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효용(utility)’ 개념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다 보면 결국 에피쿠로스까지 올라가더라고요.”손꼽히는 연금 전문가인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사진)가 철학서 <서른의 불안을 다루는 법>을 펴냈다. 경제학자가 2300년 전 철학자 에피쿠로스를 주제로 책을 낸 것이 다소 의외다.김 교수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학에서는 효용의 극대화와 비용의 최소화를 사실상 같은 개념으로 보는데, 에피쿠로스의 접근 방식이 그와 유사했다”며 “쾌락을 억지로 키우는 게 아니라 인생의 ‘불안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후생을 정의했다는 점이 현대 경제학과 맞닿아 있다 ”고 설명했다.흥미로운 점은 카를 마르크스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 역시 에피쿠로스였다는 사실이다. 김 교수는 “주류 경제학의 효용 이론과 마르크스주의라는 상반된 두 흐름이 모두 한 철학자에게서 출발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에피쿠로스의 시각은 놀랍도록 현대적이다. “천둥이 치면 신의 노여움이라고 했던 시대에 그는 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고 했어요. 죽음마저 두려움의 대상에서 걷어냈죠.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죽음이 없고, 죽음이 찾아오면 그것을 걱정할 ‘나’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봐도 전혀 낡지 않았어요.”김 교수가 이 철학을 특별히 ‘30대’에게 건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마주한 30대는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흔들리는 세대였다. “20대는 아직 가능성이 열려 있고, 40대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경우가 많지만, 그 중간에 낀 30대는 인생의 윤곽이 보이면서 오히려 절망과 불안을 마주하는
부커상 최종후보작 <고래>로 세계 문학계의 주목을 받은 천명관이 10년 만에 장편소설 <아코디언>으로 돌아왔다. 새 무대는 인공지능과 플랫폼이 일상을 지배하는 현재가 아니라,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1950년대 서울이다. 우리가 너무 빨리 잊어버린 도시의 그림자 속으로 독자를 밀어 넣는다.주인공 동이는 피란길에 가족을 잃고 앵벌이 조직에 흘러든 소년이다. 양 목사의 위선과 폭력, 약물 ‘구름탄’의 유혹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아이들의 세계는 잔혹하다. 그러나 천명관은 비참함에 머물지 않는다. 동이가 낡은 아코디언을 만나고, 연이와 거북이, 깜상 같은 친구들과 함께 거리에서 노래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생존기를 넘어 성장과 연대의 서사로 확장된다.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압도적인 이야기의 힘이다. <고래>가 그랬듯 천명관의 문장은 거침없이 질주한다. 구걸은 공연이 되고, 폐허는 무대가 된다. ‘목포의 눈물’ ‘베사메무초’ 같은 유행가들이 흐르는 가운데 전후 서울의 냄새와 소리, 빛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아코디언>은 약한 존재들이 어떻게 서로의 숨을 붙들고 삶을 이어가는지를 묻는 소설이다. 잔혹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생명력과 희망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접히고 펼쳐질 때마다 숨을 토해내는 악기처럼, 이 소설은 구겨진 삶의 주름 속에서 가장 뜨거운 리듬을 길어 올린다.설지연 기자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2026 서울국제도서전. 올해 도서전의 진짜 전쟁터는 책장이 아니라 굿즈 진열대 앞이다. 개막 첫날부터 인기 부스마다 긴 줄이 늘어섰고, 일부 한정판 굿즈는 오전에 동이 났다. 이제 도서전은 신간을 발견하는 공간인 동시에 취향을 증명할 아이템을 수집하는 거대한 팝업스토어가 됐다.창립 60주년을 맞은 민음사 부스는 올해의 하이라이트다. 민음사는 한쪽 벽면을 통째로 ‘굿즈 가챠’(캡슐 뽑기) 공간으로 꾸미고 세계문학전집 일러스트를 활용한 스티커, 핀버튼, 키링, 한지 책갈피 등을 선보였다. 개막 전 온라인 기획전에서도 세계문학전집 키링 파우치 일부 품목이 조기 품절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출판사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굿즈와 콘셉트로 독자를 끌어모았다. 푸른숲은 부스를 세탁소처럼 꾸미고 ‘독서는 기세다’ 티셔츠와 독서 주머니 등을 전시했다. 김영사는 출판사 이름을 활용한 ‘짐영사’(GYM영사) 콘셉트로 부스를 마련해 ‘독서력만큼은 3대 500’이라는 유쾌한 메시지를 내세웠다. ‘총균쇠질’ 굿즈와 스포츠 타월 등 운동을 패러디한 상품도 관람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네이버웹툰의 ‘쿠키 팩토리’ 역시 한정 굿즈와 체험형 이벤트를 앞세워 젊은 관람객의 발길을 끌었다.문학동네와 문학과지성사는 도서전 한정판 에디션과 리커버본으로 독자의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독립출판계에서는 유어마인드와 쪽프레스 등이 아트북, 미니북, 한정 제작 굿즈를 선보이며 마니아층의 호응을 얻었다.도서전 공식 굿즈인 ‘두두리 패스’도 인기 품목이다. 배지와 에코백 등이 포함된 패키지는 100세트 한정
“무엇을 볼까.”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독자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질문이다. 올해 도서전은 규모부터 압도적이다. 18개국 538개 출판사와 단체, 326명의 작가와 연사, 416개 프로그램이 서울 삼성동 코엑스 A·B1홀을 가득 채웠다. 인공지능(AI) 시대 인간의 의미를 묻는 ‘인간선언 Homo duduri’를 주제로 내건 올해 도서전은 그 어느 때보다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책 축제의 진짜 맛은 주말에 난다. 오는 28일까지 이어지는 도서전은 이제 마지막 사흘만 남겨뒀다. 하지만 아무 계획 없이 들어갔다가는 수많은 부스와 프로그램 사이를 헤매기 쉽다. 남은 주말, 도서전 단골이 추천하는 코스를 따라가봤다. “인간은 무엇인가”…올해 주제부터 읽기도서전에 들어서면 먼저 주제 전시 ‘인간선언 Homo duduri: 2×2=5’를 둘러볼 만하다. 정답과 효율을 향해 달려가는 시대에 인간은 왜 완벽한 답 앞에서도 다시 질문하는지 탐색하는 공간이다. 니체, 괴테, 도스토옙스키 등의 문장과 관람객의 질문이 함께 전시된다.이 질문은 강연장에서도 이어진다. 27일 배우 김신록과 뇌과학자 장동선은 ‘인간과 AI는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를 주제로 대담을 나눈다. 28일에는 소설가 김애란과 박선우가 ‘인간다움’을 이야기한다. AI가 인간을 정교하게 모방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인간의 모순과 복합성을 문학의 언어로 들여다보는 자리다. 강연들은 사전 예약이 마감됐지만 강연장 밖에서도 청강이 가능하다. 김애란·선재스님…놓치기 아까운 무대들해외 작가 프로그램도 눈길을 끈다. 홍콩 출신 소설가 찬와이는 27일 ‘디아스포라의 영혼 되찾
부커상 최종후보작 <고래>로 세계 문학계의 주목을 받은 천명관이 10년 만에 장편소설 <아코디언>으로 돌아왔다. 그의 새 무대는 인공지능과 플랫폼이 일상을 지배하는 현재가 아니라,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1950년대 서울이다. 천명관은 우리가 너무 빨리 잊어버린 도시의 그림자 속으로 독자를 밀어 넣는다.주인공 동이는 피난길에 가족을 잃고 앵벌이 조직에 흘러든 소년이다. 양 목사의 위선과 폭력, 약물 ‘구름탄’의 유혹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아이들의 세계는 잔혹하다. 그러나 천명관은 비참함에 머물지 않는다. 동이가 낡은 아코디언을 만나고, 연이와 거북이, 깜상 같은 친구들과 함께 거리에서 노래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생존기를 넘어 성장과 연대의 서사로 확장된다.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압도적인 이야기의 힘이다. <고래>가 그랬듯 천명관의 문장은 거침없이 질주한다. 구걸은 공연이 되고, 폐허는 무대가 된다. '목포의 눈물', '베사메무초' 같은 유행가들이 흐르는 가운데 전후 서울의 냄새와 소리, 빛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아코디언>은 약한 존재들이 어떻게 서로의 숨을 붙들고 삶을 이어가는지를 묻는 소설이다. 잔혹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생명력과 희망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접히고 펼쳐질 때마다 숨을 토해내는 악기처럼, 이 소설은 구겨진 삶의 주름 속에서 가장 뜨거운 리듬을 길어 올린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1987년 10월 16일 금요일 밤. 미국의 생방송 TV 프로그램 ‘월스트리트 위크’에 출연한 한 투자자가 뜻밖의 경고를 내놓았다. “시장이 매우 위험해 보입니다. 조만간 주식시장이 붕괴할 것입니다”당시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낙관론에 젖어 있었고, 진행자조차 그의 발언을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불과 사흘 뒤인 10월 19일, 미 증시는 역사상 최악의 하루를 맞는다. 다우존스지수가 하루 만에 22.6% 폭락한 ‘블랙 먼데이’다.놀라운 것은 그 투자자가 이미 자신의 펀드 자산 상당 부분을 현금화한 상태였다는 사실이다. 시장이 붕괴하는 동안 그는 손실을 최소화했고, 그해 약 50%에 이르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 주인공이 바로 마틴 츠바이크다.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마틴 츠바이크의 위대한 투자 원칙>은 바로 이 전설적인 투자자의 대표작이다. 미국에서는 수십 년 동안 투자자들의 필독서로 꼽혀온 고전이다. 하지만 투자서가 넘쳐나는 시대에 굳이 1980년대 쓰여진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의외로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는다.오늘날 투자자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 건의 뉴스와 유튜브 영상, 증권사 보고서가 쏟아진다. 하지만 정보가 많다고 반드시 좋은 투자 판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이 중요한 신호이고 무엇이 단순한 소음인지 구분하기가 더 어려워졌다.츠바이크의 투자 철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는 시장의 소음이 아니라 데이터가 보내는 신호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래를 예언하려 하기보다 시장이 실제로 보여주
"경제학의 '효용(utility)' 개념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다 보면 결국 에피쿠로스까지 올라가더라고요." 국내에서 손꼽히는 연금 전문가인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가 최근 철학서 <서른의 불안을 다루는 법>을 펴냈다. 복지·재정정책을 평생 연구해온 경제학자가 2300년 전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를 주제로 책을 낸 것이 다소 의외다. 김 교수는 2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학의 핵심 개념인 효용과 후생을 탐구하던 중 에피쿠로스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경제학에서는 효용의 극대화와 비용의 최소화를 사실상 같은 개념으로 보는데, 에피쿠로스 역시 유사한 접근 방식을 보였다"며 "쾌락을 억지로 키우는 게 아니라 인생의 '불안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후생을 정의했다는 점이 현대 경제학과 맞닿아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연구를 이어가면서 에피쿠로스가 흔히 알려진 '쾌락주의자'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라는 사실에 매료됐다고 했다. "그가 말한 쾌락은 말초적이고 단기적인 것이 아니에요. 에피쿠로스는 정신적 동요가 없는 평온한 상태 자체를 좋은 삶으로 봤어요." 흥미로운 점은 카를 마르크스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 역시 에피쿠로스였다는 사실이다. 김 교수는 "주류 경제학의 효용 이론과 마르크스주의라는 상반된 두 흐름이 모두 한 철학자에게서 출발했다는 점에 무척 감명받았다"고 했다. 2300년 전 인물이지만 에피쿠로스의 시각은 놀랍도록 현대적이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천둥이 치면 신의 노여움이라고 했던 시대에 그는 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고
첫 장편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로 전 세계 100만 독자를 사로잡은 황보름 작가(사진)가 또 한 번 한국 출판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두 번째 장편소설 <윗집 부부>가 책이 나오기도 전에 15개국에 판권 선판매를 확정하며, 총 선인세 5억 원 이상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켰다.출판사 클레이하우스에 따르면 오는 24일 정식 출간되는 <윗집 부부>는 현재 스페인, 영국, 미국, 브라질, 일본 등 대륙과 언어권을 넘나들며 출판업계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총 선인세 규모 5억원은 한국에서 출간되기 전 원고 상태로 이뤄진 계약으로는 역대 최대 수준으로 평가된다.해외 판권 수출을 담당한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는 “수십 년간 출판업계에 몸담았지만 이런 사례는 처음”이라며 “보통은 국내 출간 이후 반응을 확인한 뒤 해외 수출이 이뤄지는데, 이번 작품은 이례적으로 출간 전부터 세계 각국 출판사들이 앞다퉈 계약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이번 성과의 배경에는 황 작가의 전작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글로벌 흥행이 자리하고 있다. 2022년 출간된 이 작품은 현재까지 전 세계 50개국에 번역 출간돼 누적 판매 100만부를 돌파했다.신작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70대 오경직이 윗집 신혼부부와 교류하며 아이를 낳아달라고 설득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저출생, 고령화, 세대 갈등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박혜진 문학평론가는 “개인의 위로를 넘어 시대적 차원의 위안을 전하는 ‘소셜 필굿(Social Feel-Good)’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홍 대표는 “역대 수출된 한국 소설 가운데 전 세계적으
첫 장편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로 전 세계 100만 독자를 사로잡은 황보름 작가가 또 한 번 한국 출판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두 번째 장편소설 <윗집 부부>가 책이 나오기도 전에 전 세계 15개국에 판권 선판매를 확정하며, 총 선인세 5억 원 이상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켰다.출판사 클레이하우스에 따르면 오는 24일 정식 출간되는 <윗집 부부>는 현재 스페인, 영국, 미국, 브라질, 일본 등 대륙과 언어권을 넘나들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총 선인세 규모 5억 원은 한국에서 출간되기 전 원고 상태로 이뤄진 계약으로는 역대 최대 수준으로 평가된다.해외 판권 수출을 담당한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는 “수십 년간 출판업계에 몸담았지만 이런 사례는 처음”이라며 “보통은 국내 출간 이후 반응을 확인한 뒤 해외 수출이 이뤄지는데, 이번 작품은 출간 전부터 세계 각국 출판사들이 앞다퉈 계약 의사를 밝힌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이번 성과의 배경에는 황 작가의 전작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글로벌 흥행이 자리하고 있다. 2022년 출간된 이 작품은 현재까지 전 세계 50개국에 번역 출간됐으며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했다. 영문판은 30만 부 이상 판매됐고, 브라질과 튀르키예 판본은 각각 15만 부 이상 팔렸다. 일본과 스페인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또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1위, 굿리즈 초이스 어워드 소설 부문 3위, 더블린 문학상 롱리스트 선정 등 해외 문학상에서도 주목받았다.신작 <윗집 부부>는 그동안 한국 문학이 해외 시장을 공략해 온 이른바 ‘힐링 소설’의 문법을 과감히 탈피했다는 점에
출근길 지하철 안. 사람들이 쉼 없이 넘기는 스마트폰 화면엔 비관적인 소식이 가득하다. 기후위기, 전쟁, 인플레이션, 인공지능(AI)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짜증과 무력감이 동시에 밀려온다.‘세상은 완전히 망해가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루카스 노이마이어는 이 지점에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말 세상은 망해가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뇌가 그렇게 해석하도록 설계되어 있는가.”‘양자물리학자가 세상을 낙관하는 이유’라는 부제가 붙은 신간 <모든 것이 잘될 수밖에>는 제목부터 과감하다.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양자물리학을 연구하는 저자는 과학과 철학, 심리학을 넘나들며 현대인의 비관주의를 파헤친다. 물리학 교양서나 흔한 자기계발서는 아니다. 현실을 바라보는 인간의 인식 체계를 탐구하는 독특한 사유의 기록에 가깝다.책은 평범한 직장인 ‘나’와 노숙자 ‘지로니모’의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회적 낙오자로 보이는 지로니모는 사실상 소크라테스적 현자 역할을 맡는다. 직장 불안, 인간관계, AI, 비트코인, 기후위기, 명상과 의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주인공의 고정관념을 흔든다.책의 핵심 명제는 단순하다. ‘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저자는 ‘시뮬레이션’ 개념을 제시한다. 인간은 현실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기관이 수집한 정보를 뇌가 재구성한 내부 모델을 경험한다는 것이다.우리가 객관적 현실을 본다고 믿지만 사실은 각자의 뇌가 만들어낸 해석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주장이다. 따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갈등은 왜 점점 격렬해지는가.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왜 상대를 틀린 것을 넘어 ‘악’으로 규정하는가. <선악의 발명>은 오늘날의 분열과 대립을 인간 도덕성의 진화라는 긴 역사 속에서 해석하는 교양서다.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에서 윤리학을 연구하는 하노 자우어는 진화생물학, 문화인류학, 사회심리학, 인지과학 등 다양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500만 년에 걸친 도덕의 역사를 추적한다.저자에 따르면 도덕은 초월적 진리가 아니라 인간이 더 큰 규모의 협력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사회적 장치다. 처벌과 규범, 위계질서, 평등과 개인주의의 발전 역시 모두 협력의 범위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특히 책은 오늘날의 정치적 양극화와 문화 전쟁을 도덕의 붕괴가 아니라 도덕의 작동 방식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가치와 규범을 지키려 하며, 불평등과 불안이 커질수록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경향도 강해진다는 것이다.그럼에도 저자는 비관에 머물지 않는다. 자유와 안전, 배려와 관용 같은 보편적 가치가 여전히 인류에게 공통의 토대가 되고 있다고 강조한다.설지연 기자
‘좋은 제품만 만들면 성공할 수 있을까.’신간 <로비의 경제학>은 오늘날 기업 경쟁의 무대가 더 이상 시장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말한다. 반도체 보조금, 전기차 세액공제, 인공지능 규제, 공급망 정책처럼 정부가 만드는 규칙이 기업의 투자와 수익, 나아가 산업의 흥망을 좌우하는 시대다. 이 책은 기업들이 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정부와 의회, 규제기관을 상대로 움직이는지 그 배경을 경제학의 언어로 설명한다.한국 사회에서 ‘로비’는 대개 정경유착이나 뒷거래를 연상시키는 부정적 단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과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로비는 공개와 기록, 감시의 틀 안에서 정책 형성 과정의 일부로 작동하며, 기업은 정보를 제공하고 정책 결정자는 산업 현장의 데이터를 얻는다는 것이다.책은 로비를 무조건 미화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것이 정보 전달과 신호, 조직 역량, 정책 설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균형 있게 분석한다.특히 엔비디아, 구글, 애플, 보잉, 록히드 마틴 등 글로벌 기업들의 사례는 흥미롭다. 이들 기업은 제품 경쟁뿐 아니라 규칙을 둘러싼 경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사업 환경을 만들어간다. LG글로벌전략개발원에서 미주 지역 대외협력 및 정책 대응 업무를 맡고 있는 저자 진주화는 미국 의회와 대사관, 글로벌 기업의 대외협력 현장을 두루 경험한 경제학자다. 그는 정보의 경제학, 집단행동이론, 자원기반이론, 지대추구이론 등 다양한 경제학 이론으로 로비를 풀어내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정책과 시장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 기업 경쟁의 새로운 무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주목할 만한 경제 교양서다.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갈등은 왜 점점 격렬해지는가.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왜 상대를 틀린 것을 넘어 '악'으로 규정하는가. <선악의 발명>은 오늘날의 분열과 대립을 인간 도덕성의 진화라는 긴 역사 속에서 해석하는 교양서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에서 윤리학을 연구하는 하노 자우어는 진화생물학, 문화인류학, 사회심리학, 인지과학 등 다양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500만 년에 걸친 도덕의 역사를 추적한다.저자에 따르면 도덕은 초월적 진리가 아니라 인간이 더 큰 규모의 협력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사회적 장치다. 처벌과 규범, 위계질서, 평등과 개인주의의 발전 역시 모두 협력의 범위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특히 책은 오늘날의 정치적 양극화와 문화 전쟁을 도덕의 붕괴가 아니라 도덕의 작동 방식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가치와 규범을 지키려 하며, 불평등과 불안이 커질수록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경향도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비관에 머물지 않는다. 자유와 안전, 배려와 관용 같은 보편적 가치가 여전히 인류에게 공통의 토대가 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선과 악에 대한 익숙한 통념을 넘어, 우리가 왜 갈등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성찰하게 만든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좋은 제품만 만들면 성공할 수 있을까.'신간 <로비의 경제학>은 오늘날 기업 경쟁의 무대가 더 이상 시장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말한다. 반도체 보조금, 전기차 세액공제, 인공지능 규제, 공급망 정책처럼 정부가 만드는 규칙이 기업의 투자와 수익, 나아가 산업의 흥망을 좌우하는 시대다. 이 책은 기업들이 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정부와 의회, 규제기관을 상대로 움직이는지 그 배경을 경제학의 언어로 설명한다. 한국 사회에서 '로비'는 대개 정경유착이나 뒷거래를 연상시키는 부정적 단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과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로비는 공개와 기록, 감시의 틀 안에서 정책 형성 과정의 일부로 작동하며, 기업은 정보를 제공하고 정책 결정자는 산업 현장의 데이터를 얻는다는 것이다.책은 로비를 무조건 미화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것이 정보 전달과 신호, 조직 역량, 정책 설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균형 있게 분석한다. 특히 엔비디아, 구글, 애플, 보잉, 록히드 마틴 등 글로벌 기업들의 사례는 흥미롭다. 이들 기업은 제품 경쟁뿐 아니라 규칙을 둘러싼 경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사업 환경을 만들어간다. LG글로벌전략개발원에서 미주 지역 대외협력 및 정책 대응 업무를 맡고 있는 저자 진주화는 미국 의회와 대사관, 글로벌 기업의 대외협력 현장을 두루 경험한 경제학자다. 그는 정보의 경제학, 집단행동이론, 자원기반이론, 지대추구이론 등 다양한 경제학 이론으로 로비를 풀어내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의 강점은 로비를 음모론이나 정치 스캔들의 소재가 아닌 현대 산업사회의 구조적 현상으로
점심시간을 앞둔 서울 회기동 연화사. 공양간 앞에는 기말고사 기간임에도 가방을 멘 대학생들로 긴 줄이 늘어섰다.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2’를 통해 이름을 알린 선재스님(사진)이 직접 점심공양에 나섰기 때문이다.15일 열린 ‘청년밥심(心)’ 행사에는 경희대와 한국외대 등 인근 대학생 120명이 공양간을 가득 메웠다. 청년밥심은 조계종이 대학생의 식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운영하는 무료 식사 지원 사업이다. 평소에도 ‘절밥 맛집’으로 입소문이 난 연화사지만, 이날은 선재스님을 보기 위해 찾은 학생들로 한층 북적이는 모습이었다.상에 오른 음식은 당근국수를 비롯해 연잎밥, 두부짜글이, 죽순오이무침, 상추겉절이, 양배추흑임자무침, 애호박·가지전, 참외무침, 오이지부침, 김치, 과일방아화채까지 모두 11가지다. 특히 당근국수는 ‘흑백요리사2’에서 소개되며 화제를 모은 메뉴다.선재스님은 “공양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몸과 마음, 영혼을 함께 돌보는 일”이라며 “음식에는 자연의 생명과 많은 사람의 정성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한 음식을 먹고 건강한 생각을 하며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선재스님에게 음식은 오랫동안 수행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강원도 산골에서 자라 자연과 가까이 지낸 그는 출가 후 사찰음식 연구와 보급에 매진했다. 계절에 따라 나는 재료를 활용하고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철학으로 사찰음식의 대중화에 힘썼다. 최근에는 방송에서 회색 승복 차림으로 스타 셰프들과 경쟁하는 모습이 화제를 모았다.선재스님은 “2년 전 약속했는
1998년, 민음사 창립자 박맹호 회장은 “인류 문화의 정수를 우리말로 읽게 하겠다”는 포부로 세계문학전집 첫 열 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로부터 28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이달 단일 시리즈로는 국내 최초로 500권을 돌파했다.15일 민음사는 500번째 책으로 20세기 디아스포라 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안삼환 옮김)를 출간했다고 밝혔다. 1946년 독일에서 출간돼 현지 교과서에도 실린 이 작품은 식민지 시기 조선을 떠나 독일로 건너간 한 청년의 자전적 삶을 담았다.세계문학전집은 민음사 창립 30주년을 앞둔 1995~1996년께 기획에 착수했다. 박 회장과 김우창·유종호·안삼환·정명환 등 편집위원들이 꾸린 간행위원회는 “새로운 기획, 새로운 번역, 새로운 편집”을 모토로 내걸고, 당시 출판계에 흔했던 중역과 무단 번역을 배제했다. 대신 원전 번역과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원칙으로 삼았다. 약 3년의 준비 끝에 1998년 8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이윤기 옮김)를 포함한 10권을 동시 출간하며 전집의 역사를 시작했다.현재까지 38개국 245명의 작가가 쓴 394편의 작품이 210명의 번역가를 통해 소개됐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32명의 작품 99종도 포함됐다. 전집은 1만3200쇄를 거듭하며 누적 발행 부수 약 2300만 부에 이른다. 500권의 분량을 페이지 길이로 환산하면 약 43.65㎞로 마라톤 풀코스(42.195㎞)보다 길다.가장 많이 팔린 작품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2000년 출간 이후 약 81만 부가 판매됐다. 2016년 방탄소년단의 앨범 ‘WINGS’가 이 작품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판매가 더욱 늘었다. 이어 J. D. 샐린저의 <호밀밭
1998년, 민음사 창립자 박맹호 회장은 "인류 문화의 정수를 우리말로 읽게 하겠다"는 포부로 세계문학전집 첫 열 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로부터 28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이달 단일 시리즈로는 국내 최초로 500권을 돌파했다. 15일 민음사는 500번째 책으로 20세기 디아스포라 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안삼환 옮김)를 출간했다고 밝혔다. 1946년 독일에서 출간돼 현지 교과서에도 실린 이 작품은 식민지 시기 조선을 떠나 독일로 건너간 한 청년의 자전적 삶을 담았다. 세계문학전집은 민음사 창립 30주년을 앞둔 1995~1996년께 기획에 착수했다. 박 선대 회장과 김우창·유종호·안삼환·정명환 등 편집위원들이 꾸린 간행위원회는 "새로운 기획, 새로운 번역, 새로운 편집"을 모토로 내걸고, 당시 출판계에 흔했던 중역과 무단 번역을 배제했다. 대신 원전 번역과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원칙으로 삼았다. 약 3년의 준비 끝에 1998년 8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이윤기 옮김)를 포함한 10권을 동시 출간하며 전집의 역사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38개국 245명의 작가가 쓴 394편의 작품이 210명의 번역가를 통해 소개됐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32명의 작품 99종도 포함됐다. 전집은 1만3200쇄를 거듭하며 누적 발행 부수 약 2300만 부에 이른다. 500권의 분량을 페이지 길이로 환산하면 약 43.65㎞로 마라톤 풀코스(42.195㎞)보다 길다.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2000년 출간 이후 약 81만 부가 판매됐다. 2016년 방탄소년단의 앨범 'WINGS'가 이 작품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판매가 더욱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신작 <모럴 앰비션>은 전작 <휴먼카인드>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휴먼카인드>가 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믿음을 복원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 책은 그 선함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라는 실천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에서 출발해 삶의 방향과 사회적 책임으로 나아가는 셈이다.네덜란드의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성공’이라는 현대 사회의 가장 강력한 신화를 겨냥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간명하다. 왜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세대가 실존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 재능을 쏟는 대신, 광고 클릭 수를 늘리거나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달리고 있는가. 기후 위기, 극단적 불평등, 신기술의 윤리적 공백 같은 문제들은 충분한 인력과 자원을 배분받지 못한 채 방치된다는 지적이다.저자는 이를 ‘재능의 낭비’라고 부른다. 그리고 연봉이나 지위가 아니라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삶을 ‘모럴 앰비션’, 즉 선한 야망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자기희생을 강요하는 도덕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바꾸겠다는 강한 야망을 품되, 그 기준을 개인적 성공이 아니라 사회적 기여에 두자는 제안이다.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저자 특유의 스토리텔링이다. 노예제 폐지 운동가 토머스 클락슨, 말라리아 퇴치 운동을 이끈 롭 매서, 미국 민권운동의 상징 로자 파크스까지 역사를 바꾼 인물들은 우연한 영웅이 아니라 치밀한 전략과 실천력을 갖춘 행동가였음을 보여준다.저자는 우리가 흔히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얼마나 시대적 관습에 불과한지를 집요하게 파고
인공지능과 기술 혁신이 하루가 다르게 세상을 바꾸는 시대다. 무엇을 배워야 하고,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불안도 커진다.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의 신간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이런 조급한 질문에 이런 답을 내놓는다. 앞으로 무엇이 변할지를 예측하기보다, 무엇이 변하지 않을지를 먼저 살피라. '알쓸신잡' 등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친숙한 김 교수는 물리학의 핵심 원리에서 출발한다. 물리학이 에너지 보존 법칙처럼 변하지 않는 물리량을 찾는 학문이라면, 우리 역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의 기준이 될 '상수'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책은 자연법칙과 인간 본성, 욕망과 편향, 역사와 문명,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특성 등 네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28편의 글을 엮었다. 인상적인 것은 과학 지식을 삶의 통찰로 연결하는 능력이다.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알고리즘, 반복적으로 흥망성쇠를 겪는 문명의 역사, 의미를 갈망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과학 교양서이면서도 사회 비평서이자 인문 에세이의 성격을 함께 지닌다. 저자는 길 잃은 배를 인도하는 것은 파도가 아니라 북극성이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 대한 해설서가 아니라, 변화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한 기준을 제시하는 책이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일수록 오히려 오래 남는 질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신작 <모럴 앰비션>은 전작 <휴먼카인드>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휴먼카인드>가 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믿음을 복원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 책은 그 선함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라는 실천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에서 출발해 삶의 방향과 사회적 책임으로 나아가는 셈이다. 네덜란드의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성공'이라는 현대 사회의 가장 강력한 신화를 겨냥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간명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세대가 실존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 재능을 쏟는 대신, 광고 클릭 수를 늘리거나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달리고 있는가. 기후 위기, 극단적 불평등, 신기술의 윤리적 공백 같은 문제들은 충분한 인력과 자원을 배분받지 못한 채 방치된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이를 '재능의 낭비'라고 부른다. 특히 컨설팅, 금융, 빅테크를 '재능의 버뮤다 삼각지대'라고 본다. 그리고 연봉이나 지위가 아니라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삶을 '모럴 앰비션', 즉 선한 야망이라 정의한다. 이는 자기희생을 강요하는 도덕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바꾸겠다는 강한 야망을 품되, 그 기준을 개인적 성공이 아니라 사회적 기여에 두자는 제안이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저자 특유의 스토리텔링이다. 노예제 폐지 운동가 토머스 클락슨, 말라리아 퇴치 운동을 이끈 롭 매서, 미국 민권운동의 상징 로자 파크스까지 역사를 바꾼 인물들은 우연한 영웅이 아니라 치밀한 전략과 실천력을 갖춘 행동가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로자 파크스를
출근길 지하철 안. 사람들이 쉼 없이 넘기는 스마트폰 화면엔 비관적인 소식이 가득하다. 기후위기, 전쟁, 인플레이션, 인공지능(AI)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짜증과 무력감이 동시에 밀려온다.'세상은 완전히 망해가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루카스 노이마이어는 이 지점에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말 세상은 망해가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뇌가 그렇게 해석하도록 설계되어 있는가."'양자물리학자가 세상을 낙관하는 이유'라는 부제가 붙은 신간 <모든 것이 잘될 수밖에>는 제목부터 과감하다.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양자물리학을 연구하는 저자는 과학과 철학, 심리학을 넘나들며 현대인의 비관주의를 해부한다. 물리학 교양서나 흔한 자기계발서는 아니다. 현실을 바라보는 인간의 인식 체계를 탐구하는 독특한 사유의 기록에 가깝다.책은 평범한 직장인 '나'와 노숙자 '지로니모'의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회적 낙오자로 보이는 지로니모는 사실상 소크라테스적 현자 역할을 맡는다. 직장 불안, 인간관계, AI, 비트코인, 기후위기, 명상과 의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주인공의 고정관념을 흔든다. 책의 핵심 명제는 단순하다. '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저자는 '시뮬레이션' 개념을 제시한다. 인간은 현실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기관이 수집한 정보를 뇌가 재구성한 내부 모델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객관적 현실을 본다고 믿지만 사실은 각자의 뇌가 만들어낸 해석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많은
바야흐로 월드컵이 개막했다. 그런데 올 시즌 국내 축구 팬들의 심장을 가장 뜨겁게 달군 건 국가대표팀이 아니다. K리그, 그것도 2부 리그다. 이 이례적인 관심의 중심에 수원삼성블루윙즈의 이정효 감독이 있다.그는 작년까지 광주FC를 이끌며 한국 축구계의 판도를 바꿨다. 재정적으로 열세인 시민구단을 K리그2 우승과 승격으로 이끌었고, 승격 직후에는 K리그1 3위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썼다. 화끈한 공격 축구와 감독의 스타성은 K리그를 보지 않던 이들까지 경기장으로 끌어들였다.하지만 그의 선수 시절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부산에서 12년을 뛴 원클럽맨이지만 국가대표와는 인연이 없었다. 대학과 프로 입단 동기인 안정환이 한국 축구 최고의 스타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의 한계를 누구보다 절실히 마주해야 했고, 그의 선수 생활엔 늘 아쉬움이 남았다. 최근 출간한 에세이 <정답은 있다>에는 좌절을 견디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온 그의 신념과 태도가 담겼다. 한 축구인의 기록이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일과 삶에 관한 이야기다. 경기 화성시 수원삼성블루윙즈 클럽하우스에서 이 감독을 만났다.▷첫 에세이를 펴냈습니다.“비주류로 살아온 제 경험을 털어놔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묵묵히 실력을 쌓고도 앞이 보이지 않아 힘든 분, 축구인뿐 아니라 사회 초년생과 벽에 부딪힌 직장인들에게 때를 기다리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책에 친구인 안정환 씨와의 일화가 나옵니다. 나보다 잘났다고 느끼는 친구라면 질투와 열등감으로 멀어지기 쉬운데 두 분은 돈독한 우정을 이어오고 있네요.“그냥 인정하면 됩니다. 남
네덜란드의 어느 슈퍼마켓에는 ‘대화형 계산대(Kletskassa)’가 있다. 빠른 처리를 원하는 소비자가 줄을 서는 셀프계산대 바로 옆, 서두를 필요 없이 계산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마련된 창구다. 디지털 자동화의 물결 속에서 역방향을 택한 이 실험은 생각보다 인기를 끌었다. 특히 고령층 사이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짧은 대화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하루 중 유일한 사람과의 접촉이기 때문이다.미국 존스홉킨스대 사회학과 교수 앨리슨 J. 퓨의 신간 <사람의 마지막 직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넘쳐나는 시대에 그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잃고 있는가?’ 저자의 답은 의외로 직업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 즉 연결노동이다.저자가 말하는 연결노동은 단순한 감정노동과 다르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그 이해를 다시 상대에게 비쳐주는 일이다. 교사가 학생의 불안을 알아채고, 의사가 환자의 두려움을 이해하며, 상담사가 내담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퓨는 이를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술이자, AI가 가장 대체하기 어려운 노동이라고 규정한다.이 책의 강점은 추상적인 미래 담론 대신 구체적인 현장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저자는 100여 명의 연결노동자를 인터뷰하며 자동화가 이미 교육·의료·상담 현장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기록한다. 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콘텐츠 플랫폼으로 분해되고, 의사는 환자보다 데이터를 더 오래 들여다보며, 상담사는 정해진 대본에 따라 응답하도록
<허삼관 매혈기>와 <인생>으로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위화가 산문집 <산곡미풍>을 펴냈다. 책 제목은 산골짜기의 산들바람이라는 뜻이다.이번 책에서 그는 역사와 사회 대신 자신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아들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살아온 시간들이 담담한 문장으로 펼쳐진다.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아버지에 대한 회상이다. 위화는 의사였던 아버지를 엄격하고 무뚝뚝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하던 그 거리감을, 자신이 아버지가 된 뒤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며 느낀 기쁨과 불안, 책임감에 대한 고백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린다.위화의 문장은 여전히 절제되어 있다. 그는 가난과 외로움을 비극으로 과장하지 않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한다. 친구의 눈물과 장례식장의 슬픔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읽어내는 시선이 돋보인다.위화는 거창한 인생론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선물은 대부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된다는 위화의 말처럼,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일이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산골짜기를 스치는 작은 바람처럼 잔잔하지만 오래 남는 산문집이다.설지연 기자
엘리에저 유드코스키는 인공지능(AI) 안전 분야의 대표적 사상가다. 그는 모든 분야에서 사람을 능가하는 인공일반지능(AGI)이 등장하면 인류가 소멸할 수 있다며, 핵무기로 위협해서라도 AI 연구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인터뷰에서는 “완벽한 건강, 영생, 초인본주의가 미래 시나리오에 당연히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종말을 경고하면서도 기술이 열어줄 찬란한 미래를 꿈꾸는 것이다. 이 모순적인 장면이 <기술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착각>의 출발점이다.천체물리학자 출신 과학 저널리스트 애덤 베커는 실리콘밸리를 지배하는 사상의 뿌리를 추적한다. 효율적 이타주의, 장기론, 특이점, AI 가속주의는 서로 다른 흐름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이들은 하나의 거대한 이데올로기, 곧 ‘기술을 통한 구원’이라는 믿음으로 수렴한다. 그는 유드코스키를 비롯한 핵심 인물을 직접 인터뷰하고, 그들의 논문과 저작을 과학적으로 검증한다. 이 책이 단순한 비판서가 아니라 탐사보도처럼 읽히는 이유다.논지는 세 갈래다. 첫째, 이들이 내세우는 미래 비전은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 둘째, 설령 실현된다고 해도 인류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 셋째, 그 실현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지금 여기에서 권력으로 작동한다.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 이론이 대표적이다. 2045년 인간을 뛰어넘는 기계 지능이 탄생한다는 그의 예언은 실리콘밸리의 복음이 됐고, 커즈와일은 구글 엔지니어링 디렉터가 됐다. 베커는 그 근거인 ‘수확 가속의 법칙’이 무어의 법칙을 기술사 전체로 무리하게 확장한 데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커즈와일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인생>과 <허삼관 매혈기>로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위화가 산문집 <산곡미풍>을 펴냈다. 책 제목은 산골짜기의 산들바람이라는 뜻이다. 이번 책에서 그는 역사와 사회 대신 자신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아들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살아온 시간들이 담담한 문장으로 펼쳐진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아버지에 대한 회상이다. 위화는 의사였던 아버지를 엄격하고 무뚝뚝한 존재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그 거리감을, 자신이 아버지가 된 뒤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며 느낀 기쁨과 불안, 책임감에 대한 고백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린다. 위화의 문장은 여전히 절제되어 있다. 그는 가난과 외로움을 비극으로 과장하지 않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친구의 눈물과 장례식장의 슬픔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읽어내는 시선이 돋보인다. 위화는 거창한 인생론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선물은 대부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된다는 위화의 말처럼,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일이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산골짜기를 스치는 작은 바람처럼 잔잔하지만 오래 남는 산문집이다.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네덜란드의 어느 슈퍼마켓에는 '대화형 계산대(Kletskassa)'가 있다. 빠른 처리를 원하는 고객이 줄을 서는 셀프계산대 바로 옆, 서두를 필요 없이 계산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마련된 창구다. 디지털 자동화의 물결 속에서 역방향을 택한 이 실험은 생각보다 인기를 끌었다. 특히 고령층 사이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짧은 대화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하루 중 유일한 사람과의 접촉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사회학과 교수 앨리슨 J. 퓨의 신간 <사람의 마지막 직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넘쳐나는 시대에 그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잃고 있는가?' 저자의 답은 의외로 직업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 즉 연결노동이다. 저자가 말하는 연결노동은 단순한 감정노동과 다르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그 이해를 다시 상대에게 비춰주는 일이다. 교사가 학생의 불안을 알아채고, 의사가 환자의 두려움을 이해하며, 상담사가 내담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행위가 여기에 속한다. 퓨는 이를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술이자, AI가 가장 대체하기 어려운 노동이라고 규정한다. 이 책의 강점은 추상적인 미래 담론 대신 구체적인 현장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저자는 100여 명의 연결노동자를 인터뷰하며 자동화가 이미 교육·의료·상담 현장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기록한다. 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콘텐츠 플랫폼으로 분해되고, 의사는 환자보다 데이터를 더 오래 들여다보며, 상담사는 정해진 대본에 따라
엘리에저 유드코스키는 인공지능(AI) 안전 분야의 대표적 사상가다. 그는 모든 분야에서 사람을 능가하는 인공일반지능(AGI)이 등장하면 인류가 소멸할 수 있다며, 핵무기로 위협해서라도 AI 연구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인터뷰에서는 "완벽한 건강, 영생, 초인본주의가 미래 시나리오에 당연히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종말을 경고하면서도 기술이 열어줄 찬란한 미래를 꿈꾸는 셈이다. 이 모순적인 장면이 <기술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착각>의 출발점이다. 천체물리학자 출신 과학 저널리스트 애덤 베커는 실리콘밸리를 지배하는 사상의 뿌리를 추적한다. 효율적 이타주의, 장기론(longtermism), 특이점, AI 가속주의는 서로 다른 흐름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이들은 하나의 거대한 이데올로기, 곧 '기술을 통한 구원'이라는 믿음으로 수렴한다. 그는 유드코스키를 비롯한 핵심 인물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그들의 논문과 저작을 과학적으로 검증한다. 이 책이 단순한 비판서가 아니라 탐사보도처럼 읽히는 이유다. 논지는 세 갈래다. 첫째, 이들이 내세우는 미래 비전은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 둘째, 설령 실현된다 해도 인류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 셋째, 그 실현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지금 여기에서 권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 이론이 대표적이다. 2045년 인간을 뛰어넘는 기계 지능이 탄생한다는 그의 예언은 실리콘밸리의 복음이 됐고, 커즈와일은 구글 엔지니어링 디렉터가 됐다. 베커는 그 근거인 '수확 가속의 법칙'이 무어의 법칙을 기술사 전체로 무리하게 확장한 데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커즈와일이 세
월드컵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도 많은 국내 축구 팬들의 시선은 의외의 곳을 향해 있다. 국가대표팀보다 K리그, 그것도 2부 리그가 유독 뜨겁다. 이 이례적인 관심의 중심에는 수원삼성블루윙즈의 이정효 감독이 있다.그는 작년까지 광주FC를 이끌며 한국 축구계의 판도를 바꿨다. 재정적으로 열세인 시민구단을 K리그2 우승과 승격으로 이끌었고, 승격 직후에는 K리그1 3위 달성에 이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이라는 시민구단 역사상 전례 없는 대기록을 썼다. 거침없는 공격 축구와 강렬한 존재감은 축구팬은 물론 평소 K리그를 보지 않던 이들까지 경기장으로 끌어들였다. 지금 한국 축구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이자, 많은 축구인들이 최고의 전술가로 꼽는 감독이다.하지만 그의 선수 시절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부산에서 12년을 뛴 원클럽맨이었지만 국가대표와는 인연이 없었다. 대학과 프로 입단 동기였던 안정환이 한국 축구 최고의 스타로 성장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는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마주해야 했다. 그래서 그의 선수 생활에는 늘 아쉬움이 남았다.그런 그가 지도자로서는 누구보다 빛나는 커리어를 써 내려가고 있다. 최근 출간한 에세이 <정답은 있다>에는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견디며 끝내 자신만의 답을 찾아온 그의 신념과 태도가 담겨 있다. 축구인의 이야기이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일과 삶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평소 애서가로도 유명한 이정효를 만나 축구와 책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책은 어떻게 출간하게 됐습니까?"몇몇 출판사에서 제안받았지만 처음에는 제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고사했어요. 그러다 비주류
“오성 이항복의 초상화를 보며 상상했다. ‘조선시대에도 포카(포토 카드)가 있었다면?’ 완벽한 45도 각도에 진중한 눈빛, 높은 인지도까지 딱 요즘 아이돌 포카의 모습이 아닌가!”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출간한 <유물멍: 오래 볼수록 사랑스러운 것들>은 박물관 유물이 따분한 옛것이라는 선입견을 뒤집는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학자의 그림을 보면서 연예인의 포토 카드를 떠올리는 식이다. 책을 기획하고 엮은 이는 김미소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이다.북 디자이너 출신인 김 연구관은 1일 “‘잘 팔리는 박물관 책’을 만들겠다는 게 출간의 목표였다”며 “기획의 씨앗은 코로나19 시기 박물관이 운영하던 뉴스레터”라고 말했다. 박물관에선 일주일에 한 번씩 유물 사진 한 장과 짧은 글 한 편을 뉴스레터에 실어 보냈다. 4년 동안 보낸 편지가 쌓여 만들어진 책이 ‘유물멍’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유물멍: 가만히 바라볼수록 좋은 것들>이다. 지난해 1월 출간된 이후 1만 부가 팔리며 화제를 모았다.‘불멍’ ‘물멍’처럼 친숙하면서도 신선한 제목으로 독자의 호응을 얻었다. “유물을 가만히 바라보며 떠오르는 솔직한 느낌을 적는 행위가 현대인의 ‘명상’과 닮았다고 느꼈어요. 여기서 착안해 ‘유물멍’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었죠.”이번에 나온 제2권은 ‘나의 취향 저격 유물’을 주제로 했다. 공모전을 통해 250여 편의 응모작을 받아 60개를 엄선해 실었다. “300~400자짜리 짧은 글이다 보니 인공지능(AI)으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잖아요. 그래서 상투적이지 않은, 자기만의 솔직한 사연이 담긴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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