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무장반란을 시도했던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전용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그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던 만큼 이번 사고에 배후가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 등에 따르면 러시아 항공 당국은 이날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던 제트기가 트베르 지역에 추락했다며 탑승자 10명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당국은 탑승객 명단에 프리고진이 있다고 확인했다. 프리고진의 오른팔인 드미트리 우트킨도 탑승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프리고진이 실제 이 비행기에 탑승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외신에 따르면 이 제트기는 프리고진의 전용기다.

사고 원인은 발표되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의 친바그너 채널들은 러시아군 방공망이 프리고진의 전용기를 격추시켰다고 주장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에는 한 쪽 날개가 떨어져 나간 채 추락하는 비행기와 미사일 흔적으로 추정되는 자국이 찍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 언론이 공개한 파편 이미지에는 방공미사일 공격과 일치하는 다수의 작은 구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프리고진의 죽음은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던 그가 무장반란을 일으킨 지 두 달 만이다. 지난 6월 우크라이나 최전선에서 쿠데타를 선언한 프리고진은 만 하루도 안돼 모스크바 200㎞ 앞까지 진격했다. 당시 바그너그룹은 러시아 군용기를 격추시키기도 했다.

이후 벨라루스의 중재로 러 정부와 극적인 타협을 했지만 이 반란으로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전례없이 흔들렸다. 타협 당시 쿠데타의 주역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프리고진의 신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던 이유다.

크렘린궁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서방에서는 프리고진의 죽음이 무장반란에 대한 보복이라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앞서 푸틴 정권에 반기를 들었던 인사들이 의문사한 사례들이 다수 있어서다.

영국으로 망명했던 전직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는 2006년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기 어려운 방사성물질 폴로늄이 들어간 홍차를 전 동료에게 건네받아 마시고 숨졌다. 같은 해 러시아군의 체첸 주민 학살을 고발했던 언론인 출신의 야권 지도자 안나 폴릿콥스카야는 총에 맞아 숨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프리고진의 사망에 대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라며 푸틴 대통령이 배후에 있지 않은 일은 러시아에서 별로 없다고 말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