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전쟁도 '베팅 상품'
이 일화가 200년 넘게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전쟁에서 정보는 무기보다 값비싼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2001년 9·11 테러 직전 아메리칸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풋옵션 거래가 수십 배 폭증한 사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증거가 없다고 결론지었지만 학계는 매우 이례적인 거래량이라며 내부 정보 거래의 방증으로 본다.
중동 사태는 전쟁 앞에서 시장이 얼마나 예민한지 다시 보여줬다. 지난 17일 런던 선물시장에서는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통행 허용 방침을 발표하기 20분 전 유가 하락에 베팅하는 브렌트유 선물 매도 거래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거래 대금만 7억6000만달러(약 1조1200억원)에 달했다. 앞서 미국·이란 휴전 합의 직전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이란 공격 연기 발표 직전에도 대규모 유가 하락 베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당국이 조사에 들어갔다.
군사 기밀을 개인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한 사례도 있다. 미국 연방검찰은 23일 현역 특수부대 상사 개넌 켄 반 다이크를 기소했다. 그는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작전 브리핑을 받고 베팅 사이트 폴리마켓에 13차례에 걸쳐 3만3000달러(약 4800만원)를 베팅해 40만달러(약 6억원)를 챙겼다.
전쟁 기밀을 활용해 돈을 벌려는 탐욕은 인공지능(AI) 시대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 기밀과 인간 생명을 놓고 베팅하는 순간 시장은 도박판과 다를 바 없다. 전쟁의 비극을 상품화하는 세태는 인간 존엄마저 무너뜨린다.
이심기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