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대한민국, 정말 선진국인가
근대 세계사에서 최빈국의 절대 빈곤을 경험한 나라가 한 세대 만에 선진국이 된 나라는 ‘코리아’ 하나뿐이다. 세계은행, 유엔 등 국제기구 기준을 살펴보면 선진국의 요건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인당 국민소득, 경제 규모(GDP), 보편적 가치, 그리고 문화의 세계적 확산이다. 세계은행은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으면 일단 선진국으로 분류한다.

1인당 소득 2만달러를 넘는 나라가 40여 개국 있는데, 중동의 카타르가 8만달러로 세계 6위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카타르를 선진국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경제 규모로 보면 미국에 이어 중국, 독일, 일본 등이 뒤따르고 한국은 10위권에서 맴돌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1인당 소득이 1만3000달러밖에 안 된다. 그래서 ‘차이나’는 초강대국일지는 몰라도 선진국은 아니다. 경제대국, 군사 대국이라고 다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존경하고 따르는 보편적 가치(global value), 즉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와 법치에 바탕을 둔 투명한 선진 제도를 갖추어야 한다. 흔히들 싱가포르를 우리나라보다 높이 평가한다. 1인당 소득 9만달러로 우리보다 앞섰지만, 이 나라는 그냥 번영하는 도시국가(city-state)일 뿐이다. 민주화를 하지 못한 싱가포르는 투명한 제도에서는 합격이지만 민주주의 항목에서 과락이다.

과거 일본이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떠오를 때 일본 문화가 세계로 확산되고, 서구가 이에 열광하였다. 그 유명한 이탈리아 푸치니의 ‘나비 부인’이 그렇고, 프랑스 인상파의 거장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에 가면 모네가 얼마나 일본 판화, 일본 문화에 매료되어 있었던가를 알 수 있다.

많은 나라가 선진국의 4대 요건 중 이 문화적 기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경제발전이 문화적 발전으로 자동적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K-문화가 전 세계에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같은 K-문화의 세계적 확산은 우리가 아주 예외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우수한 두뇌에서 나온다. 하지만 뛰어난 문화는 인간의 창조적 두뇌에서 나온다. 그런데, 창조적 두뇌는 사회적 다양성을 허용하는 민주사회에서 나온다. 천편일률적인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창조적 문화가 꽃피우지 못한다. 장쩌민, 후진타오 개혁 개방 시대에는 장이머우 감독같이 세계가 주목하는 중국 문화가 있었다. 그런데 젊은이들의 인터넷게임 시간까지 국가가 통제하는 오늘날 한때 만개하려던 중국 문화의 존재감이 없어지고 있다.

K선진국론에 대한 반론도 있다. 그중의 하나가 노벨 과학상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끌어올린 한강의 기적이 제조업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기초과학 기반이 약한 탓이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첫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1949년에 나왔다. 유카와 히데키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는데 이는 일본이 선진권에 들어간 지 거의 반세기쯤 후이다.

지표상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어엿한 선진국이다. 하지만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넘어야 할 고개가 있다. K산업은 세계 정상을 달리는데 정치, 노동 등 사회 많은 부분에 후진국의 잔재(!)가 남아 있다. 허위 정치선동, 왜곡으로 서로 불신하며 떼법으로 우기고, 밖으로는 주변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국가적 자존심을 떳떳하게 내세우지 못하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더 이상 우리나라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중국은 덩치 큰 초강대국일 뿐이지만, 대한민국은 당당한 선진국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똑같이 3만달러대로 일본과 어깨를 겨루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2차전지 등 글로벌 핵심 연결고리 산업에서 한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한·미동맹 70년도 수직관계에서 수평적 협력관계로 격상되었다. 이제 단순한 선진국이 아니라 G7 국가와 같이 세계질서를 구축하는 ‘글로벌 게임-체인저(game-changer)’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가 선진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선진시민의식을 확립해야 한다. 자만심은 나쁘다. 하지만 품격 있는 자긍심은 제도의 투명성을 더욱 높이고 신뢰 사회를 만드는 발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