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5월 28일 프랑스 파리 센강 인근에 오르세역이 문을 열었다. 기차역은 부지가 넓지 않은 탓에 플랫폼을 확장할 수 없었다. 긴 열차를 수용할 수 없는 역사는 곧 쓸모를 잃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포로수용소로 전락했고, 전후에는 영화 촬영 공간으로 활용됐다. 슬럼화하던 역은 1986년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기차역으로는 실패했지만, 미술관으로는 대성공이었다. 오늘날 고흐와 모네, 세잔의 명작을 보러 수많은 관광객이 오르세미술관 앞에 줄을 선다.

[천자칼럼] 교회로 바뀌는 상가
모든 건물은 저마다의 운명이 있다. 건물주의 변심이나 주변 환경 변화 같은 이유로 건축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건물이 사용되곤 한다. 변화가 심한 현대사회에선 ‘용도 변경’이 더 흔해졌다. 고령화·탈종교화가 뚜렷한 유럽에선 종교시설 리모델링이 활발하다. 네덜란드 헤를렌에선 빈 교회 건물이 수영장으로, 영국 노팅엄의 교회는 술집으로, 폴란드 크라쿠프의 고딕 성당은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변신도 적지 않다. 독일 칼카르에 있는 건설이 중단된 원자력발전소는 테마파크 어트랙션 시설이 됐다. 뉴욕의 옛 오레오 과자 공장은 식도락의 천국 첼시마켓으로 변모했다. 의도와 달리 쓰이는 건물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개는 “빈 곳으로 버려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인적이 없는 것만큼 분명한 쇠락의 상징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 문정동 복합쇼핑몰인 가든파이브에 있던 영화관이 최근 교회로 리모델링을 마쳤다는 소식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보급 이후 수익성이 악화해 ‘애물단지’로 전락한 영화관이 종교시설에 바통을 넘긴 것이다. 관광객이 늘면서 공실 증가로 골머리를 앓는 상가를 숙박시설로 전환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현행 한국의 건축 관련법은 용도 변경에 유난히 까다롭다는 평이다. 건물 용도를 29개로 나눠 설비·설계·건축·피난·화재 기준을 달리 적용한다. 규정이 엄한 데는 다 까닭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휑한 건물을 방치해서 좋을 것은 없다. 유연하고 현명한 대처를 기대한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