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 현역 빼고…野, 전국서 '非明횡사 여론조사'
더불어민주당이 비명(비이재명)계 현역 의원 지역구에서 현역을 배제한 채 친명(친이재명) 인사의 총선 후보 적합도를 조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친문(친문재인)·비명계는 ‘반대파 찍어내기’라며 이재명 대표와 친명 지도부를 성토하고 있다. 밀실·비선 공천 의혹으로 이 대표의 사당화 논란이 더욱 확산하는 모양새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전국 각 지역에서 민주당의 총선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조사는 ‘친문 핵심’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도전장을 낸 서울 중·성동갑을 비롯해 인천 부평을(홍영표 의원), 광주 서구갑(송갑석 의원), 경기 부천을(설훈 의원), 서울 구로갑(이인영 의원), 경기 평택갑(홍기원 의원) 등 친문·비명 현역 의원이 있는 지역구에서 주로 이뤄졌다. 현역 의원이 재판받고 있는 서울 성북을(기동민 의원), 마포갑(노웅래 의원) 지역에서도 조사가 진행됐다고 한다.

문제는 조사가 현역 의원을 배제한 채 주로 친명 원외 인사를 포함해 이뤄졌다는 점이다. ‘비명 찍어내기’ 의도가 있다는 게 비명계 의원들의 시각이다. 부평을에서는 친문인 홍영표 의원을 제외하고 친명 비례대표인 이동주 의원과 이 대표가 영입한 박선원 전 국가정보원 3차장을 대상으로만 국민의힘 후보와의 경쟁력을 따졌다.

설훈 의원이 있는 부천을에서는 이 대표 최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변호인인 김기표 변호사를 대상으로 적합도 조사를 했다. 평택갑에서도 홍기원 의원을 배제한 채 이 대표의 ‘대장동 의혹’ 재판 변호인인 김동아 변호사의 경쟁력을 물었다. 수도권 한 비명계 의원은 “지역구에서 현역 의원을 배제하고 적합도 조사를 했다는 얘기는 과거에 들어보지 못했다”며 “누가 봐도 특정 지역구에 친명 인사를 보내기 위한 의도적인 작업”이라고 했다.

조사 주체도 불분명하다. 민주당은 당의 공천 관련 공식 기구인 공천관리위원회와 전략기획위원회는 적합도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여론조사가 당 차원에서 진행된 것인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확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비명계는 이 대표 측 비선 조직이 친명계 인사를 자객 공천할 목적으로 여론조사를 돌리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비명계 현역 의원과 경선을 치렀을 때 가장 경쟁력 있는 인물이 누군지 파악하기 위해 당 대표 측에서 친명 원외 인사들끼리 조사를 돌려본 것이라는 주장이다.

홍영표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최근 정말 이상한 여론조사 때문에 당이 굉장히 혼란스럽다”며 “어떤 비선 조직에서 한 것인지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영입 인재를 놓고도 ‘친명 편향’ ‘재탕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차지호 KAIST 교수와 김남희 변호사 등을 영입 인재로 발표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대의원제 폐지·축소 같은 친명계가 주장한 내용을 담은 혁신안을 내놓아 논란이 됐던 김은경 혁신위원회 출신이다. 차 교수는 지난 대선 때 이 대표 선거 캠프에서 활동하며 TV 찬조 연설도 했다. 그는 임 전 실장이 도전하는 서울 중·성동갑에서 후보 적합도 조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 공관위가 추린 ‘현역 의원 평가 하위 20%’ 대상자 대다수도 비명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재영/원종환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