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도 달갑지 않은 '검정고무신 방지법'…무슨 내용 담았길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의 콘텐츠 버전
공정거래법·방통위 법률과 중복 ‘과잉’

검증된 창작자에 계약 집중 … 신인엔 毒
“플랫폼 유통사는 甲” 인식 깔린 법안
네이버·카카오 플랫폼 업체는 긴장
GettylmagesBank
GettylmagesBank
정부와 국회가 문화 콘텐츠 유통 시장에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려고 추진 중이라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3월 만화 '검정고무신'의 작가 이우영 씨가 출판사와의 저작권 분쟁 중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면서 '검정고무신 방지법'으로 재조명받은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이다.

상대적 약자로 간주되는 창작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문화상품 유통업자가 창작자와 계약할 때 하지 말아야 할 여러 행위를 규정해놨다. 그러나 취지와 달리 플랫폼·출판 기업은 물론 창작자, 소비자에게까지 궁극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가 나와 콘텐츠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법사위서 반려…문체위 재통과 주목

이 법안은 제정법으로 2020년 12월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2022년 11월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 두 가지 버전이 있었다. 두 법안은 공통적으로 문화 산업 관련 다양한 법령에 분산된 내용을 통합해 불공정 행위의 유형 및 상생 협력 환경 조성을 위한 지원 등을 규정하는 것을 취지로 밝히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콘텐츠 관련 국정과제인 '장르별 공정 환경 조성'의 핵심으로 이 법의 제정을 꼽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의 콘텐츠 버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문화산업 공정유통 및 상생협력에 관한 법률(대안)

·악재 예상 기업: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 등 문화 콘텐츠 플랫폼.
·발의: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원실: 02-6788-6821),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의원실: 02-784-9518)
·어떤 법안이길래: 공정한 콘텐츠 유통 환경 조성 위해 표준계약서 제정·보급. 문화상품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 규정.
·어떻게 영향 주나: 콘텐츠 계약을 어렵고 까다롭게 함. 신규 창작자의 시장 진입 어려워질 전망.

이 법이 주목을 받은 것은 검정고무신 사건과 결부되면서다. 이 작가가 숨진 지 2주 만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지난 3월 말 전체회의를 열어 두 법안을 통합한 위원회 대안을 마련하고 통과시켰다. 그러나 다음 관문인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문체위로 돌아왔다.

다른 부처 소관 법률들과 내용이 중복된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현재는 국무조정실이 부처 간 중복 규제를 풀기 위해 조율 중이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이달 ‘영상 산업 도약 전략’을 발표하면서 이 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수정안이 연내 문체위에 다시 회부될 지 업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법안 내용이 뭐길래

대안은 공정한 유통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표준계약서를 제정·보급하는 게 핵심이다. 또 출판사나 유통 플랫폼 등 문화상품 사업자가 하지 말아야 할 불공정 행위 10가지를 법률로 규정했다.

금지 행위엔 △제작 방향의 변경, 제작 인력의 지정·교체 등 제작 활동 방해 행위, △문화상품의 수령을 거부 또는 반품하거나 수령한 문화상품의 판매를 거부하는 행위, △문화상품의 납품 후 수정·보완을 요구하면서 이에 소요되는 비용을 보상하지 않는 행위, △문화상품 관련 기술자료 및 정보의 제공을 강요하거나 유용하는 행위, △판매촉진 비용 및 가격할인 비용을 제작업자에게 부담시키는 행위, △계열회사가 제작한 문화상품을 다른 제작업자가 제작한 상품과 차별하여 취급하는 행위, △판매대금 결제 방법, 가격, 조건 등을 부당하게 지정·제한하거나 강요하는 행위, △판매순위를 왜곡시킬 목적으로 스스로 제작 또는 유통하는 문화상품을 직접 구매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구매하게 하는 행위, △지식재산권의 양도를 강제하거나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지식재산권의 사용으로 인한 수익을 분배하는 행위, △실제 소요되는 비용보다 낮은 수준으로 대가를 정하는 행위가 명시됐다.

위반 시 시정명령 등 제재 조치를 부과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문체부는 법을 위반한 문화상품 사업자에게 시정조치를 명할 수 있고, 시정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창작자·소비자도 반갑지 않은 탁상행정

법안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우선 '중복 규제' 이슈다. 이미 다른 부처가 규제하고 있는 내용이 상당수 포함돼 있어, 부처 간 규제 관활권 문제가 있다. 이 법안의 불공정 행위 대다수는 공정거래법에서 규율하고 있고, '창작자 제작 활동 방해' 등 사업자 금지 행위도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법률에서 다루고 있다.

비슷한 내용을 다른 법도 있다. 공정 계약 조건 강요나 적정 수익배분 거부 등의 금지행위 규정은 ‘예술인권리보장법’에도 담겼다. 이 법은 시행된 지 겨우 1년 됐다.

이 법안이 '문화산업'의 정의를 영화, 음악, 게임, 출판, 인쇄, 방송 영상물 등 모든 콘텐츠를 대상으로 하면서 과잉 규제 논란도 있다. 문체부를 제외한 방통위와 과학정보통신부 등이 반대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에 조율이 쉽지 않다.

네이버·카카오 등 주요 플랫폼 기업들로선 '유통 사업자가 무조건 갑'이라는 인식 하에 만들어진 법이라 부담이 크다. 계약에 따른 의무 조항이 늘어나다 보면 유통사 입장에선 앞으로 계약을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다.

이는 신인 창작자에겐 오히려 독이 된다. 실력이 확실하고, 수익이 보장되는 창작자들에게만 계약이 집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통상보다 현저히 낮은 대가'를 법으로 금지한 부분은 신인 창작자들에겐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비자 후생도 떨어뜨린다. 신규 창작자의 시장 진입이 어려워지면 콘텐츠 다양성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 또 다양한 유통 기업이 등장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이 법은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기업을 콘텐츠 공급자로 규정하고 제도를 설계해, 스타트업들에겐 오히려 견고한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