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서울국제도서전 입장을 기다리는 방문객들의 줄이 행사장 입구를 넘어 동문과 남문 앞까지 이어졌다. /사진=박수빈 기자.
24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서울국제도서전 입장을 기다리는 방문객들의 줄이 행사장 입구를 넘어 동문과 남문 앞까지 이어졌다. /사진=박수빈 기자.
24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서울국제도서전 입장을 기다리는 방문객들의 줄이 행사장 입구를 넘어 동문과 남문 앞까지 이어졌다. 코엑스 로비 절반이 사람들로 가득 찼을 정도다. 대기줄 마지막 지점에서 관람객을 안내한 직원은 "지금 들어가려면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개막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서울국제도서전이 텍스트힙을 넘어 '텍스트팬덤'의 현장이 되고 있다. 오픈런, 피켓팅, 얼리버드 티켓 완판 등 아이돌 콘서트나 인기 팝업스토어에서 볼 법한 모습이 도서전에서도 나타났다. 방문객들은 개장 직후부터 인기 굿즈·도서 품절을 우려해 출판사 부스로 뛰어갔다. 작가 사인회 신청도 1시간 만에 마감됐다.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작가와 출판사를 응원하고 소비하는 독자들이 늘면서, 독서가 취미를 넘어 '덕질'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캐리어 끌고 왔어요"…50만원 예산 세우고 오픈런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의 출판사 창비 부스에서 방문객들이 사인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의 출판사 창비 부스에서 방문객들이 사인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이러한 변화는 도서전 흥행 성적에서도 확인된다. 얼리버드 티켓 판매 첫날에는 접속자가 몰리며 한때 3만명에 달하는 온라인 대기열이 형성됐다. 얼리버드 티켓은 물론 도서전 기간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는 6만6000원짜리 '두두리 패키지'도 모두 매진됐다.

열기는 현장에서도 이어졌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책과 굿즈를 담기 위한 캐리어를 끌고 온 방문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직장인 박민지 씨(31)가 굿즈와 도서를 담아가기 위해 캐리어를 들고 왔다. 박씨가 도서전에서만 판매하는 한정판 표지 책을 구매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직장인 박민지 씨(31)가 굿즈와 도서를 담아가기 위해 캐리어를 들고 왔다. 박씨가 도서전에서만 판매하는 한정판 표지 책을 구매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직장인 박민지 씨(31) 또한 이날 구매한 책·굿즈를 담아가기 위해 종아리까지 오는 캐리어를 들고 왔다. 박씨는 "들어가자마자 민음사 부스로 뛰어갔다"며 "도서전에서만 판매하는 고전소설 표지 시리즈를 사려고 했는데 이미 6종 가운데 4종이 다 팔렸더라. 지금 구한 책 2개도 손 뻗어서 겨우 샀다"고 말했다. 이어 박씨는 "오늘 예산은 50만원까지 생각했는데 이미 매진된 책이랑 굿즈들이 있어서 20만~30만원만 쓸 것 같다"고 부연했다.

박씨의 우려는 과장이 아니었다. 개막 1시간 만에 일부 출판사 부스에서는 인기 굿즈가 조기 품절됐다. 출판사 사계절의 '쌈 책갈피 5종 세트', 클리커 키링 2종 등은 1시간 만에 동났다. 현장 관계자는 "굿즈가 내일 들어온다. 지금은 구매 불가능하고 내일 또 부스를 와야 한다"고 말했다. 출판사 창비의 키캡 키링 3종, 마그넷 또한 동났다.

◇ "읽고 싶은 책 고르다 보니…출판사 팬 됐어요"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의 창비 부스에서 굿즈 일부가 매진됐다. /사진=박수빈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의 창비 부스에서 굿즈 일부가 매진됐다. /사진=박수빈
방문객들이 도서전을 찾는 이유는 '희소성'이 컸다. 도서전에서 선판매하는 신간, 굿즈, 사인회 등이 도서전을 단순 박람회가 아닌 도서 페스티벌로 끌어 올렸다. 수원에서 오전 7시30분부터 출발해서 왔다는 이모씨(20·여성)은 출판사 니케북스의 책을 구매하기 위해 도서전 오픈런을 했다. 이씨는 "온라인에서도 책을 살 수 있지만, 도서전에서 제일 빨리 궁금한 책을 살 수 있어서 왔다"며 "읽고 싶은 책을 고르다 보면 거의 니케북스라 자연스럽게 여기 출판사의 팬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독서 취향이 특정 작가를 넘어 출판사 브랜드로까지 확장하면서 '출판사 팬덤'이 형성된 것이다.

팬덤 층 외에도 도서전 자체를 즐기기 위해 온 방문객들도 있었다. 진아현 씨(28)는 "유튜브에서 민음사 채널을 관심 있게 보다가, 작년에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하고, 도서전 브이로그도 보면서 궁금해서 왔다"며 "책을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할 수 있는 게 도서전의 가장 큰 장점 같다. 평소 읽던 책 말고도, 현장에서만 판매하는 책, 독립서점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책을 다 볼 수 있어서 다양하고 얇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딱"라고 말했다.

도서전이 책 판매 공간을 넘어 하나의 문화 행사로 자리 잡으면서 관련 콘텐츠 소비도 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에는 '도서전 추천 부스', '반드시 사야 할 굿즈', '도서전 브이로그' 등 콘텐츠가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24일 기준 인스타그램 '도서전' 해시태그 게시물은 1만2000건을 넘었다.

◇ 출판사만의 행사 옛말…오뚜기·일룸까지 도서전 참전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의 문학동네 부스에 관람객들이 모여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의 문학동네 부스에 관람객들이 모여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출판업계도 도서전 분위기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6년간 도서전에 참여했다는 출판사 꿈공장플러스 관계자는 "최근에는 책보다 굿즈를 목적으로 오는 방문객들이 많아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내부에서도 나온다"며 "굿즈를 계기로 출판사와 책에 관심을 갖는 독자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국제도서전은 2023년부터 매년 약 15만명의 관람객이 찾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코엑스에서 열린 2022년 방문객 수는 13만명이었으며 이후 매년 15만명 안팎을 기록 중이다.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오뚜기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부스를 열었다. /사진=박수빈 기자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오뚜기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부스를 열었다. /사진=박수빈 기자
도서전을 찾는 소비자층이 확대되면서 출판 업계뿐만 아니라 일룸, 오뚜기 등 기업도 도서전에 참여했다. 2030은 물론, 다양한 소비자가 도서전에 유입되면서 서울국제도서전이 기업들의 소비자 접점을 늘리는 플랫폼이 된 것이다. 일룸은 올해 최초로, 오뚜기는 지난해부터 올해 2년 연속으로 부스를 열었다.

오뚜기 관계자는 "도서전 자체가 많은 주목을 받는 행사고, 규모도 크다 보니 새로운 소비자를 유입할 수 있는 곳으로 판단했다"며 "마트에서는 주변에 여러 식품 상품이 있지만, 도서전에서는 유일하게 남을 수 있다. 리빙페어보다 도서전의 2030 비율이 많은 것도 특징"이라고 말했다.
팬덤의 '설렘'은 단순 '덕질' 소비를 넘어서 실질적인 경제 지표를 움직이는 '덕질 경제'로 자리잡았습니다. K-컬처를 매개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총망라해 대중의 열광이 어떻게 '설레는 소비'로 치환되는지 그 이면의 수익 구조와 비즈니스 모델을 날카롭게 포착하고자 합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