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코노미 유튜브 채널에 게재된 라이브 영상을 옮긴 글입니다.

▶전형진 기자
한국 건축사에서 재건축 사업의 피날레는 이곳이겠죠. 서울 압구정동입니다. 압구정아파트지구의 지구단위계획이 재열람을 시작하면서 확정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소식입니다. 개발사업의 여러 가지 단계 가운데 지구단위계획은 스케치에 가깝습니다. 이 단계에서 블록별 용적률 등을 결정하면서 도시의 전반적인 형태를 잡아나가기 때문이죠.
압구정 재건축이 말하지 않는 비밀 [집코노미 타임즈]
재건축을 추진하는 압구정은 1~6구역으로 구성돼 있고, 이 가운데 4개 구역이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에 합류했습니다. 1구역과 6구역은 아직 신통기획에 참여하지 않았는데요. 이들 구역에도 용적률을 300%(기본 230%)까지 허용한다는 게 지구단위계획 수립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그래도 세간의 관심은 역시 대장 3구역입니다. 압구정역을 끼고 있는 3구역은 공공기여 조건을 만족한다면 용적률을 320%까지 받을 수 있죠.
압구정 재건축이 말하지 않는 비밀 [집코노미 타임즈]
최근엔 3구역 재건축 설계안 공모가 화제입니다. 15일 총회에서 당선작이 결정되는데요. 통상 시공사 선정 단계에서나 치열한 수주전이 세간에 알려지는데 압구정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참고로 해안은 매출 기준 국내에서 세 번째로 큰 설계사무소이고 희림은 두 번째입니다. 그런데 1위인 삼우가 삼성 계열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1, 2위의 설계사무소가 격돌하는 셈이죠. 랜드마크 아파트 포트폴리오는 해안이 우세합니다. 갤러리아포레, 래미안용산더센트럴, 래미안첼리투스 등 이름만 들어도 모습이 떠오르는 곳이 많죠. 희림의 경우 일반 아파트 설계를 많이 했지만 외관으로 유명한 아파트가 많지 않은 편이긴 합니다. 다만 수원아이파크시티나 은마아파트의 재건축 설계안 등 부동산 마니아들에겐 익숙한 설계를 많이 선보였죠. 카타르월드컵 주경기장인 알투마마도 희림의 작품입니다. 희림과 컨소시엄으로 함께 참여한 유엔스튜디오는 압구정갤러리아, 나우동인은 트리마제 등을 설계했죠.
압구정 재건축이 말하지 않는 비밀 [집코노미 타임즈]
설계안을 하나씩 살펴보죠. 아마 오늘 살펴볼 제안서보다 뛰어난 재건축 설계안을 보긴 당분간 힘들 것 같습니다.

기호 1번인 해안의 설계안 가운데 눈에 띄는 부분은 단지의 지표면을 높인 점입니다. 기존 지표에서 8m를 높인 뒤 단지를 조성하고, 원래의 땅높이엔 공공보행로를 만드는 것이죠. 사실 압구정 같은 단지들이 공통으로 골머리를 앓는 게 바로 공공기여 문제입니다. 고급단지일수록 폐쇄성이 짙은 편인데 서울시에선 용적률 등에 따른 인센티브로 단지 개방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압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3구역은 오세훈 시장이 뚝섬까지 보행교를 계획하고 있는 곳이죠. 결국 입주민들 입장에선 '우리의 생활공간과 외부인의 동선을 어떻게 분리할 것이냐'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압구정 설계공모에 참여한 설계사무소들은 이 지점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단면도를 보면 압구정역에서 나온 시민들은 3구역 하부에 조성되는 공공보행로를 통해 단지를 관통하며 한강공원과 보행교까지 갈 수 있습니다. 주민들의 동선은 공공보행로 상층부에 조성되죠. 일종의 필로티 구조인 셈인데요. 기존 지표에서 8m를 높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집에 오지 마세요'를 점잖게 표현한 것이죠. 아래의 배치도에 표현된 '울창한 숲'이나 '시냇물을 품은 하이그로브 파크'는 상층부의 주민들에게 제공되는 것이지 지하를 걷는 외부인들이 볼 수 있는 공간은 아닙니다.
압구정 재건축이 말하지 않는 비밀 [집코노미 타임즈]
희림 컨소시엄의 제안도 마찬가지입니다. 희림은 공공보행로를 아예 단지 외곽으로 둘렀습니다. 당초 서울시안이 단지 중앙을 관통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논현로변으로 빼는 대신 숲길처럼 조성하겠다는 것이죠. 제안서에도 '주민 프라이버시 완벽 보장'이라고 강조돼 있습니다.

희림의 설계안에서 가장 큰 특징은 보행교입니다. 앞서 해안의 설계안과 비교하면 멋지게 곡선을 가미했죠. 그런데 사실 이런 설계를 반영하면서 보행교 남단을 동호대교쪽으로 살짝 가져왔습니다. 그림에서 서울시안과 비교해도 위치의 차이가 크죠. 보행교를 오가는 외부인들이 단지에 머무는 동선과 시간을 최대한 짧게 줄일 수 있는 설계인 셈입니다.

공공기여 부분을 제외하고도 눈여겨볼 지점이 많습니다. 앞서 해안의 안에서 100% 한강조망과 100% 남향배치가 눈길을 끌었다면, 희림의 안에선 제자리 재건축이 핵심입니다. 통상 재건축이 끝나면 동·호수가 바뀌다 보니 기존에 한강조망이 뛰어났던 가구에선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요. 재건축 이후에도 원래의 집 위치 그대로 조망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죠. 물론 이건 설계안에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고 사업시행계획과 관리처분계획에서 확정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개인적으론 '1코어 2세대 엘리베이터 4대'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코어는 계단식 아파트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라인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같은 층에 두 집만 있는데 이들이 쓰는 엘리베이터만 4개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다른 층 주민들도 쓰겠지만 통상 한 라인에 엘리베이터가 많아야 2~3개인 점을 감안하면 역시 압구정답습니다. 주차대수도 가구당 4대에 가깝습니다.
압구정 재건축이 말하지 않는 비밀 [집코노미 타임즈]
물론 이 같은 설계안대로 지어진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 건축심의 단계에서 열화되는 편이니까요. 저는 압구정 재건축 설계에 숨어있는 부분만 짚어봤습니다. 한국 최고 수준으로 지어질 아파트가 얼마나 멋진 모습일지는 이번 공모에 참여한 해안건축과 희림건축 홈페이지에서 영상과 브로셔로 확인할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기획·진행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촬영 이문규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