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법 제29조에 규정된 행정 각부의 순서를 보면 중소벤처기업부는 열아홉 번째, 맨 끝이다. 총리 직무대행의 최종 기준으로 쓰이는 법정 순서다. 내각 서열표상 ‘꼴찌 장관’이 이번에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한성숙 장관의 발탁이 여성총리 지명이라는 파격 이상으로 읽히는 이유다.

[천자칼럼] 내각 순위
이재명 대통령은 한 후보자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고민은 적지 않았는데 결론은 일만 할 사람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정치적 요소는 당이 잘 해결해주겠지요. 내각은 있는 힘 다해서 전력 질주하려고 합니다.” 화려하지 않고, 별다른 수식어도 없다. 총리에게 원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일이라는 간결한 의미만 담겨 있을 뿐이다.

한 후보자는 컴퓨터 전문지 ‘월간 PC라인’ 기자로 출발해 인터넷기업 엠파스 창립 멤버로 참여했고, 약 5년간 네이버 대표를 지냈다. 관료도, 정치인도 아닌 기업 현장형 인물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한 사람의 아래, 만 사람의 위)’으로 불리는 총리에 대한 고정관념과도 거리가 멀다.

한 후보자도 자신의 역할을 잘 아는 듯하다.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한 첫 출근길에 기자들이 각오를 묻자 그는 K팝 그룹 코르티스의 노래 ‘레드레드’ 가사를 읊었다. “도가니 사리기 레드 레드, 신호등 바뀌었어 그린 그린, 울타리 넘어가 그린 그린.” 노래 속 ‘레드(Red)’를 경고와 멈춤의 신호로 해석했다. 몸을 사리지 않고 과감히 울타리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다.

그가 인용한 또 다른 문장은 김애란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의 한 구절이다. “살면서 어떤 긴장은 이겨내야만 하고, 어떤 연기는 꼭 끝까지 무사히 마친 뒤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러면서 “모든 총리가 시대에 맞춰 다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게 요구된 것이 무엇인지 집중해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를 풀겠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퇴장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역할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이 대통령은 순서를 뒤집었다. 정치적 균형보다 실행 능력을, 연공서열보다 성과주의를 앞세웠다. 옳은 선택인지는 시간이 가려줄 것이다. 신호등은 이미 바뀌었다. 이제 울타리를 넘는 일만 남았다.

이심기 수석논설위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