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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심기
    이심기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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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실에서 수석 논설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사설과 칼럼을 통해 정치·경제·국제 이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과 판단의 기준을 제공하겠습니다.

  • [천자칼럼] 멤플레이션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자타가 공인하는 ‘공급망의 화신(化身)’이다. 천재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이라는 세상에 없던 제품을 내놨다면, 쿡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해 애플을 정보기술(IT) 제국으로 키웠다.재고를 ‘악(惡)’으로 규정하고 공급사에 단 1센트의 원가까지 쥐어짜던 그가 최근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한 인터뷰에서 최근 6개월 가격 변동에 대해 “이것은 100년 만에 한 번 있을 법한 대홍수”라고 했다. IBM과 컴팩, 애플까지 40년 넘게 업계에 몸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쿡을 당황하게 한 정체는 메모리 반도체 품귀가 촉발한 ‘멤플레이션(memflation)’이다. 메모리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D램과 낸드 가격 급등이 스마트폰과 PC, 노트북 등 IT 기기 가격을 끌어올리는 현상을 뜻한다.그동안 애플은 IT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했다. 삼성전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AI 광풍은 이 ‘갑을 관계’마저 흔들었다. 빅테크 공룡이 메모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자 가격이 1년 새 네 배로 폭등한 것이다. 선급금을 걸고 메모리를 기다리는 빅테크에 밀려 애플마저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서야 하는 처지가 됐다.그 결과 차기 아이폰 프로 가격이 270달러 이상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에서도 200만원대 아이폰 시대가 현실이 될 수 있다. 노트북, PC도 예외가 아니다.그간 반도체업계의 상식은 ‘메모리는 싸진다’는 것이었다. 과거 삼성전자가 제시한 ‘황의 법칙’에 따라 메모리 집적도는 매년 두 배씩 커졌다. 소비자에게 이는 곧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저장공

    2026.06.19 17:36
  • [천자칼럼] 포워드 가이던스

    “내 말이 명확하게 들렸다면 당신이 오해한 것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취임 초기에 남긴 유명한 말이다. 그는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말했고, 시장은 발언을 해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모호함이 권위이던 시절이다.그 이전 중앙은행의 덕목은 침묵이었다. 금리는 숫자로만 말했고, 이유는 달지 않았다. 1920년부터 24년간 영국 중앙은행을 이끈 몬터규 노먼 총재의 격언은 “절대 설명하지 말고, 절대 변명하지 말라”였다.중앙은행의 비밀주의를 깬 것은 위기였다.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붕괴 직후 Fed는 “상당 기간 완화 기조를 유지할 수 있다”는 문구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서에 넣었다. 통화정책 방향을 예고해 시장과 소통하는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선제 안내)의 시작이다.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를 통화정책 수단으로 격상시켰다. 주인공은 ‘헬리콥터 벤’으로 불린 벤 버냉키 Fed 의장이었다. 그는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낮춰 더 내릴 여지가 사라지자 초저금리를 “장기간” 지속하겠다며 미래의 금리를 약속했다. 이후에는 실업률 등 구체적인 경제 지표까지 조건으로 걸며 시장을 안심시켰다. 향후 금리 이동 경로를 보여주는 점도표도 공개했다.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준 사례도 있다. 2021년 제롬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는 뒤늦게 ‘자이언트스텝’으로 불리는 큰 폭의 금리 인상을 단행해 신뢰도에 치명상을 입었다.케빈 워시 신임 Fed 의장은 포워드 가이던스에 비판적인 소신을 첫 번째 FOMC 회의에서 행동으로 보여줬다. 성명서 분량을 기존의 절반에도

    2026.06.18 17:36
  • 스위스의 '인구 1000만' 상한 투표가 한국에 던진 질문 [여기는 논설실]

    지난 14일 스위스에서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국민투표가 열렸다. 우파 성향의 제1당인 스위스국민당(SVP)이 주도해 발의한 ‘인구 1000만 명 상한제’를 두고 찬반 투표가 실시됐다. 2050년 이전까지 스위스 영주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지 않도록 국가가 강제로 빗장을 걸어 잠그자는 것이 골자였다. 법안의 강제력은 무시무시했다. 인구가 950만 명에 도달하면 정부는 난민 수용, 가족 초청 이민, 거주 허가증 발급을 즉각 제한해야 한다. 만약 2년 연속으로 이를 초과하거나 2050년 전에 1000만 명 선을 돌파하면 스위스는 유럽연합(EU)과 맺은 인적 자유 이동 협정을 강제 폐기하도록 했다. EU 단일시장 접근권의 박탈이라는 위험을 내포했다는 점에서 외신들은 이를 ‘스위스판 브렉시트’라 부르며 파장을 예의주시했다. SVP의 전략은 노골적이었다. 발의안의 이름을 ‘지속가능 계획’으로 포장했다.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한 마케팅이었다. 여기에 ‘이민자 10명 중 1명만이 숙련노동자’, ‘망명 신청자는 스위스인보다 강간범죄를 11배 더 많이 저지른다’는 공포스러운 광고판까지 등장했다.스위스 정부는 경제 위기론을 앞세워 맞불을 놨다. 2002년 EU와 상호 거주·취업 제한을 완화한 이후 스위스 인구는 23% 증가했고 같은 기간 GDP도 24% 늘었다. 법안이 가결되면 EU와 맺은 인력 자유이동 협정을 종료해야 한다. 스위스 정부와 재계는 이번 발의안을 “자해 행위”라고 비판했다. 결과는 반대 54.8%, 찬성 45.2%로 부결됐다. 투표율은 58.9%를 기록해 최근 스위스 국민투표 평균 투표율인 48%를 크게 웃돌았다.인구와 이민 문제가 스위스 사회를 얼마나 뜨겁게 달궜

    2026.06.15 18:03
  • 스페이스X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인가 [여기는 논설실]

    스페이스X의 주인공은 일론 머스크일까. 어쩌면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을지 모른다. 실패 가능성을 알면서도 미래에 돈을 거는 모험자본이다. 스페이스X 기업공개(IPO)를 둘러싼 수치부터 뜯어보자. ‘꿈에 투자한다’는 나스닥 기업 기준으로도 상식의 범위를 넘어선다. 기업가치는 약 1조7500억~1조7700억달러. 원화로는 2400조원 안팎이다. 최근 시가총액 2000조원을 돌파한 삼성전자보다 20%가량 큰 규모다. 삼성전자가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의 4분의 1 안팎을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수치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실적만 놓고 보면 이 가격표를 설명하기 어렵다. 스페이스X의 지난해 매출은 186억7000만달러(약 25조원), 순손실은 49억4000만달러였다. 이익이 나지 않아 주가수익비율(PER)은 계산조차 할 수 없다. 대신 매출 대비 기업가치(PSR)를 계산하면 약 94배에 달한다. 이 숫자가 얼마나 높은지 비교해보자. 엔비디아의 2026회계연도 매출은 2159억달러다. 시가총액은 5조달러 안팎이다. AI 열풍의 최대 수혜주로 꼽히는 엔비디아조차 PSR이 약 23배다. 아마존은 연매출이 7000억달러를 넘어섰지만 PSR이 4~5배 수준이다. 반면 스페이스X는 현재 매출의 94배 가격을 인정받았다. 단순히 ‘고평가’라는 단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렇다면 시장은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만약 스페이스X가 시장 지배력을 갖춘 플랫폼 기업 수준인 PSR 10배를 적용받는다고 가정해보자. 현재 가치인 1조7500억달러를 정당화하려면 연매출이 1750억달러가 돼야 한다. 지금보다 9배 이상 증가해야 한다. 순이익 기준으로 계산하면 더 극적이다. 메타의 PER 수치 30배를 적용하면 1조7500

    2026.06.12 08:38
  • [천자칼럼] 내각 순위

    정부조직법 제29조에 규정된 행정 각부의 순서를 보면 중소벤처기업부는 열아홉 번째, 맨 끝이다. 총리 직무대행의 최종 기준으로 쓰이는 법정 순서다. 내각 서열표상 ‘꼴찌 장관’이 이번에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한성숙 장관의 발탁이 여성총리 지명이라는 파격 이상으로 읽히는 이유다.이재명 대통령은 한 후보자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고민은 적지 않았는데 결론은 일만 할 사람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정치적 요소는 당이 잘 해결해주겠지요. 내각은 있는 힘 다해서 전력 질주하려고 합니다.” 화려하지 않고, 별다른 수식어도 없다. 총리에게 원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일이라는 간결한 의미만 담겨 있을 뿐이다.한 후보자는 컴퓨터 전문지 ‘월간 PC라인’ 기자로 출발해 인터넷기업 엠파스 창립 멤버로 참여했고, 약 5년간 네이버 대표를 지냈다. 관료도, 정치인도 아닌 기업 현장형 인물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한 사람의 아래, 만 사람의 위)’으로 불리는 총리에 대한 고정관념과도 거리가 멀다.한 후보자도 자신의 역할을 잘 아는 듯하다.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한 첫 출근길에 기자들이 각오를 묻자 그는 K팝 그룹 코르티스의 노래 ‘레드레드’ 가사를 읊었다. “도가니 사리기 레드 레드, 신호등 바뀌었어 그린 그린, 울타리 넘어가 그린 그린.” 노래 속 ‘레드(Red)’를 경고와 멈춤의 신호로 해석했다. 몸을 사리지 않고 과감히 울타리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다.그가 인용한 또 다른 문장은 김애란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의 한 구절이다. “살면서 어떤 긴장은 이겨내야만 하고, 어떤 연

    2026.06.09 17:33
  • [여기는 논설실] 강남의 확장…아파트가 다시 쓴 서울 표심 지도

    집값·세금·대출이 가른 서울시장 선거강남3구 넘어 한강벨트까지…부동산 표심이 승부 갈라서울 표심의 새 균열선은 ‘준(準)강남’ 후보지용산·양천·영등포·동작·광진까지 오세훈 우세재건축·보유세·대출 규제에 민감한 표심 확인위에 있는 카토그램은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울 25개 자치구의 인구 수를 기준으로 부동산 표심을 재구성한 지도다. 카토그램은 이번 선거가 진보와 보수의 진영 대결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울 표심의 균열선은 이념보다 자산과 주거에 가까웠다.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서울 25개 구 중 더 많은 지역에서 우세했지만, 오 후보는 강남3구와 용산, 그리고 한강벨트 주요 지역에서 앞서며 승리를 거뒀다. 카토그램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역은 강남3구다. 강남구에서 오 후보 득표율은 65.98%, 서초구는 64.68%에 달했다. 송파구도 55.31%로 오 후보가 안정적인 우위를 보였다. 이들 지역은 선거인 수 비중도 높아 서울 전체 판세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강북권 다수 지역에서 정 후보가 앞섰지만, 강남 서초 송파에서 벌어진 큰 격차가 전체 승부를 뒤집는 데 핵심 동력이 됐다. 주목할 대목은 보수 우세가 강남3구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용산구에서 오 후보는 57.09%를 얻었다. 영등포구 50.50%, 강동구 50.65%도 오 후보가 앞섰다. 과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중구 49.60%, 동작구 49.56%, 양천구 49.22%, 광진구 48.68%에서도 오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카토그램에서 이들 지역은 단순한 접전지가 아니라 ‘오세훈 우세 지역’으로 표시된다. 서울 한강변을 따라 붉은색

    2026.06.06 06:00
  • [천자칼럼] 현충일의 1분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1950년 8월 11일 포항지구 전투에 투입된 71명의 학도병 중 한 명인 이우근(당시 서울 동성중 3학년 재학)이 전투 직전 어머니에게 쓴 편지의 일부다. 이 편지는 부쳐지지 못한 채, 전투 뒤 전사한 그의 주머니에서 피로 얼룩진 메모지 형태로 발견됐다.국립서울현충원 현충문 왼쪽에는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이 있다. 이 탑 뒤 봉안함에는 신원을 끝내 확인하지 못한 학도의용군 48위가 안장돼 있다. 대부분 1950년 여름 낙동강 전선에서 전사한 중·고등학생이다.현충일은 6·25전쟁 전사자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와 의병, 순직한 순경과 소방대원 등 국가를 위해 헌신한 모든 이의 넋을 기리는 날이다. 날짜가 6월 6일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1956년 현충일이 제정된 그해 6월 6일은 절기상 망종(芒種)이었다. 예부터 망종에 제사를 지내던 풍습과도 맞닿아 있다. 그 해 수확할 곡식의 씨앗을 뿌리는 시기에 추모의 씨앗도 함께 심은 것이다.올해로 71회를 맞은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한·미 양국은 국군 유해 10구와 미군 추정 유해 3구를 상호 봉환했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이 행사에는 이재명 대통령도 참석했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넘었지만, 귀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쟁은 마지막 전사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끝난다.오늘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되는 현충일 추념식에는 가평 육군 헬기 추락사고 순직자, 해경 순직자, 6·25 전사자 발굴 유해 유가족 등이 초청됐다. 오전 10시 정각이 되면 전국에 추모 사이렌과 함께 ‘전국 동시 추모 묵념’이 진행된다. 국민 전체가 동시에 멈추는 1분이다.

    2026.06.05 17:36
  • 2030 표심이 진보에 던진 불편한 질문 [여기는 논설실]

    이번 지방선거 출구조사에서 가장 눈에 띈 숫자는 서울의 2030 남성 표심이었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기준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 남성의 75.3%, 30대 남성의 61.8%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4050 남성은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후보 쪽으로 기울었다. 같은 남성 집단 안에서도 세대에 따라 전혀 다른 선택을 한 셈이다.출구조사는 정원오 우세를 예측했지만 개표 결과는 뒤집혔다. 투표 결과의 최종 분석이 나와야겠지만 2030대 남성 표심이 역전의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이대남의 보수화’로 단정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2030대 남성 표심에는 젠더 갈등, 병역과 공정 담론, 부동산 진입 장벽, 정권 견제 심리, 후보 경쟁력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청년층 표심을 특정 세대의 이념 변화로만 읽으면 핵심을 놓칠 수 있다. 출구조사가 정치권에 던진 질문은 ‘왜 2030 남성은 진보 진영의 언어에 냉담한가’가 될 것이다. 노동자 보호, 약자 보호, 공공성 강화라는 구호가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는가. 해답은 고용과 자산 형성의 경로가 막혀 있다는 불안과 좌절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청년 고용 지표는 이미 경고음을 내고 있다. 올 4월 기준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3.7%로 전년 동월보다 1.6%포인트 떨어졌다. 24개월 연속 하락한 것으로, 2021년 4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청년층 취업자는 342만4000명으로 1년 전보다 19만4000명 줄었다. 공식 실업률만 보면 7.1%로 전년보다 소폭 낮아졌지만, 고용률과 취업자 감소를 함께 보면 청년층의 노동시장 이탈이 더 본질적인 문제다. ‘쉬었음’ 통계는 이를 적

    2026.06.04 17:54
  • [천자칼럼] 절사평균 물가

    올림픽에서 리듬체조와 피겨스케이팅 종목은 최상위, 최하위 판정자의 점수를 제외하고 나머지 판정단의 점수로 평균을 내 순위를 매긴다. 극단 값을 빼고 평균을 계산해야 오류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른바 절사(切捨·잘라서 없앰) 평균이다.1970년대 오일쇼크는 물가 변동을 정확히 측정해야 하는 중앙은행에 비슷한 숙제를 안겼다. 유가가 폭등할 때마다 물가가 치솟았지만 모든 제품 가격이 동시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물가’로 보완했지만, 이 역시 한계를 드러냈다. 문제는 특정 품목의 가격이 아니라 ‘극단적 가격 변동’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항공료 급등, 통신비 하락 등 일회성 요인으로 생긴 가격 변동 역시 물가지수를 왜곡할 수 있다.미국 클리블랜드연방은행이 1990년대 초 개발한 ‘중앙값 물가’도 상승률 중간 품목의 가격 변동만 반영한다는 점에서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에 댈러스연은은 가장 많이 오르고 떨어진 품목을 제외하는 ‘절사평균 물가지수’를 내놨다. 1977~2009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근원물가보다 인플레이션을 더 잘 예측한다는 게 근거다.최근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측정 방식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취임한 케빈 워시 중앙은행(Fed) 의장이 근원 개인소비지출(PCE)보다 댈러스연은의 절사평균 물가지수를 선호한다는 소신을 밝히면서다. 워시 의장은 “중요한 것은 지정학적 충격이 아니라 기조적 물가”라고 말했다. 4월 근원 PCE 상승률은 3.3%로 Fed 목표치(2%)를 훌쩍 넘겼지만 절사평균 물가는 2.3% 오르는 데 그쳤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기준금리 인상 경로가

    2026.06.03 18:36
  • [천자칼럼] '파산 위기' 유엔

    1945년 4월 2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역사적 회의가 열렸다. 세계 50개 연합국 대표가 모인, 당시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외교 행사였다. 각국 대표는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참상이 또다시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국제기구 설립을 결의했다. 공식 명칭은 ‘국제기구에 관한 연합국 회의’로 정했다. 회의 마지막 날 111개 조항의 헌장에 서명했고, 그해 10월 24일 유엔이 출범했다.당시 세계 주요 도시가 유엔 본부를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벌였으나 미국 뉴욕이 낙점됐다. 미국 석유 재벌 록펠러 가문이 뉴욕 이스트강변 부지를 850만달러에 매입해 기증했다.올해 설립 81주년을 맞은 유엔이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고 한다. 낡은 본부 건물의 개보수 공사는 무기한 보류됐다. 아프리카 평화유지군도 조기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 사무국 인력 3000명을 감축했지만 오는 8월이면 현금이 바닥날 처지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재정 붕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탄식했다.유엔 위기의 표면적 원인은 미국과 중국의 분담금 미납에 있다. 미국은 유엔 예산의 22%를 책임져야 하지만 체납액만 42억8000만달러(약 6조400억원)에 이른다. 분담률 2위(20%)인 중국도 4억5500만달러를 내지 않고 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엔 개혁을 명분으로 걸고 있지만 속내는 “말을 듣지 않으면 돈을 끊겠다”는 것이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유엔의 방만한 운영과 사업 중복은 오래전부터 개혁의 대상이었다. 분쟁을 막지 못하고, 독재국가의 인권 유린에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중국의 속내는 다르다. 2021년부터 매년 11월과 12월에 분담금을 내고 있다. 유엔을 1년

    2026.06.01 17:38
  • '갈 길 명확하다'는 신현송의 경고…자산 포트폴리오 뼈대 바꿔라 [여기는 논설실]

    한국은행 총재가 이토록 명확하게 힌트를 준 적은 드물다. 신현송 총재는 28일 첫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데뷔 무대에서 간결하면서도 분명한 시장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동결을 선언하면서도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환율 개입 의지를 밝히면서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 개혁까지 꺼냈다. 시장 참가자에게 금리 인상, 환율 방어, 원화 체제 개편이라는 세 가지 청구서를 내민 셈이다. 투자자를 향해서도 경고성 신호를 보냈다. 시장 착시에서 벗어나 긴축의 청구서를 견딜 준비를 할 것, 포트폴리오는 반도체 실적주로 압축하고, 채권은 단기로 쥘 것, 달러 추격은 멈추고, 빚은 줄일 것 등 네 가지로 요약된다.◆형식은 동결, 내용은 인상기준금리를 연 2.50%로 묶었다. 8회 연속 동결이다. 그러나 신 총재가 쓴 언어는 ‘동결’이 아니다. 동결했지만 인상. 이것이 오늘 금통위의 본질이다. 인상을 요구한 소수의견 2명은 이변이 아니다. 신 총재는 “같은 틀, 같은 인식하에서의 전략적 차이”라고 정의했다. 의견 차이가 아니다. 인상 기조를 정한 뒤 속도 조절을 한 것이다. 연내 두 차례 인상(7월·10월 또는 11월), 기준금리 연 3.0% 도달이 기본 경로다. 이날 간담회에서 가장 주목할 신 총재의 발언은 세 개다. “갈 길이 명확하다.” 한은 총재가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직접적인 언어를 쓴 것은 이례적이다. 둘째, “환율 쏠림은 용인하지 않겠다. 수단도 있고 의지도 있다.” 구두 개입을 넘어선 정책 의지의 공개 선언이다. 셋째, “NDF 시장이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 역외선물환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취임 첫 회견에서 꺼낸 것은 원화 국제화라는 중장기 정책 방향

    2026.05.29 06:00
  • K반도체의 화려한 봄은 얼마나 오래 갈까 [여기는 논설실]

    27일 한국 증시는 바야흐로 K반도체의 ‘무적 시대’가 열린 것처럼 반응했다. 코스피 지수는 장 시작과 함께 단숨에 8400선을 돌파하며 폭발적인 랠리를 연출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질주가 시장을 견인했다. SK하이닉스 주가는 10% 넘게 오르며 시가총액이 1600조원을 넘어섰다. 삼성전자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시가총액 1조달러 클럽에 진입했다. 지수보다 더 뜨거운 건 반도체에 대한 시장의 확신이다. 이날 국내에 처음 상장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에 2조원이 넘는 거래대금이 몰렸다. “지금 안 타면 뒤처진다”는 조급증까지 가세했다. 하지만 과열된 증시가 K반도체의 위기를 가리는 착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경고도 동시에 나왔다. ◆첫번째 경고- 삼성전자가 쪼개지고 있다이날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잠정합의안이 타결됐다. 조합원 95.5%가 투표에 참여해 73.7%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지난 2025년 12월 임금교섭 첫 상견례 이후 6개월간 이어진 분쟁이 마무리됐다. 정부의 파업 시 100조원 손실 우려, 이재용 회장의 사과, 이재명 대통령의 경고까지 동원된 끝에 봉합됐다. 투표 결과를 뜯어보면 삼성 반도체 경쟁력의 요체인 ‘원 삼성(One Samsung)’은 치명적인 내상을 입었다. 반도체(DS) 부문이 속한 초기업 노조의 찬성률은 80.6%, 2대 노조 전삼노의 찬성률은 21.1%에 불과했다. 성과급 ‘100배 격차’가 불러온 결과다. DS 사업부는 올해 평균 6억원 수준의 성과급을 받는 데 비해 휴대폰과 가전이 속한 DX 부문 직원들의 보상 규모는 600만원 수준에 그친다. 삼성전자가 숱한 위기를 단일한 조직 문화로 돌파해 ‘

    2026.05.27 16:43
  • [천자칼럼] 교황의 'AI 회칙'

    1891년 교황 레오 13세는 ‘새로운 사태’를 뜻하는 회칙(encyclical)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을 공표했다. 산업혁명에 가려진 노동자의 참상을 목도한 교황은 맹목적인 이윤 추구를 비판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역설했다. 이 회칙은 현대사회 교리의 출발점이 됐다.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에게 전하는 권위 있는 사목 교서다.레룸 노바룸 이후 교황이 발표하는 회칙은 종교적 가르침을 넘어 노동, 전쟁, 개발, 세계화 등 현대 사회의 난제를 해석하는 지침서 역할을 했다.1963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제3차 세계대전의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요한 23세는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를 통해 핵무기 경쟁 중단과 군축을 호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베네딕토 16세가 회칙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을 통해 윤리를 잃은 세계화에 대한 반성을 촉구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는 기후 위기를 인류의 공동 책임으로 규정하며 각성을 촉구했다.이번에 레오 14세가 내놓은 ‘마니피카 휴마니타스(Magnifica Humanitas)’는 ‘인간의 위대함’이라는 뜻을 담은 AI 시대의 회칙이다. 교황은 AI가 초래하는 위험성을 지적하며 “무장을 해제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생성된 허위 정보가 인간을 지배하고, 소수의 강력한 민간기업이 AI를 통해 전쟁을 일상화할 능력을 갖추게 됐다고 경고했다.교황은 디지털 경제가 보이지 않는 노동력 착취에 기반하고 있다며 이를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로 정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AI를 성경 속 바벨탑에 비유했다. 이날 회칙 발표장에 크리스토퍼

    2026.05.26 17:35
  • [이심기 칼럼] 삼성 성과급 합의, 더 비싼 청구서가 온다

    “완전히 초짜들의 협상이었다.” 삼성전자 노사의 반도체 성과급 합의 과정을 지켜본 정부 고위 인사의 관전평이다. 파업 시한 90분을 남기고 극적 합의에 성공했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협상 전말을 복기해보자. 애초부터 파업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반도체 생산이 파업으로 중단될 경우 “공멸한다”는 사실을 노조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노사 모두 벼랑 끝 전술로 맞섰지만 결렬에 따른 피해는 뒷감당이 안 된다. 강한 척했지만 서로 쫄고 있었다.” 내부 관계자의 증언이다.그렇다고 노사 자율로 합의될 상황도 아니었다. 끝내기에 나선 건 정부였다. 정부는 삼성전자 반도체 출근 인력이 공정 유지에 필요한 70% 미만으로 떨어지면 긴급조정권을 발동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고 한다.가이드라인도 정부에서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직접 노조를 겨냥했다.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 세금도 떼기 전에 영업이익을 나눠 갖는 건 투자자도 못한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도 큰 역할을 했다. 수원지법 민사31부는 삼성전자의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더라도 공장 유지를 위한 필수 인력은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반 시 하루 최대 3억원의 배상 책임도 지웠다.이렇게 청와대와 사법부까지 나서면서 노조의 위험한 게임은 일단락됐다. 합의 결과는 아는 대로다. 반도체(DS) 부문에 사업 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하는 특별경영성과급이 신설됐다. 메모리사업부 직원은 올해만 6억원 수준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만에 하나 단 하루라도 반도체 라인이 멈춰섰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됐을까. 삼성전자 노조가 예고한 파업 기간

    2026.05.25 17:28
  • [천자칼럼] 머스크의 85%

    창업자의 비전을 보호하기 위한 차등의결권 주식의 원조 격은 미국 포드자동차다. 포드는 1956년 기업공개(IPO)를 하면서 두 종류의 주식을 발행했다. 일반 주주에게 배정된 보통주와 포드 가문에 배정된 특별주(클래스B)다. 포드 가문은 이 클래스B 주식을 통해 전체 지분의 2% 남짓만 소유하고도 현재까지 40%의 막강한 의결권을 행사하며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혁신 창업자에게 차등의결권으로 경영권 방패를 부여한 전통은 실리콘밸리 빅테크로 이어졌다. 2004년 상장한 구글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월가의 단기 실적 압박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주당 10표짜리 클래스B 주식을 보유해 의결권 과반을 지켰다. 메타(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도 마찬가지다. 그는 2012년 상장 당시 주당 10표의 의결권을 갖는 클래스B 주식을 통해 지분 13.5%만 보유하고도 의결권 61%를 통제하며 소셜미디어 제국을 호령하고 있다.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투자설명서를 공개했다. 단연 눈에 띄는 수치는 머스크의 의결권 지분 85.1%다. 비결은 주식 이중 구조에 있다. 일반 투자자에게 파는 클래스A는 1주 1표, 머스크가 보유한 클래스B는 1주 10표다. 머스크는 클래스B 주식 약 56억 주(93.6%)를 갖고 있다.스페이스X는 머스크가 2002년 자기 돈 1억달러를 털어 세웠다. 초창기 팰컨1 로켓은 세 번 연속 폭발했다. 그에게는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로켓을 발사할 수 있는 돈만 남았다. 네 번째 도전이 실패했다면 회사는 그날로 파산했을 것이다. 머스크는 재사용 로켓을 개발해 발사 비용을 낮췄고, 현재 약 1만 개의 위성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시장이 머

    2026.05.21 17:30
  • 新국부펀드 전성 시대…글로벌 무역전쟁의 최후 병기로 부상

    새로운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 시대가 열리고 있다. 과거의 국부펀드가 외환보유액 활용이 주목적이었다면 지금은 국가 전략 산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 펀드(Strategic Investment Fund)로 탈바꿈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글로벌 통상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기술 패권 확보가 국가의 핵심 이익이 되면서 정부가 국부펀드를 통해 기업에 직접 투자하고, 지분까지 보유하는 ‘플레이어’로 나서는 것이다.국부펀드의 ‘원조’ 격인 중동 국가와 중국에 이어 최근에는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도 가세하고 있다. 한때 산업정책은 국가 개입과 다름없다고 비판하던 미국조차 국부펀드 설립을 준비 중이다. 우리 정부도 20조원 규모의 ‘한국형 국부펀드’를 출범하기 위해 다음달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일각에서 “국가자본주의 시대의 부활”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이 같은 추세는 가속화할 전망이다. 전 세계 국부펀드 운용자산 규모는 2005년 2조5000억달러 수준에서 지난해 15조달러로 20년 새 여섯 배로 커졌다. 국가 개입 최소화와 시장 개방, 무역 자유화를 핵심 가치로 삼은 ‘워싱턴 컨센서스’의 퇴조와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이 맞물리면서 이런 양상은 두드러지고 있다. 국부펀드 ‘원조’ 중동의 변신국부펀드의 원조는 중동이다. 1953년 영국 런던에 투자사무소를 연 쿠웨이트를 시작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막대한 오일머니를 앞세운 중동 국가가 앞다퉈 국부펀드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석유 수출로 쌓인 달러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목적을 뒀지만, 지금

    2026.05.19 17:53
  • 코스피 7500과 세수 호황, 청와대는 무엇을 보고 있나 [여기는 논설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어떤 숫자를 본 것일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장처럼 들렸던 숫자가 현실이 됐다. 이제 시장에서는 코스피 1만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단순한 증시 과열로 치부하기엔 배경의 숫자가 심상치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분기 이익, 반도체 수출, 무역흑자, 국세수입, 성장률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통상적인 경기순환의 회복 국면이라기보다, 한국 경제의 일부 지표가 기존 눈금을 벗어나고 있는 장면에 가깝다. ◆청와대의 비공식 플레이… “하반기 수정 경제전망을 봐라”흥미로운 지점은 이 변화를 청와대가 먼저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8일(다음날 증시가 열리지 않는 금요일이다.!!!) 저녁 SNS에 ‘코스피 7500, 그리고 1만의 문턱 앞에서’라는 글에서 의미심장한 문제를 제기했다. 요약하면 반도체 호황이 기존 국내총생산(GDP) 통계와 세입 전망 체계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으며, 2027년까지 호황이 이어진다면 2026~2027년 세수는 역사적 규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올해 하반기 수정 경제전망이 첫 번째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전망치가 어느 수준까지 올라가느냐에 따라 내년 세입 추계와 예산 총량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공식 경제수장인 구윤철 경제부총리에 앞서 하반기 경제 전망이 대폭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예고편을 올린 것이다. 김 실장이 SNS에 올린 글이지만, 개인적 감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김 실장의 정책 영향력을 감안하면 정부 경제 운용이 이렇게 바뀔 것이라는 신호에 가깝다. 정부 내부에서 이미 세입과 성장률 전망의 재평가가 시작됐을 가능성이 있다.

    2026.05.10 08:22
  • 반도체 이익 공유론에 담긴 위험한 논리 [여기는 논설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초과이익을 사회와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하고 있다. 올해만 300조원으로 예상되는 삼성전자 영업이익(증권사 컨센서스 기준)은 정부와 지역사회, 협력업체가 지원한 결과라는 게 근거다. 삼성의 이익이 삼성의 전유물이 돼서는 안 되며, 사회와 상생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논리다. 목표 이익을 초과 달성하면 일부를 협력업체와 나누는 초과이익 공유제를 반도체 업종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에서부터 삼성의 이익에서 사회적 연대기금을 떼내 지역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쓰자는 급진적인 방안도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은 무엇보다 기업 이익의 처분을 누가 할 것인지에 대해 기존에 합의된 '선'을 넘는다. 국가적 지원을 받았으니 이익을 사회와 나눠야 한다는 논리부터 따져보자. 반도체 특별법, 세액공제, 도로와 전력, 용수 등 공공 인프라와 세제 혜택을 바탕으로 삼성이 성장했으니 과실을 나눠야 한다는 게 핵심 논거다. 협력업체와 이익을 배분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장 경제의 근간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상이다. 반도체산업이 공공 인프라와 정책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한 것과 기업의 초과이익을 사회 몫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반도체산업 지원은 특정 기업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의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정부 지원을 받았다고 해서 이익의 일부를 내놓아야 한다면 그 반대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2023년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에서만 15조원의 적자를 냈다. 당시 정부나 금융기관, 협력업체가 손실을 분담했는가. 기업이 낸 초과이익은

    2026.05.08 18:54
  • [이심기 칼럼] 착한 규제의 역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잠재성장률이 1%포인트씩 떨어진다. 심각하다.”지난달 청와대에서 규제합리화위원회 출범 후 첫 회의가 열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꺼낸 화두는 성장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전망한 올해 잠재성장률은 1.7%다. 내년에는 1.5%대로 내려간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이제 경기순환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역대 정권 출범 초기 때마다 규제 혁파가 핵심 국정과제로 오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규제는 시장 효율을 저해하고 성장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덩어리 규제, 전봇대 뽑기, 손톱 밑 가시, 규제 기요틴…. 정권마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모두 규제를 줄이겠다고 공언했다.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윤창렬 국무조정실장은 역대 정부의 규제 개혁이 용두사미로 끝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 출범 초기 강력한 의지를 갖고 시작했지만 혁신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현장의 체감도가 갈수록 떨어졌다.” 이 간극의 원인으로 이 대통령은 ‘공급자 시각’을 지적했다. “현재 규제는 현장의 필요보다 당국의 필요에 의한 측면이 많다.” 주휴수당이 대표적이다. 근무 시간이 주 15시간을 넘기는 순간 하루치 임금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320원이지만 주휴수당을 포함한 실질 시급은 1만2384원이다. 20%의 비용 절벽이 생긴다. 결과는 ‘일자리 쪼개기’다.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취업자는 지난해 174만 명, 전체 취업자의 6.1%를 넘었다. 정부가 보호하려던 노동자는 법의 보호 밖으로 밀려났다.기간제법의 역설은 규제 실패의 교과서다. 2년 고용 시 정규직 전환을 강제하자 시장은 ‘1년11개월 계약 종료’로 대응했

    2026.05.04 17:41
  • 삼성전자 300조 이익은 어떻게 흐르나 [여기는 논설실]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가 300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그것도 빠른 속도로 상향조정되고 있다. AI 발(發)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게 배경이다. 4월 30일 기준 23개 증권사 컨센서스 기준 삼성전자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는 310조9000억원(한경 에픽 집계)이다. 이쯤 되면 삼성전자의 이익은 삼성전자의 회계장부에 갇혀 있지 않는다. 투자자는 물론 정부, 지방자치단체, 협력업체에 연쇄적으로 흐른다. 증시는 물론 외환시장도 숫자를 향유한다.  ○법인세 80조 육박…근로소득세 전체보다 많아 1차 수혜자는 정부다. KB증권은 삼성전자가 올해 영업이익을 335조로 예상했다. 이 경우 법인세만 8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전 보고서에서 영업이익 327조 달성시 법인세 77조원을 전망했다. 물론 영업이익과 과세소득은 다르다. 세액공제와 해외 과세, 세무조정에 따라 실제 세액은 달라진다. 그러나 법인세 80조라는 숫자가 주는 충격은 작지 않다. 지난해 한국의 국세수입은 373조9000억원이었다. 근로소득세는 68조4000억원이었다. 삼성전자 한 회사의 법인세가 월급쟁이 전체 근로소득세를 넘어선다는 계산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

    2026.05.01 06:00
  • [천자칼럼] 전쟁도 '베팅 상품'

    1815년 6월 ‘워털루 전투’ 직후 런던 금융가에서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영국의 승전 소식을 먼저 알고 국채 거래를 통해 떼돈을 벌었다는 소식이 퍼졌다. 당시 영국군이 프랑스 나폴레옹에게 결정적 승리를 거뒀는데, 그 소식을 로스차일드가 남들보다 빨리 알았다는 것이다. 로스차일드가 ‘영국이 패했다’는 거짓 소문을 흘려 국채를 헐값에 사들였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는 근거가 약한 것으로 판명 났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이 영국 정부의 군자금 조달에 관여했고, 정보 우위로 막대한 이익을 거둔 것은 사실이다.이 일화가 200년 넘게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전쟁에서 정보는 무기보다 값비싼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2001년 9·11 테러 직전 아메리칸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풋옵션 거래가 수십 배 폭증한 사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증거가 없다고 결론지었지만 학계는 매우 이례적인 거래량이라며 내부 정보 거래의 방증으로 본다.중동 사태는 전쟁 앞에서 시장이 얼마나 예민한지 다시 보여줬다. 지난 17일 런던 선물시장에서는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통행 허용 방침을 발표하기 20분 전 유가 하락에 베팅하는 브렌트유 선물 매도 거래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거래 대금만 7억6000만달러(약 1조1200억원)에 달했다. 앞서 미국·이란 휴전 합의 직전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이란 공격 연기 발표 직전에도 대규모 유가 하락 베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당국이 조사에 들어갔다.군사 기밀을 개인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한 사례도 있다. 미국 연방검찰은 23일 현역 특수부대 상사 개넌 켄 반 다이크를 기소했다. 그는 니콜라스 마두로 전

    2026.04.27 07:00
  • 월급은 못 도망간다…유리지갑 더 두꺼워진 세금 설계 [여기는 논설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월급쟁이에게 ‘불편한’ 통계를 내놓았다. 지난해 OECD 회원국이 근로소득에 부과한 세금이 1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는 발표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OECD 38개 회원국의 자녀 없는 독신 근로자가 부담하는 노동세 부담, 이른바 ‘택스 웨지’가 고용비용의 35.1%에 달했다. 이는 최근 10년 사이 최고 수준이다. 지역별로는 벨기에 52.5%, 독일 49.2%, 프랑스 47.2%로 유럽 국가의 세율이 높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재정 압박에 몰린 정부가 이동하기 쉬운 자본보다 붙잡기 쉬운 노동소득에 손을 대기 쉽다고 짚었다. 월급은 도망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도 이를 '과세 탄력성'의 문제라고 부른다. 세율을 올려도 세수가 그만큼 따라오는 세원이 정부로선 ‘좋은 세원’이다. 노동소득은 그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한다. 재정이 빠듯해지면 근로소득세가 먼저 오른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모범사례’다. 근로소득 세수는 2020년 41조원에서 지난해 68조원으로 5년 만에 65% 불어났다. 취업자 증가와 임금 상승의 영향도 있지만, 세율 구간이 제자리인데 명목 소득이 오르면서 더 높은 세율 구간으로 밀려 올라가는 '소리 없는 증세'가 주된 요인이다. 여기에 사회보험료가 더해진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1000만 명 이상이 이달 건강보험료를 평균 22만원가량 추가로 납부한다. 지난해 보수 변동 내역을 반영한 정산금이 4월 건보료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전체 직장가입자 1671만 명 중 임금이나 호봉이 오른 직장인 1035만 명(62%)은 평균 21만8574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연례 정산이지만 임금 상승분이 고스란히 보험료 증가

    2026.04.24 06:29
  • "팀 쿡 15년, 성공한 비즈니스, 그러나 실패한 서사" [여기는 논설실]

    “애플은 이제 혁신을 발명하는 곳이 아니다. 과거 유산을 효율적으로 현금화하는 거대한 ‘금융 저장고’가 되었다”FT와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이 과거 팀 쿡 체제에 대한 비판적 분석 기사에 등장한 문구다. 실제 최근 몇 년간 애플이 보여준 모습은 ‘세상을 바꿀 무언가’보다는 ‘가진 것을 지키는 법’에 매몰된 인상을 준다. 외신은 ‘Cash-rich vault(현금이 가득 찬 금고)’ 또는 “재무적 요새(Financial fortres)"라는 표현으로 애플의 관료화를 지적했다.애플이 창립 50주년을 맞은 올해 팀 쿡이 물러난다. 애플은 오는 9월 CEO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을 맡는다고 20일(현지시간) 밝혔다. 후임은 하드웨어 수장 존 터너스가 지명됐다. 하지만 50년 애플의 영광이 한창일 때 나온 이번 인사는 역설적으로 더 이상 과거의 성공 방식만으로 다음 시대를 장담할 수 없다는 불안을 드러낸다. ◆"숫자로 증명한 애플 제국의 수성"팀 쿡의 퇴진은 표면적으로는 아주 질서정연한 승계다. 팀 쿡의 퇴진을 ‘실패’로 읽는 것은 사실관계에 맞지 않는다. AP와 로이터가 정리한 대로 그는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뒤 애플을 맡아 15년 동안 회사 시가총액을 약 3500억달러에서 4조달러 규모로 키웠다. 주가는 20배 뛰었다. 애플워치·에어팟·자체 칩 전환도 쿡 시대의 성과다. 웨어러블 기기와 애플페이, 애플TV+ 등 서비스 부문을 연 매출 1000억달러 규모의 거대 사업으로 키워내며 아이폰 의존도를 낮췄다. FT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구축한 공급망이 애플을 정상으로 밀어 올린 유산일 수 있다고 짚었다. 쿡은 바로 ‘공급망 제국의 설계자’였다. 주주

    2026.04.22 06:30
  • 신현송은 '한국의 밴 버냉키'가 될 수 있을까 [여기는 논설실]

    신현송 신임 한국은행 총재는 지금까지 없었던 중앙은행 수장의 롤모델을 보여줄 수 있을까. 중앙은행 총재는 통상 2가지 부류로 구분된다. 물가 안정을 중시하는 매파(hawkish)와 성장을 앞세우는 비둘기파(dovish)다. 신 총재는 낡은 이분법을 거부했다. 대신 “중요한 것은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는 판단력과 분석”이라고 했다. 상황에 맞는 유연한 대응을 강조한 발언이다. ○‘매파’냐 ‘비둘기파’냐 이분법 거부환율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전과 달랐다. 과거에는 적정 환율 수준에 초점을 맞췄다면, 신 총재는 환율을 ‘금융 시스템의 위험 흡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본다고 했다. 숫자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려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는 최근 환율 급등의 원인으로 실물 자본 유출이 아닌 NDF(역외차액결제선물환) 시장의 왝더독(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을 지목했다. 환율 방어선을 얼마로 잡겠느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왜 시장이 그렇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했다.통화정책도 마찬가지다. 그는 청문회에서 “통화정책의 핵심은 물가 안정”이라고 전제한 뒤 “중동 리스크가 계속 진행돼 

    2026.04.21 18:16
  • 나랏빚의 진짜 공포는 숫자가 아니라 속도다 [여기는 논설실]

    국가부채 논쟁은 “숫자가 맞느냐 틀리냐”로 끝나지 않는다. 같은 빚을 두고도 전혀 다른 분석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내놓은 ‘재정모니터(Fiscal Monitor)’ 보고서를 놓고 청와대가 사실상 “공포 마케팅”이라고 반박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발단은 IMF가 한국의 일반정부부채 비율이 2026년 54.4%, 2027년 56.6%, 2031년 63.1%로 올라갈 것으로 전망한 데 있다. 2027년 한국의 부채비율은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비기축통화국 11개국 평균 55.0%를 웃돌 것으로 예상됐다. IMF가 한국을 두고 주목한 것은 현재의 절대 수준보다 앞으로의 상승 경로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국가부채비율 논란의 허실’이라는 제목으로 사실상 반박에 가까운 글을 올렸다. 요지는 분명했다.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여전히 낮은 편이며, IMF나 OECD 발표가 나올 때마다 국내에서 과도한 “공포 프레임”이 덧씌워진다는 것이다. 그는 2025년 결산 기준 한국의 국가채무(D1)가 GDP 대비 49% 수준인 데 비해 OECD 평균은 109%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국가부채의 절대 수준만 놓고 보면 한국은 아직 재정 여력이 있는 나라라는 설명이다. 류덕현 청와대 재정기획보좌관도 반박에 동참했다. 빠른 고령화와 잠재성장률 하락이 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재정 지속가능성이 심각한 위험에 처했다”는 식의 논지는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앙정부 기준 부채비율이 50%를 겨우 넘는 수준이고, 국채 이자지급액도 GDP 대비 약 1%여서 관리 가능한 범위라고 말했다. 정부도 같은 날 IMF 전망치는 국가재정운용계획의 연동계획을 토대로

    2026.04.21 06:22
  • [여기는 논설실] 한국은 왜 대만에 밀리기 시작했나

    IMF가 내놓은 2026년 4월 세계경제전망(WEO)은 한국에 ‘불편한 숫자’를 던졌다. 올해 한국의 명목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7412달러, 대만은 4만2103달러로 대만이 약 4691달러 앞선다. 더 아픈 지점은 구매력 기준이다. PPP 기준 1인당 GDP는 한국이 6만8624달러, 대만은 9만8051달러다. 격차가 2만9427달러, 비율로는 대만이 한국보다 약 43% 크다. 명목 수치만 역전된 것이 아니라, 환율 효과를 걷어낸 구매력 기준에서도 크게 밀리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과 대만의 격차를 환율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구조다. 더 우려스러운 수치는 성장률이다. IMF는 올해 한국 성장률을 1.9%, 대만은 5.2%로 전망했다. 중요한 점은 IMF가 한국과 대만을 모두 AI 투자 붐과 기술제품 수요의 수혜국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두 나라 모두 반도체와 AI 사이클의 바람을 받고 있는데, 대만은 그것을 성장과 소득으로 연결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분석이다. 원인은 경제구조에 있다. IMF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의 민간소비가 연평균 1.3% 늘어나는 데 그쳐 같은 기간 실질 GDP 증가율 2%를 밑돈 것으로 분석했다. 투자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제약과 건설 부진의 영향을 받았고, 2020~2024년 성장에 대한 투자 기여도는 18%에 불과하다. 수출이 좋아도 소비와 투자가 뒤따르지 않으면 소득은 경제 전체로 퍼지지 않는다. 한국의 1인당 GDP가 대만에 밀린 첫 번째 이유는 내수 부진이다. 반도체 의존의 양면성도 분명하다. IMF는 2025년 한국 보고서에서 AI 관련 수요가 둔화해 국내 반도체 부문이 식으면 한국의 성장과 수출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 관련 지출 둔화는 메모리칩 수요를 줄이고 한국 수출

    2026.04.20 06:05
  • IMF 보고서가 던진 3가지 경고 [여기는 논설실]

    국제통화기금(IMF)이 매년 4월 내놓는 세계경제전망(WEO)은 글로벌 경제의 사실상 '기준 지침'이다. 각국 정부와 연구기관, 금융회사가 이 숫자를 토대로 자신들의 기관 전망(house view)을 조정한다. 그런데 올해 보고서는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표지 제목에 등장하는 문구는 '전쟁의 그림자(Shadow of War)’다. 요약 보고서는 "세계경제가 다시 한번 궤도에서 이탈할 위협을 받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첫 번째 경고, ‘기준선(baseline)’이 사라졌다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숫자보다 전망의 방식이다. IMF는 이번 WEO에서 전통적인 기준전망(baseline) 대신 '참조 전망(reference forecast)'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전쟁 국면에서 전망을 떠받칠 일관된 가정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IMF조차 더 이상 하나의 기준선을 자신 있게 제시하지 못할 정도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더구나 이조차 중동전쟁의 충격이 2026년 중반쯤 완화한다는 낙관적인 가정 위에 서 있다.▶두 번째 경고, 전쟁이 회복 경로를 꺾었다'참조' 전망에서 IMF는 올해 세계 성장률을 3.1%, 2027년을 3.2%로 제시했다. 올해 수치는 1월 전망보다 0.2%포인트 낮췄고, 세계 물가는 2026년 4.4%, 2027년 3.7%로 오히려 높아졌다.  더 중요한 문장은 따로 있다. IMF는 전쟁이 없었다면 2026년 세계 성장률은 3.4%로 오히려 상향됐을 것이라고 적었다. 회복이 약해서가 아니라, 전쟁이 회복 경로를 꺾었다는 뜻이다. 이번 보고서의 압축된 표현은 '경기 하방위험이 (세계경제를) 지배한다(Downside risks dominate)'는 것이다.  시장은 IMF가 제시한 '불리(Adverse)'와 '심각

    2026.04.16 06:30
  • [이심기 칼럼] 두 개의 '초크 포인트' 위에 선 K반도체

    “메모리를 잡는 자가 인공지능(AI)을 지배한다.”삼성전자 1분기 실적을 분석한 해외 투자보고서 문장에서 낯익은 단어 하나가 눈에 꽂혔다. 초크 포인트(choke point·급소). 호르무즈해협 봉쇄와 함께 전 세계에 각인된 용어다. 이란이 세계 원유시장 흐름의 병목을 장악하면서 글로벌 경제의 급소를 쥐고 있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삼성전자의 어닝서프라이즈를 “경이로운 수준”이라고 전하며 “고대역폭메모리(HBM)가 AI 인프라의 새로운 급소가 됐다”고 분석했다.2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삼성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2024년 5월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한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한 주 내내 반도체 현안 회의를 소집했다. 당시 그가 쏟아낸 말은 충격적이었다. “삼성은 비대한 초식공룡이다” “엔비디아에서 ‘삼성은 위기감은 없고 프로세스만 따진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더라”와 같은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당시 ‘삼성전자는 온 국민의 우환거리’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였다. 삼성이 컨틴전시 플랜을 짜고 환골탈태하면서 돌아오기까지 2년이 필요했다.전문가들도 이제 삼성전자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같은 ‘빅테크 리그’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 예상치는 290조원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유가증권시장 전체의 23%를 차지한다.이 같은 수치는 반도체 슈퍼사이클 시기에 주기적으로 나온 ‘삼성 공화국’을 연상시킨다. 2014년 당시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삼성의 경제 집중도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특정 기업집단에 대한 경제력 집중은

    2026.04.14 17:31
  • '이란 공습'에 소환된 북핵 교훈 [여기는 논설실]

    북핵 실패가 미국의 이란 공습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그렇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WSJ는 3일자 사설 '이란을 위한 북한의 교훈(The North Korea Lesson for Iran)'에서 미국이 북한 핵개발을 막지 못한 핵심 이유가 외교에 집착하며 군사적 선택을 끝내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글은 1980년대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 의혹 제기,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우라늄 농축과 무기화 연구 지속, 2006년 첫 핵실험까지의 흐름을 되짚었다. 겉으로는 협상이 작동하는 듯했지만, 북한의 핵개발 의지는 꺾이지 않았고, 미국은 “전쟁 위험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결단을 미뤘다고 지적했다. 외교와 제재, 보상과 유예가 반복되는 사이 북한은 핵보유국이 됐고, 군사 옵션이 더 위험해졌다는 것이다. 결론은 명확하다. 이란 역시 협상과 제재가 반복됐지만 핵 인프라를 없애지 못했으며, 북한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하지만 이런 논리는 강경한 메시지만큼이나 비약이 많다. 북핵 사례를 이란 전쟁의 정당화 근거로 끌어온 점부터 그렇다. 실제 북한과 이란은 핵개발 단계, 지역 안보 환경, 보복 수단, 동맹 구조가 모두 다르다. 북핵 위기는 한반도 정전 체제와 미군 주둔 등 특수한 동아시아 안보 상황에서 벌어졌다. 반면 이란 문제는 중동 지역 패권 경쟁, 이스라엘과 걸프 국가들, 해상 수송로와 에너지 시장, 유럽의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사설의 정치색도 두드러진다. WSJ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이란 핵 프로그램을 공격할 용기를 지닌 유일한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북핵은 미국 보수진영에서 대외 강경노선을 정당화할 때 반

    2026.04.06 17:05
  • [천자칼럼] 미국 빠진 NATO

    1949년 4월 4일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주요 12개국 대표가 모여 한 장의 문서에 서명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설립을 위한 협약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 시대가 열리자 소련의 팽창을 막기 위한 집단 안보체제는 이렇게 탄생했다.나토를 상징하는 문구는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조약 제5조다. 이른바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One for all, All for one)’의 정신이다. 한 국가가 침공받으면 모든 회원국의 자동 개입을 보장하는 이 약속은 나토 설립 후 77년간 서구를 지킨 버팀목이다.역대 가장 성공한 동맹으로 평가받는 나토에 균열이 생겼다. 진원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에게 나토는 가치를 공유하는 혈맹이 아니라 ‘거래의 대상’이다. 그는 집권 초기부터 유럽을 향해 “안보 무임승차”라고 비난하며 청구서를 들이밀었다. “그린란드를 매입하겠다”고 나서 유럽 전체를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근거 없는 불만은 아니다. 미국은 나토 운영비의 70%가량을 홀로 부담해 왔다. 지난해 나토 회원국은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까지 끌어올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굴복했다.미·이란 전쟁이 한 달째 이어지면서 균열과 파열음은 더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지원을 거부한 유럽 동맹국을 향해 “당신들이 우리를 위해 그곳에 있지 않았듯이, 미국도 더 이상 당신들을 돕기 위해 그곳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유럽의 반응은 냉담했다. 폴란드는 패트리엇 포대 파견을 거부했고, 이탈리아는 미군기의 자국 기지 착륙

    2026.04.0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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