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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다이아 사도 될까"…부자들은 이미 보석으로 갈아탔다 [설지연의 독설(讀說)]

    “지금 천연 다이아몬드를 사도 될까. 세계 최고가 루비는 왜 반 토막이 났을까. 그리고 왜 지금 자산가들은 가방 대신 보석을 사기 시작했을까.”최근 럭셔리 시장의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 스위스 리치몬트 그룹은 최근 회계연도 사상 최고 매출을 기록했는데, 성장을 이끈 축은 까르띠에와 반클리프 아펠 등 주얼리 부문이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주요 백화점 럭셔리 주얼리 매출은 25~30% 늘어 전체 매출 증가율(1~2%)을 크게 웃돌았다. 젊은 자산가를 중심으로 이른바 '보석 테크'에 대한 관심도 빠르게 확산하는 분위기다.신간 <나는 금 대신 보석을 산다>는 이러한 변화의 배경을 추적한 책이다. 금은 시세가 있지만 보석에는 이야기가 붙는다. 같은 다이아몬드라도 산지와 소유 이력, 거래 경로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고, 어떤 루비는 8년 만에 가치가 반 토막 나기도 한다. 보석의 가격은 스펙만이 아니라 서사와 시장 구조가 겹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시장의 흐름을 읽고 기준을 갖추면 보석은 취향이자 착용할 수 있는 자산이 된다는 게 책의 핵심 메시지다.저자 윤성원은 뉴욕 미국보석감정원(GIA)에서 감정·디자인·세공 전 과정을 공부한 뒤 20여년간 글로벌 경매 시장과 광산, 브랜드 현장을 오가며 보석 산업을 연구해온 하이 주얼리 스페셜리스트다. 국내에서는 아직 낯선 직업이지만 생산자와 판매자, 소비자를 스토리로 연결하는 일종의 '보석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해 왔다.그는 보석을 단순한 사치품이 아닌 경제의 언어로 설명한다. 윤성원 한양대 보석학전공 겸임교수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에서 만났다.▶ 보석감정사이면서 디자인, 세공, 유통까지

    2026.04.14 13:16
  • [책마을] "인간이 자유의지로 선택한다는 건 환상에 불과"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하며 산다고 믿는다. 오늘 아침 마신 아메리카노, 서점 매대에서 고심 끝에 집어 든 책 한 권, 그리고 지금 이 기사를 읽기로 한 결심까지.이 모든 것은 나의 ‘자유의지’가 내린 결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로버트 새폴스키 스탠퍼드대 교수는 신간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를 통해 서늘한 선언을 던진다. “당신의 자유의지는 환상이다.”새폴스키는 전작 <행동>에서 인간의 선과 악을 생물학의 언어로 설명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번 책은 그 논의를 한층 더 밀어붙인다.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마지막 보루처럼 여겨져 온 ‘자유의지’ 자체를 정면으로 해체하는 작업이다.과학과 철학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자유의지 논쟁에 대해 그는 “자유의지는 생물학적 착각”이라고 결론 내린다. 인간의 행동과 판단은 유전자와 뇌, 호르몬, 환경과 문화가 켜켜이 쌓인 결과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는 순간조차 이미 뇌는 행동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책의 핵심 논거는 뇌과학과 신경생물학 연구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의식적으로 결정하기 전, 이미 뇌의 보조운동영역이 먼저 활성화된다는 실험 결과는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에 몇 시간 전의 허기, 최근의 경험, 호르몬 변화, 어린 시절의 환경까지 영향을 미친다.더 거슬러 올라가면 태아기의 영양 상태와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문화까지 작용한다. 인간의 선택은 ‘지금 이 순간’의 결단이라기보다 시간의 층위가 축적된 결과라는 설명이다.새폴스키의 주장은 명확하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이 거대한 연쇄 고

    2026.04.10 18:31
  • [책마을] 지구촌 바닷길 21개로 엿보는 강대국의 힘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세계의 시선은 연일 호르무즈 해협으로 쏠리고 있다. 전 세계 석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이 좁은 해협이 봉쇄될 경우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즉각 흔들린다.최근의 전쟁을 이해하려면 지도 위에서 이 해협의 위치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신간 <지도로 보아야 보인다 2>는 바로 이처럼 “지도를 통해서만 보이는 세계의 구조”를 설명하는 책이다.저자는 프랑스에서 9년째 매주 토요일 방영되는 지정학 프로그램 ‘지도의 이면(Le Dessous des Cartes)’ 진행자로 잘 알려진 에밀리 오브리다. 그는 이번 책에서 호르무즈 해협, 홍해, 남중국해, 흑해, 말라카 해협 등 21세기 국제 정세의 핵심 무대가 된 바닷길 21곳을 중심으로 세계 질서를 읽어낸다. 앞서 1권이 대륙 중심의 지정학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바다라는 새로운 좌표를 제시한다.책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오늘날 세계의 힘의 균형은 더 이상 육지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전 세계 무역의 90%가 해상을 통해 이뤄지고 인터넷 데이터의 98%가 해저 케이블을 따라 이동하는 시대에 바다는 곧 권력의 통로다. 해협 하나의 봉쇄가 곧 세계 경제 전체를 뒤흔드는 이유다.이란 사례는 그 상징적 장면이다. 페르시아만의 유일한 출입구인 호르무즈 해협은 폭이 45㎞에 불과하지만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 수출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목이다. 이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곧 국제 유가와 직결되고, 결국 세계 정치와 군사 전략까지 좌우한다. 바닷길을 장악하는 것이 곧 국가의 힘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홍해 역시 마찬가지다. 수에즈 운하와 연결된 이 항로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세계 3대 해상

    2026.04.10 18:30
  • [책마을] 세상에 바보가 많은 이유가 궁금하다면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탄식한다. 망언을 일삼는 유명인과 가짜 뉴스를 퍼 나르는 지인들 사이에서 “세상에는 왜 이렇게 바보가 많을까”라고. 하지만 노르웨이의 대중 철학자 라르스 스벤젠은 신간 <덜 멍청하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철학>을 통해 가장 먼저 직시해야 할 존재는 바로 ‘거울 속의 멍청이’라고 꼬집는다.저자는 멍청함을 지능의 문제가 아닌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도덕적·철학적 태도’로 정의한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판단력은 퇴보한 ‘어리석음의 황금기’에, 그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세 가지로 해부한다. 남의 말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바보’, 편향된 논리로 그릇된 판단을 내리는 ‘멍청이’ 그리고 이를 고집하는 ‘바보 멍청이’다.특히 정치적 진영 논리와 SNS 알고리즘이 만든 ‘에코체임버’ 속에서 현대인이 어떻게 스스로 생각할 권리를 포기하는지 예리하게 분석한다.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안도감이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결국 공론장은 누가 더 확신에 차서 헛소리를 내뱉는지를 겨루는 경연장이 되고 만다는 지적이다.철학적 깊이와 유머를 겸비한 책이다. 타인의 어리석음에 분노하기보다 내 안의 아집을 먼저 들여다보는 ‘지적 겸손’이야말로, 멍청함의 홍수 속에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라고 얘기한다.설지연 기자

    2026.04.10 18:20
  • 세상에 왜 이렇게 바보가 많은지 궁금한 당신에게 필요한 책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탄식한다. 망언을 일삼는 유명인과 가짜 뉴스를 퍼 나르는 지인들 사이에서 "세상에는 왜 이렇게 바보가 많을까"라고. 하지만 노르웨이의 대중 철학자 라르스 스벤젠은 신간 <덜 멍청하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철학>을 통해 가장 먼저 직시해야 할 존재는 바로 '거울 속의 멍청이'라고 꼬집는다. 저자는 멍청함을 지능의 문제가 아닌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도덕적·철학적 태도'로 정의한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판단력은 퇴보한 '어리석음의 황금기'에, 그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세 가지로 해부한다. 남의 말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바보', 편향된 논리로 그릇된 판단을 내리는 '멍청이', 그리고 이를 고집하는 '바보 멍청이'다. 특히 정치적 진영 논리와 SNS 알고리즘이 만든 '에코체임버' 속에서 현대인이 어떻게 스스로 생각할 권리를 포기하는지 예리하게 분석한다.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안도감이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결국 공론장은 누가 더 확신에 차서 헛소리를 내뱉는지를 겨루는 경연장이 되고 만다는 지적이다.철학적 깊이와 유머를 겸비한 이 책은 "생각한다는 것은 안전한 모방의 항구를 떠나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일"이라며 독자들을 독려한다. 타인의 어리석음에 분노하기보다 내 안의 아집을 먼저 들여다보는 '지적 겸손'이야말로, 멍청함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란 얘기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2026.04.09 16:10
  • 지구촌 바닷길 21곳으로 읽어주는 세계 권력의 질서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세계의 시선은 연일 호르무즈 해협으로 쏠리고 있다. 전 세계 석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이 좁은 해협이 봉쇄될 경우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즉각 흔들린다.최근의 전쟁을 이해하려면 지도 위에서 이 해협의 위치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신간 <지도로 보아야 보인다 2>는 바로 이처럼 “지도를 통해서만 보이는 세계의 구조”를 설명하는 책이다.저자는 프랑스에서 9년째 매주 토요일 방영되는 지정학 프로그램 ‘지도의 이면(Le Dessous des Cartes)’ 진행자로 잘 알려진 에밀리 오브리다. 그는 이번 책에서 호르무즈 해협, 홍해, 남중국해, 흑해, 말라카 해협 등 21세기 국제 정세의 핵심 무대가 된 바닷길 21곳을 중심으로 세계 질서를 읽어낸다. 앞서 1권이 대륙 중심의 지정학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바다라는 새로운 좌표를 제시한다.책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오늘날 세계의 힘의 균형은 더 이상 육지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전 세계 무역의 90%가 해상을 통해 이뤄지고 인터넷 데이터의 98%가 해저 케이블을 따라 이동하는 시대에 바다는 곧 권력의 통로다. 해협 하나의 봉쇄가 곧 세계 경제 전체를 뒤흔드는 이유다.이란 사례는 그 상징적 장면이다. 페르시아만의 유일한 출입구인 호르무즈 해협은 폭이 45㎞에 불과하지만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 수출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목이다. 이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곧 국제 유가와 직결되고, 결국 세계 정치와 군사 전략까지 좌우한다. 바닷길을 장악하는 것이 곧 국가의 힘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홍해 역시 마찬가지다. 수에즈 운하와 연결된 이 항로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세계 3대 해상

    2026.04.09 16:02
  • “당신의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허상”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하며 산다고 믿는다. 오늘 아침 마신 아메리카노, 서점 매대에서 고심 끝에 집어 든 책 한 권, 그리고 지금 이 기사를 읽기로 한 결심까지.이 모든 것은 나의 '자유의지'가 내린 결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로버트 새폴스키 스탠퍼드대 교수는 신간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를 통해 서늘한 선언을 던진다. "당신의 자유의지는 환상이다."새폴스키는 전작 <행동>에서 인간의 선과 악을 생물학의 언어로 설명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번 책은 그 논의를 한층 더 밀어붙인다.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마지막 보루처럼 여겨져 온 '자유의지' 자체를 정면으로 해체하는 작업이다.과학과 철학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자유의지 논쟁에 대해 그는 "자유의지는 생물학적 착각"이라고 결론 내린다. 인간의 행동과 판단은 유전자와 뇌, 호르몬, 환경과 문화가 켜켜이 쌓인 결과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는 순간조차 이미 뇌는 행동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책의 핵심 논거는 뇌과학과 신경생물학 연구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의식적으로 결정하기 전, 이미 뇌의 보조운동영역이 먼저 활성화된다는 실험 결과는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에 몇 시간 전의 허기, 최근의 경험, 호르몬 변화, 어린 시절의 환경까지 영향을 미친다.더 거슬러 올라가면 태아기의 영양 상태와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문화까지 작용한다. 인간의 선택은 '지금 이 순간'의 결단이라기보다 시간의 층위가 축적된 결과라는 설명이다.새폴스키의 주장은 명확하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이 거대한 연쇄 고리 어

    2026.04.09 15:59
  • [책마을] 저항과 혁명의 나라…우리는 이란을 모른다

    전 세계의 시선이 다시 중동으로 쏠리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면서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국가 분쟁의 차원을 뛰어넘는다. 중동 질서와 더불어 지구촌 에너지 체제, 21세기 기술 패권의 교차하는 분수령이다. 급변하는 정세의 본질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도서들을 소개한다. ◇ 지형이 곧 무기미·이란 전쟁을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는 땅에 있다. 팀 마샬의 <지리의 힘 2>는 이란이 왜 외부 압박에 이토록 완강하게 저항하는지 그 ‘지리적 고집’의 근거를 설명한다. 저자는 이란을 ‘지리가 선사한 요새이자 스스로 갇힌 감옥’으로 규정한다. 전작 <지리의 힘 1>이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산맥과 강이라는 물리적 조건 속에서 어떻게 패권을 형성했는지 거시적 틀을 제시했다면, 2권은 그 시선을 구체적인 요충지로 확장한다. 자그로스 산맥 등 험준한 지형이 외세의 침입을 막는 성벽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내부 고립과 폐쇄성을 강화했다는 분석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비대칭 무기로 활용하는 전략 역시 지형적 숙명으로 풀이한다.로버트 D. 카플란의 <지리의 복수>는 이란을 중동 지정학의 핵심 축으로 규정한다. 그는 이란이 이란 고원을 거의 온전히 점유하고 있고, 북쪽으로 카스피해, 남쪽으로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해로 이어지는 해양 접근로를 동시에 확보한 드문 국가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과 풍부한 인구, 에너지 자원은 이란을 중동과 중앙아시아, 남아시아를 잇는 전략적 연결지로 만든다는 것이다. 카플란은 또 이란을 단순한 혁명 국가가 아니라 오랜 페르시아 문명권의

    2026.04.03 17:21
  • [책마을] 비쌀 수록 완벽해질까…결혼식 비용 추적기

    혼인율은 떨어지는데 결혼식 비용은 오른다. 예식장 대관료와 식대는 물가 상승률을 비웃듯 치솟고, 이른바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비용은 부르는 게 값이다.상식과 어긋난 이 역설에서 신간 <수상할 만큼 완벽한 결혼식>은 출발한다. 패션 산업의 과잉 생산을 비판해 온 저자 이소연은 자신의 결혼 준비 경험과 업계 관계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국의 ‘K-웨딩’이 어떻게 설계된 소비 구조인지 집요하게 추적한다.저자는 결혼식 준비 과정을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방식 그대로를 닮아 있는 장기 프로젝트”라고 정의한다. 인생의 단 한 번뿐인 순간을 ‘완벽’하게 장식해야 한다는 강박은 예비부부를 끝없는 소비의 굴레로 밀어 넣는다.프러포즈 대행부터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숍 투어, 추가금이 일상이 된 패키지 계약까지. 축복의 의례여야 할 결혼식은 어느덧 수많은 선택지와 지출 내역으로 점철된 고단한 노동이 된다.책은 웨딩 산업의 소비자 기만적 구조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한 추가금 파티, 불투명한 계산서, 불합리한 취소 수수료 등은 예비부부의 ‘진심’을 볼모로 유지된다.하지만 저자의 시선은 산업의 부조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결혼식이라는 렌즈를 통해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포착한다.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역 불균형, 과잉 소비가 초래한 환경 문제, 그리고 결혼 준비 과정에서 여전히 공고하게 작동하는 가부장적 역할 분담이 그것이다.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결혼식을 ‘정상성’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분기점으로 해석한 부분이다. 입시와 취업이라는

    2026.04.03 17:19
  • [책마을] '20조 스포츠 제국' 일군…F1 산업의 설계자들

    매년 전 세계 20여 개국을 순회하며 개최되는 F1(포뮬러 원)은 연간 누적 시청자 15억 명, 매년 20조 원의 가치를 창출하는 스포츠 비즈니스의 정점이다. 신간 <F1 더 포뮬러>는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였던 F1이 어떻게 현대 스포츠 비즈니스의 지배적 모델로 우뚝 섰는지 그 70년의 궤적을 치밀하게 추적한다.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의 베테랑 기자인 두 저자는 트랙 위의 속도보다 ‘혁신의 속도’에 주목한다. 책은 현대 F1의 기틀을 닦은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기술의 한계를 시험했던 엔지니어 콜린 채프먼과 전통을 브랜드 신화로 승화시킨 엔초 페라리의 대립은 F1 초기 역사를 지탱하는 축이다.특히 책이 주목하는 인물은 수십 년간 F1의 상업적 토대를 구축한 버니 에클스턴이다. 중고차 딜러 출신의 그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TV 중계권의 가치를 간파했다. 그는 각 팀과 서킷 주최 측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담배 자본을 끌어들여 현대적 스폰서십의 개념을 정립했다. 저자들은 에클스턴의 행보를 “스포츠 상업화를 위한 발판을 마련한 쿠데타”라 평한다.책은 F1이 가진 극적인 서사 또한 놓치지 않는다. 아일톤 세나와 알랭 프로스트가 벌였던 사투는 전설적인 라이벌전으로 기록되지만, 저자들은 그 이면의 공학적 계산과 정치적 암투까지 파헤친다.F1을 뒤흔든 스캔들도 흥미롭다. 평범한 복사 가게에서 시작된 1억 달러 규모의 산업 스파이 사건, 승리를 위해 고의로 사고를 조작한 비리 등은 F1이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얼마나 치열한 정보전과 심리전의 장인지를 보여준다. 책은 이러한 요소조차 F1이라는 쇼를 구성하는 핵심 콘텐츠로 소비되는 과정을 담담

    2026.04.03 17:09
  • [책마을] 예일대 엘리트마저 무너뜨린 조현병

    1998년 미국, 예일대 로스쿨을 다니던 천재 청년 마이클 라우도어가 임신한 연인을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조현병 낙인에 맞선 승리자로 추앙받던 인물이었기에 사회적 파장은 더욱 컸다.신간 <슬픈 살인>의 저자 조너선 로즌은 어린 시절 친구였던 마이클의 일생을 추적하며, 그가 왜 ‘희망의 아이콘’에서 ‘비극의 가해자’가 되었는지 집요하게 파고든다.저자는 개인의 회고록을 넘어 정신질환을 대하는 미국 사회의 인식과 제도적 허점을 입체적으로 해부한다. 천재와 환자, 엘리트와 살인자라는 극단적 정체성 사이에서 부서진 한 인간의 삶은 정신질환 관리의 책임을 개인과 시장에 떠넘긴 현대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철저한 취재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이 르포르타주는 단순한 범죄 실화를 넘어선다. 조현병 당사자와 가족, 그리고 우리 사회가 마주해야 할 복잡한 진실을 향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퓰리처상 최종 후보작다운 치밀한 구성과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설지연 기자

    2026.04.03 17:08
  • 예일대 엘리트마저 살인자로 무너뜨린 그 이름, 조현병

    1998년 미국, 예일대 로스쿨을 다니던 천재 청년 마이클 라우도어가 임신한 연인을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조현병 낙인에 맞선 승리자로 추앙받던 인물이었기에 사회적 파장은 더욱 컸다.신간 <슬픈 살인>의 저자 조너선 로즌은 어린 시절 친구였던 마이클의 일생을 추적하며, 그가 왜 ‘희망의 아이콘’에서 ‘비극의 가해자’가 되었는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저자는 개인의 회고록을 넘어 정신질환을 대하는 미국 사회의 인식과 제도적 허점을 입체적으로 해부한다. 천재와 환자, 엘리트와 살인자라는 극단적 정체성 사이에서 부서진 한 인간의 삶은 정신질환 관리의 책임을 개인과 시장에 떠넘긴 현대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철저한 취재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이 르포르타주는 단순한 범죄 실화를 넘어선다. 조현병 당사자와 가족, 그리고 우리 사회가 마주해야 할 복잡한 진실을 향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퓰리처상 최종 후보작다운 치밀한 구성과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2026.04.02 16:33
  • 비쌀 수록 완벽해지노라…신간 '수상할 만큼 완벽한 결혼식'

    혼인율은 떨어지는데 결혼식 비용은 오른다. 예식장 대관료와 식대는 물가 상승률을 비웃듯 치솟고, 이른바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비용은 부르는 게 값이다.상식과 어긋난 이 역설에서 신간 <수상할 만큼 완벽한 결혼식>은 출발한다. 패션 산업의 과잉 생산을 비판해 온 저자 이소연은 자신의 결혼 준비 경험과 업계 관계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국의 ‘K-웨딩’이 어떻게 설계된 소비 구조인지 집요하게 추적한다.저자는 결혼식 준비 과정을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방식 그대로를 닮아 있는 장기 프로젝트”라고 정의한다. 인생의 단 한 번뿐인 순간을 ‘완벽’하게 장식해야 한다는 강박은 예비부부를 끝없는 소비의 굴레로 밀어 넣는다.프러포즈 대행부터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숍 투어, 추가금이 일상이 된 패키지 계약까지. 축복의 의례여야 할 결혼식은 어느덧 수많은 선택지와 지출 내역으로 점철된 고단한 노동이 된다.책은 웨딩 산업의 소비자 기만적 구조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한 추가금 파티, 불투명한 계산서, 불합리한 취소 수수료 등은 예비부부의 ‘진심’을 볼모로 유지된다.하지만 저자의 시선은 산업의 부조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결혼식이라는 렌즈를 통해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포착한다.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역 불균형, 과잉 소비가 초래한 환경 문제, 그리고 결혼 준비 과정에서 여전히 공고하게 작동하는 가부장적 역할 분담이 그것이다.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결혼식을 ‘정상성’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분기점으로 해석한 부분이다. 입시와 취업이라는

    2026.04.02 15:17
  • 그들은 억압의 순간을 두려움없이 마주했다

    ‘격변과 억압의 순간을 두려움 없이 마주했다.’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작들의 공통점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진 비극을 섬세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풀어냈다는 것이다. 노벨 문학상,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작 6편이 31일(현지시간) 발표됐다. 미국·이란 전쟁 등으로 국제 정세의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올해 후보작에는 식민지 지배와 혁명, 전체주의 체제 같은 20세기 세계사 장면을 문학의 렌즈로 다시 비춘 작품들이 다수 포함됐다.부커상이 발표한 최종 후보 6명에는 다니엘 켈만(독일), 마리 은디아예(프랑스), 양솽쯔(대만), 르네 카라바시(불가리아), 시다 바지야르(독일), 아나 파울라 마이아(브라질)가 이름을 올렸다.부커상이 영어로 쓰인 장편소설에 수여하는 상이라면, 인터내셔널 부커상은 영어 외의 언어로 쓰인 작품을 작가와 번역가에게 함께 수여하는 상이다.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작품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 상은 2016년 한강이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와 함께 수상하며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다.올해 후보작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역사적 격변의 순간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이 다수 포함됐다는 점이다. 양솽쯔의 <1938 타이완 여행기>(Taiwan Travelogue)는 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 지배 아래 놓인 대만을 배경으로 식민지 경험과 언어, 권력의 문제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동아시아 작가 중 유일하게 후보에 올라 수상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24년 미국도서상 번역문학 부문을 수상한 이 작품은 국내에도 번역 출간돼 있다.독일의 거장 다니엘 켈만의 <감독>(The Director)은 영화감독 G.W. 파브스트의 삶

    2026.04.01 17:57
  • 전쟁과 격변의 시대…부커상이 주목한 건 ‘역사의 울림’

    노벨 문학상,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작 6편이 31일(현지시간) 발표됐다. 미국·이란 전쟁 등으로 국제 정세의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올해 후보작에는 식민지 지배와 혁명, 전체주의 체제 같은 20세기 세계사 장면을 문학의 렌즈로 다시 비춘 작품들이 다수 포함됐다.   부커상이 발표한 최종 후보 6명에는 다니엘 켈만(독일), 마리 은디아예(프랑스), 양솽쯔(대만), 르네 카라바시(불가리아), 시다 바지야르(독일), 아나 파울라 마이아(브라질)가 이름을 올렸다. 부커상이 영어로 쓰인 장편소설에 수여하는 상이라면, 인터내셔널 부커상은 영어 외의 언어로 쓰인 작품을 작가와 번역가에게 함께 수여하는 상이다.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작품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 상은 2016년 한강이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와 함께 수상하며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다. 올해 후보작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역사적 격변의 순간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이 다수 포함됐다는 점이다. 양솽쯔의 <1938 타이완 여행기>(Taiwan Travelogue)는 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 지배 아래 놓인 대만을 배경으로 식민지 경험과 언어, 권력의 문제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동아시아 작가 중 유일하게 후보에 올라 수상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24년 미국도서상 번역문학 부문을 수상한 이 작품은 국내에도 번역 출간돼 있다. 독일의 거장 다니엘 켈만의 <감독>(The Director)은 영화감독 G.W. 파브스트의 삶을 바탕으로 나치 시대 예술가의 선택과 책임을 탐색한 작품이다. 예술가가 독재 권력과 타협하거나 저항하는 과정을 다루며 현대 사회에 ‘예술의 윤리&r

    2026.04.01 12:00
  • 이영도 '눈물을 마시는 새', 佛 최고 SF 문학상 최종후보 선정

    한국 판타지 문학의 거장 이영도 작가의 장편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장르 문학상의 최종 결선에 올랐다. 프랑스 SF·판타지 문학상인 ‘그랑 프리 드 리마지네르’(Grand Prix de l'Imaginaire)는 30일(현지시간) <눈물을 마시는 새>(프랑스판 제목: Le Cœur des Nagas)가 외국 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1974년 제정된 이 상은 언론인, 작가, 평론가 등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하는 상이다. 프랑스 현지 출판계에서는 이 상의 최종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유럽 시장 내에서 작품성을 공인받은 것으로 평가한다.이번 최종 후보에 오른 작품은 총 6편으로, 세계적인 SF 대가들도 포함됐다. 주요 경쟁작으로는 세계환상문학상 수상자인 거장 기 가브리엘 케이의 <바다의 모든 파도 위에>와 휴고상 수상자 니 보의 <인어 여왕>을 비롯해 알렉스 란드라갱, 제데디아 베리 등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한 작가들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03년 출간된 <눈물을 마시는 새>는 도깨비, 씨름, 윷놀이 등 한국 고유의 소재를 독창적인 세계관으로 녹여내 1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기념비적 작품이다. 현재까지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30여 개국에 번역 수출됐으며, 프랑스어판 1권은 출간 4개월 만에 2만 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현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글로벌 시장 진출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정보라의 <저주토끼>를 번역한 안톤 허의 번역으로 오는 6월 미국과 영국에서 첫 권 출간을 앞두고 있어 이번 후보 선정 소식은 영미권 진출에도 큰 탄력을 줄 것으로 보인다.최종

    2026.03.31 10:40
  • [이 아침의 소설가] 역사 속 왜곡 파헤친 대만 문학의 아이콘

    올해 인터내셔널 부커상 롱리스트(1차 후보)에 오른 대만 소설가 양솽쯔(본명 양뤄츠·사진)는 현재 세계 문학계가 가장 주목하는 작가다. 2024년 미국도서상 번역문학 부문을 수상하며 파란을 일으킨 그는 ‘대만 문학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1984년 대만 타이중에서 태어난 그는 대만의 역사와 식민지 경험, 언어와 번역의 문제를 교차시키는 서사로 국제 독자층을 넓혀왔다. 부커상 후보에 오른 작품은 장편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이다. 일제강점기 대만을 배경으로 일본인 작가와 대만인 통역사의 여정을 그린 메타 픽션이다. 퀴어 로맨스의 형식을 빌려 식민지 지배 구조와 역사의 왜곡을 날카롭게 해부했다는 평을 받는다.양솽쯔는 5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 동생 양뤄후이와 일본 서브컬처 및 대만 역사를 공유하며 성장했다. 2015년 동생이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그는 ‘두 사람 몫’의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 대만 작가가 인터내셔널 부커상 롱리스트에 오른 것은 2018년 우밍이에 이어 두 번째다.설지연 기자

    2026.03.30 17:48
  • [책마을] 다정함이란 인류의 기만적인 속성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주인이 된 이래, 인류는 협력과 이타심이 문명을 지탱하는 고귀한 뿌리라고 믿어 왔다. 성선설에 기반한 이 낙관적 믿음은 인간을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도덕적 존재로 규정한다.신진 사회과학자 조너선 R. 굿먼은 신간 <다정함의 배신>을 통해 이러한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저자는 인류학, 진화생물학 등을 넘나드는 분석을 통해 ‘다정함’이 사실은 자원을 선점하고 타인을 기만하기 위한 정교한 생존 기술이었음을 규명한다.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통렬하다. 인류가 본질적으로 다정한 존재라면, 왜 착취와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는가. 책에 따르면 인간은 태생적 자본주의자로서 각 시대의 자본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다정함을 전략적으로 선택해 왔다.저자는 ‘독재자 게임’이나 ‘죄수의 딜레마’ 같은 심리 실험을 인용하며, 이타심이 때로 자신의 미덕을 과시하거나 보이지 않는 경쟁을 감추는 수단으로 기능했음을 증명한다. 노숙자에게 기부하면서도 그를 집으로 초대하지 않는 이중성, 평등 교육을 외치면서 사교육에 집착하는 현실이 바로 인간 본성의 민낯이다.책은 인간 본성의 불완전함과 기만적 속성을 직시할 때 비로소 진정한 신뢰와 연대가 가능하다는 현실적인 제언을 내놓는다.설지연 기자

    2026.03.27 18:01
  • [책마을] 이젠 동맹국 목줄까지 조른다…美 외교 변천사 20년

    지난달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이란은 즉각 호르무즈해협 봉쇄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산 원유에 ‘가격 상한제’라는 굴레를 씌웠다.보스포루스해협에는 갈 곳 잃은 유조선들이 거대한 정체를 이뤘다. 지리적 요충지이자 경제적 급소인 이른바 ‘초크포인트(Choke Point)’를 둘러싼 이 풍경들은 현대 전쟁의 본질이 어디에 와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미 국무부와 재무부에서 경제 제재 전략을 직접 설계했던 에드워드 피시먼의 신간 <국가는 무엇으로 싸우는가>(원제: Choke Point)는 지난 20년간 미국 외교정책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미사일’에서 ‘경제 무기’로 이동했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한 기록이다.저자는 1990년대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전파했던 ‘세계화’라는 복음이 어떻게 종언을 고했는지에 주목한다. 자유무역과 상호의존이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은 환상으로 판명됐다. 대신 미국은 상호의존성 그 자체를 무기화하기 시작했다. 상대국이 미국 주도의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급소’를 찾아내 그 연결권을 박탈하는 전략이다.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글로벌 금융 결제망에서 축출하고, 러시아의 에너지 수익 네트워크를 차단해 전쟁 자금줄을 말리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나아가 첨단 기술의 핵심인 반도체 공급망을 통제함으로써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지경학적 공세로까지 진화했다.책은 이 과정을 네 가지 결정적 국면으로 나누어 살핀다. 이란 핵협정,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중국과의 기술 패권

    2026.03.26 15:32
  • 평등을 외치면서도 내 아이 사교육에 매달리는 인간 본성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주인이 된 이래, 인류는 협력과 이타심이 문명을 지탱하는 고귀한 뿌리라고 믿어 왔다. 성선설에 기반한 이 낙관적 믿음은 인간을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도덕적 존재로 규정한다.그러나 신진 사회과학자 조너선 R. 굿먼은 신간 <다정함의 배신>을 통해 이러한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저자는 인류학, 진화생물학 등을 넘나드는 분석을 통해 '다정함'이 사실은 자원을 선점하고 타인을 기만하기 위한 정교한 생존 기술이었음을 규명한다.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통렬하다. 인류가 본질적으로 다정한 존재라면, 왜 착취와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책에 따르면 인간은 태생적 자본주의자로서 각 시대의 자본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다정함을 전략적으로 선택해 왔다.저자는 '독재자 게임'이나 '죄수의 딜레마' 같은 심리 실험을 인용하며, 이타심이 때로 자신의 미덕을 과시하거나 보이지 않는 경쟁을 감추는 수단으로 기능했음을 증명한다. 노숙자에게 기부하면서도 그를 집으로 초대하지 않는 이중성, 평등 교육을 외치면서 사교육에 집착하는 현실이 바로 인간 본성의 민낯이다. 결국 책은 인간 본성의 불완전함과 기만적 속성을 직시할 때 비로소 진정한 신뢰와 연대가 가능하다는 현실적인 제언을 내놓는다. 도덕적 과시를 멈추고 인간이 상황에 따라 협력과 경쟁이라는 도구를 갈아 끼우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2026.03.26 15:31
  • 굉음 내며 질주하는 ‘20조원짜리 제국’… F1 산업의 설계자들

    매년 전 세계 20여 개국을 순회하며 개최되는 F1(포뮬러 원)은 연간 누적 시청자 15억 명, 매년 20조 원의 가치를 창출하는 스포츠 비즈니스의 정점이다. 하지만 이 화려한 서킷 뒤편에는 권력과 자본, 천재적인 전략과 추악한 스캔들이 뒤엉킨 거대한 드라마가 숨어 있다.신간 <F1 더 포뮬러>는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였던 F1이 어떻게 현대 스포츠 비즈니스의 지배적 모델로 우뚝 섰는지 그 70년의 궤적을 치밀하게 추적한다.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의 베테랑 기자인 두 저자는 트랙 위의 속도보다 ‘혁신의 속도’에 주목한다. 책은 현대 F1의 기틀을 닦은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기술의 한계를 시험했던 엔지니어 콜린 채프먼과 전통을 브랜드 신화로 승화시킨 엔초 페라리의 대립은 F1 초기 역사를 지탱하는 축이다.특히 책이 주목하는 인물은 수십 년간 F1의 상업적 토대를 구축한 버니 에클스턴이다. 중고차 딜러 출신의 그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TV 중계권의 가치를 간파했다. 그는 각 팀과 서킷 주최 측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담배 자본을 끌어들여 현대적 스폰서십의 개념을 정립했다. 저자들은 에클스턴의 행보를 “스포츠 상업화를 위한 발판을 마련한 쿠데타”라 평한다.책은 F1이 가진 극적인 서사 또한 놓치지 않는다. 아일톤 세나와 알랭 프로스트가 벌였던 사투는 전설적인 라이벌전으로 기록되지만, 저자들은 그 이면의 공학적 계산과 정치적 암투까지 파헤친다.F1을 뒤흔든 스캔들도 흥미롭다. 평범한 복사 가게에서 시작된 1억 달러 규모의 산업 스파이 사건, 승리를 위해 고의로 사고를 조작한 비리 등은 F1이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얼마나 치열한 정

    2026.03.25 13:51
  • 당신의 스마트폰이 지구 여섯 바퀴를 돌아온 이유 [책마을]

    우리는 매일 물건을 쓴다.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커피를 마시고, 화장지를 쓴다. 하지만 그 물건들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져 우리 손에 들어오는지 묻는 일은 드물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제조업연구소 소장 팀 민셜이 쓴 신간 <우리의 삶은 제조된다>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물건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에게 오는가.” 이 단순한 물음은 곧 우리가 사는 세계의 구조를 다시 보게 만든다.책이 보여주는 제조업의 세계는 거대하고 정교하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수천 리터의 물이 쓰이고, 스마트폰은 수많은 국가를 거쳐 지구를 몇 바퀴나 도는 여정을 지나 손에 들어온다. 케이크, 화장지 같은 일상용품부터 비행기와 의약품까지, 거의 모든 물건이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생산·운송·소비된다. 이 시스템은 너무나 잘 작동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존재조차 의식되지 않는다. 저자가 이를 “하수처리 시스템처럼 보이지 않는 필수 인프라”라고 표현한 이유다.그러나 문제는 이 정교함이 동시에 취약성이라는 점이다. 책은 현대 제조업이 추구해온 ‘저비용·고효율’ 전략이 초래한 구조적 약점을 낱낱이 짚는다. 2020년 코로나19 당시 전 세계를 강타한 ‘화장지 대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사람들은 “공장이 멈춘 것도 아닌데 왜 휴지가 없느냐”고 의아해했다.원인은 ‘아웃소싱’과 ‘재고 최소화’에 있었다. 사무실과 공공시설에서 쓰이던 상업용 화장지 수요는 줄고, 가정용 수요는 급증했지만 생산 라인을 즉각 전환하기는 어려웠다. 상업용과 가정용 제품은 규격과 포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

    2026.03.21 00:00
  • [책마을] 줄 서고, 걷고, 기다린다…그것이 '소비'가 된 시대

    기술이 발전할수록 소비는 더 단순해질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오늘의 소비자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클릭 한 번이면 원하는 물건을 즉시 받아볼 수 있는 시대, 사람들은 오히려 줄을 서고, 시간을 들이고, 불편을 감수하는 경험에 기꺼이 뛰어든다. 성수동 팝업스토어 앞에 길게 늘어선 줄과 123층 계단을 오르는 행사에 몰리는 인파는 이 역설적인 풍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비행동학자 송수진 고려대 교수의 <경험수집가의 시대>는 바로 이 기묘한 변화의 이유를 파고든다.저자는 오늘날의 소비자를 ‘경험수집가’라고 정의한다. 이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데서 만족하지 않는다. 의미 있고, 재미있고, 상징적인 경험을 선별해 자신의 정체성으로 축적한다. 흥미 없는 콘텐츠는 몇 초 만에 넘기면서도, 밤을 새워 산을 오르는 경험에는 기꺼이 시간을 투자한다. 기술이 일상의 번거로움을 제거할수록,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더 밀도 높은 경험을 갈망하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진단이다.이 변화는 소비의 기준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제품의 성능과 가격이 선택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그 제품이 어떤 이야기를 제공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나이키 조던 시리즈처럼 서사를 지닌 브랜드에는 열광하면서도, 스펙만 나열하는 광고에는 무관심한 태도가 이를 잘 보여준다. 유튜브 프리미엄이나 유료 멤버십 서비스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시간을 아끼는 경험’을 구매하는 행위로 읽힌다.저자는 이러한 흐름을 일시적 유행이 아닌 구조적 변화로 본다.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에 ‘소유’는 더 이상 차별화의 수단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무엇을 경험했고, 그

    2026.03.20 17:31
  • [책마을] 죽음의 수용소, 그들이 땅속에 묻은 미래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중동 정세가 다시 긴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반복되는 비극 앞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과연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프랑스 미술사학자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흩어진 것들>은 바르샤바 게토의 기록을 통해 집요하게 되묻는다.책의 중심에는 ‘린겔블룸 아카이브’가 있다. 역사학자 에마누엘 린겔블룸은 게토에 갇힌 채 죽어가던 사람들의 편지, 일기, 쪽지, 사소한 물건들을 모아 땅속에 묻었다. 그것은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자, 미래를 향한 신호였다. 전쟁이 끝난 뒤 폐허 속에서 발견된 이 기록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남았다.디디 위베르만은 이 파편들을 하나의 완결된 역사로 묶지 않는다. 부서지고 흩어진 상태 그대로를 드러내며, 이름 없는 개인들의 목소리를 되살린다. 그 목소리는 비탄과 분노, 연민과 희망 사이를 오가며, 거대한 역사 서술이 지워버린 삶의 결을 복원한다. 기록한다는 행위가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폭력에 맞서는 마지막 실천임을 일깨운다.책은 과거를 회고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늘의 세계를 향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흩어진 기록들은 과거의 잔해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던져진 씨앗이다.설지연 기자

    2026.03.20 17:30
  • [책마을] 어느 가족사가 드러낸 한국 여성의 역사

    영화감독이자 싱어송라이터 이랑의 신간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는 한 개인의 고백을 넘어 한국 여성들의 집단적 기억을 정면으로 호출하는 기록이다. 이 원고는 한국 출간이 쉽지 않을 만큼 내밀한 탓에 일본과 대만에서 먼저 출간된 뒤 뒤늦게 국내에 소개됐다.출발점은 2021년 12월, 언니의 죽음이다. 저자는 가족과 사회 속에서 자신을 모두 소진한 언니의 죽음을 ‘자살’이 아닌 ‘소진사’라 부른다.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은 빈자리를 남겨둔 채 춤을 췄고, 그 기묘한 장면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의 원형처럼 남는다.이 책은 가난과 폭력, 남아선호와 침묵 속에서 이어져 온 여성들의 삶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엄마와 딸, 그 위 세대까지 이어지는 상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결과임을 드러낸다. 저자는 이를 고발하기보다 이해하려 한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됐는지, 그 역사가 지금의 자신에게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끝까지 따라간다.4년에 걸쳐 쓰인 문장은 고통스럽지만 이상하게도 읽는 이를 붙든다. 감정을 하나하나 이름 붙이며 끄집어내는 과정은 기록이자 치유에 가깝다. 그래서 이 책은 슬픔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기록이다.설지연 기자

    2026.03.20 17:27
  • 기억하지 않으면 비극은 반복된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중동 정세가 다시 긴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반복되는 비극 앞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과연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프랑스 미술사학자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흩어진 것들>은 이 질문을 바르샤바 게토의 기록을 통해 집요하게 되묻는다.책의 중심에는 ‘린겔블룸 아카이브’가 있다. 역사학자 에마누엘 린겔블룸은 게토에 갇힌 채 죽어가던 사람들의 편지, 일기, 쪽지, 사소한 물건들을 모아 땅속에 묻었다. 그것은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자, 미래를 향한 신호였다. 전쟁이 끝난 뒤 폐허 속에서 발견된 이 기록들은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남았다.디디 위베르만은 이 파편들을 하나의 완결된 역사로 묶지 않는다. 오히려 부서지고 흩어진 상태 그대로를 드러내며, 이름 없는 개인들의 목소리를 되살린다. 그 목소리는 비탄과 분노, 연민과 희망 사이를 오가며, 거대한 역사 서술이 지워버린 삶의 결을 복원한다. 기록한다는 행위가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폭력에 맞서는 마지막 실천임을 일깨운다.이 책은 과거를 회고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늘의 세계를 향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흩어진 기록들은 과거의 잔해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던져진 씨앗이다. 결국 이 책이 남기는 것은 하나의 요구다.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계속 읽고 써야 한다.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2026.03.20 10:08
  • 한 가족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한국 여성의 역사

    영화감독이자 싱어송라이터 이랑의 신간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는 한 개인의 고백을 넘어 한국 여성들의 집단적 기억을 정면으로 호출하는 기록이다. 이 원고는 한국 출간이 쉽지 않을 만큼 내밀한 탓에 일본과 대만에서 먼저 출간된 뒤 뒤늦게 국내에 소개됐다.출발점은 2021년 12월, 언니의 죽음이다. 저자는 가족과 사회 속에서 자신을 모두 소진한 언니의 죽음을 ‘자살’이 아닌 ‘소진사’라 부른다.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은 빈자리를 남겨둔 채 춤을 췄고, 그 기묘한 장면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의 원형처럼 남는다.이 책은 가난과 폭력, 남아선호와 침묵 속에서 이어져온 여성들의 삶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엄마와 딸, 그 위 세대까지 이어지는 상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결과임을 드러낸다. 저자는 이를 고발하기보다 이해하려 한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됐는지, 그 역사가 지금의 자신에게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끝까지 따라간다.4년에 걸쳐 쓰인 문장은 고통스럽지만 이상하게도 읽는 이를 붙든다. 감정을 하나하나 이름 붙이며 끄집어내는 과정은 기록이자 치유에 가깝다. 그래서 이 책은 슬픔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기록이다. 끝내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무엇인지 묻는다. 읽고 나면 오래 남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그럼에도 살아내려는 의지다.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2026.03.20 10:03
  • 줄 서고, 걷고, 기다린다…그것이 ‘소비’가 된 시대

    기술이 발전할수록 소비는 더 단순해질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오늘의 소비자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클릭 한 번이면 원하는 물건을 즉시 받아볼 수 있는 시대, 사람들은 오히려 줄을 서고, 시간을 들이고, 불편을 감수하는 경험에 기꺼이 뛰어든다. 성수동 팝업스토어 앞에 길게 늘어선 줄과 123층 계단을 오르는 행사에 몰리는 인파는 이 역설적인 풍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비행동학자 송수진 고려대 교수의 <경험수집가의 시대>는 바로 이 기묘한 변화의 이유를 파고든다.저자는 오늘날의 소비자를 ‘경험수집가’라고 정의한다. 이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데서 만족하지 않는다. 의미 있고, 재미있고, 상징적인 경험을 선별해 자신의 정체성으로 축적한다. 흥미 없는 콘텐츠는 몇 초 만에 넘기면서도, 밤을 새워 산을 오르는 경험에는 기꺼이 시간을 투자한다. 기술이 일상의 번거로움을 제거할수록,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더 밀도 높은 경험을 갈망하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진단이다.이 변화는 소비의 기준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제품의 성능과 가격이 선택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그 제품이 어떤 이야기를 제공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나이키 조던 시리즈처럼 서사를 지닌 브랜드에는 열광하면서도, 스펙만 나열하는 광고에는 무관심한 태도가 이를 잘 보여준다. 유튜브 프리미엄이나 유료 멤버십 서비스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시간을 아끼는 경험’을 구매하는 행위로 읽힌다.저자는 이러한 흐름을 일시적 유행이 아닌 구조적 변화로 본다.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에 ‘소유’는 더 이상 차별화의 수단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무엇을 경험했고, 그

    2026.03.20 10:01
  • 당신의 스마트폰이 지구 여섯 바퀴를 돌아온 이유

    우리는 매일 물건을 쓴다.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커피를 마시고, 화장지를 쓴다. 하지만 그 물건들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져 우리 손에 들어오는지 묻는 일은 드물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제조업연구소 소장 팀 민셜이 쓴 신간 <우리의 삶은 제조된다>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물건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에게 오는가.” 이 단순한 물음은 곧 우리가 사는 세계의 구조를 다시 보게 만든다.책이 보여주는 제조업의 세계는 거대하고 정교하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수천 리터의 물이 쓰이고, 스마트폰은 수많은 국가를 거쳐 지구를 몇 바퀴나 도는 여정을 지나 손에 들어온다. 케이크, 화장지 같은 일상용품부터 비행기와 의약품까지, 거의 모든 물건이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생산·운송·소비된다. 이 시스템은 너무나 잘 작동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존재조차 의식되지 않는다. 저자가 이를 “하수처리 시스템처럼 보이지 않는 필수 인프라”라고 표현한 이유다.그러나 문제는 이 정교함이 동시에 취약성이라는 점이다. 책은 현대 제조업이 추구해온 ‘저비용·고효율’ 전략이 초래한 구조적 약점을 낱낱이 짚는다. 2020년 코로나19 당시 전 세계를 강타한 ‘화장지 대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사람들은 “공장이 멈춘 것도 아닌데 왜 휴지가 없느냐”고 의아해했다.원인은 ‘아웃소싱’과 ‘재고 최소화’에 있었다. 사무실과 공공시설에서 쓰이던 상업용 화장지 수요는 줄고, 가정용 수요는 급증했지만 생산 라인을 즉각 전환하기는 어려웠다. 상업용과 가정용 제품은 규격과 포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2026.03.20 09:49
  • BTS 뷔가 반한 그 그림…강아지들의 유쾌한 사생활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뷔가 라이브 방송에서 자신이 소장한 작품 ‘아이스크림을 먹는 곰’ 그림을 소개하며 화제가 된 작가, 앨리슨 프렌드의 첫 아트북 <내 강아지의 사생활>이 국내에 출간됐다. 인스타그램 91만 팔로워를 사로잡은 그의 작품 세계가 한 권에 담겼다.책에는 강아지 초상화 125점이 실렸다. 루빅큐브를 돌리는 보더콜리,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견공, 산책을 일과처럼 지키는 개까지, 저마다 취향과 성격을 지닌 ‘개성’이 화면을 채운다. 유화 특유의 깊이 위에 인간을 닮은 표정과 감정을 얹어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묘하게 진지한 여운을 남긴다. 동물을 의인화한 그의 독특한 화풍은 영국을 비롯해 뉴욕·마이애미 등지에서 전시되며 주목받아왔다.이 책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주인이 없는 시간, 강아지는 무엇을 할까.” 작가는 그 틈에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강아지들은 외롭기보다 자기만의 세계를 즐긴다. 그래서 이 책은 귀여운 그림 모음집을 넘어, 반려견과 함께하는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작은 위로로 읽힌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우리 집 강아지도 저럴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익숙한 존재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2026.03.2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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