매를 가지면 병이 나을 것 같다면서.

조반나 부인은 고심 끝에 페데리고를 찾아갔다. 매가 가난해진 페데리고의 생계수단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죽어가는 아들의 소원을 외면할 수 없어 부탁하기로 한 것이다.

조반나 부인은 매를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페데리고의 집을 방문했다.

영문도 모른 채 연모하는 여인이 집을 방문하자 페데리고는 감격했다. 하지만 대접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고심 끝에 아끼는 매를 잡아서 부인에게 음식으로 대접했다.

식사가 끝난 뒤 “매를 줄 수 없겠냐”는 부탁을 듣고선 페데리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많은 재산을 지니고 있었을 땐 부인이 한 번도 초대에 응해주지 않았고, 막상 ‘쉽게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을 하러 자신의 집을 방문했을 때엔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결국, 조반나 부인은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왔고, 아들은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이후 세월이 흘러 조반나 부인이 재혼하게 됐을 때, 조반나 부인은 빈털터리 페데리고를 남편감으로 선택했다.

페데리고는 부인의 재산으로 다시 부자가 됐다.

최근 유명 남녀 연예인 간 열애를 두고 ‘환승연애’ 논란이 빚어졌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갈아타는 것과 같이 연인과 헤어지자마자 다른 연인을 만나는 것을 두고 젊은 층에서 ‘환승연애’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데.

어렴풋하게 뜻이 가늠되는 신조어를 접해 당혹스러워 하다가 문득 페데리고의 순애보가 떠올랐다. 복기해 보면 <데카메론> 속 조반나 부인의 행적이야말로 ‘환승연애’의 정석이 아닐까.

김동욱 오피니언부장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