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뱃속 아이
19세기 말 아시아·아프리카 식민지에서 근무한 영국인 관리의 부인들은 아이를 낳을 때가 되면 줄줄이 영국으로 돌아갔다. 만삭의 여인들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식민지에서 태어난 아이는 영국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상층 귀족 가문 출신 러디어드 키플링이 제국주의 선전에 앞장선 배경에는 인도 봄베이(현 뭄바이) 출생이라는 콤플렉스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뱃속 아이’는 모호한 존재다. 태아에 관한 정보는 극도로 제한된다. 초음파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는 낳아봐야 알았다. 인간 생명의 시작점을 두고 법학에서 ‘수정설’과 ‘착상설’ ‘태동설’ ‘분만설’이 대립한 것도 태중(胎中)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부족한 탓이 컸다.

임신·출산에 관해서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기도 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임산부에겐 수많은 금기가 있다. 임신 사실을 거론하는 것조차 꺼리기도 했다. 독일에선 임신을 ‘심장 아래로 가져오다(Unter dem Herzen tragen)’라고 돌려 말했다. 일본어에선 임신 소식을 간접적으로 전하는 ‘오메데타(おめでた)’라는 단어가 따로 있다.

이처럼 어머니 뱃속은 불분명한 것투성이지만 태어날 아이의 국적만은 의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이 명확하던 신생아 국적에 혼란을 일으켰다. ‘국왕을 향한 신민의 충성’이란 믿음이 흔들리면서 새로운 기준이 요구됐다. 1860년 프랑스 법학자 샤를 드몰롬은 국적 기준으로 속지주의(jus soli)와 혈통주의(jus sanguinis)를 제시했다.

미국 정부가 임신한 외국인 여성의 입국을 차단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미국에서 태어난 신생아에게 미국 국적을 부여하는 ‘출생시민권’을 제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위헌이라고 결정한 데 따른 조치다. 인권 침해 논란에도 개의치 않고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미국 땅에서 아기를 낳기 위해 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더는 개방된 ‘이민국가’가 아니라는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