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반도체·자동차 위기, 방관할 건가
수출이 생명줄인 나라에서 -4.5% 수출 증가율 전망치(2023년)는 충격적이다.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던 정부의 공식 발표여서 더욱 암담해진다.

경제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는 수출이었다. 외환위기 시기인 1998년엔 2.8% 줄었지만, 1999년에는 8.6% 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정보기술(IT) 경기 호황 흐름에 올라탄 덕분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엔 수출이 13.9% 급감했지만, 선진 경제권 및 신흥국·자원 부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활용한 경제 영토 확장에 힘입어 2010년엔 28.3% 증가세로 급반전했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유럽연합(EU) 페루 미국과 FTA, 인도와 CEPA(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를 맺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충격으로 2020년 5.5% 줄었던 수출이 이듬해 25.7% 늘어난 것은 반도체 석유화학 자동차 등 기존 주력 품목과 함께 바이오헬스 2차전지 등 신성장 분야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수출 호조의 주역은 물론 기업이다. 우리 기업들은 인수합병(M&A), 기술 개발, 마케팅, 사업 재편 등 창조적 도전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놓는 ‘역전의 명수’였다. 1차 오일쇼크로 인플레이션이 극심했던 1974년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삼성은 1980년대 후반 불황으로 일본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축소할 때 신규 라인 건설에 나서 D램 업체 1위로 부상했다.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경쟁사들이 비용 절감 등 축소 경영에 매달리던 2009년 미국 시장에서 새 차를 산 뒤 1년 내 실직하면 차량을 되사주는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이라는 공격 마케팅으로 큰 성과를 냈다.

갖은 역경과 난관을 헤쳐온 삼성전자와 현대차지만 올해는 만만치 않은 한 해가 될 전망이다. 반도체 시장은 빙하기에 접어들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마저 올 2분기 적자 전망이 나올 정도다. 미·중 갈등 격화로 반도체 수출의 60%(홍콩 포함)를 차지하는 중국 리스크를 폭탄처럼 떠안게 됐다. 일본이 미국, 대만과 밀착하면서 ‘반도체 영광 되찾기’에 나선 점도 찜찜하다. 이 와중에 대기업 반도체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은 야당 안(10%)에도 못 미친 정부 안(8%)으로 결정됐고, 윤석열 대통령 지시로 뒤늦게 정부가 상향 조정하겠다고 호들갑을 떠니 이런 코미디가 없다.

자동차업계는 불황 속 할부 금리 상승 여파로 ‘수요 절벽’에 직면했다. 전기차 수출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리스·렌터카는 보조금 지급(대당 7500달러) 제외 대상에서 빠졌지만, 판매 비중이 미미하다. 법 시행을 3년 유예하고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생산한 차량에도 보조금을 달라는 한국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는 조지아 전기차 공장이 완공되는 2년 뒤까지는 출혈 마케팅을 하면서 버텨야 하는 상황이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을 둘러싼 패권 전쟁은 각국에서 뛰는 자국 스타 플레이어를 모두 소집해 죽기 살기로 총력전을 펼치는 월드컵 토너먼트 같은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와 자동차·부품 수출액은 각각 1292억달러, 774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19%와 11%가량을 차지했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을 수출해 먹고살면서도 걸핏하면 ‘재벌 특혜’ ‘부자 감세’ ‘세수 감소’ 등을 핑계로 지원을 막아서는 게 우리 현실이다. 미국 등 각국이 자국 반도체 시설과 전기차(배터리)에 막대한 보조금을 뿌리면서 공정한 게임의 룰은 사라진 지 오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에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함께 보조금을 지급하더라도 ‘옐로카드’를 꺼내 들 사람은 없다.