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법원장 후보자' 이균용…과제 산적한 사법부 개혁 이끄나
이균용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6기·사진)가 차기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보수적인 성향인 이 후보자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뚝심있게 밀어붙이는 법관으로 평가받는다.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심화됐던 진보 편향 판결, 재판 지연, 우수 법관 릴레이 이탈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안을 이끌 최적의 인물이란 분석이 나온다.

옳고그름 기준 뚜렷한 보수법관

이 후보자는 1962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부산중앙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 26회 사법시험을 합격해 법관으로서의 첫 발을 딛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광주고법·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원장, 대전고법원장 등 주요 요직을 거쳤다.

2016년 1심 판결을 뒤집고 한의사도 뇌파계를 사용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려 주목받았다. 2019년에는 ‘백남기 사망사건’으로 1심에서 무죄를 받았던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2심에서 업무상 과실치사를 적용해 유죄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정운호 게이트’ 관련 검찰 수사기록을 유출한 혐의로 법정 공방을 벌이던 현직 부장판사 세 명에게는 2021년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후보자는 법원 내 엘리트 법관 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 출신으로 법학 이론뿐만 아니라 해외 법제에도 밝다는 평을 받는다. 일본 법조인들과도 활발히 교류해 법원 내 ‘일본통’으로도 불린다. 그는 지난해 7월 오석준 대법관과 함께 김재형 전 대법관 후임으로 추천되기도 했다. 윤 대통령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주관이 뚜렷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강하게 추진하고, 반대의 경우엔 주저하지 않고 비판하는 성격이다. 이 후보자는 실제로 과거 여러 차례 김명수 대법원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주목받기도 했다. 그는 2021년 2월 대전고법원장에 취임 당시 “법원이 조롱거리로 전락했다”며 “정치가 경제를 넘어 법치를 집어삼키는 ‘사법 정치화’가 논란이 되고 있다”고 말해 화제에 올랐다. 법관들 사이에선 김 대법원장을 겨냥한 발언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 후보자는 그 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지방법원 국정감사 때는 임성근 전 판사와의 면담과정에서 불거진 김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 논란에 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사법부 신뢰에 좋지 않은 영향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친노동' 사법부 막 내리나

법조계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사법부의 대대적인 변화를 이끌만한 인물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선택했다는 평가다. 이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와 표결 등을 거쳐 다음달 윤 대통령의 임명을 받으면 법원 전원합의체를 구성하는 대법관 13명(대법원장 포함) 중 진보 성향은 5명으로 줄어든다. 김 대법원장 시절 선명했던 ‘친노동 성향’ 판결이 감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재판 지연 문제를 개선할 방안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이 발간한 ‘2022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1심 합의부가 민사 본안사건을 처리하는 데 평균 364.1일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309.6일)보다 55일 길어졌다. 같은 기간 형사사건 1심 합의부 평균 처리 시간도 156.0일에서 181.4일로 늘어났다.

배석판사들이 ‘주 3회 선고’를 암묵적으로 합의하는 등 법원 내 ‘워라벨’ 성향이 짙어진데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2020년)로 판사들이 열심히 일할 동기마저 사라진 영향이 크다는 평가다. 여기에 각 지방법원 판사들이 법원장 후보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 도입(2019년)으로 부장판사들이 후배 판사들의 눈치를 보며 업무부담을 늘리기 어려운 분위기까지 조성됐다.

이런 이유로 매년 법원 인사철엔 우수 법관들 줄줄이 옷을 벗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특히 ‘베테랑 중에서도 검증된 엘리트’로 평가받는 고등법원 판사들의 이탈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고등법원 퇴직 판사 수는 2011∼2015년엔 연간 1~2명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 후로 꾸준히 증가해 2020년(11명)엔 10명을 넘어섰다. 2021년에는 9명, 지난해 13명, 올해는 15명이 그만두는 등 사직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 후보자는 본인 주장이 확실한 성격이기 때문에 방향만 잘 설정하면 외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법부 개혁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며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돕는 보좌진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성/박시온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