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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욱
    김동욱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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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경제 중기과학부장입니다.

  • [천자칼럼] 빅맥지수 40주년

    글로벌 햄버거 체인 맥도날드를 대표하는 상품은 ‘빅맥’이다. 1968년 첫선을 보인 이 햄버거에는 참깨 번 세 장, 무게 45g에 두께 10㎜짜리 소고기 패티 두 장이 들어간다. 여기에 채 썬 양상추와 양파, 피클, 슬라이스 치즈 두 장이 더해지고 사우전드아일랜드 드레싱을 베이스로 한 전용 소스가 어우러진다. 100여 개국, 4만3000여 개 매장에서 거의 동일한 맛과 크기의 햄버거가 판매된다.빅맥은 오늘날 국가별·도시별 구매력과 물가를 가늠하는 지표로 널리 쓰인다. 1986년 9월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각 나라의 구매력을 평가하는 지표로 빅맥지수(Big Mac Index)를 선보인 게 계기였다. 가벼운 일회성 기획으로 등장한 빅맥지수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각 국가의 화폐 가치와 구매력 수준을 ‘달러로 환산한 햄버거 가격’이라는 직관적 기준으로 선명하게 비교했기 때문이다.빅맥지수는 경제학 교과서에 실렸고 학술논문만 50편 넘게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애플의 아이팟 가격을 비교한 ‘아이팟지수’, 스타벅스 라테 커피값으로 조사한 ‘라테지수’가 빅맥지수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역부족이었다.햄버거를 기준으로 삼으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공식 환율이 설명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드러난다. 유로와 엔, 파운드 같은 다양한 이름 뒤에 숨은 진짜 구매력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통화가 달러화 대비 고평가·저평가됐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물가 변동 흐름을 살피는 데도 유용하다. 지난달 한국의 빅맥지수는 얼마일까. 3.82달러로 미국(6.12달러)에 비해 37.6% 저렴하다. 원화 약세 영향이 컸다.한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가 1년 전보다 2

    2026.08.04 17:42
  • [천자칼럼] 도나우강의 물 부족

    “도나우강변에 자리한 부다페스트는 내륙의 지방 도시지만, 이곳 항구의 증기선 톤수는 카이로나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보다 크다.” 1869년 흑해에서 배를 타고 도나우강을 거슬러 올라간 윌리엄 수어드 미국 국무장관은 바다 못지않은 하천의 풍부한 수량과 촘촘하게 짜인 수운(水運)망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독일 슈바르츠발트에서 발원해 남동부 유럽을 가로지르는 도나우강은 볼가강에 이어 유럽 대륙에서 두 번째로 긴 강(2850㎞)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 10개국을 지난다. 빈(오스트리아), 브라티슬라바(슬로바키아), 부다페스트(헝가리), 베오그라드(세르비아) 등 4개국 수도가 도나우강변에 있다. 도나우(독일어), 두나이(체코어), 도나바(슬로베니아어) 등 명칭도 다양하다. 우리에겐 영어식 표현인 다뉴브강으로 익숙하다.수심이 깊고 평균 유량이 초당 2059㎥(1876~2010년 브라티슬라바 기준)에 이를 정도로 물이 풍부한 까닭에 도나우강은 고대부터 수운의 중심이었다. 지금도 도나우·흑해 운하를 통해 운송된 화물량이 233억6400만t(2023년 기준)에 달한다.자연스레 ‘풍요의 젖줄’ 도나우강을 향한 예찬이 이어졌다. 헝가리 시인 요제프 어틸러는 “도나우강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고/ 그 물결은 지혜롭고 광대하다”고 노래했다. 왈츠의 황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대표작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 신년 음악회의 하이라이트 곡이다. 바이올린 초심자들은 ‘도나우강의 잔물결’의 유려한 곡조에서 강의 아름다움과 여유를 떠올린다.유럽 전역에 폭염과 가뭄이 지속되면서 도나우강이 바닥을 드러냈다.

    2026.08.03 17:53
  • [천자칼럼] '양날의 검' 세우타

    1415년 포르투갈 국왕 주앙 1세는 지브롤터해협 근처 북아프리카 해안 쪽에 자리 잡은 조그만 섬 세우타를 점령했다. 200여 척의 함선과 4만5000여 명의 병력이 동원된 이 원정은 세계사의 분기점으로 꼽힌다. 유럽 국가가 본격적으로 해외 식민지를 세우며 팽창해 나간 출발점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포르투갈은 대서양과 지중해,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좁은 병목에 있는 군사 요충지로서 세우타에 주목했다. 곧이어 세우타는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진출 거점이 됐다. 동시에 악명 높은 대규모 노예무역의 문이 열렸다. 1581년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합병되면서 세우타의 주인이 스페인으로 바뀌었지만 한번 둑이 터진 물결은 되돌릴 수 없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이 식민지 건설 경쟁에 가세하면서 제국주의가 세계로 확산했다.식민주의의 기폭제가 된 세우타의 운명처럼 역사는 종종 작은 일이 큰일로 번지곤 한다. 변화를 불러오는 데 말 한마디면 충분한 경우도 있다. 1989년 동독 정부 대변인인 귄터 샤보프스키가 기자회견에서 “(동독 주민의 여행 자유화가) 지금 즉시(sofort) 시행된다”고 잘못 발표하자 수많은 동독 주민이 국경 검문소로 몰려들었다. 철벽같던 베를린 장벽은 순식간에 무너졌다.지난달 30~31일 모로코 북부 해안에서 6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바다를 건너 스페인령 세우타로 월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단 하루 만에 섬 주민 수(8만3500명)에 육박하는 대규모 불법 월경 사태가 벌어지자 난민 대량 유입을 우려한 스페인과 유럽연합(EU)에 비상이 걸렸다.수많은 사람이 세우타로 몰린 데에는 스페인 대법원이 지난달 ‘해상 월경자는 즉각 추방할 수 없다’고 판결한 사실이

    2026.08.02 17:39
  • [책마을] "재판권이 독립되지 못한다면 자유 위협하는 권력 나올 것"

    ‘어미없이 태어난 아이(Prolem sine matre creatam)’. 도발적인 라틴어 제사(題詞) 문구를 몽테스키외 남작은 <법의 정신> 서장에 적었다. 집필하는 데 20년이 걸린 역작이 지닌 독창성에 남다른 자부심을 담은 표현이었다.몽테스키외는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정치·사회 질서에 대한 비교 연구를 선보였다. 중국과 일본 같은 멀리 떨어진 나라에 대해서도 최대한 자료를 많이 확보해 판단하려고 노력했다. 유럽 각국의 다양한 법체계를 확인하기 위해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장기 체류했다.<법의 정신>은 6부 31편으로 구성됐다. 전제정과 공화정, 군주정의 제도적 형태, 민법과 형법의 특징, 각 정체의 쇠퇴의 징후, 다양한 군사적 문제, 사치, 여성의 지위, 자유의 법적 조건에 관한 다양한 규정을 심도 있게 다룬다.오늘날 <법의 정신>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 책이 ‘삼권분립’을 가장 먼저 구체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몽테스키외는 2부 11편 6장 ‘영국의 국가 구조’에서 ‘권력 배분’에 관한 내용을 설명한다. 이 장은 ‘삼권분립’이란 제목을 달지도 않았고, 지칭하는 용어도 현대와는 다르다. 그는 각 나라에는 세 가지 종류의 권력이 있다고 분석한다. 첫째는 입법권, 둘째는 만민법에 속하는 일들에 대한 집행권(행정부), 셋째는 시민법에 속하는 일들에 대한 집행권(사법부)이다.몽테스키외의 정의에 따르면 입법권에 의해서 군주나 행정관은 일시적·항구적인 법을 만들고 기존의 법을 수정하거나 폐지한다. 오늘날 행정부에 속하는 ‘만민법에 속하는 일들에 대한 집행권’(집행권)에 의해서는 외국과 평화를 맺거나 전쟁을 하고, 사절을 보내거나

    2026.07.24 18:03
  • [천자칼럼] '수학강국' 중국

    “과학 분야에서 중국은 갈릴레이보다는 다빈치에 가까웠다.” 과학사가 조지프 니덤은 저서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서 중국의 과학 전통을 르네상스 천재의 모습에 빗대 묘사했다. 실용적 성과는 뛰어났지만 기초 원리 탐구에는 무심했다는 진단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헬리콥터, 탱크 같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당대를 빛낸 탁월한 성과지만 과학 원리의 발견과는 결이 다르다. 중국 문명도 종이와 나침반, 화약을 발명했지만 기초 과학 연구에 취약했다.중국의 기술과 수학은 당장의 필요를 해결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를 두고 19세기 프랑스 수학자 루이 세디요는 “중국은 수학에서 가치 있는 일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수학과 계측을 정교하게 활용하는 ‘수량화 혁명’은 중국에선 발생하지 않았다. 기초 연구를 등한시한 중국이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에서 뒤처진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었다.임기응변식 실용주의는 한계가 분명했다. 전통시대 중국의 기술 성과는 겉만 번지르르한 경우가 많았다. 송나라(10~12세기) 때 중국의 연간 철 생산량은 15만t으로 18세기 영국의 철 생산량의 두 배나 됐다. 하지만 철의 순도와 경도는 제각각이었다. 당시 중국의 철은 무기와 건축자재, 농기구, 식칼 등의 용도에 맞춰 생산되지 못했다. 정밀한 품질이 요구되지 않는 종과 탑, 불상 같은 과시 용품에 철이 과소비됐다.‘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의 올해 수상자 네 명 중 두 명이 중국 베이징대 동기동창이어서 눈길을 끈다. 덩위 미국 시카고대 교수와 왕훙 뉴욕대 교수가 중국 국적자로는 처음으로 필즈상을 받는다.왕 교수는 100년 넘은 수

    2026.07.24 17:32
  • [천자칼럼] 기업 승계

    19세기 영국에서는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됐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자수성가한 기업가의 자식은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에서 전통 토지귀족의 가치관을 거의 그대로 흡수했다. 토머스 칼라일과 찰스 디킨스로 대표되는 반(反)산업주의 정서는 기업가 자식들에게도 유행처럼 번졌다. 2세 경영자들은 혁신과 이윤 추구보다 여가를 즐기는 지주 문화에 매료됐다. 젊은 기업가 중에는 공장을 물려받길 꺼리고 교외 생활을 동경한 부류가 적지 않았다. 이즈음 영국의 전성기도 저물었다.선대의 맥을 잇는 ‘승계’는 오랫동안 모든 인류의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기독교 성경에 ‘아담은 셋을 낳고, 셋은 에노스를 낳고, 에노스는 게난을 낳는’ 식의 계보학적인 내용이 가득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역사 교육이라고 하면 ‘태정태세문단세~’와 같은 통치자 명단을 순서대로 외우는 것으로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 ‘백년전쟁’과 ‘장미전쟁’ ‘왕자의 난’은 모두 승계를 다투다가 벌어진 일이다.승계에 대한 열망은 사회가 선진화하면서 강도가 옅어졌다. 풍요를 맛본 세대는 부모처럼 현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기를 꺼렸다. 고령화와 인구 구조 변화는 이런 현상을 증폭시켰다. 미국과 일본 산업현장에선 ‘베이비붐 세대’(1946~1965년 출생)와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가 은퇴하면서 ‘후계자 대란’이 빚어졌다.정부가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해 문을 닫는 중소기업을 줄이는 사업을 적극 지원한다는 소식이다. 가칭 ‘인수합병 등을 통한 중소기업 승계 시 양도소득세 특례’를 마련해

    2026.07.24 07:00
  • [천자칼럼] 마지막 향토 백화점

    1853년 6월 1일 프랑스 파리에 의류 판매업자 아리스티드 부시코가 기존 의류·잡화점을 대대적으로 고쳐 봉마르셰(Bon Marche)라는 대형 종합 상가를 열었다. 화려하고 큰 건물에서 정찰제로 상품을 판 봉마르셰는 ‘소비의 궁전’으로 불렸다. 대량으로 물품을 들여온 덕에 일반 소매점보다 가격이 15~20% 저렴했고 반품도 자유로웠다. 지금의 백화점이 탄생한 순간이다.백화점은 빠르게 세계로 퍼져나갔다. 파리의 갤러리라파예트와 프랭탕, 런던의 해러즈와 셀프리지, 뉴욕의 메이시, 도쿄의 미쓰코시 같은 화려한 백화점은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도 1929년 미쓰코시백화점을 필두로 미나카이, 히라다, 조지야 등 일본계 백화점이 들어섰고 한국인이 처음 세운 화신백화점도 곧이어 문을 열며 성업했다.산업화 이후 백화점은 지방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1980~1990년대 지방 거점도시 중심지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백화점이 자리했다. 부산의 태화·미화당·세원·신화·리베라백화점, 울산의 주리원·황태자백화점, 대전의 대전·동양백화점, 전주의 전주코아·전풍백화점, 광주의 태산·화니백화점 등이 고객의 발걸음을 붙잡았다.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역 상권을 발판 삼아 거침없이 사업을 확장하던 향토 백화점 대다수는 갑작스럽게 닥친 외환위기의 충격에 힘없이 쓰러졌다. 백화점 업계는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됐다. 살아남았어도 위기는 이어졌다. 대형마트와 복합쇼핑몰, 아울렛이란 버거운 경쟁자가 연이어 등장했다. 온라인 쇼핑 확산은 향토 백화점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82년 역사의 대구백화점이 기로에 섰다. 최근 10년

    2026.07.21 17:50
  • [천자칼럼] 돌아온 무적함대

    1588년 7월 메디나 시도니아 공작이 이끄는 141척의 함선으로 구성된 스페인 ‘무적함대(Invincible Armada)’가 리스본 항구를 출발했다. 하지만 기세등등하던 무적함대의 영국 원정은 실패로 끝났다. 예상치 못한 태풍을 만난 타격이 컸다. 흔히 이 사건은 영국과 스페인의 패권 교체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거론되곤 한다.역사적 사실이 통념과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겉만 번지르르한 것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무적함대가 대표적이다. 무적함대는 1588년 한 번의 패배로 무너지지 않았다. 스페인은 1592년까지 신형 갤리온선 40척을 새로 건조했다. 업그레이드된 함대는 대서양의 제해권을 틀어쥐었다. 스페인은 1596년과 1597년에 무적함대를 거듭 편성하며 재출정했다. 실패 원인을 복기하고 전술적 단점을 보완한 함대는 막강해 보였다. 무적함대가 끝내 극복하지 못한 것은 태풍이라는 치명적 외부 변수였다.어제 막을 내린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무적함대’ 스페인이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볼 점유율 65%에 슈팅 20개를 퍼붓는 동안 상대엔 슈팅 2개(유효슈팅 0개)만 내주며 경기를 압도했다. 대회 전체로도 8경기 7승1무, 14득점 1실점을 기록하며 무적함대라는 애칭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다.이번 스페인의 우승은 ‘정점’에서 내려온 팀이 와신상담 끝에 정상을 탈환했다는 데 의미가 깊다. 2008~2012년 스페인은 유로대회(2회)와 월드컵 등 메이저 대회를 3연속 우승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티키타카’로 불린 스페인식 점유율 축구는 세계 축구를 대표했다. 하지만 파훼법이 개발되면서 지난 10여 년간 스페인 축구의 위상은 &l

    2026.07.20 17:28
  • 뭉크 그림도 '퇴폐예술'이라고 쓰레기통에 버리던 시절😱 [세계를 바꾼 순간들]

    나치가 집권하면서 독일에선 정권 차원에서 ‘책의 민족’이라고 불리는 유대인과 ‘철학자와 시인의 민족’이라고 불리는 독일인의 대립을 부각했다. 1933년 요제프 괴벨스가 나치 독일의 선전 및 대중교육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발한 첫 일성은 “국가의 이데올로기 선전과 문화적 표현이 이질감을 보여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회화와 조각, 문학, 음악, 연극, 영화, 라디오, 출판 등 모든 문화 창조와 관련된 작업에서 ‘아리안’이라는 개념이 강조됐다. 아리안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아리안 예술가들이 아리안 정신을 표현해야만 했다.이런 움직임은 현대적인 예술 풍조를 억압하는 형태로 구체화했다. 또한 강압적으로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통일됐다. 반전사상을 담은 에리히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영화화한 작품처럼 당국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예술작품은 모두 폐기됐다. 소위 불온서적들은 불태워졌고, 주요 박물관의 소장품은 깨끗하게 세탁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독일 문화계의 수많은 거장이 ‘비독일적’이라는 이유로 숙청됐다. 하인리히 만을 비롯한 문화계 인사들은 친사회주의 행보를 보였다는 이유로 공격받았다. 알폰스 파케트, 알프레트 되블린, 토마스 만, 리카르다 후흐 같은 문인은 강제로 문인협회를 떠나야 했다.이와 함께 비독일적·반독일적으로 분류된 서적들은 불에 탔다. 카를 마르크스와 하인리히 하이네, 지크문트 프로이트, 에리히 레마르크, 에리히 케스트너 등의 작품들이 대표적이었다.회화와 사진 등의 분야도 나치 독일의 치밀한 감시를 받았다. “외래의 퇴폐적 사조에 오염됐다&rdquo

    2026.07.20 09:00
  • [천자칼럼] 도전의 한 수

    1933년 10월 16일 일본 도쿄 교바시의 한 료칸. 일본 바둑계의 거목 혼인보 슈샤이 명인과 훗날 기성(棋聖)으로 불린 20세 우칭위안(吳淸源) 5단이 마주 앉았다. 흑돌을 쥔 우칭위안의 첫수는 ‘귀수(鬼手)’로 불리며 금기시되던 ‘3·3’이었다. ‘화점’이나 ‘소목’만 두던 당대의 고정관념을 깬 한 수였다.우칭위안의 도발은 이어졌다. 세 번째 수를 ‘화점’에, 다섯 번째 수는 바둑판 정중앙 ‘천원’에 뒀다. 이날 대국은 160수 ‘묘수’를 둔 슈샤이 명인이 승리했다. 하지만 후대 바둑인들은 그날 누가 이겼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다. “3·3에 첫수를 두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우칭위안의 도전을 기억할 뿐이다.가로·세로 19줄의 바둑판에선 ‘10의 170승’개의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이론적으로 무수한 착점이 가능하다. 하지만 웬만해서는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적인 수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예상치 못한 ‘한 수’가 주는 감동은 남다르다.이세돌과의 두 번째 대국에서 알파고가 선보인 5선 어깨 짚는 ‘흑 37수’가 대표적이다. ‘인간이라면 두지 않을 수’는 바둑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인공지능(AI)을 무너뜨린 이세돌의 ‘백 78수’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의 정수였다.‘인간계 최고’ 신진서 9단이 ‘쎈수학·한경 기신전(棋神戰)’ 첫 대국에서 바둑 AI 카타고에 패했다. 흑을 잡고 ‘두 점’을 깔았지만 4시간20분 혈투 끝에 돌을 거두고 말았다.카타고는 우상귀 4선 세 칸 걸친 두 번째 수로 또 한 번 인간의 수읽기

    2026.07.17 17:51
  • [김동욱 칼럼] 투기 공화국? 규제 공화국!

    숨이 턱 막히는 여름 날씨 같다. 부동산시장 얘기다. 매매·전세·월세 가격 모두 무섭게 오른 지 한참 됐는데도 도무지 꺾일 줄 모른다. 이런 현상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정책 당국자는 ‘부동산 투기 공화국’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 눈치다. 하지만 ‘부동산 규제 공화국’이 더 부합하는 이름이 아닐까.서울 25개 구와 경기 15곳 등 수도권 40개 지역에서 부동산 ‘삼중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으로 지정돼 대출 규제와 실거주 의무 강화, 갭투자 금지 등의 제약을 받는다.수도권 거의 전역에서 거래의 팔다리가 꽁꽁 묶인 것은 걷잡을 수 없이 뛰는 집값을 잡기 위해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사유 재산권과 거주·이전의 자유라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은 언제까지 그리고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 것일까.정부는 지난해 10월 15일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부동산시장이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토지거래허가구역과 규제지역을 확대 지정해서 가수요를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지역에 ‘비상조치’급의 초고강도 규제가 적용됐다는 점이다.1979년 도입된 토허제는 두 차례에 걸쳐 헌법재판소 합헌 결정이 나왔다. ‘공공의 필요에 의해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헌법 23조 3항에 근거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중요한 것은 합헌 결정을 받은 조건이다. 헌재는 토허제를 두고 ‘특정 지역에만 일정한 기간을 정해 정상 거래가 아닌 투기적 거래 등일 경우에만 제한하는 것&rsqu

    2026.07.16 17:36
  • [천자칼럼] 앤 공주

    ‘이혼, 참수, 사망, 이혼, 참수, 생존.’ 16세기 영국 국왕 헨리 8세가 맞이한 여섯 왕비의 파란만장한 운명을 정리한 표현이다. 세 명의 캐서린과 두 명의 앤, 한 명의 제인 중 영국인에게 가장 사랑받은 이는 두 번째 부인인 앤 불린이다. 앤이라는 친근한 이름을 가진 여인이 국왕의 이혼, 국교회 수립 같은 역사의 격랑에 휩쓸리다가 참수라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게 대중의 동정을 샀다. 드라마 같은 삶은 ‘천일의 앤’이라는 영화 소재도 됐다.앤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은총’ ‘은혜’를 뜻하는 ‘한나’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메리, 샬럿, 루이즈 등과 함께 영국 왕실의 여성 일원에게 붙는 흔한 이름이기도 하다. 1642년 이후 영국 국왕의 장녀 중 7명에게만 부여된 ‘프린세스 로열(Princess Royal)’ 작위 수여자 중 2대와 7대가 ‘앤 공주’다.오랫동안 영국 왕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으로 꼽혔다. 찰스 3세 국왕의 아들인 윌리엄 왕자는 공군 파일럿으로 복무했다. 해리 왕자는 아프가니스탄 전장에 직접 갔다. 찰스 3세의 동생인 앤드루는 포클랜드전쟁에 헬리콥터 조종사로 참전했다.엘리자베스 2세는 공주 시절 차량정비 장교로 활동하며 나치 독일에 맞섰다. 평화 시에도 왕실 멤버는 각종 사회봉사활동과 외교에 힘을 쏟는다. 윌리엄이나 앤 같은 친숙한 이름은 유서 깊은 왕실 후광과 어우러져 큰 효과를 빚어낸다.찰스 3세의 여동생 앤 공주의 방한 행보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제 부산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6·25전쟁 당시 산화한 영연방국 장병의 희생을 기린 데 이어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를 찾았다. 청와대에서 이재명

    2026.07.15 17:32
  • [세계를 바꾼 순간들] 獨 아우토반 건설, 대공황 극복에 도움 됐을까

    속도 무제한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은 오랫동안 독일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아우토반은 엄청난 매력을 지닌 단어였다. 동시에 나치가 어떻게 한때나마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히틀러가 나쁜 짓을 많이 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우토반을 건설했어”라는 말은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현대 독일 안팎에서도 “히틀러가 아우토반을 건설해 경제 대공황을 극복했다”는 식의 표현을 접할 수 있다. “총통께서 길에다 실업을 묻어버렸다”는 나치의 선전 문구는 나치가 패망한 뒤에도 오랫동안 상식처럼 여겨져왔다.독일의 아우토반 건설은 대공황에 대처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이 투입된 사회기반시설(SOC) 건설의 대표적 사례였다. 정부의 강력한 투자 프로그램에 따른 경기 부양이라는 케인스식 불황 대처법이 행동으로 옮긴 사례로 꼽혀왔다. 하지만 아우토반을 둘러싼 이 같은 이미지들은 대부분 허구의 신화에 기초한 점이 적지 않았다. 아우토반 건설이라는 아이디어부터 히틀러나 나치 정권이 생각해낸 것이 아니었다. 바이마르공화국 정부의 책상 서랍 속에 있던 고속도로 건설 구상을 가져다 쓴 것에 불과했다.독일에서 순수하게 자동차 전용도로로 가장 먼저 구상되고 건설된 것은 1913년 완공돼 1921년 확장된 베를린의 자동차 교통 및 연습 도로였다. 현대적 의미에서 최초의 실질적인 자동차 전용도로가 계획되고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나치 집권 1년 전인 1932년이었다. 이를 주도했던 인물도 나치즘과는 거리가 멀었다. 후일 서독 초대 총리가 되는 콘라트 아데나워 당시 쾰른 시장이 아우토반의 첫 삽을 떴다. 최초의 아우토반은 쾰른과

    2026.07.13 09:00
  • [천자칼럼] 학과 '간판' 바꿔달기

    12세기 유럽 대학에선 ‘7개 자유 과목(septem artes liberales)’을 중심으로 학생을 가르쳤다. 문법과 수사학, 논리학의 ‘문과 3개 과목(Trivium)’과 산술학, 기하학, 음악, 천문학의 ‘이과 4개 과목(Quadrivium)’과 같은 기초학문이 교육의 중심이었다.대학 전공에는 ‘시대 정신’이 반영된다. 근대 대학 모델로 꼽히는 독일 베를린대(1810년 개교)는 외부 간섭 없이 순수하게 학문을 탐구하는 데 중점을 뒀다. 교육의 핵심은 교수 주도 세미나와 연구실이었다. 학과는 철학과 법학, 의학을 중심으로 갖췄다. 순수 학문 중심으로 학교가 꾸려진 데는 광산과 건축, 군사와 같은 전문 직업학교 체제를 갖춰가던 나폴레옹 치하 프랑스를 향한 반감이 한몫했다.독일 대학 모델은 미국과 일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875년 설립된 존스홉킨스대는 실험과 세미나를 중시하는 독일 대학의 수업 방법을 도입했다. 이는 곧 미국 전역으로 번졌다. ‘자유의 바람이 분다(Die Luft der Freiheit weht)’라는 독일어 모토가 적힌 스탠퍼드대 엠블럼은 이런 시대의 유산이다. 1897년 설립된 교토제국대를 중심으로 독일 교육을 접목한 일본 주요 대학에선 요즘도 세미나의 독일어 발음(제미나)에서 유래한 ‘제미(ゼミ)’가 수업의 중심이다.일본과 미국을 통해 대학 제도를 도입한 한국에선 경제학과, 생물학과와 같은 순수학문 위주의 학과 체제가 오랫동안 유지됐다. 하지만 시대 변화로 실용적인 학과가 꾸준히 늘었다. 학과 명칭이 바뀌는 일도 흔해졌다. ‘글로벌’ ‘융합’ ‘첨단’과 같은 수식어 때문에 학과 정체성을 알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서울대가 노어노문학과

    2026.07.08 17:39
  • [천자칼럼] 바이킹의 후예

    바이킹은 8~11세기 스칸디나비아반도 출신 전사와 해적, 상인을 일컫는 말이다. 바이킹이라는 단어가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이견이 많다. 고대 노르드어의 바다 위 거리 단위인 ‘비카(vika)’에서 왔다는 설이 주목된다. 지친 노꾼을 교대하는 이를 ‘비케(vike)’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는 설명도 있다. 바이킹이 몸을 숨기던 만(灣)을 뜻하는 ‘비크(vik)’에서 나왔다는 분석 또한 있다.바이킹은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바이킹 일파인 바랴기족이 볼가강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해 세운 키예프공국에서 러시아 역사가 시작됐다. 바이킹은 라인강과 루아르강을 제집 드나들듯 오갔다. 노르망디공국을 세웠고 9세기에는 세 차례나 파리를 점령했다. 영국에는 바이킹 지배지역인 데인로(Danelaw)를 건설했다. 이베리아반도를 돌아서 시칠리아와 이탈리아를 습격하기도 했다. 11세기엔 그린란드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까지 진출했다.바이킹은 무서운 침략자였다. 중세인들은 “큰 번개와 불꽃이 하늘을 찢었다”며 바이킹의 등장에서 세상의 종말을 떠올렸다. 그들은 신속하게 약탈하고 재빨리 달아나는 ‘히트 앤드 런’ 전술을 구사했다. 들쑥날쑥한 노르웨이 해안선에서 날렵한 배를 몰며 항해술을 익힌 결과다. 귀중품이 많지만 방비가 허술한 종교 시설이 주요 공격 대상이었다. 영국 노리치(Norwich), 독일 브룬스비크(Brunswick) 같은 지명에는 바이킹 약탈을 막던 성채를 의미하는 게르만어 ‘비크(wik)’의 흔적이 남아 있다.바이킹의 후예 노르웨이가 어제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삼바 군단’ 브라질을 침몰시키고 8강에 진출했다. ‘괴물 골잡이’ 엘링 홀란이

    2026.07.06 17:46
  • 📻아이돌보다 인기 많았던 훈남 총리의 비극적 결말 [세계를 바꾼 순간들]

    일본 쇼와(昭和) 시대(1926~1989년) 초기에는 보통선거권의 도입과 함께 이른바 ‘극장형 정치’가 자리 잡아갔다. 대중은 복잡한 정치문제에는 관심이 없었고, 입에서 입으로, 귀에서 귀로 전달될 수 있는 흥미 위주의 정치·사회문제에 감정을 이입해 반응했다.이 같은 분위기가 확산한 데엔 일본 언론의 영향이 컸다. 예를 들어 만주사변(1931년)의 전개에는 라디오가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일본의 라디오 방송은 만주사변 1보가 새벽에 들어온 날 오전부터 정규방송(라디오 체조)을 중단한 채 관련 속보를 전했다. 신문도 질세라 맹렬하게 보도에 나섰다. 당시 65만 명이던 라디오 계약자 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월평균 6만 명씩 늘어 1932년 3월에는 105만6000명에 달했다.라디오의 영향을 받은 신문들도 호외를 잇달아 발행했다. ‘호외 전쟁’이 벌어지면서 독자를 점점 더 선동하는 악순환이 빚어졌다.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 군부가 ‘전 국민의 응원’을 받는 데는 신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여론 조종에 적극적이던 군부 이상으로 아사히나 마이니치 같은 대형 신문사가 선두에 나서는 등 전 매스컴이 경쟁적으로 여론을 먼저 장악하려고 광분했다.이를 반영하듯 ‘만주국 독립안’ ‘관동군의 맹진격’ ‘국제연맹의 항의’ 등 자극적인 어휘를 사용하며 새로운 국면이 열릴 때마다 신문은 군부의 움직임을 전면적으로 지원했다. 민중은 언론에 선동당했고, 이내 호전적으로 바뀌었다.전쟁은 신문사에 최대 수익을 가져다주는 무기이기도 했다. 전쟁을 부채질해 발행 부수를 늘렸다. 만주사변을 본격적으로 보도한 것은 1931년 10월부터였지만, 이후 약 6개월간

    2026.07.06 09:00
  • [천자칼럼] 뱃속 아이

    19세기 말 아시아·아프리카 식민지에서 근무한 영국인 관리의 부인들은 아이를 낳을 때가 되면 줄줄이 영국으로 돌아갔다. 만삭의 여인들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식민지에서 태어난 아이는 영국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상층 귀족 가문 출신 러디어드 키플링이 제국주의 선전에 앞장선 배경에는 인도 봄베이(현 뭄바이) 출생이라는 콤플렉스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뱃속 아이’는 모호한 존재다. 태아에 관한 정보는 극도로 제한된다. 초음파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는 낳아봐야 알았다. 인간 생명의 시작점을 두고 법학에서 ‘수정설’과 ‘착상설’ ‘태동설’ ‘분만설’이 대립한 것도 태중(胎中)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부족한 탓이 컸다.임신·출산에 관해서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기도 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임산부에겐 수많은 금기가 있다. 임신 사실을 거론하는 것조차 꺼리기도 했다. 독일에선 임신을 ‘심장 아래로 가져오다(Unter dem Herzen tragen)’라고 돌려 말했다. 일본어에선 임신 소식을 간접적으로 전하는 ‘오메데타(おめでた)’라는 단어가 따로 있다.이처럼 어머니 뱃속은 불분명한 것투성이지만 태어날 아이의 국적만은 의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이 명확하던 신생아 국적에 혼란을 일으켰다. ‘국왕을 향한 신민의 충성’이란 믿음이 흔들리면서 새로운 기준이 요구됐다. 1860년 프랑스 법학자 샤를 드몰롬은 국적 기준으로 속지주의(jus soli)와 혈통주의(jus sanguinis)를 제시했다.미국 정부가 임신한 외국인 여성의 입국을 차단하는 방

    2026.07.02 17:35
  • 毒이 된 獨의 '3대 성장 공식'…유럽 경제엔진이 식어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정부와 사회, 경제가 이처럼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적은 없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지난 5월 독일 상공회의소 행사에서 이같이 토로했다.유럽연합(EU)의 엔진이자 세계적 제조업 강국인 독일이 무너지고 있다. 폭스바겐 등 독일 자동차업계는 잇달아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부품, 금속, 화학 산업도 흔들리고 있다. 민간투자는 2019년 이후 줄곧 감소해 2015년 수준으로 돌아갔다.독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021년 이후 하락세다. EU 평균을 밑도는 것은 물론 2023년과 2024년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기도 했다. 독일의 주요 경제연구소는 올해 독일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3%에서 0.6%로 대폭 하향했다.독일이 몰락하고 있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이 끊기며 에너지값이 치솟았고, 중국에 ‘올인’한 수출 정책은 독이 돼 돌아왔다. 인공지능(AI) 활용과 디지털화에도 뒤처져 반격의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그럼에도 독일은 수많은 시련을 오뚝이처럼 극복한 나라다. 1873년부터 30년간 이어진 대불황, 1920년대 초인플레이션, 두 차례 세계대전의 패배, 분단과 통일 후유증,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파도를 모두 넘었다. 이번에도 독일은 제조업 기반을 흔드는 복합 위기를 극복하고 ‘제2 라인강의 기적’을 쓸 수 있을까.짙어지는 주력 산업 ‘먹구름’‘전차군단’ 독일 경제는 오랫동안 탄탄함의 상징이었다. 일본처럼 거품이 생기지도 꺼지지도 않았다. 자동차, 기계, 화학, 금속, 광학 등 포트폴리오를 두루 갖춘 기초 산업 분야는 특히 굳건해 보였다. 그런데

    2026.06.30 18:28
  • 민주주의 특: 가끔 스스로 브레이크 고장냄 [세계를 바꾼 순간들]

    1933년 3월 24일 독일 제국의회에서 나치당 주도로 ‘민족과 제국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 법률’이 처리됐다. 흔히 ‘수권법(입법권을 행정부에 위임하는 법률)’이라는 용어로 번역되는 ‘전권위임법(Ermächtigungsgesetz)’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당시 수권법은 찬성 441표, 반대 94표로 가결됐다. 바이마르헌법 제76조에 규정된 참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요건을 아슬아슬하게 충족했다. 실제 표결은 공포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81명의 공산당 소속 의원들과 적잖은 수의 사회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구금 상태이거나 위압적인 분위기 탓에 표결에 참석하지 못했다. 사민당 당수 오토 벨스가 반대 연설을 남겼지만, 나치의 폭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수권법은 제국의회를 통과한 지 3주 후인 5월 5일부터 시행됐다. 이 법의 골자는 제국의회의 동의와 대통령의 연서 없이도 행정부가 법을 제정하는 것이었다. 행정부에 무제한의 입법권을 부여하며 기존 헌법을 비롯해 의회와 기존 정당을 모두 무력화했다. 제국대통령직도 수상인 히틀러에 의해 허울만 남게 됐다. 1933년 여름까지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해산되거나 스스로 문을 닫도록 강요됐다. 노조는 분쇄됐고 작은 이익단체도 금지되거나 나치당의 통제에 들어갔다. 사상 통제도 감행됐다. 스포츠 단체와 연구기관, 직업공동체, 청년 단체, 오케스트라까지 새 나치 국가에 대한 의무가 부여됐다. 사법부는 나치 폭주의 충실한 조수가 됐다.나치당은 “국민의 통일성이 다시 세워졌다”고 선전에 나섰다. “독일이 국가적 강성함을 다시 찾고 1920년대 이래 지체됐던 경제적·사

    2026.06.29 09:00
  • [천자칼럼] '경우의 수'도 외면한 실력

    고대 바빌로니아에선 ‘바루’라고 불리는 사제들이 제물의 간 모양을 살펴서 미래를 점쳤다. 100여 개 점토판에 새겨진 점괘 목록은 8만여 개나 전해진다. 하지만 간의 돌출부 모양을 보고 내놓은 ‘유명한 사람이 당나귀를 타고 올 것’이라는 식의 막연한 예언은 장래를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되질 못했다.확률이론은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려는 열망에서 등장했다. 주사위 3개를 굴리면 합이 10이 나오는 경우가 합이 9가 나올 때보다 많다고 경험 많은 도박사들은 짐작만 했다. 노름꾼이기도 한 수학자 지롤라모 카르다노는 1564년 <우연의 게임 지침서>에서 세 숫자의 합이 9나 10이 되는 방법의 수는 동일(각각 6가지)하지만, 세 숫자의 순서가 구별되는 조합의 수가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합이 10이 되는 경우는 27가지, 합이 9인 경우는 25가지였다. ‘3+3+3=9’와 같은 사례가 전체 확률에 미묘한 변화를 줬다.그런데 치밀한 계산으로 확률이 높은 곳에 베팅해도 바람은 쉽사리 현실이 되지 않는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는 짜릿한 승부의 아쉬움만 더할 뿐이다. 페르마, 파스칼, 하위헌스, 베르누이 등 유명 수학자들이 도박판에서 조금이라도 더 따기 위해 머리를 싸맸지만 빈손으로 돌아섰다.확률은 수많은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 실전에서는 주사위의 어느 면이 나올지조차 공평하지 않다. 주사위가 공중에서 얼마나 빨리 회전하느냐, 바닥에서 몇 번 튀느냐에 따라 숫자가 달라진다. 완벽한 정육면체 주사위도 던지기 전에 위를 향했던 면이 나올 확률이 55.8%로 이론상 수치(16.7%)를 크게 웃돌았다는 연구 결과 또한 있다.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2026 북중미 월

    2026.06.28 17:42
  • [천자칼럼] 교회로 바뀌는 상가

    1900년 5월 28일 프랑스 파리 센강 인근에 오르세역이 문을 열었다. 기차역은 부지가 넓지 않은 탓에 플랫폼을 확장할 수 없었다. 긴 열차를 수용할 수 없는 역사는 곧 쓸모를 잃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포로수용소로 전락했고, 전후에는 영화 촬영 공간으로 활용됐다. 슬럼화하던 역은 1986년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기차역으로는 실패했지만, 미술관으로는 대성공이었다. 오늘날 고흐와 모네, 세잔의 명작을 보러 수많은 관광객이 오르세미술관 앞에 줄을 선다.모든 건물은 저마다의 운명이 있다. 건물주의 변심이나 주변 환경 변화 같은 이유로 건축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건물이 사용되곤 한다. 변화가 심한 현대사회에선 ‘용도 변경’이 더 흔해졌다. 고령화·탈종교화가 뚜렷한 유럽에선 종교시설 리모델링이 활발하다. 네덜란드 헤를렌에선 빈 교회 건물이 수영장으로, 영국 노팅엄의 교회는 술집으로, 폴란드 크라쿠프의 고딕 성당은 공연장으로 바뀌었다.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변신도 적지 않다. 독일 칼카르에 있는 건설이 중단된 원자력발전소는 테마파크 어트랙션 시설이 됐다. 미국 뉴욕의 옛 오레오 과자 공장은 식도락의 천국 첼시마켓으로 변모했다. 의도와 달리 쓰이는 건물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개는 “빈 곳으로 버려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인적이 없는 것만큼 분명한 쇠락의 상징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서울 문정동 복합쇼핑몰인 가든파이브에 있던 영화관이 최근 교회로 리모델링을 마쳤다는 소식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보급 이후 수익성이 악화해 ‘애물단지’로 전락한 영화관이 종교시

    2026.06.25 17:46
  • [천자칼럼] 결혼의 경제학

    “남들은 싸우도록 놔둬라. 그대 축복받은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 스위스 변방에서 출발한 합스부르크 가문은 15세기 이후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체코, 헝가리 등에 있는 수많은 왕이나 제후와 혼인을 맺었다. 결혼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재산을 불렸다. ‘결혼정책’은 유럽의 패권을 장악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결혼은 이해득실을 치열하게 계산한 결과물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는 결혼을 두고 남녀가 독신으로 있을 때보다 경제적 수입이나 가사·양육의 효용을 높일 것으로 기대하기에 감행하는 행위로 봤다. 결혼의 ‘비용’과 ‘편익’을 비교하면 ‘남는 장사’라는 얘기다. 학력과 직업, 소득 등이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하는 동질혼이 늘어나는 것도 ‘효용 극대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때론 결혼 여부가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이나 손실로 이어진다. 기원전 403년 로마에선 ‘노총각세(Aes uxorium)’를 도입해 미혼 남성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웠다. 현대 맞벌이 부부는 합산 소득이 증가하는 ‘결혼 보너스’와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결혼 페널티’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혼(婚)테크’는 복잡한 고차 방정식이다.최근 혼인 증가세가 뚜렷하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혼인 건수(6만2309건)는 전년 동기 대비 6.1% 늘었다. 연간으로는 최근 3년 연속 증가해 2022년 19만1690건에서 지난해 24만326건으로 뛰었다. 특히 20대 결혼이 크게 늘고 있어 주목된다. ‘골드미스’라는 용어가 유행하며 비혼, 만혼이 증가한 2010년 언저리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결혼

    2026.06.23 17:28
  • 평생 모은 돈으로 아파트 샀다가 폭망한 미국인 ‘존 노리스’의 비극😭 [세계를 바꾼 순간들]

    1920년대는 미국 경제사에서 풍요로운 번성의 시기로 평가받는다. 당시 미국 공업 생산은 약 90% 증가했다. 소비자의 구매력이 향상되면서 자동차와 가전제품 같은 내구 소비재 소비가 늘었다.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는 반면 물가는 안정됐다. 주식시장은 활황을 보여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는 별칭이 붙었다.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산업 생산 중심지였던 시카고는 경제 활황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었다. 철강, 육류 가공, 기성복 제조, 농산물 거래가 활발했다. 농산물 가공품과 가구, 전화기 관련 장비, 철도 부품, 철강 제품을 시카고는 미국 내 어느 곳보다 많이 생산했다. 당시 시카고 노동자들에게는 특별한 자격이 요구되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의 험한 일을 해낼 체력과 의지만이 중요했다.US스틸, 스위프트, 인터내셔널하베스터를 비롯한 대규모 제조공장이 밀집한 시카고는 미국에서 노동운동의 영향력이 가장 강한 지역으로 유명했다. 1919년 당시 시카고에서 일하는 40만 명의 노동자 중 70% 이상이 종업원 수가 100명이 넘는 작업장에서 일했다. 3분의 1가량은 종업원 수 1000명 이상인 ‘대기업’에서 일했다. 하지만 독일, 폴란드, 체코, 유고슬라비아, 리투아니아 등 다양한 지역에서 이민 온 백인과 유대인, 흑인 등 여러 인종의 노동자 간 교류와 의사소통은 수월치 않았다.미국이라는 나라는 부유해졌을지 몰라도 사회 하층부의 개별 노동자까지 경제적 곤궁에서 벗어난 사례는 많지 않았다. 실업의 위기는 상존하는 위협이었고, 가족 구성원의 질병이나 예기치 않은 죽음은 흔한 일이었다. 이와 함께 살고 있는 집에서 언제 쫓겨날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다

    2026.06.22 09:00
  • [천자칼럼] 韓·日만의 고민 '정년'

    1936년 4월 일본 재벌 미쓰이의 지주회사 격인 미쓰이합명회사 상무이던 이케다 시게아키가 정년제를 도입했다. 최고경영진은 65세, 임원진은 60세, 일반 직원은 55세로 정년이 정해졌다. 미쓰이은행, 미쓰이물산, 미쓰이광산 등 6개 그룹사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됐다. 같은 해 군사쿠데타(2·26 사건)가 발생한 배경에 ‘빈부 격차’가 있다고 본 일본 정부가 재정을 확대하고 세금을 감면하고 금리를 낮추며 민심을 다독이던 상황에 발맞춘 조치였다.일반 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정년제를 적용하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정년이 ‘직업 안정성’의 상징으로 여겨진 까닭에 연장 움직임도 뚜렷하다. 일본은 법적 정년이 60세지만 2021년부터 65세까지 고용을 의무화했다. 중국은 남성 60세, 여성 50세인 정년을 2040년까지 남성 63세, 여성 55세로 단계적으로 늘리고 있다. 싱가포르도 63세인 정년을 2030년까지 65세로 연장하기로 했다.미국과 유럽에선 법적으로 정년 개념이 없다.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 ‘강제 해고’로 정년을 보기 때문이다. 미국은 1986년 연령차별금지법을 개정하면서 기업 내 정년이 불법이 됐다. 2006년 65세 ‘기본 정년연령’ 규정을 마련한 영국은 불과 5년 만에 정년제를 폐지했다. 유럽 국가에선 통상 65세 언저리인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동아시아의 ‘정년’과 비슷한 ‘은퇴’ 시점으로 삼는다.한국은 일본 제도를 참조해 1963년 공무원 정년제도를 도입했다. 1991년 고령자고용촉진법을 제정하면서 민간 기업 권고사항으로 60세 정년을 제시했다. 2013년 법 개정과 함께 정년 60세가 의무 조항이 됐다.노동계가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입법을

    2026.06.17 17:39
  • [천자칼럼] 전쟁의 끝

    1904년 발칸반도 몬테네그로의 국왕 니콜라스 1세는 ‘구두’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러·일 전쟁에서 이웃 국가인 러시아 측에 가세한 것이다. 실제 참전은 아니었기에 강화 회담에 몬테네그로는 초대받지 못했다. 이후 몬테네그로라는 나라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가 유고슬라비아가 붕괴해 되살아날 때까지 일본과 몬테네그로 간 서류상 ‘교전 상태’는 100년 넘게 계속됐다. 양국은 2006년 수교 과정에서 “선전포고 공식 문서는 없다”며 ‘종전’에 도달했다.전쟁은 끝내기가 어렵다. 생각한 대로 진행되는 전쟁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짠 작전계획도 적과 부딪히는 순간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가 된다. 미국은 베트남 밀림에 9년이나 발을 담그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2주 안에 전쟁을 끝낸다고 자신하던 러시아는 4년 넘게 우크라이나 수렁에 빠져 있다. “전쟁은 원할 때 시작할 수는 있어도 원할 때 멈추지는 못한다”는 마키아벨리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실제 전장에선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갈리지 않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이겨도 ‘전리품’을 획득하는 것보다 나누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다. 명분과 실리를 챙기는 과정에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전쟁은 군인들에게만 맡기기엔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며 몰려든 정치가와 외교관은 전쟁의 마무리 작업을 방해만 할 뿐이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제 “이란과의 종전 협상이 완료됐다”고 밝혔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규모 공습을 하며 시작된 전쟁이 106일 만에 막을 내리는 셈이다. 오는 19일 스위스에서 열리는 휴전 연장 양해각서(MOU) 서명

    2026.06.15 17:43
  • 스마트폰 없는 세상, 레닌이 ‘전기화’에 올인한 사정 [세계를 바꾼 순간들]

    “공산주의는 사회주의 권력에다 전 국가의 전기화를 더한 것이다.” 러시아혁명의 태두 블라디미르 레닌은 위와 같은 말로 전기·전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같은 표어가 국가 지도자의 입에서 나오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러시아혁명으로 집권한 소련 공산당은 1920년대까지 정치적·경제적 기반이 취약했다. 국가 경제는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1920년 공업 생산량은 제1차 세계대전 전인 1913년의 14%에 지나지 않았다. 1920년 6월 당시 전체 기관차의 60%가 운행이 불가능했다.1923년 소련의 평균 열차 운행 속도는 시속 10마일(16km) 이하였고, 열차 이용객 수는 1913년의 절반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많은 공장이 원자재와 연료 부족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러시아의 주요 탄전은 가동 중단 상태였고, 공장 시설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거의 없었다. 당시 대기업의 생산량은 전쟁 전의 18% 수준이었다. 곳곳에 기아와 질병이 만연했고, 혁명의 결과를 되돌리기 위한 백군과 외국 간섭군의 위협도 여전했다.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소련 정부는 1920년 2월 ‘고엘로(ГОЭЛРО)’라는 약칭으로 불린 러시아 전력화 기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기구에서 ‘고엘로 계획(план ГОЭЛРО)’이라는 전력화 사업 계획을 마련했다. 이는 소련의 경제를 회복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첫 5개년 계획이었고, 이후 소련의 계획경제 당국인 고스플란(Госплан)이 추진하는 5개년 계획의 원형이 됐다. 레닌은 “10년 안에 소련을 ‘전기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글레프 크르지쟈놉스키의 지휘하에 200여 명의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고엘로에 참여했다. 고엘로는 붕괴

    2026.06.15 09:00
  • [천자칼럼] 첫발 내디딘 '화성 침공'

    화성은 붉게 빛난다. 산화철(Fe2O3)과 수산화철(FeO(OH)), 즉 붉게 녹이 슨 쇠 성분이 화성 토양에 많이 함유된 까닭이다. 대다수 푸른 별과 대비되는 화성의 모습에서 로마인들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전쟁의 참화를 떠올렸다. 전쟁의 신 마르스(Mars)의 이름이 붉은 행성을 지칭하게 된 이유다.군신(軍神)의 이미지 탓인지 상상의 세계에서 화성은 지구를 침공하는 주체였다. 1898년 영국 작가 허버트 웰스는 소설 <우주 전쟁>에서 화성인을 지구를 침공해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연체동물 형상으로 묘사했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 ‘화성 침공’에선 지구에 쳐들어온 화성인이 재미 삼아 사람을 학살하는 것으로 그려졌다.1976년 미국 행성 탐사선 바이킹1호가 화성에 착륙해 행성의 ‘민낯’을 전송했다. 화성의 이미지도 점차 ‘개척 대상’으로 바뀌었다. 지구와 비슷한 환경이라는 매력도 부각됐다. 화성의 평균온도는 영하 53도지만 최고기온은 영상 20도까지 오른다. 계절이 존재하고 자전주기(24시간39분)도 지구와 비슷하다.여전히 화성은 머나먼 존재다. 2억2500만㎞나 떨어진 공간으로 인간은 거주하기는커녕 가보지도 못했다. 화성을 인류가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는 ‘테라포밍(terraforming)’은 차원이 다른 작업이다. 화성의 중력은 지구의 38%, 대기압은 지구의 1% 수준이고 대기의 95%를 이산화탄소가 차지한다. 지구에서 35억 년이나 걸린, 대기와 물을 조성하고 온도를 높이는 작업을 단기간에 하는 것은 아직은 꿈에 가까운 일이다.인류의 화성 이주 구상을 밝힌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지난 12일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됐다.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20% 가까

    2026.06.14 17:29
  • [천자칼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수없이 시작했고, 또 수없이 포기했다. 써놓은 원고를 수없이 바람에 날려 보냈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 서문에서 책을 쓰기 시작해서, 원고가 진척되고, 완성되기까지 20년간 겪은 어려움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위대한 작품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구상에서 탈고까지 60년이 걸렸다. 베토벤은 악상을 떠올린 후 16년간 수없이 고쳐 쓴 뒤에야 ‘합창교향곡’을 세상에 내놨다.위대한 책과 예술품에는 한 사람의 땀과 열정 그리고 혼이 투사된다. 그래도 개인 작품은 작가가 죽기 전에 결실을 볼 수 있기에 사정이 낫다. 대규모 건축물은 주춧돌을 놓고 완공되기까지 한 사람의 생애를 훌쩍 뛰어넘고는 한다. 1248년 착공한 독일 쾰른대성당은 1880년 마무리될 때까지 632년이 걸렸다. 424년에 걸쳐 지어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성당은 여전히 오른쪽 종탑이 없는 미완성 상태다.바티칸 성베드로성당(144년), 파리 노트르담성당(185년), 피사의 사탑(199년), 모스크바 크렘린(364년), 런던 웨스트민스터사원(500년) 그리고 건설의 시작과 끝을 확정하기 어려운 중국의 만리장성처럼 대를 이어가며 지은 랜드마크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살아있는 동안 완성을 보지 못하고, 언제 끝날지도 모를 일에 말없이 돌을 쌓아 올린 이들의 마음가짐은 어땠을까.144년째 건설 중인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그라다파밀리아성당의 완공이 가시권에 들었다. 그제 성당 설계자인 안토니 가우디 100주기를 맞아 성당에선 ‘예수 그리스도의 탑’ 준공식이 열렸다. 172.5m 높이의 이 탑은 성당 첨탑 18기 중 가장 높고 중요한 상징물이다. 교황 레오 14세가 직접 가우디 추

    2026.06.11 17:30
  • [천자칼럼] 동해산 참치

    영어로 참치를 의미하는 단어 ‘튜나(tuna)’는 고대 그리스어로 ‘재빨리 움직이다’ ‘날아가다’라는 뜻을 지닌 ‘투노스’에서 유래했다. 잡으려던 물고기가 쏜살같이 사라진 모습을 보고 이름을 붙였다. 최고 속도가 시속 64㎞를 넘는 참치를 두고 시인 오피아노스는 “물고기 중에서 튀어 오르는 힘과 빠름에서 단연 최고”라고 묘사했다.참치와 백상아리, 고등어 같은 빠른 속도로 유영하는 물고기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헤엄치는 방식으로 호흡(램 환기법)한다. 이들을 잡아서 물 밖으로 꺼내는 순간 바로 죽는 이유다. 지방이 많아 상하기 쉬운 참치는 잡자마자 바로 손질해야 하는 까닭에 냉장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인기 있는 생선이 아니었다. 세계 최대 참치 소비국인 일본에서도 옛 귀족의 밥상에는 참치보다는 담백한 흰살생선인 도미와 잉어가 올랐다.길이 4.2m에 무게 680㎏까지 자라는 참치는 잡아도 ‘처치 곤란’인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까지 캐나다 노바스코샤 인근에서 스포츠 낚시로 잡은 대형 참다랑어는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미국으로 전자제품을 수출하는 화물 수송기가 텅 빈 채 돌아가는 모습을 본 일본 상사맨들은 버려지는 참다랑어를 헐값에 사서 화물칸을 채웠다. 천대받던 참치가 고급 식자재로 변신한 출발점이었다.격렬하게 움직이는 참치는 체내에 아데노신3인산(ATP)을 다량 축적한다. 참치가 죽으면 이 ATP가 이노신산(IMP)으로 전환되는데 이것이 감칠맛의 근원이다. 대형 참다랑어와 눈다랑어는 감칠맛을 살린 횟감과 초밥 재료로, 씨알이 작은 가다랑어는 통조림 원료로 사용된다.동원산업이 국내산 참다랑어 유통에 본격적으로

    2026.06.10 17:47
  • [천자칼럼] "재선거" 구호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조지 오웰의 풍자소설 <동물농장>에서 주인인 인간을 몰아낸 동물들은 날마다 ‘인간은 사악하고, 동물은 선하다’는 내용의 구호를 외친다. 동물농장의 권력을 장악한 돼지 나폴레옹이 독재자로 변하는 과정도 구호에 즉각 반영됐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모토는 어느 순간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는 정반대 문구로 탈바꿈한다.짧고 선명한 구호의 힘은 강하다. 직관적이고 기억하기 쉬운 몇 단어로 압축된 한마디는 군중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3·1운동 때 거리에 나온 한국인들은 ‘대한 독립 만세!’를 목청껏 불렀다. 민주화 운동 당시 대학생들은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며 한마음이 됐다. 언어학자 빅토르 클렘페러는 <제3 제국의 언어>에서 “나치의 가장 강력한 선전도구는 히틀러나 괴벨스의 연설도, 신문 기사도, 전단도, 포스터도, 깃발도 아닌 반복돼 들리는 말”이라고 갈파했다.군중이 외치는 구호가 ‘시대의 요구’와 부합하면 시위의 폭발력은 증폭된다. 21세기 들어 미국에서 등장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같은 슬로건은 미국 사회가 가는 방향을 바꿨다.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는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개표소(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는 지난 주말 20·30세대를 중심으로 4만 명 가까운 인파가 모였다. 시위 참가자들은 ‘재선거’라는 하나의 구호만을 외치고 있다. 참정권 침해에 항의하는 시위에 자칫

    2026.06.0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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