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적정임금
산업혁명 이후 가족임금이 등장했다. 남성 가장 한 명의 임금으로 가족 전체를 부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노동 착취에 맞섰다는 점에서 진전이지만 남성은 생계 부양을, 여성은 가정 돌봄을 맡는다는 가부장적 질서를 깔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가가 개입하면서 나온 단어가 최저임금이다. 뉴질랜드가 1894년 세계 최초로 도입했고 호주와 영국 미국이 뒤따랐다. 한국은 1988년 합류했다. 법이 정한 금액 밑으로는 고용하지 못하도록 해 근로자의 최저 생활을 보장하는 게 목적이다.
그러나 “최저임금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반발과 함께 시민사회가 새로운 이름을 만들었다. 2001년 영국에서 시작한 생활임금 캠페인이다.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역 물가와 생계비를 따져 계산한 임금을 자발적으로 주자는 사회운동이다. 스웨덴은 한발 더 나아가 연대임금을 들고나왔다. 같은 노동에는 같은 임금을 지급하자는 실험이다. 기업 수익성과 무관하게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선언했다. 생산성이 낮은 기업은 임금 부담을 견디지 못해 퇴출당하는 폐해가 컸다.
최근 우리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겠다며 적정임금을 들고나왔다. 공공부문 기간제 노동자에게 고용 불안정성을 보상하기 위한 공정수당을 더해 최저임금의 118%를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자 공무원노조와 공무직노조가 움직였다. 공무원 보수 7.1% 인상 요구에는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과 함께 민간과의 보수 격차 해소분(3.2%)까지 담겼다. 공무직노조도 적정임금 보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고용 불안을 수당으로 보상하는 정부의 선의가 임금 인상 도미노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공공부문의 고용주는 세금을 내는 국민이다. 이름이 그럴듯한 적정임금 청구서가 결국 국민의 지갑을 향하고 있다.
이심기 수석논설위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