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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욱
    김동욱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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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경제 중기과학부장입니다.

  • [세계를 바꾼 순간들] 모든 '방파제' 무너뜨린 쓰나미, 경제 대공황

    1920년대는 미국 경제사에서 풍요로운 번성의 시기로 평가받는다. 당시 미국 공업 생산은 약 90% 증가했다. 소비자의 구매력이 향상되면서 자동차와 가전제품 같은 내구 소비재 소비가 늘었다.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는 반면 물가는 안정됐다. 주식시장은 활황을 보여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는 별칭이 붙었다.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산업 생산 중심지였던 시카고는 경제 활황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었다. 철강, 육류 가공, 기성복 제조, 농산물 거래가 활발했다. 농산물 가공품과 가구, 전화기 관련 장비, 철도 부품, 철강 제품을 시카고는 미국 내 어느 곳보다 많이 생산했다. 당시 시카고 노동자들에게는 특별한 자격이 요구되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의 험한 일을 해낼 체력과 의지만이 중요했다.US스틸, 스위프트, 인터내셔널하베스터를 비롯한 대규모 제조공장이 밀집한 시카고는 미국에서 노동운동의 영향력이 가장 강한 지역으로 유명했다. 1919년 당시 시카고에서 일하는 40만 명의 노동자 중 70% 이상이 종업원 수가 100명이 넘는 작업장에서 일했다. 3분의 1가량은 종업원 수 1000명 이상인 ‘대기업’에서 일했다. 하지만 독일, 폴란드, 체코, 유고슬라비아, 리투아니아 등 다양한 지역에서 이민 온 백인과 유대인, 흑인 등 여러 인종의 노동자 간 교류와 의사소통은 수월치 않았다.미국이라는 나라는 부유해졌을지 몰라도 사회 하층부의 개별 노동자까지 경제적 곤궁에서 벗어난 사례는 많지 않았다. 실업의 위기는 상존하는 위협이었고, 가족 구성원의 질병이나 예기치 않은 죽음은 흔한 일이었다. 이와 함께 살고 있는 집에서 언제 쫓겨날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다

    2026.06.22 09:00
  • [천자칼럼] 韓·日만의 고민 '정년'

    1936년 4월 일본 재벌 미쓰이의 지주회사 격인 미쓰이합명회사 상무이던 이케다 시게아키가 정년제를 도입했다. 최고경영진은 65세, 임원진은 60세, 일반 직원은 55세로 정년이 정해졌다. 미쓰이은행, 미쓰이물산, 미쓰이광산 등 6개 그룹사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됐다. 같은 해 군사쿠데타(2·26 사건)가 발생한 배경에 ‘빈부 격차’가 있다고 본 일본 정부가 재정을 확대하고 세금을 감면하고 금리를 낮추며 민심을 다독이던 상황에 발맞춘 조치였다.일반 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정년제를 적용하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정년이 ‘직업 안정성’의 상징으로 여겨진 까닭에 연장 움직임도 뚜렷하다. 일본은 법적 정년이 60세지만 2021년부터 65세까지 고용을 의무화했다. 중국은 남성 60세, 여성 50세인 정년을 2040년까지 남성 63세, 여성 55세로 단계적으로 늘리고 있다. 싱가포르도 63세인 정년을 2030년까지 65세로 연장하기로 했다.미국과 유럽에선 법적으로 정년 개념이 없다.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 ‘강제 해고’로 정년을 보기 때문이다. 미국은 1986년 연령차별금지법을 개정하면서 기업 내 정년이 불법이 됐다. 2006년 65세 ‘기본 정년연령’ 규정을 마련한 영국은 불과 5년 만에 정년제를 폐지했다. 유럽 국가에선 통상 65세 언저리인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동아시아의 ‘정년’과 비슷한 ‘은퇴’ 시점으로 삼는다.한국은 일본 제도를 참조해 1963년 공무원 정년제도를 도입했다. 1991년 고령자고용촉진법을 제정하면서 민간 기업 권고사항으로 60세 정년을 제시했다. 2013년 법 개정과 함께 정년 60세가 의무 조항이 됐다.노동계가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입법을

    2026.06.17 17:39
  • [천자칼럼] 전쟁의 끝

    1904년 발칸반도 몬테네그로의 국왕 니콜라스 1세는 ‘구두’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러·일 전쟁에서 이웃 국가인 러시아 측에 가세한 것이다. 실제 참전은 아니었기에 강화 회담에 몬테네그로는 초대받지 못했다. 이후 몬테네그로라는 나라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가 유고슬라비아가 붕괴해 되살아날 때까지 일본과 몬테네그로 간 서류상 ‘교전 상태’는 100년 넘게 계속됐다. 양국은 2006년 수교 과정에서 “선전포고 공식 문서는 없다”며 ‘종전’에 도달했다.전쟁은 끝내기가 어렵다. 생각한 대로 진행되는 전쟁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짠 작전계획도 적과 부딪히는 순간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가 된다. 미국은 베트남 밀림에 9년이나 발을 담그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2주 안에 전쟁을 끝낸다고 자신하던 러시아는 4년 넘게 우크라이나 수렁에 빠져 있다. “전쟁은 원할 때 시작할 수는 있어도 원할 때 멈추지는 못한다”는 마키아벨리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실제 전장에선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갈리지 않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이겨도 ‘전리품’을 획득하는 것보다 나누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다. 명분과 실리를 챙기는 과정에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전쟁은 군인들에게만 맡기기엔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며 몰려든 정치가와 외교관은 전쟁의 마무리 작업을 방해만 할 뿐이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제 “이란과의 종전 협상이 완료됐다”고 밝혔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규모 공습을 하며 시작된 전쟁이 106일 만에 막을 내리는 셈이다. 오는 19일 스위스에서 열리는 휴전 연장 양해각서(MOU) 서명

    2026.06.15 17:43
  • 스마트폰 없는 세상, 레닌이 ‘전기화’에 올인한 사정 [세계를 바꾼 순간들]

    “공산주의는 사회주의 권력에다 전 국가의 전기화를 더한 것이다.” 러시아혁명의 태두 블라디미르 레닌은 위와 같은 말로 전기·전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같은 표어가 국가 지도자의 입에서 나오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러시아혁명으로 집권한 소련 공산당은 1920년대까지 정치적·경제적 기반이 취약했다. 국가 경제는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1920년 공업 생산량은 제1차 세계대전 전인 1913년의 14%에 지나지 않았다. 1920년 6월 당시 전체 기관차의 60%가 운행이 불가능했다.1923년 소련의 평균 열차 운행 속도는 시속 10마일(16km) 이하였고, 열차 이용객 수는 1913년의 절반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많은 공장이 원자재와 연료 부족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러시아의 주요 탄전은 가동 중단 상태였고, 공장 시설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거의 없었다. 당시 대기업의 생산량은 전쟁 전의 18% 수준이었다. 곳곳에 기아와 질병이 만연했고, 혁명의 결과를 되돌리기 위한 백군과 외국 간섭군의 위협도 여전했다.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소련 정부는 1920년 2월 ‘고엘로(ГОЭЛРО)’라는 약칭으로 불린 러시아 전력화 기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기구에서 ‘고엘로 계획(план ГОЭЛРО)’이라는 전력화 사업 계획을 마련했다. 이는 소련의 경제를 회복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첫 5개년 계획이었고, 이후 소련의 계획경제 당국인 고스플란(Госплан)이 추진하는 5개년 계획의 원형이 됐다. 레닌은 “10년 안에 소련을 ‘전기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글레프 크르지쟈놉스키의 지휘하에 200여 명의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고엘로에 참여했다. 고엘로는 붕괴

    2026.06.15 09:00
  • [천자칼럼] 첫발 내디딘 '화성 침공'

    화성은 붉게 빛난다. 산화철(Fe2O3)과 수산화철(FeO(OH)), 즉 붉게 녹이 슨 쇠 성분이 화성 토양에 많이 함유된 까닭이다. 대다수 푸른 별과 대비되는 화성의 모습에서 로마인들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전쟁의 참화를 떠올렸다. 전쟁의 신 마르스(Mars)의 이름이 붉은 행성을 지칭하게 된 이유다.군신(軍神)의 이미지 탓인지 상상의 세계에서 화성은 지구를 침공하는 주체였다. 1898년 영국 작가 허버트 웰스는 소설 <우주 전쟁>에서 화성인을 지구를 침공해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연체동물 형상으로 묘사했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 ‘화성 침공’에선 지구에 쳐들어온 화성인이 재미 삼아 사람을 학살하는 것으로 그려졌다.1976년 미국 행성 탐사선 바이킹1호가 화성에 착륙해 행성의 ‘민낯’을 전송했다. 화성의 이미지도 점차 ‘개척 대상’으로 바뀌었다. 지구와 비슷한 환경이라는 매력도 부각됐다. 화성의 평균온도는 영하 53도지만 최고기온은 영상 20도까지 오른다. 계절이 존재하고 자전주기(24시간39분)도 지구와 비슷하다.여전히 화성은 머나먼 존재다. 2억2500만㎞나 떨어진 공간으로 인간은 거주하기는커녕 가보지도 못했다. 화성을 인류가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는 ‘테라포밍(terraforming)’은 차원이 다른 작업이다. 화성의 중력은 지구의 38%, 대기압은 지구의 1% 수준이고 대기의 95%를 이산화탄소가 차지한다. 지구에서 35억 년이나 걸린, 대기와 물을 조성하고 온도를 높이는 작업을 단기간에 하는 것은 아직은 꿈에 가까운 일이다.인류의 화성 이주 구상을 밝힌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지난 12일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됐다.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20% 가까

    2026.06.14 17:29
  • [천자칼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수없이 시작했고, 또 수없이 포기했다. 써놓은 원고를 수없이 바람에 날려 보냈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 서문에서 책을 쓰기 시작해서, 원고가 진척되고, 완성되기까지 20년간 겪은 어려움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위대한 작품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구상에서 탈고까지 60년이 걸렸다. 베토벤은 악상을 떠올린 후 16년간 수없이 고쳐 쓴 뒤에야 ‘합창교향곡’을 세상에 내놨다.위대한 책과 예술품에는 한 사람의 땀과 열정 그리고 혼이 투사된다. 그래도 개인 작품은 작가가 죽기 전에 결실을 볼 수 있기에 사정이 낫다. 대규모 건축물은 주춧돌을 놓고 완공되기까지 한 사람의 생애를 훌쩍 뛰어넘고는 한다. 1248년 착공한 독일 쾰른대성당은 1880년 마무리될 때까지 632년이 걸렸다. 424년에 걸쳐 지어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성당은 여전히 오른쪽 종탑이 없는 미완성 상태다.바티칸 성베드로성당(144년), 파리 노트르담성당(185년), 피사의 사탑(199년), 모스크바 크렘린(364년), 런던 웨스트민스터사원(500년) 그리고 건설의 시작과 끝을 확정하기 어려운 중국의 만리장성처럼 대를 이어가며 지은 랜드마크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살아있는 동안 완성을 보지 못하고, 언제 끝날지도 모를 일에 말없이 돌을 쌓아 올린 이들의 마음가짐은 어땠을까.144년째 건설 중인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그라다파밀리아성당의 완공이 가시권에 들었다. 그제 성당 설계자인 안토니 가우디 100주기를 맞아 성당에선 ‘예수 그리스도의 탑’ 준공식이 열렸다. 172.5m 높이의 이 탑은 성당 첨탑 18기 중 가장 높고 중요한 상징물이다. 교황 레오 14세가 직접 가우디 추

    2026.06.11 17:30
  • [천자칼럼] 동해산 참치

    영어로 참치를 의미하는 단어 ‘튜나(tuna)’는 고대 그리스어로 ‘재빨리 움직이다’ ‘날아가다’라는 뜻을 지닌 ‘투노스’에서 유래했다. 잡으려던 물고기가 쏜살같이 사라진 모습을 보고 이름을 붙였다. 최고 속도가 시속 64㎞를 넘는 참치를 두고 시인 오피아노스는 “물고기 중에서 튀어 오르는 힘과 빠름에서 단연 최고”라고 묘사했다.참치와 백상아리, 고등어 같은 빠른 속도로 유영하는 물고기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헤엄치는 방식으로 호흡(램 환기법)한다. 이들을 잡아서 물 밖으로 꺼내는 순간 바로 죽는 이유다. 지방이 많아 상하기 쉬운 참치는 잡자마자 바로 손질해야 하는 까닭에 냉장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인기 있는 생선이 아니었다. 세계 최대 참치 소비국인 일본에서도 옛 귀족의 밥상에는 참치보다는 담백한 흰살생선인 도미와 잉어가 올랐다.길이 4.2m에 무게 680㎏까지 자라는 참치는 잡아도 ‘처치 곤란’인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까지 캐나다 노바스코샤 인근에서 스포츠 낚시로 잡은 대형 참다랑어는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미국으로 전자제품을 수출하는 화물 수송기가 텅 빈 채 돌아가는 모습을 본 일본 상사맨들은 버려지는 참다랑어를 헐값에 사서 화물칸을 채웠다. 천대받던 참치가 고급 식자재로 변신한 출발점이었다.격렬하게 움직이는 참치는 체내에 아데노신3인산(ATP)을 다량 축적한다. 참치가 죽으면 이 ATP가 이노신산(IMP)으로 전환되는데 이것이 감칠맛의 근원이다. 대형 참다랑어와 눈다랑어는 감칠맛을 살린 횟감과 초밥 재료로, 씨알이 작은 가다랑어는 통조림 원료로 사용된다.동원산업이 국내산 참다랑어 유통에 본격적으로

    2026.06.10 17:47
  • [천자칼럼] "재선거" 구호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조지 오웰의 풍자소설 <동물농장>에서 주인인 인간을 몰아낸 동물들은 날마다 ‘인간은 사악하고, 동물은 선하다’는 내용의 구호를 외친다. 동물농장의 권력을 장악한 돼지 나폴레옹이 독재자로 변하는 과정도 구호에 즉각 반영됐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모토는 어느 순간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는 정반대 문구로 탈바꿈한다.짧고 선명한 구호의 힘은 강하다. 직관적이고 기억하기 쉬운 몇 단어로 압축된 한마디는 군중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3·1운동 때 거리에 나온 한국인들은 ‘대한 독립 만세!’를 목청껏 불렀다. 민주화 운동 당시 대학생들은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며 한마음이 됐다. 언어학자 빅토르 클렘페러는 <제3 제국의 언어>에서 “나치의 가장 강력한 선전도구는 히틀러나 괴벨스의 연설도, 신문 기사도, 전단도, 포스터도, 깃발도 아닌 반복돼 들리는 말”이라고 갈파했다.군중이 외치는 구호가 ‘시대의 요구’와 부합하면 시위의 폭발력은 증폭된다. 21세기 들어 미국에서 등장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같은 슬로건은 미국 사회가 가는 방향을 바꿨다.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는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개표소(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는 지난 주말 20·30세대를 중심으로 4만 명 가까운 인파가 모였다. 시위 참가자들은 ‘재선거’라는 하나의 구호만을 외치고 있다. 참정권 침해에 항의하는 시위에 자칫

    2026.06.08 17:46
  • 1달러가 4조 마르크? 지폐가 낙엽보다 쓸모없어지면 생기는 일 [세계를 바꾼 순간들]

    1908년부터 1923년까지 독일 중앙은행 라이히스방크 총재를 맡았던 루돌프 하펜슈타인을 두고 당대 독일인들은 ‘돈의 총사령관(Geldmarschall)’이라고 불렀다. 후일 붙은 ‘초(超)인플레이션의 아버지(Vater der Hyperinflation)’라는 오명(汚名)이 더 익숙하긴 하지만 말이다.하펜슈타인은 1871년 독일 통일 이후 유지되던 금본위제에 종언을 고한 인물이기도 했다. 1914년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하루 전, 하펜슈타인은 금본위제 탈퇴를 선언했다.독일 국민을 전시체제로 동원하기 위해 독일 중앙은행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많은 돈을 찍어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하펜슈타인은 중앙은행의 금 태환 의무로부터 결별을 선언했다. 그리고 금을 보유한 독일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해 그들이 보유한 금을 국가에 헌납하도록 유도했다. 이는 어찌 보면 ‘사기’에 가까운 일이기도 했다.전쟁이 발발하자 수많은 여성이 자신의 목걸이와 팔찌, 결혼반지 같은 보석을 내놨다. 남자들은 시계와 훈장, 메달 등을 국가에 헌납했다.어느 순간부터 금반지를 끼고 금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됐다. 국가에 금을 제공하면 ‘증명서’ 용도로 철로 된 장신구를 받았다. 나폴레옹 전쟁 때 프랑스에 대적하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원됐던 ‘(군수용)철을 위해 금을 내준다(Gold gab ich für Eisen hin)’라는 문구가 다시 한번 사용되면서 독일 사회에 위력을 떨쳤다.하펜슈타인 재임 기간 독일의 화폐 시스템도 출렁였다. 1871년 프로이센 주도로 독일이 통일돼 제2 제국이 성립하면서 금본위 통화인 골트마르크가 독일 전역의 공식 통화로 통용됐다. 하지만 1914년 제1차 세

    2026.06.08 09:01
  • 일주일에 4명씩 치여 죽던 '말똥 지옥💩' 뉴욕을 구한 구원투수 [세계를 바꾼 순간들]

    19세기 말 미국 뉴욕 거리는 말똥 천지였다. 곳곳에 높이가 2m에 달하는 말똥 더미가 쌓여 있었다. 말의 분뇨에서 나는 악취와 셀 수 없이 달려드는 파리 떼는 도시의 상징이었다. 1867년 뉴욕에선 일주일에 평균 4명의 보행자가 말에 치여 사망했다. 뉴욕만 이런 것이 아니었다. 1870년 보스턴은 인구 25만 명에 말이 5만 마리나 됐다. 시카고에선 매년 말의 사체만 7000마리씩 나왔다.말은 단순한 교통수단 이상의 존재였다. 1872년 말들이 집단으로 감기에 걸리면서 미국 동북부 주요 도시는 그야말로 마비 상태였다. 대중교통 역할을 담당하던 마차업체는 운행을 무기한 연기했다. 도시 내 운송을 전담하던 말이 사라지면서 기차역엔 화물이 쌓였고, 도시민의 생활에 필요한 우유와 얼음, 채소, 맥주 등은 동이 났다. 공장들이 멈춰 섰고 소방업무와 쓰레기 처리 같은 도시의 행정 업무도 발이 묶였다. 교통과 물류 유통에서 말이 차지하는 위상은 수백 년간 절대적이었다.말이 끄는 승합마차(omnibus)는 오늘날 택시나 버스에 비견되는 대도시의 대표적 출퇴근용 교통수단이었다. 승합마차는 1828년 프랑스 파리에 처음 등장했고, 1832년 영국 런던에서도 주요 이동 수단으로 부상했다. 미국에선 1853년 뉴욕에 처음 도입됐다. 사업가 제이컵 샤프는 뉴욕 브로드웨이 주요 도로에서 3100대의 승합마차를 운영했다. 이런 승합마차 서비스는 1840~1850년대 미국 동북부와 중서부 주요 도시로 빠르게 확산했다.교통수단으로서 말의 위상은 너무나 확고해 흔들릴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동차가 등장하자 말은 순식간에 시장에서 밀려났다. 원하는 때 움직일 수 있고, 사료를 먹지도 않고 배설물도 없는 자동차는 삽시간에

    2026.06.01 09:01
  • [천자칼럼] 사라지는 도서관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나,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이탈리아 북부 한 수도원에 자리한 도서관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가상의 저술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희극편’이 수많은 장서와 함께 불길에 휩싸이는 장면은 하나의 정신세계가 사라지는 것을 상징한다.실제 역사에서도 ‘책의 학살(libricide)’은 인류가 축적한 지식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기원전 48년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 화재로 4만여 권의 문헌이 한 줌의 재가 됐다고 한탄했다. 1923년엔 관동대지진으로 76만 권의 장서를 보유했던 도쿄제국대 도서관이 전소됐다. 도서관과 함께 메이지유신 이후 반세기 동안 쌓은 일본의 지식자산 다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시련이 이어졌지만 ‘지식의 집적체’인 도서관은 다시 일어섰다. 종교혁명 시기 영국 옥스퍼드대 도서관의 장서 96.4%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재건에 나선 토머스 보들리가 보들리언도서관을 설립한 이후 1300만 권이 넘는 인쇄물을 소장한 공간으로 거듭났다. 92㎞ 길이 서가에 350만 권이 비치된 미국 하버드대 와이드너도서관이 1915년 개관했을 때 소장한 첫 책은 <악마, 속세, 육욕에 맞선 기독교 전쟁>이었다. 대학 설립자 존 하버드가 학교에 기증한 책 중 1764년 하버드홀 화재에서 살아남은 유일본을 재탄생의 씨앗으로 삼았다.오뚝이처럼 일어났던 도서관이 이제는 수명을 다해가는 모습이다. 미국 명문대 MIT가 대학 내 4개 도서관 중 베이커, 듀이, 로치 등 3개 도서관을 다음달 폐쇄하기로 했다. 재정 압박 탓에 도서관 직원을 정리

    2026.05.28 17:36
  • [김동욱 칼럼] 모파상 '목걸이'가 낯설어진 시대

    “어쩜, 어떡하면 좋아! 마틸드, 그 목걸이는 가짜였어! 기껏해야 500프랑밖에 나가지 않는….” 기 드 모파상의 단편소설 ‘목걸이’ 속 주인공 마틸드 루아젤에게 10년간의 삶은 무척이나 잔혹했다. 빌린 돈을 갚겠다고 궂은일을 가리지 않은 탓에 그의 아름다운 외모는 지독한 가난에 찌든 할머니처럼 변했다. 무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친구에게 빌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분실한 대가는 너무나 컸다. 잃어버린 목걸이가 모조품인지도 모른 채 3만6000프랑짜리 진짜 목걸이를 사서 돌려준 뒤부터 그의 삶에는 오직 빚을 갚는 일만이 존재했다. ‘이자에 이자가 붙는 무서운 빚’이라는 표현은 마틸드가 처한 절박하고 섬뜩한 처지를 압축적으로 전한다.모파상이 활동하던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목걸이’의 독자는 소설 속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낀다. ‘빌린 돈은 갚아야 한다’는 당위를 모두가 공유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당연하게 여기던 이 ‘채무는 갚아야 한다’는 명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책당국자가 앞장서서 금융업에 ‘잔인한’이라거나 ‘약탈적’이라는 감정 섞인 수식어를 붙이고 나서부터 벌어진 일이다.어느덧 대출 연체는 부끄럽지 않은 일이 되고 있다. 금융위원회 등 정부가 총출동해서 신용 체제 개편을 검토하고 저신용자에게 ‘포용적 대출’을 열심히 한 금융사 직원의 면책을 추진하고 나섰다. 이런 신호가 곳곳으로 퍼지면 금융 취약자에겐 빚을 못 갚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을 넘어 ‘그럴 수도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입장을 바꿔보면 빌려준 돈을 떼인 것

    2026.05.26 17:36
  • MBTI보다 더 맹신했던 18세기 '골상학'…"외모가 성격을 결정한다"는 믿음의 최후 [세계를 바꾼 순간들]

    18세기 후반 두개학을 확립한 네덜란드 해부학자 페트루스 캄페르는 원래 화가 출신이었다. 그는 1770년 암스테르담의 예술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교내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한 재능 있는 학생이었다.사람의 외모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캄페르는 ‘사람 얼굴의 각도’과 관련한 대단한 ‘발견’을 해냈다. 흑인과 칼무크인(서몽골족), 그리고 유럽 인종의 두개골을 비교·관찰한 결과 두개골 각도의 이른바 ‘중요한 차이’를 찾아낸 것이다. 여러 인종의 두개골 각도를 재고, 이를 다시 유인원의 두개골과 비교한 캄페르는 윗입술부터 정수리까지 각도와 두개골의 좌우 비례를 꼼꼼히 따져 100분위 단위로 두개골 각도를 세분화했다.그는 이어 미학의 창시자 요한 빙켈만이 모범으로 생각한 그리스적인 얼굴을 100점 만점의 이상적인 미(美)로 삼은 뒤, 각 인종이 이상형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따졌다. 그에 따르면 70도 이하였던 흑인은 인간보다 유인원이나 개에 더 가까운 존재였다. 반면 유럽인의 두개골은 각도가 97도 이상으로 평가돼 이상적인 모습에 가까운 것으로 자리 잡았다.캄페르 이후 인류학자들은 소위 ‘두개골 각도’를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여겨 이를 전적으로 수용했다. 빙켈만 등에 의해 미적 기준으로 만들어진 각종 기준은 우수한 인종과 열등한 인종을 나누는 과학적 징표이자 척도로 활용됐다.사람의 얼굴 생김새에 따라 성격이나 운명이 결정된다는 생각은 서구 사회에선 16세기부터 어느 정도 널리 퍼져 있었다. 당시엔 곱슬머리나 매부리코 등은 개인의 운명이나 질병, 파산, 성격 등을 설명한다고 봤다. 그런데 캄페르 이후 생김새가 운

    2026.05.25 09:00
  • [책마을] '보이지 않는 손'을 과연 만능의 손이라고 했을까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라는 표현이 단 한 번만 나온다. 그것도 책의 중간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발견하기 쉽지 않은 부분에서 지나가듯 언급된다. 방대한 그의 저작 전체를 고려해도 <철학논집>과 <도덕감정론>에 각각 한 번씩 나오는 구절을 포함해 단 세 번만 등장할 뿐이다.‘보이지 않는 손’은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압축하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잡아 왔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에게 있어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은 책마다 다른 의미로 쓰였다. 그리고 이 짧은 표현은 수많은 오해와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켰다.‘보이지 않는 손’은 <도덕감정론>에선 ‘공감(sympathy)’의 원리를 지칭했다. <국부론>에선 완전경쟁에 대한 비유, 개인의 이기심이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선을 가져다주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직접 등장하는 부분보다는 주로 “우리가 식사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양조장 주인·빵집 주인의 자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익에 대한 그들의 관심 때문”이라는 구절과 함께 설명된 영향이다.이런 <국부론>을 둘러싼 통념은 윤리학적 성격이 강한 애덤 스미스의 전작 <도덕감정론>과의 연관성을 두고 끝없는 논쟁이 벌어지는 계기가 됐다. <도덕감정론> 속 ‘공감(동정)’과 <국부론>의 ‘이기심’이라는 대립적인 키워드가 쉽사리 절충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제이컵 바이너는 “<국부론>은 난해한 책이 아니라 메시지가 분명한 책&rdqu

    2026.05.22 18:22
  • [천자칼럼] '3전 4기' 아스널

    승자에게 시선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종목과 분야를 가릴 것 없이 1등과 2등이 받는 대접은 하늘과 땅 차이다. 고배를 마신 2인자들은 “준우승은 루저들의 챔피언일 뿐”이라는 자조적인 한탄을 되뇌곤 한다.준우승과 유독 인연이 깊은 선수가 있다. 독일 축구 스타 미하엘 발라크다. 2002년 독일 분데스리가와 챔피언스리그, 월드컵에서 모두 준우승하는 ‘트리플 러너업’을 기록했다. 그는 유로대회와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 등에서 12번이나 2위를 차지한 ‘준우승 전문가’다. 미국 프로농구 NBA의 로고 모델인 제리 웨스트는 NBA 챔피언 결정전에 9번 올랐지만 우승 반지는 단 한 개만 끼었다.‘하늘은 왜 주유를 낳고, 또 제갈공명을 낳았는가’라는 <삼국지> 속 주유의 탄식처럼 압도적인 강자의 그늘에 가린 경우도 없지 않다. 올림픽에서 메달 12개를 딴 수영선수 라이언 록티에겐 ‘만년 이인자’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아테네올림픽 6관왕이자 베이징올림픽 8관왕인 마이클 펠프스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탓이다. 영국 테니스 선수 앤디 머레이는 4대 메이저대회 준우승만 8번(우승은 3회) 했다. 라파엘 나달, 로저 페더러, 노바크 조코비치 같은 선수를 돌아가며 만난 끝에 거둔 성적표였다.세계 최강 프로축구 리그로 불리는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에서 아스널이 22년 만에 우승했다. 2000년대 초반 아르센 벵거 감독 지도하에 ‘아름다운 축구’를 구사한 아스널은 2003~2004시즌 ‘무패 우승’ 이후 챔피언 자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최근엔 세 시즌 연속 준우승에 머무르며 ‘승리 DNA’가 부족하다고 지적받기도 했다.실패가 반복되다 보면 좌

    2026.05.20 17:36
  • 정부 말 믿었다가 제대로 뒤통수 맞은 일본 국민들 [세계를 바꾼 순간들]

    1905년 9월 5일. 도쿄 히비야(日比谷) 공원에서 출발한 성난 시위대 중 일부가 고쿠민(國民)신문사로 들이닥쳤다. 이들은 경관, 신문사 직원들과 뒤얽힌 난투 끝에 윤전기 2대를 파괴했다.일본의 유력 신문 중 유일하게 포츠머스 강화 회의의 결과에 대해 찬성 견해를 밝힌 이 신문에 대중의 분노가 집중됐다. 당시 일본은 비록 러일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서구 열강과의 종전 협상에선 과거 청일전쟁 때와 같은 막대한 배상금과 영토 획득이라는 결실을 얻지 못했다. 총동원병 수 108만8996명, 전사자 8만7360명, 부상자 38만1313명의 총력전을 벌인 것치고는 너무나 초라한 결과였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격화되던 당시, 일본 대중의 기대와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 간 격차는 매우 컸다.이런 상황에서 고쿠민신문은 “배상금을 받지 못한 것은 유감이지만, 배상금 때문에 전쟁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며 “한국의 보호권을 취득하고, 뤼순과 다롄 등의 조차권을 획득한 것은 성과”라고 주장했다.앞서 포츠머스 강화회의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은 심상찮게 움직이고 있었다. 1905년 8월 31일 포츠머스 강화조약 교섭이 난항에 봉착한 사실이 일본 신문들에 알려졌고, 다음 날 오사카아사히신문이 “덴노(천황) 폐하께 화의를 파할 것을 명하시길 청원한다”는 내용의 사설을 게재했다. 다른 유력지들도 강화조약에 반대하는 논설을 게재했다.9월 2일 강화문제동지연합회가 5일 정오부터 도쿄 히비야 공원에서 정담(政談)연설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추밀원을 방문할 때 요청할 내용도 결정했다. 당시의 양대 정당인 정우회(政友會)와 헌정본당(憲政本黨)에 강화조약 반대 운동에 동참해달라

    2026.05.18 09:00
  • [천자칼럼] 에어포스원 탑승 거부된 '中 기념품'

    서양 사상사의 막을 연 플라톤의 작품들은 대화체로 쓰였다. 그런 까닭에 저자의 본뜻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정치학자 레오 스트라우스는 그렇게 쓰인 이유로 플라톤이 아테네 민중의 미움을 사 사형 판결을 받은 스승 소크라테스를 반면교사로 삼았기 때문으로 봤다. 자기 목소리로 직접 말하지 않고 책 속 등장인물의 대사에 자기 생각을 숨기는 방식으로 적대 세력의 ‘감시’를 피했다는 설명이다.중요한 정보를 감추려는 측과 이를 파헤치려는 측은 끊임없이 충돌했다. 그 과정에서 인류사 초창기부터 첩보 활동이 시작됐다.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비밀 정보를 노예의 두피 문신으로 새긴 뒤 전달한 사례를 전한다. 문신 내용은 머리를 길러 감췄다. <손자병법>은 “적의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벼슬이나 금전을 아끼지 말라”고 적고 있다.첩보는 때로는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일본이 소련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1급 정보를 넘겨받은 뒤 마음 놓고 나치 독일과의 싸움에 전념할 수 있었다. 정보를 알려준 이는 1941년 독일의 소련 침공 일자를 콕 집어 전한 특급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였다.감시·감청 장비 발전도 눈부시다. 영화 ‘007 시리즈’에 등장한 안경과 시계, 만년필은 요즘에는 그저 어수룩한 도구에 불과하다. 현실에선 사례로 받은 조그만 기념품, 찻주전자 같은 생활 도구, 탁자에 잠시 놓아둔 휴대폰으로 순식간에 정보를 빼간다.지난 1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마쳤다. 미국 정부 대표단과 취재단이 중국 측으로부터 받은 기념품을 비롯한 모든 물품이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기 전에 수거

    2026.05.17 18:05
  • [천자칼럼] 中 내권화의 덫

    산업혁명이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경제대국이던 중국은 왜 뒤처졌을까. 역사학자 필립 황(중국명 황쭝즈)은 1985년 <북중국에서의 농민 경제와 사회변동>이라는 책에서 ‘내권화(內卷化·involution)’라는 개념을 선보이며 그 해답을 찾고자 했다. ‘안으로 빡빡하게 말리듯 내부 경쟁에 매몰’되는 내권화는 수천 년간 중국 경제가 도약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은 ‘영원한 정체’의 덫이었다.대규모 집약 농경 사회였던 중국은 사람이 넘쳐났다. 강력한 인구압(人口壓) 덕에 노동력의 값은 쌌다. 중국 사회는 1인당 생산성을 높이는 게 아니라 싼 노동력을 농지에 집중 투입해 토지 단위 면적당 생산성을 높이는 길을 모색했다. 그 결과 사회 전체의 생산은 ‘조금’ 늘었지만 노동생산성과 생활 수준은 퇴보하는 결과가 빚어졌다.끝없이 공급되는 싸구려 노동력은 개인과 기업 모두에 재앙이 됐다. 농민과 상공업자 가릴 것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일했지만, 대체 인력이 많았기에 춘권 속 내용물처럼 경쟁에 짓눌렸다. 굳이 더 발전할 필요가 없던 가내수공업은 기계를 사용한 공장제 산업화로 전환할 기회를 놓쳤다. ‘발전 없는 성장’은 중국 문화의 특색이 됐다.인공지능(AI)과 전기차 등 미래산업 분야에서 중국 기업이 또다시 ‘내권의 저주’에 휘말린 모습이다. 매출과 세계시장 점유율은 높아졌지만, 이익률은 뒷걸음질치는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어서다. 올해 1분기 비야디(BYD)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 났고, 중국 5대 태양광 기업은 지난해 6조5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봤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에 기댄 기업이 난립

    2026.05.14 18:07
  • [천자칼럼] '천단' 앞에 서는 트럼프

    “하늘(탱그리)에서 명(자야투)을 받아 태어난 푸른 잿빛의 이리가 있었다.” 13세기 몽골 역사서 <몽골비사>는 칭기즈칸 일족을 ‘천명(天命)을 부여받은 존재’로 그리며 시작한다. 역대 중국 황제는 자신을 ‘하늘의 아들’을 뜻하는 천자(天子)로 칭했다. 일본 왕실은 오늘날까지 태양신 아마테라스에게서 하사받았다는 검과 구슬, 곡옥의 ‘삼종신기’를 권위의 근거로 삼는다.천명사상은 중국에서 시작해 동아시아 전역으로 퍼진 통치 이데올로기다. “드넓은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다(普天之下, 莫非王土)”라는 <시경>의 한 구절처럼 고대 중국인은 하늘 아래 모든 천하가 중국이라고 생각했다. 주나라 때 등장한 천명사상은 진한 시대를 거치며 ‘임금의 권한은 하늘이 내려준다’는 관념으로 구체화했다. 그 결과 황제가 등장할 때는 ‘상서로운 구름이 일고 용과 기린이 나타났다’며 하늘의 선택을 받았음을 강조했고 나라가 망하면 일식, 지진, 역병, 홍수 등이 천명을 잃은 증거로 거론됐다.통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황제의 주요 임무였다. 태산에 올라 즉위를 고하는 봉선 의식은 시대가 지나면서 황궁 근처에 하늘에 제사 지내는 천단(天壇)을 쌓는 것으로 의례화됐다. 1420년 완공된 베이징 천단에선 명나라와 청나라 황제들이 제천의식을 치렀다. 천단의 중심 건물인 기년전의 높이는 38m에 달하고, 천단 전체 면적은 자금성의 네 배인 273만㎡에 이른다.중국을 국빈방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천단을 찾는다. 2017년 중국 방문 때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

    2026.05.12 17:28
  • 전쟁은 '돈빨'이죠, 일본이 러시아를 꺾을 수 있었던 진짜 이유 [세계를 바꾼 순간들]

    ‘제국주의’가 한창 기세를 올리던 1897년. 우연히도 러시아와 일본 두 나라가 금본위제를 도입했다. 그해 1월 러시아가 금본위제를 시행한 데 이어 10월에 일본이 ‘화폐법’을 제정하면서 뒤를 따랐다.두 나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금본위제를 받아들인 것은 대규모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발걸음이기도 했다. 전쟁을 수행하려면 거액의 자금이 드는데, 당시 영국을 중심으로 운영 중이던 금본위체제에 들어가는 것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리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다.특히 빠른 속도로 근대화를 이뤄가던 일본 재정의 발전상이 주목할 만하다. 1893년 10월 마쓰가타 마사요시 일본 총리는 금본위제 도입을 검토하기 위한 전문가 기구로 ‘화폐제도 조사회’를 설치했다. 조사회에는 관계·재계·학계·정계 관계자 20명이 참여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을 사사한 소에다 주이치, 통계학자 호소카와 유지로, 재무성 관리 및 미쓰이은행 간부를 지낸 하야카와 센키치로 등이 조사회 멤버였다. 당초 은본위제를 유지하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요코하마정금은행장이던 소노다 고키치가 “장래를 위해선 금본위제를 도입하는 게 좋다”고 주장한 뒤, 격론 끝 표결을 통해 8 대 7로 금본위제 도입이 결정됐다.당시 아시아에서는 천 년 가까이 은화 경제권이 작동하고 있었다. 일본으로선 은본위제에 머무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다. 하지만 금본위제는 일본에서 빠르게 뿌리를 내렸다. 금본위제 도입 결정으로 일본은 청일전쟁 후 청나라가 지급한 배상금을 영국 런던에서 파운드화로 수령했고, 영국 내 은행에 이를 예치했다.일본이 해

    2026.05.11 09:00
  • [책마을] 부동산을 소유한다는 것이 정말로 '불평등의 씨앗'일까

    장자크 루소는 유독 ‘첫 문장’을 빼어나게 쓴 작가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여있다”는 <사회계약론>의 서두나 “모든 것은 조물주에 의해 선하게 창조됐지만, 인간의 손길만 닿으면 타락한다”는 <에밀>의 첫 줄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 강한 ‘인상’을 준다. 주장이 옳은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다.루소가 본격적으로 독자적인 사상을 가다듬은 <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2부 첫머리 역시 마찬가지다. 루소는 “처음으로 어떤 땅에 울타리를 두른 다음 ‘여기는 내 땅이다’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 말을 믿을 만큼 단순하다는 사실을 알아낸 인간이야말로 문명사회의 진짜 창시자다”라고 단정했다. 인류가 최초로 부동산을 소유한 장면을 묘사한 문장에서 루소는 불평등의 기원을 압축해서 보여준다.<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루소가 프랑스 디종학술원의 논문 경선대회에 응모해 1755년 발표한 작품이다.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바로 인간 문명과 사회에 있으며, 이는 용납하기 힘든 일이지만 동시에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루소는 이 책의 1부를 ‘자연 상태’를 기술하는 데 할애하고 2부에선 ‘인간의 타락’을 묘사한다. 불평등이 어떤 이유로 인간 사회에서 그토록 두드러지고 완고하게 자리를 잡았는지를 끈질기게 파고든다.루소는 사적소유에서 사회의 불평등과 가난의 비참함이 나왔다고 본다. 소유권 제도의 확립과 분업의 발전으로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갈리고 불평등이 빚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런 소유권의 질서가 확립되는 전제조건으로 집권적

    2026.05.08 18:06
  • [천자칼럼] '오빠' 변천사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예전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선 재학생들이 손위 선배를 형이나 오빠, 누나 구분 없이 모두 ‘언니’로 호칭했다. 원래 언니는 손아래 여자가 손위 여자를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어린 남자가 손위 남성을 가리킬 때도 쓰는 말이었다. 일본어에서 형(兄)을 ‘아니(あに)’라고 부르는 데서도 이 단어의 원류를 유추해 볼 수 있다.한국어 낱말 중에는 윗사람과 아랫사람, 성별에 따라 달리 쓰는 게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오빠, 누나 같은 친족 호칭이다. 영어에선 브러더(brother)나 시스터(sister)로 뭉뚱그려 칭할 개념을 두고 동성이 부를 때와 이성이 부를 때가 다르고, 연상이냐 연하냐에 따라 쓰는 말이 따로 있다. 한국어처럼 친족 호칭이 복잡한 언어는 거란어와 같은 일부 퉁구스제어 정도를 꼽는다.친족 호칭 중에서 ‘오빠’의 어원으로는 ‘올아바’가 거론된다. 조선 후기 어원 연구서인 <화음방언자의해(華音方言字義解)>에 나오는 이 단어는 ‘올’과 ‘아바’의 합성어로 추정된다. ‘올벼’와 같은 용례처럼 ‘올’은 ‘이른’ ‘미숙한’이란 뜻이고 ‘아바’는 ‘아버지(아빠)’라는 의미다. ‘아버지보다 어리고 미숙한 남자’란 뜻으로 남성 형제를 총칭하던 올아바는 ‘오라비’를 거쳐 19세기 말 ‘옵바’ ‘업바’ ‘오빠’로 표기가 바뀌었다.가치중립적 지칭어이던 오빠는 시대에 따라 뉘앙스가 변했다. 1980년대 운동권 여대생들은 가부장제에서 벗어나겠다며 의식적으로 이성 선배를 ‘형’이라고 불렀다. 민주화 이후엔 오빠가 나

    2026.05.06 17:41
  • [천자칼럼] 유언의 효력

    고대 로마에는 다양한 유언 제도가 존재했다. 재산을 물려받을 사람을 정하는 ‘민회유언’, 서면 작성과 증인 수를 간소화한 군인의 ‘출정유언’, 청동 저울 앞에서 상속인을 단 한 사람으로 한정하는 ‘동형(銅衡)유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유언의 조건과 형식을 정했다. 재산을 상속하는 유언을 남기는 것은 로마시민에게 주어진 특권이었다.로마법에서 유언의 효력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빚어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기원전 93년께 벌어진 ‘쿠리우스 송사(causa curiana)’가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을 상속인으로 지정하고, 그 아들이 성년이 되기 전에 죽으면 쿠리우스에게 재산을 넘긴다’는 유언을 작성한 사람이 막상 아들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면서 일이 꼬였다. 유언의 자구에 충실해야 한다는 ‘문언(文言)주의’와 유언자의 의사를 중시해야 한다는 ‘의사(意思)주의’가 팽팽하게 맞섰다.재산 상속이 걸린 일인 만큼 유언이 인정받는 조건은 까다롭다. 로마법의 깐깐한 유언 작성 및 집행 규정은 독일 민법과 일본 민법을 거쳐 한국 민법에도 영향을 미쳤다. 현행 민법은 자필증서와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등 다섯 가지로 유언 방식을 제한한다. 가장 일반적인 자필증서는 유언의 내용과 작성 날짜, 주소, 성명, 재산 목록을 모두 유언자가 직접 손으로 써야만 효력이 인정된다. 위·변조를 막는다는 취지로 1958년 민법 제정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그제 대법원이 산소호흡기를 낀 채 병상에서 특정 가족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겠다고 한 내용의 구수증서를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유언자가 &ld

    2026.05.05 17:31
  • [천자칼럼] 피카츄의 힘

    노란색 몸에 빨간색 뺨을 지닌 귀여운 피카츄의 볼이 부풀어 오른다. 파트너 지우가 손을 높이 들고 외친다. “피카츄, 100만 볼트!”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돈 피카츄의 꼬리에서 ‘번쩍’ 번개가 내리친다. 악당 로켓단이 보낸 덩치가 산만 한 포켓몬들이 맥없이 고꾸라진다. 꼬마부터 중년에 접어든 ‘키덜트’까지 한마음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한다. 그렇게 지우와 피카츄의 모험담은 세대를 거듭해서 계속 쓰인다.올해로 출시 30주년을 맞이한 포켓몬스터(포켓몬)는 ‘애니메이션 왕국’ 일본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헬로키티, 토토로, 아톰 같은 일본산 캐릭터뿐만 아니라 미키마우스, 해리포터, 스타워즈 같은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지식재산권(IP) 누적 수익 세계 1위(136조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게임과 애니메이션, 트레이딩 카드, 각종 라이선스 상품까지 탄탄한 포켓몬 생태계를 이뤘다. 닌텐도 등이 출자한 IP 관리회사 포켓몬컴퍼니는 2024년 우리 돈으로 4조원대 매출에 1조원대 영업이익을 올렸다.다양한 외모와 특징을 지닌 9세대 1025종(2025년 기준)에 달하는 캐릭터 군단이 ‘최강 IP’를 일군 기반이다. 2016년 출시된 스마트폰 게임 포켓몬고는 주기적으로 신규 캐릭터를 추가하며 이용자를 잡아둔다. 희귀 포켓몬이 그려진 카드를 구하려고 아이들은 박스째 카드를 산다. 글로벌 포켓몬 트레이딩 카드 시장은 23조원 규모(2024년)에 달한다. 미국 경매에선 희귀 ‘피카츄 카드’가 236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포켓몬의 인기는 세계적이다. 지난 1일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희귀 포켓몬카드를 주는 행사에는 4만 명이나 몰렸다. 축구 스타 라민 야말, 팝스타 레

    2026.05.04 17:36
  • 파리·베를린도 제쳤다! 유럽 '최초의 지하철'이 부다페스트에 깔린 이유 [세계를 바꾼 순간들]

    나폴레옹전쟁 이후 전후 질서를 다루던 빈 회의가 막바지로 치닫던 1815년 봄. 오스트리아 외무장관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는 영국 귀족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헝가리 쪽으로 뻗은 길을 가리키며 “저기가 유럽이 끝나는 곳입니다. (헝가리는) 동양입니다”라고 말했다.그랬던 ‘변방’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19세기 말 화려한 변신을 이뤘다. 헝가리의 중심 도시 부다페스트는 여러 차례 수정된 도시계획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기획에 따라 설계된 일종의 계획도시다. 수 세기에 걸쳐 헝가리 왕국과 헝가리 공화국의 행정 중심지였던 부다는 13차례 적에게 포위당하고 5번이나 완전히 파괴된 역사를 지녔다.부다페스트의 환골탈태를 상징하는 사건은 1896년에 일어났다. 그해 1월 1일, 부다페스트에 있는 모든 교회의 종은 성대한 잔치의 개막을 알리기 위해 매시간 정각에 일제히 울렸다. 마자르족이 카자흐스탄 대초원에서 카르파티아 분지로 쳐들어와 훗날의 헝가리 땅을 차지한 지 1000년이 됐음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정확히 언제 마자르인이 헝가리로 이주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저 888년과 900년 사이인 895년을 건국 원년으로 정했다. 하지만 1000주년에 맞춰 진행하던 도시 건설 일정이 늦춰지면서 뒤늦게 공식 개국 연도를 896년으로 바꿨다. 헝가리 국민 시인 페퇴피 샨도르가 유럽 내에서 언어·민족적 특질이 도드라지는 헝가리를 두고 “우리는 외로운 민족”이라고 읊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자르족의 영광을 기리는 분위기가 끓어올랐다.헝가리 건국 1000년 기념식을 위해 도시 곳곳이 과시적이면서도 세련된 대형 사업의 건설 현장으로

    2026.05.04 09:00
  • [천자칼럼] '구인난' 힌디어 통역

    인도에서 발원한 불교는 고대부터 한반도에서 번성했다. 하지만 산스크리트어(범어)로 적힌 불교 가르침이 곧바로 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오호십육국 시대 구마라습 등이 한자로 옮겨 적은 경전을 거쳐야만 부처(범어 ‘붓다’)의 말씀을 접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한국에서 쓰이는 불교 용어 중에는 보살(보디사트바), 아미타불(아미타브하), 아수라(아수라)처럼 범어 발음을 따온 것과 해탈(니르바나), 업(카르마), 자비(마이트리)처럼 뜻풀이를 한 것이 뒤섞여 있다.오늘날 인도의 공용어인 힌디어는 고대 ‘베다 산스크리트어’의 직계 후손이다. 인도를 식민 지배한 영국인들이 일찍부터 간파했듯 힌디어는 영어 독일어 등과 뿌리를 같이하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456개 언어가 쓰이는 인도에서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6억 명이 넘는 인구가 사용하는 제1 언어다. 세계적으로도 영어와 중국어 다음으로 화자가 많다.1949년 인도 제헌의회는 데바나가리 문자로 쓰인 힌디어를 영어와 함께 공용어로 삼았다. 2014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집권한 이후엔 공식 석상에서 영어가 아니라 힌디어를 사용하는 모습이 부쩍 늘었다. 인도인의 민족의식을 결속하고 전통문화 자부심을 고양하려는 의도다.외교부가 힌디어를 포함한 주요 언어 통역을 전담하는 통역실 설치를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이 인도를 국빈 방문했을 때 힌디어 전문 통역이 없어 영어를 매개로 이중 통역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이 대통령과 모디 총리가 ‘한국어-영어-힌디어’를 거쳐 대화하면서 회담 시간이 길어지고 외교 결례가 빚어졌다는 지적이 일었다. 회담 후 이 대통

    2026.05.01 17:42
  • [천자칼럼] 흔들리는 '특별한 관계'

    영국을 향한 미국의 시선은 다층적이다. 미국 독립의 기폭제가 된 저서 <상식>에서 토머스 페인은 “영국에서 우리가 얻을 것은 파멸밖에 없다”며 영국을 식민지 주민을 잡아먹는 야수에 빗댔다. 하지만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전쟁 와중에도 적지 않은 미국인은 문화의 뿌리가 같고 영어라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영국인을 친밀감과 경외심이 섞인 시선으로 바라봤다.미국과 영국의 관계가 ‘끈끈해진’ 것은 강력한 적에 공동으로 맞서면서부터다. 나치 독일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1939~1945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11번 만났고 1700통의 편지와 전보를 주고받았다.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댄 기간만 120일에 이른다. 이처럼 긴밀한 양국 관계를 두고 처칠은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라고 불렀다.전후 ‘특별한 관계’라는 표현이 고유명사가 될 정도로 두 나라 사이는 각별했다. 인도양 디에고가르시아섬부터 지브롤터, 버뮤다 등 영국 식민지에 있던 군사시설은 내 것·네 것 구분이 없었다. 1963~1991년 영국은 미국 네바다 사막에서 21회나 핵폭발 실험을 했다. 미국과 영연방 국가들은 ‘파이브 아이즈’라는 최강의 정보 공유 체제도 갖췄다. 자유주의 철학을 공유한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집권기엔 특별한 관계가 절정에 달했다.미국과 영국 간 특별한 관계가 “더는 특별하지 않다”는 영국 외교관의 폭로가 나왔다. 크리스천 터너 주미 영국대사는 지난 2월 한 행사장에서 특별한 관계라는 표현을 두고 “향수에 젖어있고, 과거 지향적이며, 부담만 클 뿐”이라고 평가절하

    2026.04.29 17:33
  • [천자칼럼] K치킨 전국지도

    동서를 막론하고 예부터 닭은 귀한 식재료였다. 제정 로마 시대에 주요 생필품 최고가격을 설정한 디오클레티아누스 ‘가격 칙령’에는 닭 한 마리 가격이 60데나리우스로 책정돼 소고기(8데나리우스)와 양고기·돼지고기(12데나리우스)보다 비쌌다. 프랑스 앙리 4세는 국가의 풍요를 바라는 마음을 “모든 국민이 일요일마다 닭고기를 먹기를 바란다”는 말에 담았다.약 8000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야생 닭을 가축화한 이후 닭고기는 인류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힌두교도는 소고기를 먹지 않지만 닭고기에는 종교와 얽힌 금기가 거의 없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에서 1600여 종, 330억 마리(2020년 기준)가 넘는 닭이 사육되고 있다.3대 가축 중 하나인 닭은 한국인에게 남다른 식자재이기도 하다. 백숙, 삼계탕과 함께 한국식 ‘치킨’은 K푸드의 대명사로 꼽힌다. 얇은 튀김옷을 입힌 뒤 두 번 튀겨 바삭한 맛을 극대화한 한국식 치킨은 시원한 맥주와 짝을 이루면서 식사와 반찬뿐 아니라 술안주로 영역을 넓혔다. 1977년 림스치킨이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을 처음 선보였고 1981년 페리카나가 양념치킨을 내놓으며 독자적인 위상을 갖췄다. 간장치킨, 마늘치킨, 파닭, 순살치킨 등 다양한 제품을 앞세운 국내 치킨 브랜드는 647개, 치킨집은 3만9789개(국가데이터처 2023년 기준)에 이른다.농림축산식품부가 전국의 특색 있는 닭요리와 지역 명소를 연결하는 ‘K치킨벨트 전국지도’를 올 상반기에 선보이기로 했다. 지도에는 숨은 닭요리 맛집과 지역 특화 거리, 닭과 얽힌 역사적 스토리가 있는 장소를 모두 담을 예정이다. 치킨, 닭갈비, 찜닭 같은

    2026.04.28 17:33
  • 시위 막으려고 길을 넓혔다고? 나폴레옹 3세의 '빅픽처' 파리 대개조 [김동욱의 세계를 바꾼 순간들]

    나폴레옹 3세가 통치한 프랑스 제2제정 시대, 프랑스의 외양은 더없이 화려하고 장엄했다. ‘문명의 선두에(a la tête de la civilisation)’라는 슬로건에 따라 파리는 대대적으로 모습을 바꿨다. 조르주 외젠 오스망 남작은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낡고 복잡했던 파리를 통째로 뜯어고쳤다. 화려하게 디자인된 거리와 광장, 정원, 줄지어 늘어선 웅장한 저택 등 오늘날 파리를 상징하는 모습을 일궈냈다.앞서 유럽을 제패했던 나폴레옹 1세는 파리를 ‘멋지고 거대하며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곳’으로 탈바꿈시키려 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끝내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 대신 파리시는 그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3세) 치하에서 진정한 변신을 했다. 1851년 권력을 잡은 루이 나폴레옹은 파리를 ‘프랑스의 심장’이라고 선언하며 “이 위대한 도시를 장식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아붓자”고 했다.당시 파리는 소비 중심지로서의 면모를 확고히 했다. 1852년에는 정찰제로 판매하는 백화점인 벨자르디니에르, 프랭탕, 사마리텐 등이 등장했다. 무엇보다 나폴레옹 3세는 정부의 위신을 드높이고, 런던과 경쟁하고,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바리케이드를 건설하기 쉬웠던 도시의 면모를 일신하기를 원했다. 비좁은 파리의 시가는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치고 저항하기 쉬운 구조였다. 나폴레옹 3세는 도로를 직선화하고 넓게 만들어 바리케이드 설치를 어렵게 하고, 진압 병력은 손쉽고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기를 원했다.나폴레옹 3세의 야심 찬 선언을 실행한 인물은 당시 파리 지사이던 오스망 남작이었다. 그의 계획과 추진력 아래 직선의 넓은 대로가 생겨

    2026.04.27 09:00
  • [천자칼럼] 70세 예비군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킨 탓에 독일에는 ‘전쟁 기계’라는 이미지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영국군이 독일 해안에 상륙한다면 (군대를 투입할 것도 없이) 경찰을 보내 체포하겠다”는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호언처럼 독일인은 최강의 군대를 보유했다는 자부심이 강했다. 요즘에는 독일군이 ‘이웃 나라 슈퍼마켓을 점령하려다가 현지 경찰에 붙잡힐 것’이라는 조롱거리가 됐지만 말이다.전쟁과 관련한 제도 중에는 독일에 뿌리를 둔 것이 많다. 군 복무와 예비군 편성을 의무화한 게 대표적이다. 1814년 헤르만 폰 보이엔이 만든 프로이센 징병법은 20세 남성이 3년간 군 복무를 한 후 2년간 예비군에 편성되도록 했다. 이 제도는 국내에서 1949년 시행된 징병제와 1968년 도입된 예비군 제도의 ‘원조’로도 평가된다.독일 예비군에는 지우고 싶은 흑역사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병력 자원이 고갈된 독일은 16~60세의 모든 남성을 소집해 최후의 예비군 격인 ‘국민돌격대’를 조직했다. 고령자와 미성년자들은 부실한 무기를 손에 쥔 채 사지로 떠밀렸다.예비군 제도 ‘원조’이자 60세 노인을 동원한 이력이 있는 독일에서 예비군 연령 상한을 70세까지 높이자는 주장이 나왔다. 바스티안 에른스트 독일 예비역협회장이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청년층만으로 인력이 부족하다면 예비군 연령 상한을 현재 65세에서 70세로 올리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위협이 급증하자 ‘노인 예비군’ 카드라는 고육책을 꺼내 든 것이다.독일은 2035년까지 현역 병력을 현재 18만5000명에서 26만 명 규모로 늘린

    2026.04.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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