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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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공매도를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최근 HSBC 등 외국계 투자은행의 불법 공매도가 적발된 만큼 재발 방지 방안을 완비한 뒤 재개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3일 “늦어도 오는 15일 이전에 공매도와 관련한 대책을 당정 협의 형식으로 발표할 것”이라며 “지금으로서는 공매도 자체를 잠정 중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증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장이 열리지 않는 다음주 주말께 발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은 정부에 공매도 시장 실시간 모니터링, 불법 적발 시 즉각 이익 환수 및 과징금 부과 등을 요구하고 있다. 대책 발표 시점까지 해당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 공매도 자체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 등에서 관련 시스템 보완에 나섰지만, 이를 완비하기까지는 최소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총선이 치러지는 내년 4월 전후까지 공매도가 중단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증권업계에서는 섣부른 공매도 중단이 개인투자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시장 전문가는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면 테마주 등 내실 없는 주식 가격에 거품이 끼더라도 가격 조정이 이뤄지기 어렵다”며 “제때 내려야 할 주가가 내리지 않으면 공매도가 재개됐을 때 오히려 급격한 주가 하락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與 총선전략으로 띄운 '공매도 한시 중단'…전문가 "개미투자자 더 피해"
즉흥 도입 땐 시장 신뢰 잃고 MSCI 선진국지수 편입 악영향

국민의힘은 공매도 잠정 중단이 필요한 이유로 최근 적발된 HSBC와 BNP파리바 등의 불법 공매도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분노를 들고 있다. 권성동 전 원내대표는 지난 1일 “불법 공매도의 실재가 확인됐고, 금융시장의 신뢰성이 상실되고 있다”며 “개미투자자의 불안을 경감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조치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여당 내에서는 공매도 시장에 대한 과감한 조치가 14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개인투자자로부터 긍정적인 여론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포시 서울 편입론’에 이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을 끌어낼 수 있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 ‘공매도 제도 개선에 관한 청원’이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정무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난해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된 금융투자세 시행을 중단시켜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당 지지율이 오른 바 있다”며 “비슷한 정치적 효과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즉흥적으로 도입한 공매도 중단은 개인투자자에게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증권업계는 우려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주가조작 세력의 시세조종은 대부분 공매도가 불가능한 종목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명확한 근거도 없이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면 글로벌 투자자들에겐 ‘신뢰할 수 없는 시장’으로 보일 수 있다”며 “연말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다음해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하는 시기로, 글로벌 자본이 국내 시장 비중을 축소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MSCI 선진국지수 편입에도 불가피하게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선진국지수 편입 요건으로 공매도 전면 재개를 요구해왔다. 한국은 현재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종목에만 공매도를 허용하고 있다.

여당이 요구하는 공매도 시스템 개선이 이미 시행되고 있거나,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는 2021년부터 불법 공매도에 대해 부당이득액의 3~5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공매도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뉴욕, 홍콩 등지에서도 공매도 주문이 나오는 만큼 해당 국가의 정보를 넘겨받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시스템 개선은 공매도를 유지하면서도 충분히 병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시적으로라도 공매도를 전면 중단하면 코리아디스카운트가 발생할 것이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노경목/선한결/설지연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