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기 빛, 실낱 같은 희망, 그리고 동백꽃 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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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현호의 바벨의 도서관
빛 한 줄기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식탁등(燈)만을 남겨둔 채 방으로 들어서면,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 이전까지는 마치 깊은 동굴 안으로 들어선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뒤돌아 누우면 문틈 사이 세로로 길게 한 줄기의 빛이 흘러 듭니다. 헤아려보면 결국 아이들 보다 제가 먼저 잠드는 날이 더 많은데, 잠들기 직전의 마지막 장면은 언제나 그 기다란 빛 한 줄기뿐이었습니다. 가끔은 그 빛이 스타워즈 제다이의 광선검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한 줄기의 빛을 이토록 동경하기 시작한 시점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의 콘솔레이션 홀(Consolation hall, 위로의 공간)을 찾았던 순간으로 기억합니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의 한 가운데에는 천주교 박해 순교자들의 유골이 보관되어 있고 덮개에는 밀알 형상의 양각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유난히 밝게 빛나는 조명이 신기해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알고 보니 딱 그 곳만 온종일 천창으로부터 쏟아져 내려온 빛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이 보다 더 큰 위로는 없겠다’ 싶었습니다.
어느 날에는 감히 상상해봤습니다. 4·3의 희생자(또는 생존자)들이 제주의 용암동굴에 몸을 숨겼을 때 ‘이렇게 한줄기의 빛에 의지했겠구나’ 하고 말이죠. 제주 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2013)>에는 당시의 희생자들이 토벌대의 눈을 피해 동굴로 몸을 숨겨 지슬(감자의 제주식 방언)을 나눠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용암동굴의 유려한 선을 타고 빈 틈으로 들어온 한 줄기의 빛을 보며 희생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4.3의 비극을 다룬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는 동안에도 내내 ‘한 줄기 빛’이 떠올리는 심상(心像)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한 줄기의 빛처럼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책이 다가왔습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는 작가 유제프 차프스키의 실제 경험을 담담하게 서술한 책입니다. 폴란드의 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유제프 차프스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군 포로 수용소에 갇혀 영하 40도 이하의 상상하기조차 힘든 추위 속에서 강제 노역을 이어가야만 했습니다. 굶주림과 고통이 반복되며 인간존엄성은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유제프 차프스키는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선택을 합니다. 저녁마다 동료 수용자들을 불러모아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주제로 강의를 시작한 것입니다. 일상 생활에 관한 기억이 완전히 소멸되어 인간성을 잃게 되는 수용소 안에서조차 유제프 차프스키는 삽화까지 그려가며 스완네 집 쪽으로 향하는 풍경과 마들렌 향기를 떠올렸습니다. 마침내, 유제프 차프스키는 살아 남았고 그 경험이 오늘의 우리에게 전해져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그림책 분야의 권위를 상징하는 칼데콧 아너상을 수상한 책 『프레드릭』은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와 참 닮았습니다. 그림책 작가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속 주인공 들쥐 프레드릭은 우리에게 익숙한 ‘개미와 베짱이’우화를 비틀어 감동을 주는 작품입니다. 프레드릭은 친구들이 열심히 곡물을 모으는 동안 햇살을 모으거나 세상의 색깔 이야기를 모은다고 말합니다. 겨울이 시작되고, 기나긴 추위를 보내며 프레드릭의 친구들은 준비해놓았던 양식마저 모두 떨어지자 힘들어 합니다. 그 순간부터 프레드릭이 따뜻한 햇살과 파란 덩굴꽃·노란 밀집 속 붉은 양귀비꽃·초록색 딸기 덤불의 색깔과 이야기를 꺼내놓습니다. 프레드릭이 풀어 놓은 색깔과 이야기가 친구 들쥐들에겐 한 줄기의 빛이었겠죠. 친구들이 고마움과 감동을 담아 프레드릭을 향해 말합니다.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
넌 이미 시인이야
짐 자무쉬 감독의 작품 <패터슨(Peterson, 2017)>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의 영화입니다. 실재하는 미국 동부의 소도시 패터슨시(市)에 사는 가상의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다룬 이 영화는 변주와 반복으로 일종의 운율을 만들어냅니다.영화 속에서 패터슨은 겨를이 있을 때마다 꾸준히 자신만의 비밀수첩에 시를 완성해갑니다. 그런데 단 한번의 부주의로 자신에게 전부였던 비밀수첩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시어를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맙니다. 좌절할 법도 한데, 패터슨은 담담합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시를 사랑하는 한 관광객과 우연히 마주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죠. 관광객이 새 수첩을 건네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때로는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이제 패터슨은 더 이상 시인이 되고자 고군분투하지 않습니다. 패터슨에게는 새로운 수첩 속 백지(白紙)가 다름 아닌 ‘한 줄기 빛’입니다. 아마도 속으로 ‘맞아, 난 이미 시인이야’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국어학자 권보드래 박사의 『3월 1일의 밤(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1919년 봄의 3.1운동을 매우 세밀한 시각으로 조명하는 책입니다. 3.1운동의 독립선언과 만세시위가 이후의 국제 정세와 본격적인 독립운동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면에선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을 텐데요. ‘잘 안다’고 여겼던 3.1운동의 밤에도 새로운 사실이 있었습니다.
『3월 1일의 밤』을 따라가다 보면, 당시의 많은 민중들이 만세시위를 벌이면서 마음 속으로 ‘이미 독립이 되었다’고 인식했었다고 합니다. ‘이 지긋지긋한 지배를 언제까지 견뎌내야 할까’ 라는 생각 보다 ‘우리는 이미 독립했다’는 한 줄기 빛과 같은 믿음이 용기와 희망을 크게 키워낸 모양입니다.
마음을 사로 잡는 순간과 동백꽃
한겨울의 어느 날, 우연히 들어섰던 창경궁의 대온실 속에서 ‘한 줄기의 빛과 같이 마음을 붙잡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다름 아닌 4.3의 희생자를 기리는 동백꽃이 한 줄기 빛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백꽃을 마주하며오래 전 마음을 두었던 책 『죽은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을 떠올렸습니다.이 책에서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봉쇄된 도시 레닌그라드를 떠나지 않고 끝내 교향곡 7번을 완성해내고 맙니다. 식량이 부족해 인간 존엄성을 지켜낼 수 없었던 도시에서 쇼스타코비치는 도망치지 않고 역작을 완성해냅니다. ‘죽은 자들의 도시’속에서 시민들에게 쇼스타코비치는 한 줄기 빛이었을 것입니다. 책의 절정에 다다르면 한 소녀가 초연을 마친 작곡가에게 꽃 한 다발을 선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두가 굶어 감자 한 알이라도 아껴 먹어야 하는 시점에 누군가는 꽃을 심었다는 사실이 뭉클한 감동을 주는데요. 그 때의 그 꽃이 동백꽃이었을 리는 만무하지만, 어쩐지 한 줄기의 붉은 꽃이 밝게 빛났을 것만 같습니다. 실낱 같은 희망처럼 말이죠.
이처럼 아주 가끔은, 단조로운 우리의 삶에도 때때로 번쩍이는 ‘찰나의 순간’과 ‘한 줄기의 빛처럼 작은 위로’가 찾아옵니다.
마치 영화 < 보이후드(Boyhood, 2014) > 속 문장처럼 말입니다. (이 영화는 실제로 아역 배우가 성장하는 모습을 12년에 걸쳐 담아냈습니다. 이 시간 동안 함께 아이들을 키워낸 것처럼 뭉클한 체험을 하게 되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기념비적인 영화입니다)
“흔히들 이런 말을 하지. ‘이 순간을 붙잡으라’고.
난 그 말을 거꾸로 해야 될 것 같아.
‘이 순간이 우릴 붙잡는 거지(The moment seizes us)’
시간은 영원한 거지, 순간이라는 건. 늘 바로 지금을 말하는 거잖아.”
- 영화 <보이후드> 중 -
올 봄에는 동백꽃이 지기 전에 서둘러 산책에 나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