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프리즈 서울’ 행사장에 전시된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이 작품은 본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최혁 기자
지난 9월 ‘프리즈 서울’ 행사장에 전시된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이 작품은 본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최혁 기자
국내 첫 미술품 토큰증권(ST)이 이달 발행을 앞둔 가운데 ST 공모 참여자가 작품 매입가액의 약 10%에 달하는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품 매입에 수반된 비용만 이 정도이기 때문에 매각 때도 비슷한 비용이 든다고 가정하면 작품 가격이 20%는 올라야 투자자가 본전을 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필요경비를 제외한 양도소득에 세금이 22% 부과되고, 미술시장이 최근 조정을 받고 있는 점도 변수다. 미술품 ST 투자자가 '익절(수익을 보고 매도)'하기까지는 난관이 예상된다.

"작품가 20% 올라야 투자자 본전" 예상

업계에 따르면 열매컴퍼니가 운영하는 미술품 ST 거래 서비스 '아트앤가이드'는 일본 유명 미술가 쿠사마 야요이의 2001년작 '호박'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ST 청약을 이달 18~22일 받는다. 서울옥션블루의 'SOTWO'는 앤디 워홀의 1981년작 '달러 사인'의 ST 청약을 20~26일 받고, 케이옥션 자회사 투게더아트의 '아트투게더'도 쿠사마의 2002년작 호박 ST 청약을 오는 26일부터 내년 1월 2일까지 받는다.

이들 ST 발행사는 증권신고서의 '투자자가 부담하는 총수수료' 란에 "발행 및 운영수수료 없음"이라고 표기했다. 다만 추후 작품을 매각하는 데 성공해 발행했던 ST를 청산할 때, 작품 매각가가 모집총액의 108%를 초과하면 그 초과분에 대해 20%의 성과보수를 받는다고 덧붙였다. 이 내용대로라면 작품 가격 상승분 8%까지는 수익이 모두 투자자에게 귀속되고, 8% 초과 상승하는 경우 이 구간 수익금의 80%가 투자자 몫인 것처럼 보인다.
왼쪽부터 아트앤가이드 토큰증권(ST)의 기초자산인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SOTWO ST의 기초자산인 앤디 워홀의 '달러 사인', 아트투게더 ST의 기초자산인 쿠사마의 '호박'(세 작품이 동일 비율로 축소되지 않았음). 각 사 제공
왼쪽부터 아트앤가이드 토큰증권(ST)의 기초자산인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SOTWO ST의 기초자산인 앤디 워홀의 '달러 사인', 아트투게더 ST의 기초자산인 쿠사마의 '호박'(세 작품이 동일 비율로 축소되지 않았음). 각 사 제공
그러나 실제로는 매각가가 얼마인지와 상관없이 적잖은 수수료가 부과된다. 운영비 성격의 '기타 수수료'가 모집총액에 이미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SOTWO가 매입한 워홀 작품의 모집총액 7억원을 세부적으로 보면 작품 가격은 6억2623만원이고, 이 가격의 11.8%인 7377만원은 기타 수수료다. 여기에는 작품 감정료, 계좌관리 수수료, 보관료 등이 포함된다. 이를 '투자자가 부담하는 총수수료'에는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트앤가이드와 아트투게더의 ST 모집총액에도 각각 작품 가격의 10.0%, 8.0%가 기타 수수료로 포함돼 있다. 이는 개인이 별도의 약정 없이 국내 경매사를 통해 미술품을 샀을 때 부과되는 수수료 16.5%(부가가치세 포함)보다 저렴하지만, 투자상품으로서 주식 등 다른 유가증권 대비 좋은 조건은 아니다.

이 수수료는 작품 매입에 대해 부과되는 비용이고, 추후 매각할 때 별도의 비용이 다시 한번 부과될 수 있다. 국내에서 경매를 통해 작품을 매각하면 낙찰가의 11%(부가가치세 포함)를 수수료로 내는 게 보통이다. 작품을 살 때와 팔 때 부담하는 수수료를 모두 합치면 작품 가격 상승분이 20% 정도는 돼야 매매 수수료를 내고 투자자가 본전을 건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글로벌 미술시장, 27억→23억달러 축소

작품 매매차익에 부과되는 양도소득세도 수익률에 부정적 영향을 줄 전망이다. 생존 국내 작가의 작품이 아닌 경우, 작품 매각 가격이 6000만원 이상이면 필요경비를 제외한 소득액의 22%가 양도세(지방소득세 포함)로 부과된다. 발행 예정인 세 ST의 기초자산은 모두 해외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에 양도세 부과 대상이다. 아트앤가이드, SOTWO, 아트투게더의 이번 ST 기초자산 작품 가격이 30% 올랐다고 가정하면, 각각에 매겨지는 양도세는 가격 상승분의 3.7%, 3.2%, 3.7%다. 매입과 처분에 들어가는 수수료에 양도세까지 더해지면 수익률이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미술품은 감정료, 보관료, 운송료 등 거래에 수반되는 비용이 크기 때문에 미술품 거래로 투자 수익을 올리는 건 대세 상승장이 아닌 이상 녹록지 않다"며 "안정적인 가격 상승률을 보이는 '블루칩 작품'은 거래 시장이 워낙 폐쇄적이기 때문에 조각투자의 기초자산으로 이를 매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술품 토큰 '숨은 수수료' 20%…세금 부담·시장 침체도 발목
글로벌 미술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미술정보포털 아트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글로벌 현대 미술품 경매시장 규모는 2022년 7월~2023년 6월 23억달러를 기록했다. 2021년 7월~2022년 6월 27억달러를 기록,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뒤 급격하게 조정을 받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로 조정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쿠사마와 워홀의 작품 가격이 최근 주춤하다는 점도 부담이다. 쿠사마의 호박 중 거래량이 가장 많은 1호 작품은 지난해 3월 일본 마이니치옥션에서 66만2968달러에 팔렸고, 이후 하락해 최근에는 40만달러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10월 14일에는 영국 크리스티스에서 최고 낙찰가의 반값도 안 되는 31만5578달러에 매매됐다. 워홀의 달러 사인 8호도 2021년 11월 19일 영국 소더비스에서 75만달러에 거래됐고, 최근에는 40만달러 선에서 가격대가 형성됐다. 지난 6월 28일에는 소더비스에서 16만4394달러에 팔렸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